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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 인도 민주주의 르포르타주
아룬다티 로이 지음, 노승영 옮김 / 시대의창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The God of small things 』로 부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에는 문학동네를 통해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2016년에 번역되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소설,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소설 중 하나이다. 이 책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는 인도 민주주의 르포르타주로서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기고했던 평론을 묶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현대 국가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상 중의 하나다. 독재국가마저도 국민에 의해, 투표에 의해, 민주적 절차에 운영되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1989년 자본주의가 아프가니스탄의 거친 산악 지대를 배경으로 소련 공산주의에 맞서 펼친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20쪽), 인도는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된다. 마구잡이식 환경 개발과 대규모 건설 공사, 광산 개발로 인해 수천만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고 강제 수용소 등지로 이주 당했다.
인도의 전 국토는 현재 ‘개발 중’이다. 초국적 기업이 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산과 숲, 강을 약탈하고 광산과 철광이 생태계 전체를 파괴하고 있으며 기름진 토지가 사막으로 전락하고 있다. 현지의 토양과 기후 조건에 적합한 지속 가능한 식량 작물이 뽑혀 나가고, 그 자리에 물 집약적이고 교배종인, 유전자가 변형된 환금작물이 경작된다. 지력이 약해져 수확량이 줄어들고 농사 비용이 증가하여 소농들이 빚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인도에서는 최근 몇 년 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이 18만 명이 넘는다.(23쪽) 세 살 미만의 인도 아이들 중에서 47퍼센트가 영양 실조를, 46퍼센트가 발육부전을 겪고 있다. 우차 파트나이크의 연구에 따르면, 인도 농촌 인구의 40퍼센트 가량은 곡물 섭취량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79쪽) 아룬다티 로이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 한 마리의 육식동물로 합체해 오로지 이윤 극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17쪽)
도시는 다른 상황이다. 군인들의 전횡과 빈민가의 참상과 길거리를 헤매는 비참한 군중에게서 눈을 돌리고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하면 된다. 그 곳은 또다른 별천지다. 영원한 특권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 춤과 노래의 세계가 펼쳐진다. 빛나는 인도, 넘치는 행복. 아룬다티는 계급에 더해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힘을 ‘신분리주의’라고 명명한다. 소수집단이 다수에게서 땅과 강, 물, 자유, 안전, 존엄, 저항권을 비롯한 기본권, 한마디로 모든 것을 빼앗아 막대한 부를 누리며 불평등과 차별이 고착화되는 현실을 고발한다.
아룬다티는 지금 인도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종파주의적 신파시즘의 위험천만한 역류를 막아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고 말한다. 파시즘이라는 단어는 분노를 사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인도의 상황은 정확히 그러한 형국이다. 종파주의적 신파시즘은 이탈리아 파시즘을 노골적으로 모방한 힌두트바, 힌두 민족주의에 따라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묵인 및 지도하에 소수집단 학살이 자행되고, 소수 집단의 여자들이 대로에서 강간당하고 산 채로 불타며, 15만 명이 집에서 쫓겨난 후 거주가 제한되고, 정부의 고위 각료가 인도 전역에서 증오를 부추기는 집단에 경의를 표하며, 집권당과 관변 지식인들이 살인, 강간, 방화, 사형을 눈감아주고, 이 모든 일에 대해 언론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파시즘의 시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힌두 민족주의는 하나의 인도, 더 정확히는 힌두로 하나된 인도를 지향한다. 이미 인도의 일부가 된 무슬림을 ‘이방인’과 ‘침입자’라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가혹 행위를 환영하는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2002년 구자라트 주에서는 무장한 폭도들이 벌건 대낮에 무슬림 2,000명을 학살하고 무슬림 상점, 무슬림 기업, 무슬림 성지와 모스크가 조직적으로 파괴되었으며, 무슬림 15만 명이 집에서 쫓겨나 상하수도, 가로등, 의료 시설도 없는 게토에서 살고 있다. 역차 객실에서 불이 나 힌두교 성지 순례단 55명이 타 죽은 참사가 참혹한 ‘인종 학살genocide’의 이유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역차 객실 사건의 실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구자라트에서는 인종 학살이 구자라트의 자부심과 힌두교 정신, 심지어 인도 정신을 구현했다며 인종 학살을 대놓고 기념했다.(193쪽) 이 마법의 묘약은 선거에서도 효력을 발휘해 인도인민당은 주 선거에서 두 차례나 승리할 수 있었다.
아룬다티는 인종 학살이 인류의 오래된 습성이라고 말한다. 1636년, 영국 청교도들의 피퀴트 인디언 살육,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이전에 경제제재 조치로 인한 이라크인 100만명 사망,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독일의 헤레로족 학살, 영국의 태즈메이니아족 학살 등의 인종 학살이 일탈이나 비정상 또는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인간 조건의 크나큰 부분을 차지하는 습성이라는 주장이다.(202쪽) 빼앗고자 하는 자원과 재화를 소유한 종족 또는 공동체의 절멸이 인종 학살의 목표다.
인도인민당과 그 군사 조직의 지주 회사 격인 RSS의 수장인 헤드게와르 박사의 말이다.
힌두인의 땅 힌두스탄에는 힌두 국가만이 존재해야 한다…
나머지는 전부 민족의 대의를 배반한 적 – 좋게 봐주면 등신 – 이다. … 힌두스탄에 사는 타 인종은 … 힌두 국가에 철저히 종속되어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특별 대우는 말할 것도 없이) 아무 특권도 – 시민권조차 – 요구하지 않고 살아야 할 것이다. (205쪽)
인종 학살의 필요한 전제 조건은 죄를 묻지 않는 것이다. 인도 국민이 분명한 사회 구성원에 대한 공공연한 학살에 가담한 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음으로써, 테러방지법의 시행으로 무슬림이 대거 연행됨으로써, 구자라트 정부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편을 들어줌으로써,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은 증인들의 진술을 경찰이 고의적으로 누락함으로써, 경제적 이유를 숨긴 인종 학살, 종교를 근거로 삼는 인종 학살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자라트 사태에 대한 유럽 연합의 비난 언론에 대해 인도 정부는 ‘국내 문제’에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아룬다티의 걱정은 섣부르지 않다. 국가 테러리즘은 인도 내 소수 민족과 소수정파들을 더 잔인하게 옥죌 것이다.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쓰는 아룬다티의 문장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파시즘을 물리치는 길은 파시즘에 분노한 사람들이 분노의 무게만큼 사회정의에 투신하는 것뿐이라는 그녀의 문장 또한 그렇다.
인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분노와 증오를 넘어서 하나의 인도가 아닌 공존의 인도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인도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룬다티처럼 기도해야 하는가.
하늘이시여, 이 어둠을 헤쳐 나갈 힘을 주소서.
이 어둠을 헤쳐 나갈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