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강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서다. 저자 본인은 심혈을 기울인 <3 : 전쟁과 강간>편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는데, 경우에는 인디언과 노예제의 역사 속에서 강간의 정치적 속성을 증명하는 서술 과정이 인상깊었다. 



남부의 가부장적 노예제는 백인이 흑인 위에 있는 형태를 취할 아니라 남성이 여성 위에, 정확히는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위에 있는 형태를 취했다. 흑인 여성은 노동자일 아니라, 재생산자였다. 노예제 하에서의 성적 착취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흑인 여성의 재생산 기관을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6 내지 8세가 되면 바로 작업에 투입할 있는 노예 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가 흑인인지 물라토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237)



흑인 여성은 이중으로 억압당했다. 흑인 여성은 주인인 백인 남성과 가장인 흑인 남성의 지배 아래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착취당했다. 흑인 여성은 밭일꾼과 집안 하인, 번식자라는 경제 근간을 이루는 역할을 맡았을 아니라, 백인 주인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당했다.(243)




레베카 솔닛, 『백래시』 수전 팔루디 그리고 책의 저자 수전 브라운밀러는 소설, 영화, 잡지, 텔레비전, 매스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여성의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뇌를 써서 돈을 버는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소설, 연극, 시에서 여성을 육체밖에 없는 존재로 재현하는 남성들이 늘어났다.”백래시』  언급처럼, 미쳐버린 연쇄살인범의 살인 대상으로서의 여성, 아름다운 외모에 무기력한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여성을 순수하고 어리석으며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로 그려내기에 바빴다. 여성이 보는 여성의 모습 또한 그랬다.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범죄의 대상이 되어버린 아름다운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다. 





이제야 토니 모리슨의 말이 이해된다.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토니 모리슨. 





말씀은 남성들은 작가로서의 자격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겁니다저는 그럴 수가 없었는데 말입니다이상한 일이지요글쓰기가 인생의 핵심이고 마음을 몽땅 차지하고 있고기쁨을 주고 자극을 주는데도 저는 제가 작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어떤 사람이 “직업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저는 작가랍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했어요대신 “편집자랍니다.” 아니면 “교사예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아는성공한 여성 작가가 전혀 없었어요작가가 되는 남성의 영역처럼 보였지요그래서 주변부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가라도 되기를 바랐습니다허가라도 얻어야 것처럼 느껴졌지요. (311







마찬가지로헝거』 록산 게이가 말했던특히 흑인 여성이 쉽게 이루지 못하는 무언가’’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냥 이곳에 눌러앉아 벌목꾼의 아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부분은 내가 가는 곳에 그가 따라와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나는 5 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이 이루지 못하는, 특히 흑인 여성이 쉽게 이루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루었다.(134) 










요리, 청소, 정리 정돈. 집안 하는 여자 메이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백인 주인의 부름을 거부할 없는 메이드. 백인 안주인의 분노와 증오를 받아내야만 하는 운명.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냈던 삶의 그림자는 어쩌면 현재까지 이어져 그녀들을 억압한다. 흑인 여성이 . 흑인 여성이 글이라 


흑인 여성으로 산다는 , 흑인 여성으로 쓴다는 ,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얼마나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을까. 책이나 소설로 멀리 떨어진 채로 짐작할 뿐이지만, 고통의 무거움은 아련히 전해진다.    




흑인 여성이 흑인으로서의 차별과 여성으로서의 억압 어떤 것을 힘들어할까,라는 멍청한 질문을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게 해본다면 어떨까. 그녀는엄마는 페미니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내가 인종차별보다 성차별에 많이 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 왜냐하면 성차별에 대해 화를 외롭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야. 주위의,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종 불평등은 쉽게 알아채면서 불평등은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야. (38)










이것은 계급 역할이나 인종 역할에 비해 역할이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정희진이다. 





그녀/그의 피부색이나 태어난 계급의 조건에 맞는 직업, 감정 표현, 옷차림, 섹슈얼리티, 가사 노동 일생 전반에 걸친역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계급 역할(당신은 가난하므로 공부하면 된다)”이나인종 역할(당신은 흑인이므로 실업자가 자연스럽다)” 같은 표현은 없다. 반면, 역할(gender role, :여자는 애를 낳아야지”)이란 단어의 존재는 성차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상의 정치인지, 젠더가 얼마나 인식하기 어려운 사회적 구조인지, 얼마나 탈정치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24) 






껍데기 뿐인 특권을 누렸던 백인 여성은 아니지만 

정신과 육체가 이중으로 착취당했던 흑인 여성도 아니지만 

현대를 사는 3 세계 여성으로써  

목격자이며 당사자로써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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