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구호 옮김 / 알렙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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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자본론』 제1권에 다음과 같이 썼다. "아메리카 금광상과 은광상의 발견, 원주민의 광산에서 원주민을 박멸.노예화·매장하는 십자군 운동, 동인도 제도의 정복과 약탈의 시작,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 노예 사냥터로의 전환은 모두 자본주의적 생산 시대의 새벽을 나타내는 사건들이다. 이 같은 목가적인 과정들은 본원적 축적 활동에서 또 다른 여러 핵심 요인들이다."(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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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의 혈맥』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자연과 그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유럽인의 찬탈을 규명하고, 침략의 결과로 현재까지 유럽과 미국 경제에 종속당하고 있는 남미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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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정복자들이 남미에 도착했을 때, 아메리카 인디오의 수는 7,000만 혹은 그 이상으로 추정되었는데, 그후 1세기 반 뒤에는 겨우 350만 명으로 감소해 버렸다. 아메리카의 광맥에서 금속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때, 에스파냐 왕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잉카의 공공 부역제도 '미타'를 개조해 원주민들에게 강제했다. 농업 공동체에서 내쫓겨 처자식과 함께 거대한 은이 매장된 포토시로 끌려온 인디오들은 10명 가운데 7명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많은 수의 인디오들이 포토시에 도착하기도 전에 길에서 죽었다. 광산의 조건은 가혹했다. 노천의 얼어붙을 듯한 한기와 땅속의 더위가 번갈아 나타났고, 은을 추출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은은 갱도 속에 유독 가스를 발생시켰다. 머리카락과 이가 빠지고 몸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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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 정치체인 잉카 제국, 멕시코 분지의 아스테카 연합, 유카탄과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은 종교적 기념물, 가뭄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 천부적 재능의 예술품을 가진 위대한 문명의 근거지였다. 유럽의 남미 정복은 이런 문명의 기반을 파괴했는데, 광업 경제의 도입으로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이루어졌고, 농업 공동체가 해체되어 버렸다. 강제 노동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집단 경작 시스템이 붕괴했다. 인디오들은 이러한 폭압과 폭정에 어떻게 저항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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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 투팍 아마루는 쿠스코를 포위했다. 잉카 황제의 직계인 그는 모든 조세, 모든 형태의 원주민 노동력 '레파르티미엔토'(에스파냐가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사용한 강제 노동 제도 중 하나. 원주민에게 일정 기간 강제로 노동을 부과하던 방식으로 식민지의 경제적 수탈 시스템 중 하나였다)를 폐지했다. 수하 대장들 가운데 한 사람의 배신으로 체포된 그는 자신의 아내, 자식, 그리고 신봉자들과 함께 처벌을 받았는데, 그의 자손은 4대까지 말살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200여년이 지난 후에, 시골 사제였던 미겔 이달고는 조세 폐지와 노예해방을 기치로 걸고 혁명을 일으켰으나, 군사적인 패배 끝에 처형되었다.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의 운동은 원주민의 봉기이자 사회적 혁명이었으며, 패배해 총살당하기 전까지 멕시코의 영토를 광범위하게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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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들은 백인들이 전파한 병원균 때문에 죽었고, 광산에 끌려가는 도중에 죽었고, 수은에 중독되어 죽었고, 먹을 것이 없어서 죽었다. 폭압적인 지배에 반항할 수 없었다. 반항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인 소수의 대농장주에 의한 지배는 강고했고, 인디오들의 삶은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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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의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인디오인 퐁고(pongo)들은 개가 먹다 남긴 것을 먹고, 개 곁에서 자고, 피부가 흰 사람은 누구에게든 무릎을 꿇고 말을 했다. 원주민은 정복자의 짐을 등에 지고 운반하는 하역용 가축이었다. 승용 동물이 적었기 때문이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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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아틀어(아스테카의 주요 부족인 나우아틀족의 언어) 텍스트에는 유럽인들이 '굶주린 돼지처럼 금을 탐했다'(47쪽)고 쓰여있다. 백인들의 욕망은 인디오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땅마저 삼켜버렸다. 넓은 토지의 라티푼디움에서는 사탕수수가 대규모로 경작되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기아에 시달렸다. 면화와 담배, 오렌지, 소와 돼지를 생산했던 땅은 사탕수수만을 위한 땅이 되었다.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서는 더 많은 인디오, 더 많은 흑인 노예들이 필요했는데,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삼각 무역에서 설탕 플랜테이션으로 향하는 노예의 무역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탕수수, 커피, 바나나 대농장은 유럽과 미국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데 그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유럽과 미국은 해당 국가의 경제, 정치, 사회를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상호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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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대대로 살고 있던 땅에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던 인디오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침략자들 때문에 그들의 조상과 자녀들은 죽임을 당했고, 현재와 미래가 파괴당했다. 여전히 남미의 경제는 유럽, 그리고 미국의 지배하에 있다. 공정무역으로 생산된 상품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던 나는, 설탕, 커피, 바나나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새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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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임이 아니고, 어쩌면 나와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적은 가격으로 내가 누리는 이 편리함과 즐거움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마추픽추로 가는 고급 열차에서 스테이크를 즐기며 진기한 풍경을 보러 간다고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하는 백인 부부와 내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나도 아주 오래 전부터, 마추픽추에 가고 싶었다. 잃어버린 도시, 사라진 사람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서술에 따르면, 그 곳은 잃어버린 도시가 아니라 파괴된 도시이고, 사람들은 사라진게 아니라, 죽임을 당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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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혈맥을 통해 은과 금, 설탕과 커피 그리고 바나나가 흘러 들어갔다.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백인들에게로, 독점하는 소수에게로, 탐욕스러운 그 누군가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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