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는 2015년 8월 30일,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남긴 문장들을 모은 책이다. <수은>, <나의 생애>, <나의 주기율표> 그리고 <안식일>의 네 개의 에세이가 있다.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에, 65페이지의 얇은 책이다.
지난 며칠 동안 나는 내 삶을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일종의 풍경처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삶의 모든 부분들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더욱 절실히 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내 삶에는 더 볼일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더없이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남은 시간 동안 우정을 더욱 다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글을 좀더 쓰고, 그럴 힐이 있다면 여행도 하고, 새로운 수준의 이해와 통찰을 얻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 (28쪽)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그 때에 삶에 대해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풍경처럼 바라볼 수 있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있다는 감각.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이 점점 사그라져갈 때,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두렵지 않은 척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의 교제를 즐겼다. 특히 작가들과 독자들과의 특별한 교제를 즐겼다. (29쪽)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간, 그 마지막 순간에 올리버 색스는 ‘고마움’을 말한다. 사랑했고, 사랑받았다고. 고마웠다고.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말한다. 고마움,이라고 쓰고 보니, 정희진의 글도 기억나고.
내 처지가 어떻든 간에, ‘지금, 여기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양보의 결과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다. 그래도 나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방해하지는 않는 사람들에게, 단 한 사람일지라도 나를 격려하는 사람에게, 그래도 변화한 ‘성 평등’의 현실 앞에, 이 체제에서도 세상과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육체적·심리적 질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지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페미니즘의 도전, 19쪽)
그리고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나름 어울리는 어떤 감사 청년도 생각난다.
나는 원래 감사를 잘 하는 사람이다.
나는 금방 금방, 감사하는 사람이다.
올리버 색스를 읽고, 정희진을 생각하고, 감사 청년과 눈 마주치는 오늘 아침에.
나는 감사하다.
감사하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