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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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건 중요한 일일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일까. 읽는다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이, 다양한 사실들을 외운다는 것이,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임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처럼, 그 사람이 읽는 무엇인가가 그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읽는 것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표현 역시 마음에 가까이 와닿는다. 어떤 사람이 읽고 있는 무엇때문에 어떤 사람은 우아해 보이고, 대단해 보인다. 우리가 읽는 무언가는 가끔 곧 우리 자신이 되기도 한다.




에이미가 불쑥, 젖은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며 소리질렀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은 엄마죠! 엄마는 어디에 가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 말도 하지 않잖아요! 책도 읽지 않고……” 여기서 에이미는 잠시 물러서는 듯했지만, 스스로 격려하듯 손을 옆으로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바보 같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만 빼면요.” (290)

 

 

『햄릿』. 이저벨은 카펫 위로 걸어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햄릿』에 대해서는 당연히 들어보았다. 어머니와 미쳐버린 여자친구가 등장했다. 어쩌면 그녀가 뭔가 다른 작품을 착각한 건지도 몰랐다. … 하지만 턱에 듬성듬성 금발 수염이 난 젊은 점원이 계산대에서 삑삑 소리를 내며 심드렁하게 책값을 입력하자 그녀는 기뻤다. … 오후 내내 그녀는 자기도 유식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따. 벨트코 서플라이어스 회사에 보낼 편지를 타자하면서 이저벨은 누군가에게 그걸 보니 『햄릿』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하고 가볍게 말하는 순간을 그려보았다. (150)

 

 

그리고 그때, 빈사 상태의 자주달개비 아래,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플라톤 전집』, 그녀가 제목을 읽었고 그 옆으로 『존재와 무』라는 하얀 책에는 커피 얼룩이 동그랗게 묻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기 직전에 그녀는 『예이츠 시 선집』을 보았다. (302)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는 자신에게서 벗어나고자 『햄릿』을 사고 읽는 이 사람은, 『플라톤 전집』을 읽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분노를 쏟아내야 마땅한 그 사람 앞에서 주눅들고 만다. 자신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는데, 그 사람은 『플라톤 전집』을, 『존재와 무』를 읽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햄릿』을 산 후에 흐뭇해하는 이저벨과 『햄릿』을 읽기 힘들어하는 이저벨.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미워하고, 『플라톤 전집』과 『존재와 무』 앞에서 당황하는 이저벨을 보면서 읽는다는 것’,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했다.


 

이 소설 속의 사건과 기억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에이버리와 에마에 대해서, 수학 선생님 토머스 로버트슨에 대해서, 뚱뚱이 베브와 도티에 대해서, 스테이시와 그녀의 아기에 대해서, 폴 벨로스와 데비 케이 돈에 대해서, 제이크과 에벌린 커닝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예이츠와 키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줬지만, 당혹감과 슬픔도 줬다. 이 책을 읽은 후, 난 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를 좋아하게 됐지만, 이 소설을 읽는게 힘들었다. 어쩌면 나는 제대로 읽은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틀 동안 이저벨이 되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젊은 싱글맘의 슬픔과 분노에 함께 몸을 떨었으니. 어쩌면, 나는 제대로 읽은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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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6-3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에 꼭‘ 읽어봐야 할 것만 같은 책들을 마주치면 괜히 움찔할 수밖에 없는 게 ‘책 읽는 사람들의 숙명‘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누가 그러더군요. ˝단테의 신곡은 읽어 봤냐?˝고요. 그냥 한번 툭 던지는 농담 같은 말에도 괜히 움찔했던 순간이었죠. 그 대사가 상식이 풍부한 늙은 자동차 정비공(모건 프리먼役)의 말인지, 재벌 사업가(잭 니콜슨役)의 말인지 어느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직도 ‘단테의 신곡‘은 오래도록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으니, 이런 게 ‘명저의 압박‘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단발머리 2017-06-30 12:45   좋아요 0 | URL
‘책 읽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는 말씀에 저도 동감합니다. 아무도 내주지 않은 숙제인데도, 어쩌면 마음 속에 그걸 ‘숙제‘로 간직하고 사니까요. 근래에는 그럴 필요 없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필독 도서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지만....
단테의 신곡,이라면 압박받을 수 있죠.
압박받고 또 가끔은 압박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ㅎ

수이 2017-06-3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의 명성은 익히 들어보았어요. 하지만 아직은. 헌데 플라톤 읽고있는데 뭔가 찔리는 이 기분은 뭐지요;; 읽는 그것이 그를 대표한다는 단발머리님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저를 보아도 그렇고 주변인들을 보아도 그렇고 읽는다는 일이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요즘 읽는 작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데 읽기는 잘 읽지만 그것을 정리하고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할지 자주 머뭇거리게 되니 입은 더 꾸욱 닫혀지고_ 이래저래 생각이 많습니다. 그냥 나 혼자만 읽고말면 되는거지 뭐_ 싶기도 하고. 말이 길었습니다. ^^;;

단발머리 2017-06-30 13:03   좋아요 0 | URL
저역시 책 읽는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들어요.
어떤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드라마를, 어떤 사람은 만화를, 어떤 사람은 그냥, 책을 좋아할 뿐이라는 생각이요. 어차피 좋아서 읽고, 또 그냥 읽고.... 혼자 읽고 하는 거니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제가 좋아하는 그 일이 ‘읽기‘라는 사실이 웬지..... 다행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


반복합니다.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입니다. 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87쪽)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다락방 2017-06-30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고싶은 책이고, 그래서 제 방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고, 얼른 읽어야지 하는 책인데 역시 또!! 단발머리님이 저보다 먼저 읽으셨네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걸 워낙 좋아하긴 하지만, 단발머리님의 페이퍼나 리뷰를 읽는 일은 정말이지 큰 기쁨입니다. 단발머리님은 지금처럼 계속, 멈추지말고 읽고 써주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그리고 저도 이 책을 읽고 단발머리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아 좋아 ♡

단발머리 2017-06-30 13:02   좋아요 1 | URL
저는 다락방님의 <올리브 키터리지> 페이퍼를 읽고, 유부만두님 댓글을 통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읽어야할 작가‘로 여기고는 ㅎㅎㅎㅎㅎ 보통은 <올리브 키터리지>를 먼저 읽고 데뷔작인 이 책을 찾아 읽는다고 하더라구요.
전, 이 책을 먼저 읽었고, 이제 <올리브>로 가야하는데, 아.... 맘이 넘 아플것 같아서.... ㅠㅠ
(나는 다락방님의 리뷰를 샅샅이 읽었답니다.)

이 책이 참 좋아~~하면서 권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어서, 더구나 다락방님이 그런 친구라서 저도 참 좋아요.
새로 올라온 다락방님 글을 읽는 일은 언제나 씐나는 일이예요.
저도 다락방님께 그런 작은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제 기쁨이죠.
우리 같이 읽고, 그리고 쓰고, 이야기 나눠요.
더 나눌 거 뭐, 없을까요?
어떻게......
사랑 나눌까요? 쪼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17-06-3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그만 뒀어요. 뭐 이유는 알 수가 없고요.

올리브 키터리지 읽고 나서 나름 활기차게
도전했는데, 미처 다 읽지 못했네요.
리뷰를 보니 아쉽네요.

단발머리 2017-06-30 18:35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전 아직 <올리브 키터리지> 읽기 전인데,
읽고 싶은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입니다.
훅 파고드는 작가의 손길을 감당할 수 있을런지요. ㅠㅠ

유부만두 2017-06-3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뽀뽀해 주세요;;;; 근데 제가 요새 읽는중인 스트라우트의 최신작 anything is possible도 역시 아파요.... 전 에이미가 욕망대로 움직이는 아이라서 그나마 나았어요. 막 희생만 하거나 참기만 한게 아니고 어리지만 헉 할만큼 자신의 몸과 욕망(욕심?욕구?)를 알아가는 것 같아서...그런데 아픈 이야기를 헤비듯 다 써놓는 작가는 참...독하죠?

단발머리 2017-06-30 18:47   좋아요 0 | URL
유부만두님꼐서 anything is possible 읽고 계신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픈가요? ㅠㅠㅠ

전 에이미와 이저벨이 처음 작품이니까요. 어떤 기대나 예상을 하지 않은, 정말 백지 상태로 읽으면서 따라갔는데,
섬세한 듯 하면서도 강렬한 부분들이 있어... 전 좀 당황했어요.
훌륭한 작가들은 다들 그렇게 독한가요~~~ 그런가요~~~~

참, 제 뽀뽀 여기요~~
유부만두님, 이쪽 보시고요~
쪼오옥!!!

AgalmA 2017-07-0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이 사람은 이렇게 이해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이해하는 걸 보며 저는 책 자체보다 이해하는 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많이 읽어도 유아독존식 사고방식이면 그 사람이 훌륭해 보이지 않더라는~

단발머리 2017-07-04 12:09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요~~~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쓸 수가 없더라구요.
책을 많이 읽으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건지, 이해하는 폭이란 건 원래 타고나는 건지...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