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뒷세이아
벽돌책인데 밀리의 서재로 읽고 있어서 내게는 한없이 얇은 당신이다. 책을 안 가지고 외출했을 때만 가끔씩 꺼내 읽어서 영 진도가 안 나가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16퍼센트 정도 읽었다. 앞부분의 주요 테마는 횡격막인데, 횡격막 토크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지라 앞부분에 번역가가 따로 정리해 둔 부분이 있을 정도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호메로스의 인간이 '횡격막'으로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사고와 인지 활동의 중심을 뇌에서 찾지만, 호메로스의 세계에서 횡격막은 단순한 가슴과 배 부분을 나누고 호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리적, 해부학적 기관이 아니라 감정과 사고, 판단과 숙고, 그리고 관심과 배려, 호감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기능한다. (8%)
번역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집에 있는 천병희 번역과 김현 번역의 이 책을 비교해 보자면 이렇다.



나는 약간 어색한 듯한 김현 번역에 점수를 주고 싶은데, 직독직해 느낌의 김현 번역이 시적인 의미에 더해, 뒷부분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2. 전략가, 잡초
꼭 자연이 아닐 때도 있지만, 현상의 관찰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시도가 대놓고 작위적이면 감동이 덜할 수밖에 없다. 눈치 빠른 독자가 아니고, 눈 밝은 독자도 아니지만, 일말의 전개가 교훈으로 갈무리될 때는 거부감을 느낀다. 이 책에서는 자연 관찰 그 자체에서 얻어 가는, 얻어 갈 수밖에 없는 지혜가 돋보인다. 다른 식물은 어떻고, 잡초는 어떻고. 잡초의 꽃가루를 전해주는 곤충은 어떠하고, 꽃등에는 어떠하고 꿀벌은 어떠하고. 끈질진 생명력과 결국 살아내려는 식물과 잡초, 곤충의 결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잡초는 다르다. 잡초는 조건이 나쁠 때도 최대한 활약해서 씨앗을 생산하지만 조건이 좋을 때도 최대한 성과를 내서 씨앗을 많이 생산한다. 자기 자원을 씨앗 생산에 얼마나 분배하느냐 하는 지표를 '번식 분배율'이라고 하는데, 잡초는 개체 크기에 상관없이 번식 분배율이 가장 알맞다. 조건이 나쁘면 나쁜 대로, 조건이 좋으면 좋은 대로 최선을 다해 최대한의 씨앗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잡초의 강점이다. (87쪽)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여기다. 사람에 의해 재배되는 채소나 화단의 꽃들은 조건이 열악하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 하늘 높은 줄 오르고 치솟는 집값과 낮은 출생률과의 연관성을 기억하지도 말자. 꽃을 피울 수 없다. 씨앗을 만들 수 없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라면? 거름을 너무 많이 주면 줄기나 잎만 무성해지고 중요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영양분이 풍부한데 왜 꽃을 피우지 않는 거지? 왜 씨앗 만들기를 하지 않지?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따르자면, 식물은 그 중요한 씨앗 만들기를 '잊어버린 듯' 하다.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잡초는 아니다. 잡초는 좋은 환경에서도 나쁜 환경에서도 일정한 번식 분배율을 유지한다. 잡초는 다르다. 잡초는 전략가다.
3. Becoming
자서전인데 소설처럼 읽고 있다. 나는 미셸이 아니고, 남편은 오바마가 아닌데. 나는 미셸이고, 남편이 오바마가 되는 이 신기한 일들. 미셸이 잘 썼기 때문이다.
워킹맘의 고단함은 아무리 하소연해도 끝이 없다. 퇴근하고 와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차례로 씻기고, 밥을 차리고, 밥을 먹이고. 그리고 남편과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는 마음. 이런 날이 한 달, 두 달, 그리고 세 달 이어질 때, 그 상황을 그냥 감내할 사람이 있을까. 친정과 시댁, 양쪽으로부터 육아 도움을 받았음에도 딱 18개월 워킹맘으로 살았던 내 생각에는 완전 엑스다.
And yet, in his curious and round about way, he seemed destined for exactly this moment. I knew because of I'd seen up close how his mind churned nonstop. Over years, I'd watched him inhale books, newspapers, and ideas, sparking to life anytime he spoke with someone who offered a shard of new experience or knowledge. (214p)
내 의문은 여기에 있다. 내 남자가 유독 훌륭한 남자일 때, 내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가. 내 남편의 유능함이 나의 포기를 요구할 경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 남편의 탁월함이 나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페미니즘 고전에서 반복되는 그 지긋지긋한 양보와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왜, 내가 양보해야 하는가. 왜 포기하는 사람이 나여야 하는가.
미셸이 유능한 변호사였던 건 확실하다. 만약 미셸이 하버드 법학대학 종신교수였어도, 아니, 하버드 대학 총장이었어도 마찬가지다. 오바마의 아내라면, 아내로서의 일을 해내야만 한다. 행복한 가족 단상이 필요한 미국 대선에서 알콩달콩 스위트홈의 모습을 전시하기 위해 오바마의 아내라면 자신의 직업적 성취를 포기했어야 할 것이다.
오바마가 지구 전체의 운명을 바꾸었던가. 오바마가 미국의 역사를 바꾸었던가. 오바마가 미국 내 흑백 갈등 문제를 해결했던가. 그렇지 않다. 『오, 윌리엄』에서 윌리엄의 말처럼, 선택지는 생각보다 더 좁고, 결정의 상당 부분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때 그 순간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미셸의 결정이다. 다락방님이 페이퍼에서 썼던 것처럼 '가족의 결정 사항'이라는 건, 결국 미셸의 선택이었고, 미셸은 더 큰 정치 무대에 나서고자 하는 오바마를 지지하기로 한다. 오바마와 미셸의 결정의 이면에, 나는 이 부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He spoke so often and so passionately of healing our country's divisions, appealing to a set of higher ideals he believed were innate in most people. But I'd seen enough of the divisions to temper my own hopes. Barack was a Black man in America, after all. I didn't really think he would win. (226p)
버락은 우리나라의 분열을 치유하는 일에 대해 자주,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 본래 자리 잡고 있다고 믿었던 더 높은 이상에 호소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의 분열을 충분히 경험하고 목격해 왔기에 내 희망을 어느 정도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버락은 미국에 사는 흑인 남성이었다. 나는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226p)
미셸은 가까이에서 본 그가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를 알았기에, 더 중요하게는 그를 사랑했기에 그의 결정을 응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흑인인 그가 미국에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믿음이 없었지만, 응원해 주었고, 확신이 없었지만 지지해 주었다. 오바마는 달랐던 것 같다. 오바마 자서전을 읽었으나 끝까지 읽지 않은 나여서, 이 부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바마가 가졌던 확신은 무엇일까. 오바마가 품었던 희망은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
4. 라틴 아메리카의 열린 혈맥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지만 내용이 궁금해서 구입해버린 이 책을 읽기 전, 사전만남 아니고 읽기 전 사전질문. (1) 수적으로 우세였던 인디오는 수백 명의 유럽인들에게 왜 그렇게 쉽게 정복당했던가. (『총, 균, 쇠』, 『사피엔스』에 나옴) (2) 유럽의 남미 지배가 그렇게 오랜 시간 공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3) 남미인들은 어떻게 지배자의 신을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읽는 여성의 역사』는 선물 받았고, 손열음 <모차르트 : 피아노 소나타 전곡>이랑 『라틴 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은 내적립금내산이다. 항상 꼭 필요한 것만 사야지 결심하는데, 너무 야무진 결심이었나, 책탑이 안 되고 다 스탠딩이다.
소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