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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 나, 너, 우리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책읽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7년 4월
평점 :
글에는 글쓴이가 보인다. 글을
읽으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글쓴이에 대해 알게 된다.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글쓴이는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드러낸다.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소설가 이승우씨가 그랬던가. 소설을
쓴 이후로 나는 일기를 쓰지 않습니다.
글을 읽으면 글쓴이를 만난 것과 마찬가지다. 소설이라면 그(그녀)가
만든 세계 속에서 주인공 혹은 등장인물 중 하나로 변신한 작가를 만나고, 에세이라면 좀 더 가까이에서
글쓴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글쓰기 책에서 배우는 ‘글쓰기
비법’은 소용없을 때가 많은데, 글쓰기 책에 쓰인 대로 글을
쓴다고 해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가…) 어디까지나 글은, 글쓴이가 가진 매력에 근거해 존재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면, 소설 속 주인공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에세이 속 작가의 말이 설득력이 없다면, 그
글은 제대로 읽힐 수 없다. 글은 어디까지나 글쓴이가 가진 매력에 빚진다.
공감의 작가 이유경의 두번째 책 『잘 지내나요?』에서 그녀가
읽어낸 다양한 책들과 그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녀가 소개한 책들을 읽고 싶어진다. 그녀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되고, 그녀의 제안에 고개 끄덕이게 된다.
그래,
그래서 사랑은 고백해야 한다. 널 사랑해,라고
고백해야 한다. 늦지 않게.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말해야 한다. 좋아하니까
사귀자거나 같이 자자는 게 아니어도,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쯤은,
내가 당신에게 반했다는 사실쯤은 상대에게 기억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 또한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것은 더한 슬픔이 아니겠는가. (186쪽)
기나긴 짝사랑의 기억 때문에 나는 한결같이 ‘고백’에 부정적이다. 응답
받지 못한 사랑, 대답을 듣지 못하는 사랑의 지루하고 서글픈 시간과 시간들을 나는 미워한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고, 고백하라는, 고백해야 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생각이 바뀐 나를
본다. 내 사랑이 응답 받지 못했던 건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고백하지
않아서가 아닌가,하는 엉뚱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 맞다. 좋아하니까 사귀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어도, 좋아한다고, 좋아하고 있다,고 까지는 말했어야 했다. 사랑을 아는, 그녀가 내게 말한다.
사랑받는 일에도, 사랑하는 일에도 망설이지 말라고.
이런 얘기라면 또 어떤가. 『타이베이의 연인들』 속 하루카는 헤어지면서 에릭에게 받은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잃어버린다. 서로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두 사람은 상대가 있는 곳으로, 실은 정확히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 먼 거리를 움직인다.(39쪽) 결국 두 사람은 9년전 헤어진 호텔의 로비에서 재회한다. 그들에게, 9년 동안 전 세계를 무대로 서로를 찾아 헤맨 두 사람에게, 그녀는 말한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답답한 거다. 소중하잖아. 소중한
번호잖아. 그 사람 꼭 다시 만나고 싶잖아. 그런데 내가
아는 게 그가 쪽지에 적어준 전화번호뿐이라면, 그걸 좀 더 잘 다뤄야 하잖아. 쪽지는 잃어버리기 쉽다는 걸 누구나 다 알잖아. 그렇다면 그 쪽지만
가지고 있지 말고, 전화번호를 다른 곳에도 잘 적어둬야 하는 거 아냐?
왜 그 당연한 걸 안 하지? 쪽지는 잃어버리기 쉬우니까 수첩이나 가지고 있던 책, 아니면 일기장이든 어디든 적어둬야 하잖아. 어쩌면 그렇게 딸랑 쪽지
하나만 믿을 수가 있지? 그러니까 9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파리에 가도 만나지 못하잖아. 참~
사람들 신중하지도 못하고 꼼꼼하지도 못하네. (38쪽)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이 문자를 발명해 사용한 것이 5,000년 정도 됐다고 하니, 무척 오래된 것 같지만, 사실 독서는 인간에게 익숙한 일이 아니다. 특별한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 하물며 문을 열고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랴. 이 고도의 지적 작업도, 공감의 작가 이유경과 함께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녀를 따라가 보자.
일단 밤을 새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때의 너희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야, 나는
요즘 열 시만 되면 졸려…. 자야 돼. 낯선 도시를 호감이
가는 이성과 함께 걷는다는 건 나의 로망이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걸으면 쌍코피 터져…. 나는 어서 빨리 이들이 안정적인 호텔로 들어가 깨끗이 씻고 자기를 원했다.
너희들 하루 종일 양치도 안 했잖아. 그런 상태로 먹고 마시고 키스하고 먹고 마시고 키스하고…. (15쪽)
하하하. 그녀의 글을
읽고, 기다리고, 또 읽고,
기다리는 1인으로서, 그녀가 소개하는 책을 눈여겨
보는 1인으로서의 감상이라면, 그녀의 글은 언제나 ‘읽는’ 즐거움을 준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쾌활하고 다정하다. 숨길 수 없는, 숨겨지지 않는 그녀만의 매력이 그녀의 글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다시 독서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
책읽기가 힘든 사람, 소설이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녀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처럼 소설 속 주인공과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이게 읽는 즐거움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