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일이다. 이응준이라는 작가를 난 알지 못 했고, 이제 알게 됐고, 그의 소설을 좋아하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책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는 친숙했다.
아, 기억이 난다.
한반도 전체는 아니고, 거의 절반을 “현빈”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소개된 책이구나. 같이 소개되었던 책 대여섯권이 세트로 구성되어 ‘주원서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그 책. 드라마에 소개되었던 건, “Lemon Tree".
다만 멀리 존재함으로 환상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별들의 세계가 그러하다. (121쪽)
책은, 읽고 싶은 사람이 골라 읽는 것이 제일 좋다. 자신이 골라야 흥미를 느낄 수 있고, 흥미를 느껴야 기억도 잘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 사람들이 책을 도통 안 보는 요즈음, 사람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에 소개되어 급상승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말이다. 그것 자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좋은 책’을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새롭게 독서에 눈뜨게 된다면, 그것도 그렇게 나쁘게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이 경우는 책 한권당 2달러의 상금을 받는 경우와 다르다는 가정하에서다.
나는 ‘작가의 말’이 좋다. 작가들의 멋진 이야기들을 좋아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작가의 말’, ‘수상소감’류다.
나는 일기를 남기지 않는다. 내 이 부끄러운 오늘을, 그리하여 괴로움인 저 어제를 굳이 기록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내 소설들을 보면 그것들을 빚어내려 애쓰던 무렵의 내가 타인은 해독해 내지 못하는 암호가 되어 거기에 있다. (작가의 말, 292쪽)
어쩜, 이렇게 멋있을 수가.
이승우의 책에서도 이런 비슷한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이었는지, 저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요는 이거였다.
소설을 쓴 이후로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쓰고, 소설을 쓰겠지만, 글쓰기를 통해 얻어지는 성과 그 이상으로, 글쓰기 자체가 갖는 ‘자기 치료’의 효과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과거, 힘들었던 과거가 글쓰기를 통해 승화되고, 상처가 치유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회사를 그만두던 그 해까지 일기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어떤 사람의 생각이다. 그 사람은 지금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일기쓰기를 그만두었는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