문학적이지 않고, 문학적 소양 역시 부족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는 누가 뭐래도 문학이다. 시는 아니고 희곡도 아니니까, 소설. 독서는 취미이고, 여가활동이고, 공부의 일환일 수 있지만, 독서는 어디까지나 행복한 탈출이기에. 가장 확실하고 쉬운 탈출은 책 속으로의 탈출이고, 가장 쾌적한 조건은 소설로의 탈출이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끝이다. 그 곳은 이미 다른 도시, 다른 나라, 다른 세계다.


페미니즘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정확히 비춰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신체에 따라 사람들을 어떻게 구속하는지, 그것이 문화적 신념으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페미니즘은 설명해 준다. 이를 테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관계.





한 쪽에서는 한 세트의 여성이 노예화되고 착취당하고또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다른 쪽에서는 또 한 세트의 여성이 질적으로 다른 유형의 노예화를 경험한다한 쪽이 다른 한 쪽의 결과이자 조건이 된다. (264)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결합을 통해 제3세계의 여성들 뿐 아니라 제 1세계의 여성들도 고통 받고 있다. 국제노동분업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여성은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의 결과로 제일 먼저 해고되었다(263). 직장을 잃은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남편의 임금으로 집에 머물며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이제 제1세계의 여성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성의 화신으로서 가정의 천사가 되어야만 했으며, 상품의 소비자로서만 주목받았다. 가정주부가 된 여성들은, 사회적 고용 관계 없이 남편의 수입만으로 생활하는 여성들은 조직화 되기 어려우며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에 반대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3세계의 여성들은 임금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직장에 나온 가정주부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온전한 임금을 지불받지 못 한다. 3세계의 여성들 중 특별히 농촌 여성들은 가정의 주요 부양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주부화는 저임금을 정당화한다. (262) 1세계 여성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매하고 폐기해 버리는 상품은 제3세계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비인간적 노동시간, 저임금으로 얻어진 것이며, 이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교묘한 결합으로 가능했다. 양 세계에 속한 여성을 모두 억압해 얻은 결과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감춰진 비밀을 비춰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페미니즘 도서를 읽다가 소설을 다시 읽게 되면. , 읽히지가 않는다. 그 세계로 들어갈 수가 없다. 문이 잠겨있다. 누군가 안쪽에서 문을 잠가 버린 것 같다. 절망감에 다시 페미니즘 책을 펼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문학적이지 않고, 문학적 소양 역시 부족하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9회말 2아웃, 풀카운트. 구원투수는 마거릿 애트우드다. 그녀는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다. 나를 정원사 토비로, 비늘클럽 브렌다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이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다.


소설 속 세계는 노화를 넘어 불멸을 추구한다. 새로운 장기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장기 돼지를 만들고, 주름진 피부를 벗겨내고 새로운 피부를 이식한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쾌감을 위해 환희알약을 제조해내고, 결국에는 신인류의 창조에까지 다가선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지구와 지구의 동식물들은 멸종상태에 처하게 되고 인류는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애트우드는 소설 그 자체, 이야기가 가진 만으로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완성했다. 세어보니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을 모두 6(한글책으로는 7) 읽었다. 남아 있는 그녀의 책을 모두 다 섭렵하는 게 올해의 계획이 되고 말았다. 기쁘게도.




































이 책은 온통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의 고민은 책의 내용을 말하지 않으면서 이 책의 근사함을 어떻게 전할 수 있는가,이고 현재로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을 당장 읽을 수 없다면, 읽어야할 다른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면, 알라딘 택배 상자가 이만큼 쌓여 있다면, 이 디스토피아 미친아담 3부작구입만으로도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듦새가 얼마나 예쁘고 우아한지에 대해서라면 보탤 말이 없다. 765홍수의 해』를 단번에 읽은 사람의 사소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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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5-10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앙 너무 근사한 리뷰. 쾌적한 탈출 페미니즘의 콜라보, 애트우드 대모님 만세!

단발머리 2020-05-12 19:46   좋아요 1 | URL
만세 만세 만만세! 애트우드 만만세!!!

다락방 2020-05-13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큰일났네. 저는 이 시리즈 1권만 사두고(집에 잘 있겠죠?) 말았는데, 이 페이퍼 읽고나니 일단 시리즈 다 사둬야 되는거네요? 아이참 큰일났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0-05-15 12: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시리즈 1권 구매 인증샷 기억나요. 방금 올라온 사진에도 책이 가득하던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ㅋㅋㅋㅋㅋ축하드려야겠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