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아닌, 그제 아침의 일이다. 한밤에 꿈이 너무나 또렷해 안방에서 걸어나와 거실 책장 앞에 섰다. 없었다. ‘엘렌 식수’는 없었다.

꿈 속에서 나는 똑같은 자리에 서 있었는데, 책장의 맨 왼쪽, 위에서 두번째 칸 앞이었다. 그 자리는 필립 로스 구역이다. 나는 그곳에 필립 로스의 책을 모아두었다. 그런데, 꿈 속에서 나는 필립 로스 구역에서 『엘렌 식수』라는 제목의 책을 뽑아 들었다. 꿈 속에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 엘렌 식수는 사람 이름인데, 제목이 '엘렌 식수'네? 나한테 이런 책이 있었나. 그럴 리가. 책을 뽑아 들고는 꿈에서 깼다. 일년에 한 두 번밖에 꿈꾸지 않는 나는, 아침에 다시 책장 앞에 섰다. 그럴 리가. 그럼 그렇지. ‘엘렌 식수’라는 책은 없었다.

알라딘에 ‘엘렌 식수’라고 검색해 보니, 이 책이 제일 먼저 검색된다. 제목에서부터 카리스마를 뿜뿜하는 이 책, 『메두사의 웃음/출구』. 책표지의 제목은 『메두사의 웃음/출구』이고 알라딘 제목은 『매두사의 웃음 출구』로 표시된다. 나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 책의 존재조차 알지 못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엘렌 식수’를 꿈꿨는가.











어렴픗 떠오르는 책은 『부엌 청소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는 없다』. 이 페이지를 찍었던 기억이 그제야 난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써야 합니다.

여자들에 대해 써야 합니다.

여자들은 글 쓰는 자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여자들은 그들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난폭하게

그 자리를 박탈당해 왔습니다.

여성은 자기 자신의 해방 운동을 통해

세상 속으로, 역사 속으로 들어가듯, 글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엘렌 식수


여자들의 글쓰기에 대한 엘렌 식수의 글을 읽고 나니 ‘여성적 글쓰기’가 떠오른다. 나의 서재-서재 태그를 통해 ‘여성적 글쓰기’와 연결된 글을 찾는다. 그렇게 나는, 작년에 내가 썼던 글을 어렵사리 기억해낸다.




엘렌 식수Helene Cixous는 여성을 억압하고 침묵에 빠뜨리는 가부장제의 이항대립적 사고의 기반을 약화시키거나 무너뜨리는 언어로 여성적 언어를 말한다. 또한 이런 종류의 언어가 이른바 여성적 글쓰기ecriture feminine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믿는다. 여성적 글쓰기는 자유로운 연상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성된다. 여성적 글쓰기는 미리 정해진 ‘올바른’ 구성법, 합리적인 논리 규칙(경험 인지에 관한 협소한 정의에 근거하여 다양한 종류의 감정적, 직관적 경험을 불신하는, ‘머릿속’에서만 머무르는 논리), 선형추론 linear reasoning(x 다음에는y가, y다음에는 z가 온다는 식의 추론)등을 요구하기 마련인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글쓰기 양식에 저항한다. (『비평이론의 모든 것』, 228쪽)





신체와 마찬가지로 쓰는 자리, 말하는 자리를 박탈당한 여자의 위치에서, 쓴다. 페미니즘 현몽은 이렇게 내게 왔는데, 시작은 ‘엘렌 식수’이다. 알게 모르게 지나쳐 왔던 '엘렌 식수'를 이제 다시 읽게 될 것이고, 그리고는 쓰게 될 것이다.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 그 다음 다음의 현몽에서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꿈꾸고, 책을 뽑아 들고, 책을 찾아 보고, 읽고 그리고 또 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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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5-0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이 공부하시고 이제는 꿈도 꾸시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적어주시는 게 너무 좋습니다. 응원하고 지켜보고 있어요. 이 글을 보니 저 역시 짤막한(실제로 짧게 쓸지 어떨지 모르지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쓰러 가야겠어요. 슝-

단발머리 2018-05-13 19:3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응원에 제가 항상 파이팅하고 있다는 거.... 꼭.... 기억해 주세요.
같이 공부하는, 서로 응원하는 다정한 친구가 다락방님이라서, 참 좋아요~~ ^^
 





















8시 2분, 집을 나섰다. 어제 반납해야 하는 책을 반납기에 넣기 위해서다. 아침에 책을 꺼내는 시간은 8시 30분. 그 이전에 책을 반납하면 이전날 반납으로 처리되고, 그러면 연체가 아니다. 자주 있는 일이기는 한데, 이번에는 이유가 있다. 책 한 무더기를 대출해왔을 때, 이 책도 같이 왔는데, 책 제목부터 ‘공부가 본업’인 학생들에게 적합할 것 같아 ‘본업이 공부’인 사람에게 권했더니, 흔쾌히 책을 받아 들었다. 금방 시험기간이 됐고, 시험이 끝나고는 릭 라이어던 신간이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은 그렇게 쓸쓸히 반납일을 맞이한다.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 책을 펴서 읽는다. 1 공부는 할 만한 가치가 있다, 2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다, 3 공부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이 되면 몰입한다,까지 읽었다. 헉,하게 만드는 공부열정을 지닌 엘리휴 버릿의 일기를 한 컷 찍고. 








집으로 향한다. 이른 휴일 아침, 아파트는 조용하다. 아이들이 없는 어린이 놀이터. 다시 집으로. 




집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아직 꿈나라이고, 익숙한 분들이 어김없이 나를 맞아준다. 사랑의 힘, 맞잡은 두 손 놓지 말고 우리 네 사람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어린이날 식전행사를 마쳤고, 이제 본 행사가 남았다.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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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8-05-0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하신 단발머리님^^ 본 행사도 궁금해요~~

단발머리 2018-05-05 14:33   좋아요 0 | URL
제가 책을 많이 빌리는만큼 ㅎㅎㅎㅎ 연체도 잦아서요.
올해는 연체 안 하자 했더니 이렇게 일찍 도서관행을 하게 됐어요^^
세실님~ 즐건 연휴 되시길요~~~

psyche 2018-05-0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서관 문 열기 바로 전에 종종 책 반납하는데 ㅎㅎ 저 액자는 결혼사진인가봐요. 위에는 단발머리님이 밑에는 문대통령님이 손을 꼭 잡고 계시네요.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단발머리 2018-05-05 14:37   좋아요 0 | URL
이 글 올리고 생각해보니 오늘 휴일이라서 밤까지 여유가 있었네요 ㅋㅋㅋ
저번 판문점 선언 때 남북 정상 두 분이 손 잡고 월북 월남했을 때의 감격을
전 한겨레의 특별판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떡하니 붙여놓았습니다.
떨어져있던 시간만큼 어느 정도의 간극이야 아쩔수 없겠지만,
오래오래 사이좋게 행복하기를, 저도 바래봅니다.

라로 2018-05-06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체 잦아요. 흑
근데 본행사도 궁금해요~~2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05-13 19:42   좋아요 0 | URL
전 올해부터 (앗! 실패!!) 오늘부터 연체 안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행사는 인도네팔 카레 음식점에 갔구요. 그리고는 교보문고에 갔고,
아이들은 핸폰 하면서 쉴 때 엄마 아빠는 쇼핑을 했다는.... 어린이날 맞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슬비 2018-05-08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되도록 연체안하고 되도록 재대출했는데, 재대출해도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제는 연체를 하더라도 다 읽고 반납하는 방향으로 바꾸었어요. 그래서인지 연체반납하면 그 기간동안 대출불가 패널티를 받아서 되도록 빨리 읽고 반납하게 되네요.ㅎㅎ 대신 요즘 저도 단발머리님처럼 도서관 오픈전 반납으로 아슬아슬하게 반납기간을 맞춰요.

단발머리 2018-05-13 19:4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래도 전 대출불가 패널티에도 반납비가 없으니까 (예전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거든요.)
연체를 너무 가볍게 보기는 했어요. 반성합니다. ㅠㅠ
도서관 오픈 전 반납은 뭐, 저의 특기로서.... 이제 미리미리 반납하는 새생활을 시작하려 합니다~~~~~~ 빠샤!!
 
부엌 청소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는 없다 - 함께, 지혜롭게, 뜨겁게 진보하는 페미니즘 어록 150선
버지니아 울프.최재천 외 123명 지음, 아티초크 편집부 엮음 / 아티초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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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도서로 신청한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얼마전부터 희망도서를 꺼내줄 때, 신청한 책 제목이 무엇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 책 제목을 다시 한 번 곱씹는다. 첫번째는 괜찮다. 『셀프트래블 오키나와』. 문제는 두번째. 『부엌 청소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는 없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하기에는 도서관 열람실은 너무 조용하다. 그래서 생각한다. 『부엌 청소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는 없다』는 아닌데… 뭐라고 할까. 



Q : 책 제목이 뭔가요? 

A : 『셀프트래블 오키나와』 하고요 『부엌 청소로…』요. 

Q : 두 번째가? 

A : 부엌 청소…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부엌 청소로, 부엌 청소』가 되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생존권대책위원회를 비롯해 노조 운동사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초와 고통은 옮겨적기 어려울 정도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의 용기에 다시 한 번 감동하는 아침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지만, 단숨에 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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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4-3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부엌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4-30 10:04   좋아요 1 | URL
요즘엔 부엌 청소 안 해요.
부엌이 어디있나요? 부엌? 부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로 2018-04-30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지만 저도 단발머리 님처럼 책 열심히 읽어야 하는데 도통 ~~~ㅠㅠ

단발머리 2018-04-30 16:30   좋아요 0 | URL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ㅠㅠ 저의 게으름과 나태와 미루기는 어쩌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AgalmA 2018-05-03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이 난감하거나 너무 길어서 헷갈릴 때 울상인데ㅎ;;
페미니즘 책제목이 여성의 실상을 보여주는 건 좋은데...뭐랄까.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같은 민망함이 좀 있는...;

단발머리 2018-05-05 10:45   좋아요 0 | URL
으흠.... 전 이 책이 제목으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는 긍정하거든요.
저 역시, 부엌청소로 특별한 기쁨을 발견하지는 못 하는 1인으로서 말이지요.
그게 좀 곤란한 일인 것 같아요.
제목이 주는 힘을 어디까지 사용할 것인가. 이 책처럼 강렬하게 갈 것인가, 아니면 평범하게 갈 것인가 ....
 
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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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발생 직후, 미처 예상치 못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한 가지는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었고, 또 한 가지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현실을 규탄하기 위한 젊은 여성들의 집단적 움직임이었다. 


체포 직후 용의자가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는 점, 범행 전에 용의자가 화장실을 출입한 6명의 남성들을 그냥 보내고 화장실에 들어온 첫번째 여성을 살해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찰은 수차례 이 사건이 ‘여성혐오’와 상관 없는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견해를 밝혔는데,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페이스북 갈무리]


강남역 살인 사건. 범죄자에게 정신병이 있으니 여성 혐오 사건이 아니라고 말하는 주장에 대해서...


어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이 번화가의 화장실에서 한 남성에 의해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났고’ 그래서 죽였다는 말을 했다. 그 남자는 오랜 조현병의 치료력을 갖고 있고 현재는 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그가 지금 정신병적 급성 상태에 있는지는 나로서는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다. 그가 현실적인 판단력을 잃고 심각한 공격적인 행동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 행위가 모두 정신병 때문인 것은 아니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의 범죄율이 정신병이 없는 사람에 비해 낮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다양한 이유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여기에 일부 정신병적 증상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것으로 범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정신병적 증상을 갖고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병을 가진 한 사람이지, 정신병 그 자체가 아니다. 한 사람으로서 그들은 다양한 기질과 성격, 성장배경, 문화, 생활 조건이 다르며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도 다양하다.


문제는 그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은 ‘여성혐오’다. 이것이 그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남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에 비해서 특별히 남자들에게 더 기분나쁜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병을 갖고 있으며, 범죄를 저지른 그는 아마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외감과 분노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외감의 원인을 여성들의 자신에 대한 태도에서 찾고, 분노의 초점을 여성들에게 맞춘 것은 분명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우리 사회 내에서 최근 들어 뚜렷하게 늘어난 심리적 현상인 여성 혐오가 (만약 그에게 정신병적 망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망상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여성 혐오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망상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망상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은 맥락이 있다.


결국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할 근거일 수 없다. 오히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의 이유로 ‘여자들의 무시’ 운운하는 상황이 여성 혐오 이슈를 우리가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이 사건은 분명한 여성 혐오 범죄다.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닌 것이 아니라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성혐오 범죄인 것이다.



이 책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 역시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여성혐오’적’ 범죄, 여성 혐오를 ‘배경에 둔’ 범죄라고 규정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성들의 ‘반응’을 근거 중의 하나로 제시한다. 



이것은 혐오범죄가 발생했을 때의 일반적인 후폭풍과 거의 유사하다. 미국에서 흑인 범죄가 발생하면 흑인들이 집단적으로 반응한다. 강남역 사건에는 한국 여성들이 집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공포를 느꼈고 분노했고 집단적으로 항의에 나섰다. 이걸 두고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문제를 읽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어떤 말로 이 사건을 규정하건 수많은 여성들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공포와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102쪽) 



무엇이 혐오인가. 무엇이 혐오표현인가. 사전적 의미로 혐오는 매우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다. 혐오표현은 ‘헤이트 스피치 hate speech’를 번역한 말인데, 여기에서 혐오란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24쪽) 



혐오표현은 구체적으로 입증 가능한 고통과 사회적 배제를 낳고, 혐오는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졌던 역사적 경험이 존재한다.(84쪽) 혐오의 피라미드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존재하는 ‘편견’이 ‘혐오표현’를 통해 가시화될 때, 차별행위와 증오범죄, 집단학살로도 확대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가장 강경한 대응은 혐오표현을 ‘범죄화’하는 것이지만, 그럴 경우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위험이 존재한다. 저자는 한국처럼 표현의 자유의 보장 수준이 낮은 경우라면 혐오표현금지법의 도입이 양날의 칼이 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159쪽) 저자는 형사처벌, 손해배상, 차별구제, 방송심의등을 통해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규제’와 공무원 인권교육과 시민 인권교육, 국가차원의 홍보, 캠페인, 공공기관에서의 반차별 정책 시행, 소수자(집단)에 대한 각종 지원등을 통한 ‘형성적 규제(지지하는 규제)’ 및 사기업, 대학에서의 자율 규제등을 비롯한 ‘자율적 규제’가 고루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71쪽) 



혐오표현의 대상은 소수자 집단일 수도 있고 소수자 집단의 개별구성원들일 수도 있다. 여기서 소수자 minorities 또는 소수자 집단minority group이란 실질적인 정치, 사회적 권력이 열세이면서 공통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뜻한다. 각국의 차별금지법은 성, 인종, 민족, 성적 지향, 장애 등의 속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데, 이러한 속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소수자에 해당된다. 즉 여성, 소수인종, 소수민족, 동성애자, 장애인 등이 소수자에 해당된다. (29쪽) 



현재 우리의 상황이라면 여성, 조선족, 탈북자, 동남아 출신의 노동자, 외국인 신부, 동성애자, 장애인 등이 소수자에 해당된다.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즈음하여, 남북이 통일이 되었을 때 난민이 아니면서도 난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는 ‘북한 동포들’도 소수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긴다. 지독한 지역 차별의 경험, 전라도 혐오증의 역사가 있는 나라에서 ‘출신 지역’으로 인한 배제와 차별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차별 행위와 증오범죄 이전에 조롱, 위협적, 모욕적, 폭력적 말이나 행동, 집단따돌림 등의 혐오표현이 나타난다. 혐오표현은 전염성이 매우 높아,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편견의 조각들이 바로 옆 사람의 입을 통해 표현될 때,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며 멸시와 조롱의 언어가 유통될 때, 소수자,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증오 역시 눈덩이처럼 부풀려진다. 


단체 카톡방에서 이루어지는 여성 신체(몸매)에 대한 조롱, 외국인에 대해 “너 냄새 나!”라는 모욕적 언사,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멸시의 언어, “**도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야.”,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언사들은 이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당연시하고, 증오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 토양이다. 

혐오 표현이다. 



혐오표현이라는 과격한 용어의 사용은 의도적으로 선택된 ‘반차별운동’의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된장녀가 왜 혐오표현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왜 된장녀’도’ 혐오표현일 수 있는지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운동이라는 것이다. 된장녀 신상털기와 데이트 폭력, 성폭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 제기다. 다양한 수위의 차별, 적대, 배제, 폭력의 말들을 ‘혐오표현’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내 이 문제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저항을 위해서 혐오표현이라는 전략적 거점을 만들자는 것이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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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5-03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한 시기에 같이 읽으셨네요^^ 인스타그램에서 홍성수 저자가 제 글에 좋아요 눌러서 화들짝; 점수 너무 짜게 준 건가 괜히 미안코;;;

단발머리 2018-05-05 10:24   좋아요 0 | URL
우아아앙!!!!!!!!!!!!!!!
너무너무 부러워요.
저자의 좋아요,는 또 얼마나 좋을까요!!!
 




군사 분계선 앞에서 

이런 투샷을, 이렇게 빨리 보게 될줄이야. 



설렌다. 

조금, 조금 많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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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8-04-28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순간 뭉클하더라고요. 이게 다가 아닐지라도 정말 의미 있고 감격적인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요.

단발머리 2018-04-28 08:28   좋아요 0 | URL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아니면 이게 뭐냐,라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불평해도 상관없더라구요. 이제 이 커다란 역사적 흐름을 방해할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어제는 순간순간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