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여행 가방에 샌들과 자외선 차단제와 함께 『베어울프』를 챙길 계획이 없었다고? (11쪽)

당연하지. 여행 가방에 샌들과 자외선 차단제와 함께 『베어울프』를 챙길 수는 없지. 물론, <베어울프>로 말한다면야 영어로 씌어진 위대한 시들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서, 그 명성에 걸맞는 포스를 적정히 풍기고 있지만서도 어떻게 베어울프를? 다른 걸 챙긴다면 또 모를까. <내 연애의 모든 것>, <욕망해도 괜찮아>, <1F/B1> 그리고 <보수를 팝니다>. 이 정도?

대학에서 『베어울프』를 배울 때는 한 가지 생각밖에 못 했다. “아, 진짜 길다. 얘네들은 싸우러 간다는 애들이 무슨 말이 이렇게들 많냐~~" 읽다가 조금 큭큭대긴 했지만, 여행 가방에 넣을 수는 없다. 영문학사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라 하시니, 배우긴 했지만, 재미있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저자 스스로가 “동양의 정전은 내 능력 밖이다.”라고 밝혔듯이, 이 책에서 말하는 고전이란, 정확하게 말해 “서양 고전”이다. 내 생각을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고전”도 있고, 한문으로 쓰여졌지만 우리의 것이 분명한 “열하일기” 같은 고전도 있다. 우리의 고전은 우리의 고전대로 나름의 목록이 필요할 것이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에 고전 목록, 특별히 초중고생들을 위한 고전 추천 목록이 있는데, 은근 끌린다. 딸롱이가 4학년이 되면, 도전해 보리라 마음 먹었는데, 벌써 3학년이다. 5학년쯤 도전해 보리라, 계획 수정한다.^^

이 책의 장점은 고전 소개 책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소개 및 요약”의 그 흔하디 흔한 구성을 따라가지 않았다는데 있다. 물론, 고전을 소개한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책 제목이 <고전의 유혹>인데. 왜 고전으로 유혹을 하겠나. 고전은 읽어야하는 책이고, 읽어야지~~하고 다짐하지만, 실제로는 한두 장 넘기기도 어렵다는 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인 바, 고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고전 읽기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유혹해 보겠다는 것이다. 아! 고전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각 고전을 소개할 때 보여주는 저자의 진심어린 경탄과 칭찬이 이 황홀한 유혹의 진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실낙원』 - 사탄의 반란, 세계의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한 인간의 구원을 다룬 밀턴의 서사적 이야기 - 은 인간의 펜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경이다. 단 하나의 작품, 단 하나의 정신, 그야말로 최고다. 이에 근접할 만한 경쟁자는 없다. (191쪽)

 

 

 

 

 

 

 

여기서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다. 『위대한 유산』 보다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 없으리라는 것이다 - 앞으로도 영원히. 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 소설은 따스함과 인간애, 유머 그리고 장담하건대 그야말로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달콤함이 넘쳐흐른다. 누구나 이미 『위대한 유산』이 고금을 통틀어 가장 즐거운 책 가운데 하나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가 막힐 뿐이다. (291쪽)

 

 

 

 

 

 

내 생각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큼 인간 심리를 그렇게 통찰력 있게 - 그리고 경악스러울만큼 광범위한 인격 유형과 행동을 통해서 - 파헤친 소설은 없다. (317쪽)

인간의 펜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경이란다, 고금을 통틀어 가장 즐거운 책 가운데 하나란다, 인간 심리를 가장 통찰력있게 파헤친 소설이란다. 어떻게 이 책들을 읽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책들을 몰라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재미있는 “책”이라는 거다. 이 책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재미있는 “책”이다. 무슨 이런 말이 있나. 이 얘기가 가능한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고전 소개 책들은 “책”은 “책”이되, 모양은 “책”이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안내서”의 기능을 하는 무늬만 “책”들이다. 이 책은 다르다. 이 책 자체가 재미있다. 발랄하다 못 해 약간 불온(?)스러운 느낌을 팍팍 풍기는 작가가 우리에게 과히 새로울 것 없는 책 하나를 달랑 들고 나타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말 그대로 종횡무진한다. 유쾌하다.

이 책의 세 번째 장점 (나, 작가한테 연락해야겠네. 이렇게 사랑하네, 내가 이 책을)은 장마다 있는 요약 노트다. 이걸 보면 “아, 이 사람은 정말 이 책들을 꼼꼼히, 자세히 읽었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요약 노트라 함은 “오래된 소문, 사람들이 모르는 (그러나 알아야 할) 것, 최고의 구절, 성(性)스러운 이야기, 기묘한 사실, 건너뛸 부분”이다.

이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건너뛸 부분”. 책 전체를 다 읽지 않아도 된다는 저자의 말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아, 정말이야? 그래도 돼? 다 안 읽어도 돼? 이렇게까지 자세히 가이드해 준다면야 나도 한 번 도전해 보지 뭐, 고전 읽기 프로젝트!

물론 저자의 말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열 개 장은 뒤의 장들보다 약하므로, 그 부분은 건너뛰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급히 서두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마지막 2백 페이지 정도 (24장부터 끝까지)도 건너뛰거나 대충 읽어도 된다. (263쪽)

아니, 내~ 진정 사랑하는 『제인 에어』에게 이 무슨 돼먹지 못한 헐리우드 액션이란 말인가. 물론, 조금 지루한 부분 있다. 나도 인정한다. 제인이 붉은 방에 갇히고, 제인이 배고프고, 제인이 헬렌을 떠나보내고. 어디가 재미있겠나. 인정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꼭 집어서. 아니, 진짜 이 무슨, 경우 없는 경우인가.

 

 

 

 

 

 

 

다른 인쇄물들을 건너뛰어라. 교회를 빠지고, 데이트를 건너뛰고, 식사를 건너뛰어라. 그러나 부디 『백 년의 고독』에서는 단 한 순간도 건너뛰지 마시라. (478쪽)

에이, 이런 순.

기쁨과 환희, 격려로 시작한 이 페이퍼, 웬지 예감이 좋지 않다. 그래 좋다 이거야.

나도 내 할 말을 하겠어.

총평.

이 책은 편협한 시선의 작가가 옹졸하게 그려내는 소극적, 비판적 고전 평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이, 시원~~~~하다. 메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