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

다락방님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한 페이퍼를 읽고 생각했다. (벌써 두 달 전?)

아, 책 진짜 이쁘다. 재밌겠네. 아, 나도 저 책 읽고 싶어.

다락방님을 만나 커피라도 한 잔, 스콘이라도 나눠먹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진지하게 전해야 할텐데. 아쉬운대로 일단 지면상으로라도.

“다락방님, 책 소개 항상 고마워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쭈욱~~~”

소재가 신선하다. 진보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당 대표 오소영과 새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김수영이 사랑에 빠진다.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드라마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던데,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미있게 그려질 장면이 무척이나 많겠지만, 소설 사이사이 작가의 번뜻이는 유머가 그대로 살아있으니 드라마보다는 아무래도 소설이 더 재미있을 듯.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권총으로 쐈다고 누가 그랬지? 뫼르소지? 맞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뫼르소, 엄마가 오늘 죽었는지 어제 죽었는지도 혼란스러워하던 뫼르소. 그래, 삶이란 확실한 게 하나도 없고 불행은 난데없이 들이닥치는데 태양은 아랑곳없이 이글거린다. 순간, 김수영은 뫼르소가 희미하게나마 이해되었다. 뫼르소는 이 모호한 세계의 중심 앞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66쪽)

추행당하는 아가씨를 도와주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가 된 전태양, 전태양을 도우러 간 김수영. 경찰서 문을 나서며, 생각한다.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권총으로 쐈다고 누가 그랬지? 뫼르소지? 그래, 뫼르소. 『이방인』의 뫼르소.

“고소하라니까. 나는 죽어도 너희 군사독재의 똘마니들이랑은 타협 안 해. 왜놈 때렸다고 이순신 장군이 사과하는 거 봤어?”

“요망한 것이 어딜 감히 장군님 존함을 들먹여. 넌 남자였음 59초 전에 내 손에 죽었어. 개소리 삼키고 시키는 대로 해. 확 옥수수 포대에 넣어서 북송시켜 버리기 전에.” (117쪽)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대화는 오소영이 휘두르는 소화기에 맞아 뒤로 넘어가 대자로 뻗은 새한국당 김수영이 가해자인 진보노동당 오소영을 찾아가 사과를 종용하는 장면이다. 물론, 사건 자체는 오해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만, 두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강의 이 쪽 끝과 저 쪽 끝편에 서 있음은 자명한 바, 이처럼 솔직하고 진솔한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폭풍 소화기로 김수영에게 강한 첫인상을 남긴 오소영은 강남의 한 멤버십 클럽 앞에서 그를 다시 만나, 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장면을 같이 목격하게 되는데...

새한국당 주요 의원들과 여러 야당 의원들이 사이좋게 뒤섞여 한창 어지럽게 놀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위인들끼리 동지, 오라버니, 동생, 누님, 형님 하며 스킨십을 일삼는 가관에 김수영과 오소영은 아우슈비츠 가스실 속의 벌거벗은 유대인 남매처럼 절망했다. (148쪽)

폭탄주를 원샷하는 오소영에게 새한국당 대표, 김수영과의 러브샷을 재차 권하니, 절대미모 오소영 의원 쥐고 있던 빈 잔을 노래 기계를 향해 던져버린다. ㅋㅋ 역시나 역시.

니체는 이렇게 설교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자신과는 반대의 감성을 가진 사람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206쪽)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 다른 별에서 온 사람, 나와 다른 그 사람을 본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 이유는 그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의 사랑을 갈구한다. 나와는 다른 그를 사랑한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에서 강신주는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이란 감정이 과연 어느 경우에 발생하는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은 공동체,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닫혀진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언어 게임이 마주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사랑의 감정은 공동체에서 발생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타자, 즉 다른 공동체에 속한, 혹은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매력으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사랑이란 감정은 삶의 규칙이 다르기에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해 위험한 도약 또는 비약을 감행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208쪽)

‘나와 다른 사람을 갈망하는 것, 다른 공동체에 속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미 공동체,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닫혀진 공간에서 ‘가족’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와 남편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는 위의 책의 페이퍼에서 이미 충분히 성토했으니, 여기에서는 그만하기로 하고.

당장 이 자리에서 총을 맞아 죽어도 알고 싶은 것. 그 여자는 지금 어떨까? 나와 같을까, 다를까? 내 생각은 아예 안 할까? 진짜? 진짜? 설마. (197쪽)

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 깔끔하고 눈부시게 예쁜 이 책이 ‘연애 소설’이라는 걸.

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걸.

결국 알고 싶은 것 한 가지는 바로 이거다. 그녀도 나와 같을까? 그녀도 내 마음과 같을까? 두 사람이 똑같은 마음이라면 둘은 연애하게 될 것이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똑같은 마음이라면 둘은 계속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별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마음이 똑같지 않다면? 두 사람의 마음이 똑같지 않다면, 그렇다면 아무 얘기도 없다.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테니까.

“어떤 일? 액션 버전을 말하는 거야, 에로 버전을 말하는 거야?”

“장난치지 마.”

“보고 싶어서 왔어.”

“뭐?”

“못 보면 죽을 거 같아서 왔다.”

“……우, 웃겨.”

“안 웃긴 거 알아. 사귀자.”

“미쳤어?”

“응, 사귀자.”

“정말 미쳤구나?”

“그 여자 참. 미쳤다니까. 같은 말 여러 번 하게 하네.”

“미쳤어. 정말.” (202쪽)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 그녀의 마음이,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 똑같은지 다른지 알게 되기 전, 세상은 ‘죽을 거 같은’ 곳이다. 그 곳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에서, 지옥 같은 그 곳에서 용기를 내서 그녀의 마음, 그의 마음을 조심스레 두드려본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녀도 나와 같다.”는 것을. “그도 나와 같다.”는 것을.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이제 세상은 ‘천국‘이다. 세상은 ’살 만한 곳‘, ’살고 싶은 곳‘이다.

이응준 소설을 읽고 싶어, 일단 두 권을 빌렸다. 『자전소설 04』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그가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들.

- 비바람, 형(兄), 나무, 짐승, 자유, 청춘, 해탈, 영혼, 고백, 김수영 (자전소설 04, 91쪽)

그래서, 우리 주인공이 김수영이구나.

김수영이구나, 김수영. 저항의 시인, 김수영. 사랑의 시인, 김수영.

아.....

사랑이야기. 재미있는 사랑이야기를 읽었다. 결국 인생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 폭풍처럼 몰아쳐,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왜 하필 지금 이런 때 내게 사랑이 찾아오나, 원망하고 불평해도 소용없으니,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사랑은 그렇게 열병처럼 찾아온다더라. 열병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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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2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김수영이 그래서 김수영인지는 단발머리님의 이 글 보고 처음 알았어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이에요!
:)

단발머리 2012-07-27 17:40   좋아요 0 | URL
그 김수영이 그 김수영인지 확신은 없네요. 그냥 한자가 같고.... 쩝. 그럴거라 예상이 엄청 됩니다. 다락방님, 너무 덥네요. 너무 더워요. 이 하소연을 다락방님에게... 아, 더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