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로서 흑인여성 이미지를 지속시키는 것은 인종, 젠더, 계급 억압을 이데기올로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억압의 형식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특정한 기본적인 관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관념들 중 하나는 사람, 사물, 관념을 두 사이의 차이에 기반하여 범주화하는 이항적 사유이다. (131)

 


이항적 사유방식에서 차이는 대립으로 정의되는데, 오로지 서로 반대항으로 정의됨으로써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항적 사유에서 한 요소는 타자로 대상화되어 조작되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는데, 백인에겐 흑인이, 남성에겐 여성이, 이성에겐 감정이, 문화에겐 자연이, 정신에겐 신체가 대상화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차이에 의해 자신과 타자의 다름을 인식하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나, 이러한 이분법이 대칭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남성 중심적, 서구 중심적, 미국 중심적, 서울 중심적 사고라고 비판하는 논리는, 말하는 주체(the definer, subject)와 그에 의해 규정된 대상(the defined, object)의 존재를 전제한다. 주체(one)가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삼아 나머지 세계인 타자(the others)를 규정하는 것, 다시 말해 명명하는 자와 명명당하는 자의 분리, 이것이 이분법이다. 즉 이분법은 대칭적, 대항적, 대립적 사고가 아니라 주체 일방의 논리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29)









『오리엔탈리즘』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도 이 지점을 지적한다. 민족적으로 다소의 차이는 있더라도 대부분의 동양인은 유아상태’(75)에 처해있다고 믿었기에, 다수의 유럽 지식인들에게 동양은 서양의 가르침또는 지도가 필요한 존재였다. 18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서 동양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유럽은 언제나 강자의 위치를 차지했다(80). 오리엔탈리스트에게 동양이란 있는 그대로의 동양이 아니라 동양화된 동양이다(192).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 서양이 해석하는 동양, 서양이 이해하는 동양만이 동양으로서의 위치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인간이 자기를 생각할 때 반드시 타자를 생각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이원성의 표시 아래서 세계를 파악한다. 이원성은 처음에는 성적 특성을 띠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자기를 동일자로 생각하는 남자와는 자연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타자의 범주에 분류된다. ‘타자는 여자를 포함한다. 처음에 여자는 타자를 홀로 대표할 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타자 속에서 또 세분이 이루어진다. (『2의 성』, 98)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원형(『양성평등에 반대한다』, 30)이다. 그리고 이는 대칭적이지 않다. 남과 여의 구별이, 대칭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 건 매우 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남자, 여자, 우리 모두 이렇게 사이좋게, 평화롭게 (모두 알다시피 사이좋게평화롭게는 강자의 언어다) 같이 살면 좋을텐데, 페미니스트라는 여자들은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여자만의 권리를 주장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결과라는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강남역 사건과 같은 여성혐오 범죄에 대해서도 남성혐오를 부추긴다고 목놓아 울부짖고, 인증 절차를 여러 번 거쳐야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n번방 출입이 뭐가 그렇게 나쁜 일이냐 되묻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의 주인으로서의 인간 남자와 타자로서의 인간 여자가 출생에서부터 사망시까지 여아살해, 여성할례, 불평등한 교육 및 취업기회, 남녀 급여 격차, 승진 제한, 결혼지참금 폭력,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임신, 출산으로 인해 고통받고 차별받는 이유가 여자이기 때문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쉬운 말로, 진짜 더 쉬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려온다.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최고로 중요한 위계질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성별이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로는 그랬다. (212)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농업혁명 이후로는 쭈욱.

인류 역사 내내.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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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농업혁명 이후로는 쭈욱.
인류 역사 내내.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유발 하라리가 명쾌하게 짚어주니 좋구나.. 싶었던 기억 소환.

단발머리 2020-05-15 20:26   좋아요 0 | URL
인류 역사 기술할 때 여자는 왕비, 여왕, 공주 몇 명 이름 넣어주고 마는데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핵심을 한 번 짚어주더라구요.
그점에 대해선 박수를 좀 쳐주고 싶습니다^^

수연 2020-05-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여기 자주 놀러오면 안되겠소. 오면 읽고싶고 사고싶고 그런 책들이 너무 많아서리......

단발머리 2020-05-15 20: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오세요~~~ 자주자주 오시어요. 놀러 구경하러 오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