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가 알고 있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이 보고 판단하는 자기 자신은 완벽하게 똑같을 수 없다. 위선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는 더 형편없는 인간일 것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스스로가 믿는 것보다 더 괜찮을 사람일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것 역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실제의 나보다 더 멋져 보이고 싶다. 실제의 나보다 더 근사해 보이고 싶다. 그러니까 정직하게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실제보다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항상 갈등한다는 이야기다.
어제는 좀 꿀꿀했다. 어제 오전에 만난 사람은 나를, 실제의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제 만난 사람은 실제의 내 모습을 조금 더 정확하게 파악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게 싫었다. 많이 친하지 않은, 그리고 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나의 본 모습을 보게 되고, 알아채는 것이 내내 불편했다. 나는(어떠한 상황에서도 좋은 점 1가지를 찾아내는 훌륭한 미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제 오전에 만난 사람과 나와의 만남이 줄 수 있는 일말의 특별하고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쉽지 않았다. 오후에 아롱이를 바둑 학원에 보내고 청소기를 돌리는데 계속해서 기분이 울적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내가 그러함을 알고 있다는 게 유쾌하지 않았다. 꿀꿀했다.
아롱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소리를 친다.
“엄마, 내가 선물 가져왔어!”
아... 정말 선물이다. 멀리선 온 선물.
선물을 받고 나니 이번에는 선물을 보내 준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됐다. 내가 실제로 어떠한가에 상관없이 나를 좋아하는 그 사람을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같은 말인가?), 유치하고, 소심하고, 게으른가에 상관없이, 나를 좋아해주는, 나를 생각해주는 그 사람을 생각한 거다. 나를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겨주는 그 사람을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기분이 업이 되어 버린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 사람의 애정을, 사랑을 받는 사람이야. 그런 생각들이 자꾸 자꾸 커져서는, 나중에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그 사람이 자주 먹는다는 ‘호박전’을 부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 사람도 저저번주에 반찬이 없어 냉장고를 열고 애호박을 꺼내 호박전을 부쳤지. 나도 부친다, 호박전...
38살 무렵 부터였던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안 들린다. 쉽게 감동받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어떤 형태의 강의던지, 마지막은 ‘그래, 나도 이렇게 해보겠어!“의 결심으로 마무리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게 통 없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내가... 귀 기울이며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따라 읽고 싶은 책이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해준 고마운 사람 때문에 읽게 된 책들이다. 물론 더 많지만, 오늘은 간단히 이렇게만 올려본다.
같은 책을 읽고, 그 사람을 따라 읽어 가면서, 나는 많이 웃고 행복했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할지는 몰라도,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그 길 위에 웃음과 행복이 있다는 걸, 그리고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고마워요, 좋은 사람.
당신은 좋은 사람이예요.
벨아미, 레 미제라블, 패니와 애니
초조한 마음, 내 연애의 모든 것, 집 나간 책
지상의 노래, 신중한 사람, 에리직톤의 초상
interpreter of maladies, 축복받은 집, 저지대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말할 수 없는 애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
그리고.... 화룡점정의 정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