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7일, 문재인 의원님의 대선 출마 선언이 있었다.

 

 

‘노무현’을 넘어 ‘노무현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그 첫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가족들에게, 누구보다 문재인 의원님 자신에게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나를 생각해 볼 때, 다시 한 번 숙연해진다. 꼭, 승리하시길,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길, 12월의 그 날,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시길 간절히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님 추모 사진집이다. 반갑고, 슬프고, 웃음이 나고, 눈물이 난다.

 

 

 

 

 

 

 

 

 

 

 

 

 

우리가 그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그리움 때문인지 미안함 때문인지 알고 싶었다. (작가의 말, ‘싶었다‘)

 

글을 쓴 정철씨의 말대로, 나도 아직 모른다. 그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인 경주 월성 원자력 환경 관리센터 착공식 참석을 위해 울산공항에 내리신 모습이다. 문재인 의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내 이야기의 맥락과 의미를 이해하는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건 참 행복한 일이겠지 싶다.

 

탄핵 정국 중 책을 읽으시는 모습이다. 보좌진은 불안하고 초조해했으나 오히려 대통령님은 침착하고 편안해 하셨다 한다. 오히려 공부하고 책 읽을 시간이 많아 좋다고 하셨다 한다. 책 읽는 대통령, 책 읽기를 즐겨하는 대통령, 내가 원하는 대통령, 내가 그리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나는 해 뜨기 전에 그를 세 번 부인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 울고 있습니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나는 겉엔 노란 옷을 입고, 속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창피해서

울고 있습니다.

 

너는 언제까지 울려 하느냐.

나는 내가 그에게 내뱉은

그 많은 욕들이 한 글자도 빠짐없이

내 귓구멍 속으로 다시 들어올 때까지

울겠습니다.

 

(‘쓰러지다’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유머가 풍부했다. 비공식 행사에서는 재미있는 행동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초가 하나뿐인데도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장난스럽게 촛불을 끄고 있다. 웬만한 사람들, 웬만큼 노력해도 이런 귀여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타고난 장난기, 타고난 귀여움이다.

 

이젠 대통령님의 사진을 보며 웃을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고, 마음이 안정되었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도 대통령님이 그립다.

아직도 대통령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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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6-23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도요~~~~ 구구절절 같은 맘입니다!

단발머리 2012-06-2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순오기님, 아직 안 주무셨군요. 아이패드에 사진을 찍어놨는데요, 사진이 안 올라가요. 저 어쩌요...

saint236 2012-06-23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아저씨 보셨잖아요"라는 문재인 의원의 딸이 했던 반대의 이유가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게 정말 얼마만이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 : 2)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바울, 로마 시민권자이면서 가마리엘 문하생으로 그리스 철학 뿐 아니라, 당시 로마, 그리스 학문에 통달했던 바울의 말이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죄를 위해, 여러분이 받을 벌과 죄책을 대신 지고 죽으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목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한 것입니다. (57쪽)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길, 그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가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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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문학상 작품집 표지가 바꿨다. (다 아는 얘기를, 나 혼자 이렇게 외로이 발견하고는...쩝)

  

 

 

 

 

 

물론 그 이전의 표지가 더 장중하고 클래식한 느낌이 나기는 하지만, 웬지 어두워 보이는 느낌 또한 사실이다. 새로 바뀐 표지는 하얀색에 오른쪽 상단에 이상의 음영사진이 있고, 왼쪽 아래에 대상 수상자 김영하의 사진이 있다.

 

 

 

 

나는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내가 한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작은 뇌가 달린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쓴다, 라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 예비된 말이었다. 문장들이 비처럼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타자 연습 게임 같았다. ‘지구를 침공하는 다양한 문장들, 그들을 요격하는 지구 수비대 타이핑 챔피언 박만수!’ (46-7쪽)

창조주의 선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이후, 주인공은 초인적인 능력으로 소설을 써 내려간다. 뇌가 달린 것처럼 타이핑 한다면, 손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문장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얼마나 신날까.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러나 지금은 180도 달랐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내가 만들어낸 주인공이 나를 밀어붙였다. 어떻게 그렇게 다작을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스티븐 킹이 그랬다지. “저야말로 궁금합니다. 다른 작가들은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그 시간에 도대체 뭘 한답니까?” 아, 그는 이미 이 지경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51쪽)

매일 매일 쓴다.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쓰고, 쉬는 날도 쓰고, 또 일하는 날이 되어도 쓴다. 계속해서 쓴다. 쓰다가 계속해서 쓰다가 스티븐은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요즘에는 그의 작품이 문학적으로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수상소감에서 김영하는 작가들이 흔히 하는 농담을 전해준다.

“글만 안 써도 되면 참 좋은 직업인데 말이야.”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글을 써야 한다고 믿는 (혹은 그렇게 믿어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써야 하는데,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작가다.

어떤 작업이든 창작의 과정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표절의 유혹, 그것도 약간의 노력을 더해 짜깁기 하는 것도 아니고, 오타까지 그대로 퍼다 옮기는 100% 표절에서 벗어나지 못 하겠는가.

그럼에도, 그런 겹겹이 둘러싸인 진한 고독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 부럽다. 소설가의 머리 속에는 이렇게,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는구나. 이렇게나 재미있고, 이렇게나 기발하고, 이렇게나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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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이다.

책 분량이 짧다는 일각의 지적에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 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 (원서로는 이 책이 150페이지 정도다)’고 답했다더니(옮긴이의 말, 260쪽), 그 말이 100% 이해된다.

앨릭스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면, 에이드리언은 카뮈와 니체를 읽었다. 나는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를 읽었다. 콜린은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어디까지나 도식화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22-23쪽)

나는 누구를 읽었나. 나의 카뮈는, 나의 니체는, 나의 조지 오웰은 누구인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엽서 - 클리프턴 현수교 사진이 있는 - 나 집어들어 이런 식으로 썼다. ‘이십일일자로 온 자네의 서신을 수령하면서,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시하고자 상찬과 기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네, 벗이여.’ (77쪽)

항상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전 여자친구 베로니카가 대학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토니. 그녀와 사귀어도 괜찮냐는 에이드리언의 편지에 토니는 이렇게 답한다. 정확히는 이렇게 답했다고 기억했다. 그 편지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에이드리언에게, 아니,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베로니카, 개같은 년. 잘 지냈나? 너도 함께 이 편지를 읽도록.) (165쪽)

토니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신의 필체로 남아있는 자신의 편지. 기억하지 못 했던 또 다른 나의 모습. 자기가 동경했던 친구를 저주하고, 자기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그녀를 만신창이내며 토니는 말한다. ‘내가 너희를 소개해준 날을 저주하게 되길.’

베로니카의 일갈은 그에게 상처가 되지 않겠지. 결국은 이렇게 된 거니까.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그래.‘ (246쪽)

이 책은 마지막을 덮을 때, 아~~~~~~~~ 하고 깊은 탄식을 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만둔다. 직접 읽어보시길.

문득 두려워진다. 내가 기억하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문득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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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에세이, 책장에서 내립니다.

 

여자 대통령, 우리도 알찬 여자 대통령 가질 수 있다 기대했던 맘, 같이 내립니다.

 

얼굴 마담은 싫습니다.  

 

대선 전에 미리 한 판 해둬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정희,

 

 

끝없이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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