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정보 없이 『눈먼 암살자』를 읽고 싶다면 앞에서 뒤로 읽으면 된다. 1권을 읽고 나서 2권을 읽으면 된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면 책 뒷면의 소개가 딱이다. 



20세기 초 캐나다의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아이리스는 아버지가 도산 위기에 처하자 정략결혼을 통해 탈출구를 마련한다. 소녀는 여동생과 함께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지만, 그곳에서 자매를 기다린 것은 타락한 욕망과 비극적인 운명의 예감이다. 병들고 쇠락한 아이리스의 노년과 과거 회상이 교차하는 가운데, 죽은 여동생의 이름으로 출간된 소설 <눈먼 암살자>가 곳곳에 삽입된다. 명망 있는 집안의 젊은 여인과 과격한 노동 운동가가 밀회를 즐기며 자이크론이라는 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 소설은 점차 현실과 얽히며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책소개>  



노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비교적 젊은 지금 읽을 수 있어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립 로스가 그려내는 노년은 어디까지나 ‘선택한’ 삶이다. 일체의 사회활동을 중지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세상에 대한 모든 소식을 끊고, 오로지 읽고 쓰는 삶은 깊은 산 속 수도사의 삶을 연상시킨다. 『유령 퇴장』에서 네이션이, 나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고 말할 때(13쪽), 나는 그런 삶을 원했다. 고독 그리고 고립. 



마거릿 애트우드의 노년은 이와 다르다. 설정된 노년의 나이가 다르기 때문에 더 약해져 버린 육체를 가지고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노년은 도움 받아야 하는 노년이다. 혼자 있을 때는 손가락으로 땅콩잼을 퍼먹고, 빨래감을 가지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빨래통을 놓치는 삶. 좀 더 죽음에 가깝고 좀 더 무기력한 삶이다. 



일상 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리스가 남아 있는 힘을 그러모아 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왜, 그녀는 왜 이야기를 남기려 할까. 



나는 누구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 그건 아니다. 나중에 이것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나중’이라는 시간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이니까. 미래에, 내가 죽은 이후, 어떤 낯선 사람을 위하여 쓰는 것인가? 내겐 그런 야심, 그런 소망이 없다. 

어쩌면 누군가를 위해 이것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눈 위에 자신의 이름을 갈겨 쓸 때처럼. 

나는 예전처럼 민첩하지 못하다. 손가락은 뻣뻣하고 서투르며, 펜은 흔들리면서 두서없이 흘러가고, 글자를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나는 달빛 아래서 바느질을 하는 것처럼 구부린 자세로 앉아서 계속해서 쓴다. (1권, 76쪽) 



작가와 화자를 등치시키는 건 순진한 소설읽기법이겠지만, 나는 자꾸 아이리스와 마거릿 애트우드를 동일시한다. 그녀는 왜 쓰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쓰는가. 전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녀는, 우리는 왜 전하려 하는가. 무얼 말하고 싶은가. 




두번째 이야기 액자 속의 연인은 두 사람의 관계가 탄로났을 때의 위험을 무릅쓰고 만남을 계속한다. 보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 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마주 선 그 사람을 보기 위해 여기에 왔다. 연락을 취하고, 만날 장소를 정하고, 그리고 그 장소로 간다. 그, 그녀를 만나기 위해. 보기 위해. 안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Friends>는 내가 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유일한 미드다. 시즈 9의 이야기다. 로스와 레이첼은 연인이었는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중, 뜨거운 밤 아이를 갖게 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함께 살기로 한다. 한 집에 살고 있지만 둘 사이는 정리되지 않은 묘한 부분이 있었는데, 레이첼이 로스에게 아이를 맡기고 외출했던 밤, 바에서 레이첼의 번호를 받은 남자가 전화를 한다. 메시지를 남기겠다고 했지만, 서로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레이첼이 다른 남자를 찾고 있다고 생각한 로스는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에 다른 여자를 만나려고 노력한다. 로스가 데려온 여자 때문에 다툼이 생겼을 때, 레이첼에게 왔던 전화 메시지를 로스가 전하지 않았던 사실이 밝혀지고. 화가 난 레이첼이 말한다. 


“Why didn’t I get the message?” 




이 문단을 읽을 때, 레이첼의 이 말이 겹쳐졌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전보 다섯 통을 보냈대요. 당신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어요. 나는 말했다. 


“메아 쿨파(‘나의 잘못’이라는 뜻의 라틴어). 말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신의 걱정을 덜어 주고 싶었어, 여보. 그에 대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장례식에 시간을 맞춰 돌아갈 길도 없었잖아. 그리고 당신을 위해 계획한 일이 어긋나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내가 이기적인 탓도 있었지. 잠시만이라도 당신을 나 혼자 독점하고 싶었던 거야. 이제 앉아서 기운 내고 이걸 좀 마셔. 그리고 나를 용서해 줘. 아침이 되면 모든 일을 처리할 거야.” (2권, 55쪽) 




참고로 레이첼은 로스와 대판 싸우고 조이의 집으로 이사한다. 그녀에게는 직업과 친구가 있었다. 

가엾은 아이리스는… 



‘걱정.’ ‘시간.’ ‘어긋나는.’ ‘이기적.’ ‘용서해 줘.’ 


거기에 대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2권, 5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강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서다. 저자 본인은 심혈을 기울인 <3장 : 전쟁과 강간>편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는데, 내 경우에는 인디언과 노예제의 역사 속에서 강간의 정치적 속성을 증명하는 서술 과정이 더 인상깊었다. 



남부의 가부장적 노예제는 백인이 흑인 위에 있는 형태를 취할 뿐 아니라 남성이 여성 위에, 더 정확히는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위에 있는 형태를 취했다. 흑인 여성은 노동자일 뿐 아니라, 재생산자였다. 노예제 하에서의 성적 착취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흑인 여성의 재생산 기관을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6세 내지 8세가 되면 바로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노예 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을 의미했다. 그 아이가 흑인인지 물라토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237쪽)



흑인 여성은 이중으로 억압당했다. 흑인 여성은 주인인 백인 남성과 가장인 흑인 남성의 지배 아래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착취당했다. 흑인 여성은 밭일꾼과 집안 하인, 번식자라는 경제 근간을 이루는 역할을 맡았을 뿐 아니라, 백인 주인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당했다.(243쪽)




레베카 솔닛, 『백래시』의 수전 팔루디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수전 브라운밀러는 소설, 영화, 잡지, 텔레비전, 매스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여성의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뇌를 써서 돈을 버는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소설, 연극, 시에서 여성을 육체밖에 없는 존재로 재현하는 남성들이 늘어났다.”는 『백래시』 속 언급처럼, 미쳐버린 연쇄살인범의 살인 대상으로서의 여성, 아름다운 외모에 무기력한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여성을 순수하고 어리석으며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로 그려내기에 바빴다. 여성이 보는 여성의 모습 또한 그랬다.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범죄의 대상이 되어버린 아름다운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다. 





이제야 토니 모리슨의 말이 이해된다.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토니 모리슨. 





제 말씀은 남성들은 작가로서의 자격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저는 그럴 수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글쓰기가 인생의 핵심이고 마음을 몽땅 차지하고 있고, 기쁨을 주고 자극을 주는데도 저는 제가 작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업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아, 저는 작가랍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했어요. 대신 “편집자랍니다.” 아니면 “교사예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아는, 성공한 여성 작가가 전혀 없었어요. 작가가 되는 건 남성의 영역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주변부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가라도 되기를 바랐습니다. 허가라도 얻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지요. (311쪽) 







마찬가지로 『헝거』의 록산 게이가 말했던 ‘특히 흑인 여성이 쉽게 이루지 못하는 무언가’’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냥 이곳에 눌러앉아 벌목꾼의 아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더 큰 부분은 내가 가는 곳에 그가 따라와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나는 5년 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이 이루지 못하는, 특히 흑인 여성이 쉽게 이루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루었다.(134쪽) 










요리, 청소, 정리 정돈. 집안 일 하는 여자 메이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백인 주인의 부름을 거부할 수 없는 메이드. 백인 안주인의 분노와 증오를 받아내야만 하는 운명.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냈던 삶의 그림자는 어쩌면 현재까지 이어져 그녀들을 억압한다. 흑인 여성이 쓴 글. 흑인 여성이 쓴 글이라… 


흑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 흑인 여성으로 쓴다는 것,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을까. 책이나 소설로 멀리 떨어진 채로 짐작할 뿐이지만, 고통의 무거움은 아련히 전해진다.    




흑인 여성이 흑인으로서의 차별과 여성으로서의 억압 중 어떤 것을 더 힘들어할까,라는 멍청한 질문을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게 해본다면 어떨까. 그녀는 『엄마는 페미니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내가 인종차별보다 성차별에 더 많이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 왜냐하면 성차별에 대해 화를 낼 때 외롭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야. 내 주위의,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종 불평등은 쉽게 알아채면서 성 불평등은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야. (38쪽)










이것은 계급 역할이나 인종 역할에 비해 성 역할이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정희진이다. 





그녀/그의 피부색이나 태어난 계급의 조건에 맞는 직업, 감정 표현, 옷차림, 섹슈얼리티, 가사 노동 등 일생 전반에 걸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즉 “계급 역할(당신은 가난하므로 공부하면 안 된다)”이나 “인종 역할(당신은 흑인이므로 실업자가 자연스럽다)” 같은 표현은 없다. 반면, 성 역할(gender role, :여자는 애를 낳아야지”)이란 단어의 존재는 성차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상의 정치인지, 젠더가 얼마나 인식하기 어려운 사회적 구조인지, 얼마나 탈정치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24쪽) 






껍데기 뿐인 특권을 누렸던 백인 여성은 아니지만 

정신과 육체가 이중으로 착취당했던 흑인 여성도 아니지만 

현대를 사는 제 3 세계 여성으로써  

목격자이며 당사자로써 

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춘기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행동 징후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데, 하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다. 환기를 해야한다 해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한결같이 굳게 방문을 걸어 잠그는 아이를 볼 때, 짐작한다. 아이는 이제 나를 떠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가는구나. 다른 세계로 가는 그 길에서 이 쪽으로 향하는 문을 이렇게 닫고 가는구나. 



두 번째 징후는 자신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찾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둘째에게는 채널 선택권이 없던 셈이다. 누나가 듣는 <Uptown Funk>를 들어야 하고, 엄마가 듣는 김동률을 들어야 한다. 둘째는 아는 노래가 없으니, 좋아하는 가수가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랬던 둘째에게 플레이 리스트가 생겼다. 말 그대로 질풍 노도의 고속도로 위에 이제 한 발을 내딛는다. 볼륨을 최대한 올리고는 하도 몸을 격렬하게 흔들어대기에 ‘가수하라’고 진지하게 권했다. 손사레를 치고는 재빠르게 리듬에 맞춰 또 몸을 흔들어 댄다. 



하여, 노래방에 갔다. 

전인권으로 시작해 이문세로 떠나는 세계와 더 스크립트의 <Breakeven>, Ed Sheeran의 <Castle on the hill>, 그리고 워너원의 <Beautiful>과 <부메랑>의 세계가 어색하게 조우하는데, 세 개의 세계를 모두 아는 사람은 나 뿐인지라, 나는 이 모든 세계에서 의연히 즐거웠다. 엄마도 하나 부르라는 말에,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를 불렀다. 에일리는 참, 노래를 잘하는 가수였네. 몰랐다. 듣기만 해서. 나는 몰랐네. 



친한 후배에게 전화를 하다가 흘러나오는 이 노래에 “화아~~” 박하사탕 같은 느낌이 들어 순간적으로 후배가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우효 <민들레> 









이승우는 문학이란 예술이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늦게 하는 거라고 했다. 최대한 미루고, 최대한 돌려 말한다 하더라도,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말, 

당신을 기다린다는 말, 

당신을 위해 더 많이 웃겠다는 말. 



오늘도 어김없이 굳게 닫혀진 문 앞에 선다. 똑똑! 

“**야! 엄마 신곡 발견했어! 노래방 가자, 노래방!”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8-05-1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글이다... 그리고 에일리의 저 노래는 ㅜㅜ 저도 약간의 사연이 ㅜㅜ(폭풍 눈물) 그리움이... ㅠㅠ
단발머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엉엉

단발머리 2018-05-15 10:12   좋아요 1 | URL

한번쯤은 행복하고
싶었던 바람
너까지 울게 만들었을까

모두, 잊고 살아가라
내가 널, 찾을 테니
니 숨결, 다시
나를 부를 때

잊지 않겠다
너를 지켜보고 설레고
우습게 질투도 했던
니가 준 모든 순간들을

언젠가 만날
우리 가장 행복할 그날
첫눈처럼 내가 가겠다

너에게 내가 가겠다

다락방 2018-05-1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를 울리시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18-05-15 10:15   좋아요 0 | URL
아아~~~~ 다락방님이 운다니 나도 울고 싶어져요 ㅠㅠㅠㅠㅠㅠㅠㅠ

clavis 2018-05-1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방♡♡초대하는 엄마 너무 멋져요♥

단발머리 2018-05-15 10:3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아직은 같이 가고 싶어해서 좋기는 해요.
아이들 맘 변하기 전에 여러번 고고싱하고 싶네요~~~~~~

transient-guest 2018-05-1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ㅎㅎ 저는 우효 노래 좋아합니다

단발머리 2018-05-15 11: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는 우효 입문자로서, 우효 노래를 좋아합니다.
새로운 가수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네요.
아이 러브 우효~~~~~^^

moonnight 2018-05-1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엄마이십니다^^

단발머리 2018-05-18 18:59   좋아요 0 | URL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부끄럽네요~~~~~~~~~^^

꼬마요정 2018-05-1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으.. 멋진 엄마시네요. 전 엄마랑 노래방 안 갑니다. 갔다가 죽는 줄 알았어요. ㅎㅎㅎ 저는 엄마랑 가면 탈진해서 기어나와야 하거든요. 그나저나 노래방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전 이소라의 ‘제발‘이 참 좋은데...^^;;

단발머리 2018-05-18 19:00   좋아요 1 | URL
전, 멋진 엄마는 아닌데, 그런데 칭찬해주시니 좋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희집은 곧 노래방 방문계획이 있습니다.
저도, 아이들도 신곡을 많이 발견했거든요. 참, 이소라의 ‘난 행복해‘가 제 18번이라서,
웬지 꼬마요정님과 통하는 이 기분!!!

psyche 2018-05-16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효 처음 들어봤는데 노래가 너무 좋네요. 단발머리님 덕에 좋은 노래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아이와 함께 노래방 너무 좋을거 같아요.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요즘 둘째가 방탄과 워너원에 빠져서 노래방 가면 같이 부를게 생겼거든요. 한국가면 꼭 같이 가봐야겠네요. 막내는 싫어하겠지만 ㅎㅎ

단발머리 2018-05-18 19:11   좋아요 0 | URL
아, 우효가 제게는 올해의 발견입니다. 제 후배는 <소녀감성 100 퍼센트>도 추천해줬는데,
전, A Good Day도 좋네요~~~~
미국에는 노래방이 없나요? 한국도 좀 시들해지기는 했는데, 그래도 중고등학생들이 꾸준히 이용해주고 있어서
노래방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요.
한국 오시게 되면 좋은 시간 가지게 되실 바래요~~~~~~~^^

요즘 저희 아롱이도 방탄 MIC Drop을 얼마나 부르는지... 저도 외울 지경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 인도 민주주의 르포르타주
아룬다티 로이 지음, 노승영 옮김 / 시대의창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The God of small things 』로 부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에는 문학동네를 통해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2016년에 번역되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소설,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소설 중 하나이다. 이 책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는 인도 민주주의 르포르타주로서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기고했던 평론을 묶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현대 국가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상 중의 하나다. 독재국가마저도 국민에 의해, 투표에 의해, 민주적 절차에 운영되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1989년 자본주의가 아프가니스탄의 거친 산악 지대를 배경으로 소련 공산주의에 맞서 펼친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20쪽), 인도는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된다. 마구잡이식 환경 개발과 대규모 건설 공사, 광산 개발로 인해 수천만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고 강제 수용소 등지로 이주 당했다. 



인도의 전 국토는 현재 ‘개발 중’이다. 초국적 기업이 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산과 숲, 강을 약탈하고 광산과 철광이 생태계 전체를 파괴하고 있으며 기름진 토지가 사막으로 전락하고 있다. 현지의 토양과 기후 조건에 적합한 지속 가능한 식량 작물이 뽑혀 나가고, 그 자리에 물 집약적이고 교배종인, 유전자가 변형된 환금작물이 경작된다. 지력이 약해져 수확량이 줄어들고 농사 비용이 증가하여 소농들이 빚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인도에서는 최근 몇 년 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이 18만 명이 넘는다.(23쪽) 세 살 미만의 인도 아이들 중에서 47퍼센트가 영양 실조를, 46퍼센트가 발육부전을 겪고 있다. 우차 파트나이크의 연구에 따르면, 인도 농촌 인구의 40퍼센트 가량은 곡물 섭취량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79쪽) 아룬다티 로이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 한 마리의 육식동물로 합체해 오로지 이윤 극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17쪽) 



도시는 다른 상황이다. 군인들의 전횡과 빈민가의 참상과 길거리를 헤매는 비참한 군중에게서 눈을 돌리고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하면 된다. 그 곳은 또다른 별천지다. 영원한 특권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 춤과 노래의 세계가 펼쳐진다. 빛나는 인도, 넘치는 행복. 아룬다티는 계급에 더해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힘을 ‘신분리주의’라고 명명한다. 소수집단이 다수에게서 땅과 강, 물, 자유, 안전, 존엄, 저항권을 비롯한 기본권, 한마디로 모든 것을 빼앗아 막대한 부를 누리며 불평등과 차별이 고착화되는 현실을 고발한다.



아룬다티는 지금 인도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종파주의적 신파시즘의 위험천만한 역류를 막아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고 말한다. 파시즘이라는 단어는 분노를 사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인도의 상황은 정확히 그러한 형국이다. 종파주의적 신파시즘은 이탈리아 파시즘을 노골적으로 모방한 힌두트바, 힌두 민족주의에 따라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묵인 및 지도하에 소수집단 학살이 자행되고, 소수 집단의 여자들이 대로에서 강간당하고 산 채로 불타며, 15만 명이 집에서 쫓겨난 후 거주가 제한되고, 정부의 고위 각료가 인도 전역에서 증오를 부추기는 집단에 경의를 표하며, 집권당과 관변 지식인들이 살인, 강간, 방화, 사형을 눈감아주고, 이 모든 일에 대해 언론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파시즘의 시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힌두 민족주의는 하나의 인도, 더 정확히는 힌두로 하나된 인도를 지향한다. 이미 인도의 일부가 된 무슬림을 ‘이방인’과 ‘침입자’라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가혹 행위를 환영하는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2002년 구자라트 주에서는 무장한 폭도들이 벌건 대낮에 무슬림 2,000명을 학살하고 무슬림 상점, 무슬림 기업, 무슬림 성지와 모스크가 조직적으로 파괴되었으며, 무슬림 15만 명이 집에서 쫓겨나 상하수도, 가로등, 의료 시설도 없는 게토에서 살고 있다. 역차 객실에서 불이 나 힌두교 성지 순례단 55명이 타 죽은 참사가 참혹한 ‘인종 학살genocide’의 이유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역차 객실 사건의 실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구자라트에서는 인종 학살이 구자라트의 자부심과 힌두교 정신, 심지어 인도 정신을 구현했다며 인종 학살을 대놓고 기념했다.(193쪽) 이 마법의 묘약은 선거에서도 효력을 발휘해 인도인민당은 주 선거에서 두 차례나 승리할 수 있었다. 



아룬다티는 인종 학살이 인류의 오래된 습성이라고 말한다. 1636년, 영국 청교도들의 피퀴트 인디언 살육,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이전에 경제제재 조치로 인한 이라크인 100만명 사망,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독일의 헤레로족 학살, 영국의 태즈메이니아족 학살 등의 인종 학살이 일탈이나 비정상 또는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인간 조건의 크나큰 부분을 차지하는 습성이라는 주장이다.(202쪽) 빼앗고자 하는 자원과 재화를 소유한 종족 또는 공동체의 절멸이 인종 학살의 목표다. 



인도인민당과 그 군사 조직의 지주 회사 격인 RSS의 수장인 헤드게와르 박사의 말이다. 



힌두인의 땅 힌두스탄에는 힌두 국가만이 존재해야 한다…

나머지는 전부 민족의 대의를 배반한 적 – 좋게 봐주면 등신 – 이다. … 힌두스탄에 사는 타 인종은 … 힌두 국가에 철저히 종속되어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특별 대우는 말할 것도 없이) 아무 특권도 – 시민권조차 – 요구하지 않고 살아야 할 것이다. (205쪽) 




인종 학살의 필요한 전제 조건은 죄를 묻지 않는 것이다. 인도 국민이 분명한 사회 구성원에 대한 공공연한 학살에 가담한 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음으로써, 테러방지법의 시행으로 무슬림이 대거 연행됨으로써, 구자라트 정부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편을 들어줌으로써,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은 증인들의 진술을 경찰이 고의적으로 누락함으로써, 경제적 이유를 숨긴 인종 학살, 종교를 근거로 삼는 인종 학살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자라트 사태에 대한 유럽 연합의 비난 언론에 대해 인도 정부는 ‘국내 문제’에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아룬다티의 걱정은 섣부르지 않다. 국가 테러리즘은 인도 내 소수 민족과 소수정파들을 더 잔인하게 옥죌 것이다.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쓰는 아룬다티의 문장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파시즘을 물리치는 길은 파시즘에 분노한 사람들이 분노의 무게만큼 사회정의에 투신하는 것뿐이라는 그녀의 문장 또한 그렇다. 



인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분노와 증오를 넘어서 하나의 인도가 아닌 공존의 인도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인도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룬다티처럼 기도해야 하는가. 



하늘이시여, 이 어둠을 헤쳐 나갈 힘을 주소서. 

이 어둠을 헤쳐 나갈 힘을 주소서.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시이소오 2018-05-13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 단발머리님. 저 역쉬 가장 아름다운 소설 중 하나라는 말씀에 동의요. 아룬다티 로이는 정치적 글만을 쓰기로 선언한걸로 아는데 아쉽기도 하면서 존경스러워요 ~~

단발머리 2018-05-14 09:1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시이소오님 의견에 완전 100 퍼센트 동의합니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아룬다티의 소설을 다시 읽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면 참 아쉬워요.
사실, 전 아직 포기한 건 아니예요.
아룬다티 로이가, 인도의 현실을 고발하기에 문학이 부족하다고 하시기는 했지만, 어쩌면 다시 문학, 다시 소설에 기대실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않을까요 ㅠㅠ

시이소오 2018-05-14 13:20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그랬으면 좋겠네요^^

다락방 2018-05-1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것들의 신을 갖고만 있고 아직 읽지 않은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저도 꼭 읽어보겠어요. 불끈!

단발머리 2018-05-18 19:12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아름다운 문장, 아름다운 소설의 세계로~~~~~~~~~~^^

유부만두 2018-05-1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유령 이야기, 를 읽고 정말 눈을 뜨는 기분이 들었는데, 저자의 이 책도 찾아봐야겠네요. 눈을 뜨고 멀뚱멀뚱 ... 아직 앉아만 있지만 일단 뭘 좀 알고 깨쳐야 한다, 는 생각이에요. 아, 전 너무 바보같이 살았어요. ㅜ ㅜ

단발머리 2018-05-18 19:14   좋아요 0 | URL
저도 자본주의:유령이야기를 먼저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에서 사 준다 해서 기다리다가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어요.
아룬다티는 참 용감한 사람인 것 같아요. 몇 권 안 읽어 봤는데도 넘 멋진 삶을 사는 것 같아요.

저도 더 많이 배우고, 깨치고 싶습니다 ㅠㅠ

psyche 2018-05-15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은 것들의 신>도 아직 안 읽었어요. 꼭 리스트에 넣어두었다가 읽어야겠어요.

단발머리 2018-05-18 19:16   좋아요 0 | URL
작은 것들의 신,은 참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책이라 지난번에 읽을 때는 도서관 책으로 읽었는데,
얼만전에 구입했어요. 다시 읽고 싶어서요.
다시 읽기,를 부르는 아룬다티의 세계로 프시케님, 초대합니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
수전 브라운밀러 지음, 박소영 옮김 / 오월의봄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Against our will』은 저자 수전 브라운밀러와 친구들이 주최한 1971년 ‘뉴욕 급진 페미니스트 강간 말하기 대회’와 그로부터 한 주 후에 열린 ‘강간에 관한 주말 학술 대회’에서 충격과 환희의 시간을 가진 저자가 도서관 서고에 묻혀 있는 강간의 패턴과 규모의 취합을 통해 강간의 역사를 파헤쳐낸 역작이다. 뉴욕 공립 도서관이 선정한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책 100권’중의 하나다. 



목차의 큰 제목만 보아도 강간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얼마나 다방면에 걸쳐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1. 강간의 대중심리 2. 태초에 법이 있었다 3. 전쟁과 강간 4. 폭동, 포그롬 그리고 혁명 

5. 미국 역사에 관한 두 가지 연구 : 인디언과 노예제 6. 통계로 본 강간범 : 신화에서 과학으로 

7. 인종 문제 8. 권력과 성폭력 9. 강간 영웅 신화 10. 여성이 강간을 원한다고? 

11. 강간 말하기 12. 여성이 반격한다 



이미 양성의 신체 구조 자체에 강간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지적(24쪽)은 『제2의 성』에서 ‘침범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암컷의 내적 본질(49쪽)에 대한 해석과 일치한다. 인간의 신체 구조로 인해 강제 삽입 행위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남성이 강간을 할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24쪽)  



여성의 입장에서 강간의 정의는 한 문장으로 가능하다. 


한 여성이 어떤 남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기로 선택했는데 남자가 그녀의 의사에 반해 행위를 계속하면 그것이 바로 강간이라는 범죄 행위이다. (30쪽) 



강간의 정의 안에 상대자, 즉 여성이 그러한 강제적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인데도, 즉 여성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 문제인데도 여성의 관점을 반영한 이런 정의가 법에 적용된 적은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없다.(30쪽) 성범죄는 범죄의 형성과 판단 여부에 피해자의 옷차림, 피해자가 이동한 시간, 피해자의 위치가 중요 쟁점이 되는 유일한 범죄다. 



고대 사회의 질서가 확립되면서 노예제와 사유재산, 여성의 종속이 현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전리품의 하나로서 쟁탈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서는 가부장(여자의 아버지)에게 돈을 지불하고 아내를 얻는 편이 더 문명화되고 덜 위험한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신부 가격은 법에 문자로 명시되었는데, 은 50조각이었다. 남성의 관점에서 강간이란 공정가격을 치르지 않고 처녀성을 절도하는 행위로서 재산권에 대한 침해로 인식되었다. (31쪽) 



전쟁은 평시에도 남성이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멸시를 극대화해 폭발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심리적 배경을 제공해, 문명의 얇은 껍데기를 벗어던진 가장 거침없는 상태의 남성 심리를 보여준다. 전시 강간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 규칙에 의해 허용되거나 묵인되는 행위였다.(55쪽) 1204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거의 언제나 그랬든 강간과 약탈이 연달아 일어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강간으로 여성을 제압하는 일이 승리를 측정하는 척도이자, 군인의 남성다움과 성공을 증명하는 징표인 동시에 군복무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되었다. (59쪽)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벨기에 침공 시 일어났던 강간 사건들(66쪽)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몰로토프 문서’에 기록된 독일군들의 만행(88쪽), 일본군의 난징 점령 시 일어났던 끔찍한 일들(91쪽), 방글라데시 사태(123쪽), 베트남 전쟁(134쪽) 등은 전시에 강간이 작동하는 극악한 면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전시 강간은 전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형태의 피해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학계나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 한다. 전시 강간이란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폐쇄적인 조직 안에서 군인들의 욕구와 불만이 조금 ‘과격한’ 방법으로 분출되었다는 식의 해석, 다시 말해 강간이란 전쟁이라는 전체 그림에서 부차적인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쟁은 어차피 지옥’이라는 관점이 반영된 결과다. 



강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강간이란 국적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 남성의 적대 행위이다. 언제나 그렇든 전쟁 후 기념 과정에서도 근육을 과시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남자답게 취해보는 난장판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때 적국 국민이 아닌 여성도 강간을 당한다. (212쪽)   




미국 역사에서 인디언과 노예제는 강간과 뗄 수 없는 연구 주제다. 백인 남성들은 인디언들이 백인 여성들을 강간했다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며 선전 선동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인디언들에게 납치되었던 백인 여성들은 강간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백인 여성 포로들은 억류 기간 동안 인디언 아내로 산 경험을 공통으로 갖고 있었다. 인디언의 아내로 살았던 경험이 강간인지 아닌지 여부는 여러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섬세한 해석을 요구한다. 또한 성적으로 이용당했다는 것을 인정할 경우, 백인 사회에서 정숙한 신부감 혹은 정숙한 아내로서의 자격이 박탈되어 거부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역시 그녀들이 성 학대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219쪽) 기록에 의하면, 인디언과 연애 관계가 생기거나, 구조된 후에도 인디언 쪽에 남기를 택하는 백인 남성, 백인 여성 특히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꽤 있다. 



미국의 두 세기에 걸친 남부 노예제 경험은 그 자체로 강간의 온갖 복잡한 특성을 빠짐없이 탐사한 완벽한 연구나 다름없다. 노예제에서 강간은 제도화된 범죄로서 백인 남성이 경제적, 심리적 이득을 얻기 위해 한 종족을 예속시키는 데 핵심이 된다. 남부의 가부장적 노예제는 백인이 흑인 위에 있는 형태를 취할 뿐 아니라 남성이 여성 위에, 더 정확히는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위에 있는 형태를 취했다. 흑인 여성은 노동자일 뿐 아니라, 재생산자였다. 노예제 하에서의 성적 착취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흑인 여성의 재생산 기관을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6세 내지 8세가 되면 바로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노예 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을 의미했다. 그 아이가 흑인인지 물라토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237쪽) 당시는 번식용 여자를 판다는 광고를 공공연히 지면에 실을 수 있는 시대, 그런 시대였다. 

 


 

 


인간성 말살의 처참한 환경인 노예제 하에서도 남성과 여성, 흑인 남성과 흑인 여성은 전혀 다른 처지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성 노예의 일과 후 성생활은 노예와 주인 모두에게 일종의 보상처럼 여겨졌으나, 여성 노예에게는 그런 일반화를 적용하기 어렵다.(242쪽) 여성 노예는 밭일꾼과 집안 하인, 번식자라는 경제 근간을 이루는 역할을 맡았을 뿐 아니라, 백인 주인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당하기도 했다. (243쪽) 



흑인 여성에게 세상은 모두 강제하는 힘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적한 곳으로 부르는 백인 농장주, 농장에 고용된 낮은 계급의 백인 남자들, 채찍을 쥐고 집행자 노릇을 하던 일부 흑인 남자들, 그녀의 남편, 그녀와 농장주와의 사이에 태어난 물라토 아이를 괴롭히는 백인 농장주의 아내, 자진해서 첩이 되려 했다며 수근거리는 친척, 친구들, 난잡한 여자라는 소문. 



인종 간 성교 금지, 좀 더 정확히 노예 소유자와 노예간의 성행위 금지 조항은 노예 주 지역이 왕의 식민지였던 시절부터 모든 노예 주의 법전에 적혀 있었다.(252쪽) 인종간의 ‘성관계’를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 극악무도한 행위로 명시한 판례가 존재했지만, 이는 이런 행동이 ‘백인종을 오염시키는 일’이기 때문이지 노예의 권리를 염려한 것은 아니었다. 노예제 남부의 축첩 관행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우나, 첩이 되는 합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이 부과한 조건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253쪽) 강제로 당하는 것보다는 잠시라도 보다 나은 삶이 주어졌겠지만, 몇몇 주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흑인 첩과 그 아이에게 돈과 부동산, 자유를 주라는 유언장을 남기는 경우에도 노예 주인의 합법적인 백인 상속자들은 법정에서 이를 무력화시키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254쪽) 



인종 간의 강간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강간법과 피해자의 인종에 따라 나눈 네 가지 분류항에서 흑인은 백인 여성을 강간한 경우에 가장 강력한 처벌을 받았고, 흑인 여성을 강간한 경우에 가장 약한 처벌을 받았다. (331쪽) 다음은 볼티모어시의 강간 유죄판결 패턴을 도표화한 것이다. 






노예제 남부의 강간 콤플렉스는 백인 남성의 고전적인 악몽이다. 백인 남성은 흑인 여성 노예에게 셀 수 없는 성적 학대를 자행해 왔지만 그 행위를 범죄로서 강간이라고 부르는 일을 거부했고, 언젠가 상황이 역전되어 백인 여성이 강간당하는 일이 있을까 항상 두려워했다.(332쪽) 흑인 여성 노예의 성적 온전성sexual integrity을 매일같이 침해하는 바로 그 백인 주인이, 백인 여성의 정조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해 성적 접근권을 독점했다. 백인 여성의 정조를 중시해 결혼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정말로 적법한 상속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이는 흑인 여성에게 결혼이나 정조를 애초에 부정함으로써 노예 소유자가 노예의 모든 아이에 대해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과 대비된다. 투표할 수 없고, 공직을 차지할 수 없고, 배심원이 될 수 없고, 고등교육을 받을 수도 없고, 결혼 후에 자기 앞으로 땅이나 노예, 돈을 소유할 수 없었던 백인 여성은 노예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백인 남성이 소유한 영토의 일부였다. (337쪽) 



인종 간 강간은 리버럴에게 커다란 정치적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백인 남성이 ‘백인 여성에 대한 흑인의 강간’을 ‘린치’로 응징해 왔던 역사, ‘그 범죄’에 과하게 반응해온 긴 역사를 알게 되면서 많은 백인들은 깊은 죄책감을 품게 되었다.(391쪽) 1971년 여성운동이 강간을 논하기 시작했을 때 리버럴이 받은 충격은 심대했다. 좌파와 리버럴은 인종 간 강간 사건에서 흑인만 더 가혹하게 처벌하는 부당함을 온 나라에 알리고자 했지만 결국 인권을 추구하는 여성과 흑인 운동 사이를 이간질한 셈이 되었다.(391쪽) 이러한 역사적 유산은 극복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흑인과 여성이 겪는 억압의 형태가 유사하며 두 억압이 겹쳐서 무더기로 쏟아지는 흑인 여성의 현실은 둘 사이의 적대를 압도하기 때문이다.(392쪽)  




이 책을 쓰는 동안 가장 자주 받은 질문은 짧고 노골적이며 불쾌한 것이었다. “강간당한 적 있어요?” 

나도 짧게 받아친다.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비슷한 질문을 받았지만 묻는 이도 나도 만족한 적이 없는 듯하다. 사람마다 질문하는 동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내가 저자로서 자격이 충분한지를 이중으로 문제 삼기 위해 저렇게 질문한다. … 다른 이들은 고약한 호기심으로 뒤틀린 논리를 깔고 질문하지 않았나 의심된다. 강간에 대해 쓰기로 작정한 여자라면 어두운 개인사라든가 끔찍한 비밀, 실제든 상상이든 성적으로 학대당한 경험, 과거 어느 시점에 대한 트라우마와 고착, 자신을 평생토록 비틀며 세상을 향해 뭔가 고발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게 한 나쁜 경험을 갖고 있겠지. (4쪽) 




집 앞에서,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는 딱 하나였다. 나와 같은 버스를 타야 하는 학교가 남고 하나, 여고 하나였다. 이 세 학교는 그 버스를 타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경유하는 지역에 남고 하나, 여고 하나가 있었다. 우리는, 우리만 탔으면 싶은 그 버스를 타는 그 애들, 다른 버스가 있는데도 굳이 우리 버스를 타는 그 애들을 진심으로 미워했다. 그 버스는 남고 둘, 여고 셋의 1, 2, 3학년 학생들로1년 365일 내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웬만하면 아래쪽의 동그란 손잡이를 잡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양보했다. 내 손 옆으로는 항상 남자 애들 손이 있었다. 3년 동안 그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난 한번도 내 몸을 더듬는 손길과 마주치지 않았다. 뜨겁고 차갑고 후덥지근하고 쌀쌀한 날씨가 여러 번 바뀌어 가는 동안 그랬다. 성희롱과 성추행을 비롯해 여성의 몸을 목표로 한 범죄에 대한 고발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기적처럼 살아온 내 삶이 오히려 신기했다. 


나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내가 알았던 전교 1등, 학생 회장, 학생 대표, 멋진 선배는 모두 여자다. 내가 일했던 부서에는 팀장이 여자 둘, 남자 둘이었는데, 부장님은 공공연하게 또는 지나가는 말투로 여자들이 일을 더 잘 한다고 말했다. 내가 살았던 가정, 학교, 교회, 사회 속에서 나는 비교적, 더 정확히는 극단적으로 안전한 삶을 살았다. 여자로서 불편한 적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평생 동안 ‘강간’에 대한 공포는 나를 속박했다. 



혼자 여행하지 못한 이유도, 독립한다는 후배에게 비싼 원룸을 찾으라고 말했던 이유도, 자기 전에 현관문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이유도 모두 그것 때문이다. 더러운 눈길, 더러운 손길과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특이하게도 위험과 위협을 벗어난 삶을 살아왔음에도, 강간에 대한 실체 없는 공포는 내 삶을 한없이 제약하고 또한 억압했다. 



임신 중 성감별을 통한 여아 살해, 학교에 가고 있다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여자 아이들, 여성 할례로 불리는 여성 성기 훼손, 남녀 임금 차별,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가정의 천사라는 허울, 어머니라는 굴레, 출산 기계로서 여성의 몸, 아름다움으로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는 여성의 육체, 착한 딸, 순종적인 며느리, 된장녀, 김치녀, 화장실 몰카, 디지털 성범죄, 데이트 폭력, 여성 혐오 발언.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이 모든 수단들, 여성에 대한 멸시와 증오의 사다리 맨 위에 

강간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