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일이다. 이응준이라는 작가를 난 알지 못 했고, 이제 알게 됐고, 그의 소설을 좋아하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책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는 친숙했다.

아, 기억이 난다.

한반도 전체는 아니고, 거의 절반을 “현빈”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소개된 책이구나. 같이 소개되었던 책 대여섯권이 세트로 구성되어 ‘주원서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그 책. 드라마에 소개되었던 건, “Lemon Tree".

다만 멀리 존재함으로 환상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별들의 세계가 그러하다. (121쪽)

책은, 읽고 싶은 사람이 골라 읽는 것이 제일 좋다. 자신이 골라야 흥미를 느낄 수 있고, 흥미를 느껴야 기억도 잘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 사람들이 책을 도통 안 보는 요즈음, 사람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에 소개되어 급상승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말이다. 그것 자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좋은 책’을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새롭게 독서에 눈뜨게 된다면, 그것도 그렇게 나쁘게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이 경우는 책 한권당 2달러의 상금을 받는 경우와 다르다는 가정하에서다.

나는 ‘작가의 말’이 좋다. 작가들의 멋진 이야기들을 좋아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작가의 말’, ‘수상소감’류다.

나는 일기를 남기지 않는다. 내 이 부끄러운 오늘을, 그리하여 괴로움인 저 어제를 굳이 기록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내 소설들을 보면 그것들을 빚어내려 애쓰던 무렵의 내가 타인은 해독해 내지 못하는 암호가 되어 거기에 있다. (작가의 말, 292쪽) 

어쩜, 이렇게 멋있을 수가.

이승우의 책에서도 이런 비슷한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이었는지, 저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요는 이거였다.

 

 

 

 

 

 

소설을 쓴 이후로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쓰고, 소설을 쓰겠지만, 글쓰기를 통해 얻어지는 성과 그 이상으로, 글쓰기 자체가 갖는 ‘자기 치료’의 효과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과거, 힘들었던 과거가 글쓰기를 통해 승화되고, 상처가 치유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회사를 그만두던 그 해까지 일기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어떤 사람의 생각이다. 그 사람은 지금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일기쓰기를 그만두었는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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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

다락방님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한 페이퍼를 읽고 생각했다. (벌써 두 달 전?)

아, 책 진짜 이쁘다. 재밌겠네. 아, 나도 저 책 읽고 싶어.

다락방님을 만나 커피라도 한 잔, 스콘이라도 나눠먹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진지하게 전해야 할텐데. 아쉬운대로 일단 지면상으로라도.

“다락방님, 책 소개 항상 고마워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쭈욱~~~”

소재가 신선하다. 진보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당 대표 오소영과 새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김수영이 사랑에 빠진다.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드라마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던데,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미있게 그려질 장면이 무척이나 많겠지만, 소설 사이사이 작가의 번뜻이는 유머가 그대로 살아있으니 드라마보다는 아무래도 소설이 더 재미있을 듯.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권총으로 쐈다고 누가 그랬지? 뫼르소지? 맞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뫼르소, 엄마가 오늘 죽었는지 어제 죽었는지도 혼란스러워하던 뫼르소. 그래, 삶이란 확실한 게 하나도 없고 불행은 난데없이 들이닥치는데 태양은 아랑곳없이 이글거린다. 순간, 김수영은 뫼르소가 희미하게나마 이해되었다. 뫼르소는 이 모호한 세계의 중심 앞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66쪽)

추행당하는 아가씨를 도와주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가 된 전태양, 전태양을 도우러 간 김수영. 경찰서 문을 나서며, 생각한다.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권총으로 쐈다고 누가 그랬지? 뫼르소지? 그래, 뫼르소. 『이방인』의 뫼르소.

“고소하라니까. 나는 죽어도 너희 군사독재의 똘마니들이랑은 타협 안 해. 왜놈 때렸다고 이순신 장군이 사과하는 거 봤어?”

“요망한 것이 어딜 감히 장군님 존함을 들먹여. 넌 남자였음 59초 전에 내 손에 죽었어. 개소리 삼키고 시키는 대로 해. 확 옥수수 포대에 넣어서 북송시켜 버리기 전에.” (117쪽)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대화는 오소영이 휘두르는 소화기에 맞아 뒤로 넘어가 대자로 뻗은 새한국당 김수영이 가해자인 진보노동당 오소영을 찾아가 사과를 종용하는 장면이다. 물론, 사건 자체는 오해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만, 두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강의 이 쪽 끝과 저 쪽 끝편에 서 있음은 자명한 바, 이처럼 솔직하고 진솔한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폭풍 소화기로 김수영에게 강한 첫인상을 남긴 오소영은 강남의 한 멤버십 클럽 앞에서 그를 다시 만나, 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장면을 같이 목격하게 되는데...

새한국당 주요 의원들과 여러 야당 의원들이 사이좋게 뒤섞여 한창 어지럽게 놀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위인들끼리 동지, 오라버니, 동생, 누님, 형님 하며 스킨십을 일삼는 가관에 김수영과 오소영은 아우슈비츠 가스실 속의 벌거벗은 유대인 남매처럼 절망했다. (148쪽)

폭탄주를 원샷하는 오소영에게 새한국당 대표, 김수영과의 러브샷을 재차 권하니, 절대미모 오소영 의원 쥐고 있던 빈 잔을 노래 기계를 향해 던져버린다. ㅋㅋ 역시나 역시.

니체는 이렇게 설교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자신과는 반대의 감성을 가진 사람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206쪽)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 다른 별에서 온 사람, 나와 다른 그 사람을 본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 이유는 그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의 사랑을 갈구한다. 나와는 다른 그를 사랑한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에서 강신주는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이란 감정이 과연 어느 경우에 발생하는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은 공동체,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닫혀진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언어 게임이 마주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사랑의 감정은 공동체에서 발생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타자, 즉 다른 공동체에 속한, 혹은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매력으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사랑이란 감정은 삶의 규칙이 다르기에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해 위험한 도약 또는 비약을 감행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208쪽)

‘나와 다른 사람을 갈망하는 것, 다른 공동체에 속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미 공동체,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닫혀진 공간에서 ‘가족’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와 남편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는 위의 책의 페이퍼에서 이미 충분히 성토했으니, 여기에서는 그만하기로 하고.

당장 이 자리에서 총을 맞아 죽어도 알고 싶은 것. 그 여자는 지금 어떨까? 나와 같을까, 다를까? 내 생각은 아예 안 할까? 진짜? 진짜? 설마. (197쪽)

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 깔끔하고 눈부시게 예쁜 이 책이 ‘연애 소설’이라는 걸.

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걸.

결국 알고 싶은 것 한 가지는 바로 이거다. 그녀도 나와 같을까? 그녀도 내 마음과 같을까? 두 사람이 똑같은 마음이라면 둘은 연애하게 될 것이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똑같은 마음이라면 둘은 계속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별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마음이 똑같지 않다면? 두 사람의 마음이 똑같지 않다면, 그렇다면 아무 얘기도 없다.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테니까.

“어떤 일? 액션 버전을 말하는 거야, 에로 버전을 말하는 거야?”

“장난치지 마.”

“보고 싶어서 왔어.”

“뭐?”

“못 보면 죽을 거 같아서 왔다.”

“……우, 웃겨.”

“안 웃긴 거 알아. 사귀자.”

“미쳤어?”

“응, 사귀자.”

“정말 미쳤구나?”

“그 여자 참. 미쳤다니까. 같은 말 여러 번 하게 하네.”

“미쳤어. 정말.” (202쪽)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 그녀의 마음이,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 똑같은지 다른지 알게 되기 전, 세상은 ‘죽을 거 같은’ 곳이다. 그 곳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에서, 지옥 같은 그 곳에서 용기를 내서 그녀의 마음, 그의 마음을 조심스레 두드려본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녀도 나와 같다.”는 것을. “그도 나와 같다.”는 것을.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이제 세상은 ‘천국‘이다. 세상은 ’살 만한 곳‘, ’살고 싶은 곳‘이다.

이응준 소설을 읽고 싶어, 일단 두 권을 빌렸다. 『자전소설 04』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그가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들.

- 비바람, 형(兄), 나무, 짐승, 자유, 청춘, 해탈, 영혼, 고백, 김수영 (자전소설 04, 91쪽)

그래서, 우리 주인공이 김수영이구나.

김수영이구나, 김수영. 저항의 시인, 김수영. 사랑의 시인, 김수영.

아.....

사랑이야기. 재미있는 사랑이야기를 읽었다. 결국 인생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 폭풍처럼 몰아쳐,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왜 하필 지금 이런 때 내게 사랑이 찾아오나, 원망하고 불평해도 소용없으니,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사랑은 그렇게 열병처럼 찾아온다더라. 열병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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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2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김수영이 그래서 김수영인지는 단발머리님의 이 글 보고 처음 알았어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이에요!
:)

단발머리 2012-07-27 17:40   좋아요 0 | URL
그 김수영이 그 김수영인지 확신은 없네요. 그냥 한자가 같고.... 쩝. 그럴거라 예상이 엄청 됩니다. 다락방님, 너무 덥네요. 너무 더워요. 이 하소연을 다락방님에게... 아, 더워요.
 

 

 

 

 

 

지난 주, 내 사랑하고 존경하는 강준만 교수님이 <안철수 공개 지지선언>을 하셨다. 책 <안철수의 힘>을 통해서였다. 아, 내 사랑하고 존경하는 강준만 교수님이, 이런 결정을...

그는 책을 통해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이념과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운 안원장이 '증오의 시대'를 끝낼 적임자"라는 것이며 둘째는 "시장주의자이면서도 정의·공정·공생을 강조해온 그가 공정국가를 실현할 적임자"라는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강교수는 디지털 선구자인 안철수 원장이 "SNS 소통 혁명시대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머니투데이 이유팀 장영석기자, 2012-07-16>

 

그 분이 주목하면 대통령이 되지 않나.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고, 무명에 가까웠던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다. 그 분은 현재 한국 정치 상황과 추이를 가장 정확히 판단할 만한 자료와 근거를 충분히, 말 그대로 완벽에 가깝게 가지고 계시지 않나. 아, 그렇다면 이번엔 안철수인가?

너무 화가 나서 신랑에게 따진다. (강교수님께는 따질 수 없지 않은가. 내~ 사랑하고 존경하는 강교수님께. 맘속 깊은 곳 강교수님이 계신 듯 우리 신랑 대답 잘도 한다.)

“왜 안철수야! 어? 왜! 왜, 문재인이 아니고 안철수야? (톤을 느끼시라. 높은 파#이다. 파#)”

“그 글 못 읽었어? 증오의 시대를 끝내야 한데잖아. 그걸 끝낼 수 있는 사람이 안철수야.”

“그러니까, 왜, 왜 문재인은 안 되는 건데?”

“노무현 못 봤어? 노무현이 하면 뭐든지 반대하잖아. 문재인도 마찬가지야. 문재인이 하면 뭐든지 반대할거야. 노무현, 문재인은 민주화 시대를 보여주는 인물이잖아.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물. 그게 안철수야.”

“어?? 그래도 우리 문후보님이, 어? 가족의 반대를 무릎 쓰고, 그 성격에, 그 원하지도 않는 일을, 정말 역사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시겠다고 대선에 뛰어드셨는데, 어? 뭐? .... ”

“그러니까, 안철수가 되도록 돕는 거지. 거기까지야.”

내 넋두리는 끝이 없고, 한탄도 끝이 없다. 아, 문후보님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얼마나 하기 싫은 결정을 하셨는데, 결론이 야당 대선 후보로 끝이야? 그것도 단일 후보 이전, 민주당 대선 후보?

그런데, 퍼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철수의 생각> 출간이 이루어지면서 이것이 대선 출마 선언으로 기정사실화 되는 현 상황에서, 이것을 반긴 대선 후보는 오직 한 명, 문재인 후보 뿐이었다는 걸. 하나 같이 반기지 않았다. 박근혜는 물론이고, 야권 후보들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왜? 쟤가 나오면 내가 불리하니까. 안철수가 현재 박근혜와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하고, 가장 강력한 후보라고 해도, 쟤가 되면 내가 안 될테니까. 싫은거다, 그게.

그런데, 문후보님은 다르다.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거다. 내가 아니라, 철수가 되도 괜찮다는 거다. 힘을 함쳐 정권 교제를 이루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희망의 메시지’, ‘승리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거다. 그 분의 마음이 그러하다는 거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정권 교체를 이루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는 거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여는데에, 안철수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나도 안철수와 문재인이 즐겁게 경쟁하다, 그 최후의 승자에게 힘을 모아주는 훈훈한 장면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야 할 텐데.

아, 그런데도, 서운하다.

내 사랑이 아쉽다.

내 사랑이 아쉽다.

일단, <안철수의 생각>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나서 내 사랑이 옮겨 갈건지, 어쩔건지 생각해 봐야겠다.

그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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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7-2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아니어도 된다. 와. 멋진 표현입니다. 문 후보님의 대인배 기질을 이런 예민한 시기에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두루두루..묘한 기분이네요. 단발머리님의 내 사랑이 아쉽다..에도 무척 공감이 갑니다.

단발머리 2012-07-23 19:12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 안녕하세요~~먼저 깊은 공감에 감사드리고^^; 사실 문후보님은 자신이 꼭 대통령이 되고 싶어 출마하신거라기 보다는 시대의 부름에 응하신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자신에게 불리한 민주당 경선룰을 전격적으로 수용하신 것도 그런 맥락이구요. 내가 일등하겠다고 판 깨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스스로를 "정권 교체"의 불쏘시개로 여기시는 듯해요. 그리구요, 우아하게 말해서 "내 사랑이 아쉽다"예요. 일상어로 표현하자면 "완전 울고 싶다"입니다. 울고 싶어요. 엉엉~~~~
 

아니, 여행 가방에 샌들과 자외선 차단제와 함께 『베어울프』를 챙길 계획이 없었다고? (11쪽)

당연하지. 여행 가방에 샌들과 자외선 차단제와 함께 『베어울프』를 챙길 수는 없지. 물론, <베어울프>로 말한다면야 영어로 씌어진 위대한 시들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서, 그 명성에 걸맞는 포스를 적정히 풍기고 있지만서도 어떻게 베어울프를? 다른 걸 챙긴다면 또 모를까. <내 연애의 모든 것>, <욕망해도 괜찮아>, <1F/B1> 그리고 <보수를 팝니다>. 이 정도?

대학에서 『베어울프』를 배울 때는 한 가지 생각밖에 못 했다. “아, 진짜 길다. 얘네들은 싸우러 간다는 애들이 무슨 말이 이렇게들 많냐~~" 읽다가 조금 큭큭대긴 했지만, 여행 가방에 넣을 수는 없다. 영문학사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라 하시니, 배우긴 했지만, 재미있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저자 스스로가 “동양의 정전은 내 능력 밖이다.”라고 밝혔듯이, 이 책에서 말하는 고전이란, 정확하게 말해 “서양 고전”이다. 내 생각을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고전”도 있고, 한문으로 쓰여졌지만 우리의 것이 분명한 “열하일기” 같은 고전도 있다. 우리의 고전은 우리의 고전대로 나름의 목록이 필요할 것이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에 고전 목록, 특별히 초중고생들을 위한 고전 추천 목록이 있는데, 은근 끌린다. 딸롱이가 4학년이 되면, 도전해 보리라 마음 먹었는데, 벌써 3학년이다. 5학년쯤 도전해 보리라, 계획 수정한다.^^

이 책의 장점은 고전 소개 책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소개 및 요약”의 그 흔하디 흔한 구성을 따라가지 않았다는데 있다. 물론, 고전을 소개한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책 제목이 <고전의 유혹>인데. 왜 고전으로 유혹을 하겠나. 고전은 읽어야하는 책이고, 읽어야지~~하고 다짐하지만, 실제로는 한두 장 넘기기도 어렵다는 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인 바, 고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고전 읽기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유혹해 보겠다는 것이다. 아! 고전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각 고전을 소개할 때 보여주는 저자의 진심어린 경탄과 칭찬이 이 황홀한 유혹의 진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실낙원』 - 사탄의 반란, 세계의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한 인간의 구원을 다룬 밀턴의 서사적 이야기 - 은 인간의 펜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경이다. 단 하나의 작품, 단 하나의 정신, 그야말로 최고다. 이에 근접할 만한 경쟁자는 없다. (191쪽)

 

 

 

 

 

 

 

여기서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다. 『위대한 유산』 보다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 없으리라는 것이다 - 앞으로도 영원히. 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 소설은 따스함과 인간애, 유머 그리고 장담하건대 그야말로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달콤함이 넘쳐흐른다. 누구나 이미 『위대한 유산』이 고금을 통틀어 가장 즐거운 책 가운데 하나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가 막힐 뿐이다. (291쪽)

 

 

 

 

 

 

내 생각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큼 인간 심리를 그렇게 통찰력 있게 - 그리고 경악스러울만큼 광범위한 인격 유형과 행동을 통해서 - 파헤친 소설은 없다. (317쪽)

인간의 펜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경이란다, 고금을 통틀어 가장 즐거운 책 가운데 하나란다, 인간 심리를 가장 통찰력있게 파헤친 소설이란다. 어떻게 이 책들을 읽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책들을 몰라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재미있는 “책”이라는 거다. 이 책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재미있는 “책”이다. 무슨 이런 말이 있나. 이 얘기가 가능한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고전 소개 책들은 “책”은 “책”이되, 모양은 “책”이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안내서”의 기능을 하는 무늬만 “책”들이다. 이 책은 다르다. 이 책 자체가 재미있다. 발랄하다 못 해 약간 불온(?)스러운 느낌을 팍팍 풍기는 작가가 우리에게 과히 새로울 것 없는 책 하나를 달랑 들고 나타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말 그대로 종횡무진한다. 유쾌하다.

이 책의 세 번째 장점 (나, 작가한테 연락해야겠네. 이렇게 사랑하네, 내가 이 책을)은 장마다 있는 요약 노트다. 이걸 보면 “아, 이 사람은 정말 이 책들을 꼼꼼히, 자세히 읽었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요약 노트라 함은 “오래된 소문, 사람들이 모르는 (그러나 알아야 할) 것, 최고의 구절, 성(性)스러운 이야기, 기묘한 사실, 건너뛸 부분”이다.

이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건너뛸 부분”. 책 전체를 다 읽지 않아도 된다는 저자의 말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아, 정말이야? 그래도 돼? 다 안 읽어도 돼? 이렇게까지 자세히 가이드해 준다면야 나도 한 번 도전해 보지 뭐, 고전 읽기 프로젝트!

물론 저자의 말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열 개 장은 뒤의 장들보다 약하므로, 그 부분은 건너뛰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급히 서두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마지막 2백 페이지 정도 (24장부터 끝까지)도 건너뛰거나 대충 읽어도 된다. (263쪽)

아니, 내~ 진정 사랑하는 『제인 에어』에게 이 무슨 돼먹지 못한 헐리우드 액션이란 말인가. 물론, 조금 지루한 부분 있다. 나도 인정한다. 제인이 붉은 방에 갇히고, 제인이 배고프고, 제인이 헬렌을 떠나보내고. 어디가 재미있겠나. 인정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꼭 집어서. 아니, 진짜 이 무슨, 경우 없는 경우인가.

 

 

 

 

 

 

 

다른 인쇄물들을 건너뛰어라. 교회를 빠지고, 데이트를 건너뛰고, 식사를 건너뛰어라. 그러나 부디 『백 년의 고독』에서는 단 한 순간도 건너뛰지 마시라. (478쪽)

에이, 이런 순.

기쁨과 환희, 격려로 시작한 이 페이퍼, 웬지 예감이 좋지 않다. 그래 좋다 이거야.

나도 내 할 말을 하겠어.

총평.

이 책은 편협한 시선의 작가가 옹졸하게 그려내는 소극적, 비판적 고전 평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이, 시원~~~~하다.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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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예쁘고, 제목도 센스 있고, 물론 내용도 알차다. 알라딘 이웃 로쟈님, 대박나시길. 대박나셔서 계속해서 좋은 책 내시길. (ㅋㅋ 나만 아는 이웃, 나 혼자, 나홀로, 나 스스로 로쟈님을 이웃삼다.)

이탈로 칼비노의 말대로 고전이란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유명하기에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 고전이다. 창피하니까. (78쪽)

맞다, 정말 창피하다. 그래서 이 표현은 정말 유용하다.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

나는 ‘죄와 벌’을, ‘안나 카레니나’를, ‘폭풍의 언덕’을, ‘하얀 성’을, 다시 읽고 있어.

             

 고마워요, 칼비노. 고마워요, 로쟈님.

<모든 것이 끝났다> (푸슈킨, 1824)

모든 것이 끝났다;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너의 무릎을 껴안고,

나는 애처롭게 호소했었지.

모든 것이 끝났어요 - 너의 대답을 듣는다.

다시는 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우수로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일들은 아마도 다 잊게 되겠지 -

사랑이 날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넌 젊고, 너의 영혼은 아름다우니,

또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하게 되리.

넌 젊고, 너의 영혼은 아름다우니,

또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하게 되리.

아...... 아, 푸슈킨을 깜빡했네.

난 ‘푸슈킨 선집’을, ‘대위의 딸’을 다시 읽고 있어.

   

<미운 오리 새끼>는 마치 안데르센의 인생역전을 보여주는 듯한 동화지만, 현실에서 안데르센의 운명은 ‘미운 오리 새끼’의 운명보다 덜 행복한 편이었다. ... 그의 ‘고향’은 콜린 집안이었지만 그 고향은 그가 끝내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더불어 안데르센은 자신이 선택받은 부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검증 필요성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가 평생 동안 신경질환과 정신장애에 시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90-91쪽)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오덴세의 가장 궁벽한 마을에서, 구두수선공인 스물 두 살의 한스 안데르센과 서른 살의 세탁부 안네 마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하층계급 출신이라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 안데르센은 작가로 성공한 뒤에는 하층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자신을 후원해주는 ‘콜린’ 집안 사람들과도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도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가 바로 <미운 오리 새끼>의 ‘오리 새끼’이고, <인어공주>의 ‘인어공주’다.

제일 재미있게 읽은 꼭지는 “세계문학 전쟁이 시작됐다!”였다.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시리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숨겨진 명작 발굴의 대산세계문학총서, 다양성이 장점인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작품 해설이 최고인 펭귄클래식, 거장들의 초역작품을 소개하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9쪽).

열린책들이 빠졌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출간한 열린책들.

어느 책에선가, 진중권씨가 자신의 독서내력을 이야기하다가 어렸을 때 <강소천 어린이 문학전집>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했더니 신랑이 말했다.

“어, 나도 그거 집에 있었는데......”

“세상에..... <강소천 어린이 문학전집>이? 그게 집에 있었단 말이야? 그 시절에? 어? 야~~~ 자기는, 자기는 진짜 진중권씨처럼 훌륭한 사람 되야 돼. 그 때, 그 정도의 문화 혜택을 받았으면, 어? 어쩌구, 저쩌구....”

나는 아니었다. 나도 어린이였는데, 진중권씨가 어린이였을 때, 신랑이 어린이였을 때, 나도 어린이였는데, 우리집엔 <강소천 어린이 문학전집>이 없었다. 중 2 겨울, 우리집에도 세계 문학 전집이 등장하기는 했는데, 그건 책을 엄청 사랑하는 청소년 혹은 역시 책을 엄청 사랑하는 성인용 문학전집이었다. 우리교회 전도사님 사모님이 처녀 시절에 읽으셨던 소중한 책을 내게 물려주셨다. 아주, 아주 두꺼운 책들이었고, 세로쓰기였다.

나는 매일 제목들을 읽고 또 읽었다. 전쟁과 평화, 죄와 벌, 모비딕, 대지, 부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더는 기억이 안 나네. 책 속지는 눈처럼 새하앴지만, 아무래도 세로쓰기는 읽기 힘들었다. 난 그 책들을 다 읽지 못 했다. 그 때, 그 책들을 다 읽었더라면, 읽고 또 읽었더라면, 난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난 정여울이 되었을까. 신랑은 진중권이 되고, 나는 정여울이 되었을까.

그 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로쟈의 세계 문학 다시 읽기>를 만났더라면, 난 ‘데미안’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페스트’를, ‘노인과 바다’를 열 여섯에, 열 일곱에 만났을텐데. 그러면 진심으로, 사실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텐데.

“난 ~를 다시 읽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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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17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저 로쟈님 책 읽어봐야겠네요.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말았는데 말이죠. 저도 로쟈님은 '나만 아는 이웃' 입니다. 으하하하.

단발머리 2012-07-17 06:45   좋아요 0 | URL
우아아, 다락방님도요? 다락방님은 유명하시니, 유명이웃 로쟈님이랑 서로 잘 아시는 줄 알았지요~~ 저, 위로 받은 거 맞겠지요?? ㅋ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