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나는 이런 상황을 기대했다거나, 기다린게 아니라는 걸 말해야겠다. 내가, 이 댓글을 잘 간수했다가, 이런 상황에서 야무지게 써먹는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 그런거고.
아무튼 내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위의 댓글이 작성된 날짜는 2015년 5월 31일이다.
나는 유명 알라디너도 아니고, 내 방은 방문자가 많은 서재도 아니다. (이 자리를 빌어, 내 어설픈 서재를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하트뿅뿅!) 유명 알라디너가 되면 참 좋겠고, 방문자도 많았으면 참 좋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글에 ‘좋아요’가 달릴 때, 댓글이 달릴 때, 무척이나 크게(!) 감동받는다.
그런데, 허접한 내 서재에 가끔 모르는 사람의 ‘호전적 댓글’이 달릴 때가 있다. 이전에도 공개하기 곤란한 몇 개의 공격적이고 더러운 댓글이 달린 적이 있는데, 어쩔지 몰라 ‘알라딘 고객센터’에 물어보았더니, 내 서재에 올라온 글은 바로 내가 ‘삭제’할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삭제를 하고, 이후로는 로그인을 한 사람만 댓글을 달 수 있도록 설정을 변경했다.
나는, 내가 누리는 삶이 과분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 문화, 교회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매사에,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게 습관을 넘어, ‘제2의 천성’이 되었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안착해서(알았어요, 권인숙씨. 이번 한 번만 써먹을께요.) 그 안에서 일을 하지 않고, 사회적 고용 관계에 있지 않으면서도 삶을 보장받으면서 살 때의 여러 이점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남편이 내게 경제활동을 강요하지 않아 고맙게 생각한다. 출산과 육아 문제로 원치 않게 직장을 그만뒀지만, 아이들이 자란 후에는 원치 않는 일터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원치 않는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다시 일을 하라며 등 떠미는 남편도 남편이지만, 경력 단절을 이유로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지 못 하는 사회가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전업주부로 살면서, 가정을 돌보면서(찔린다), 경제활동은 하지 않지만, 여기저기에서 돈 쓰며 사는 내 생활이 어떤 사람에게는 ‘꼴보기 싫은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개학 후에 많이 놀지 못 하고 있다,고 말하는 내 글이 그랬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 모습이 보기 싫을 것일 수도 있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될 것을...
내가 그 댓글을 삭제하지 않고, 그냥 둔 이유는 (2)번 때문이다.
(1) 도서관에서 빌린책을 집어던진 걸 참 자랑이라고 떠벌려놨네 ㅉㅉ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침뱉어 던진 책을 다시 꺼내’. 그렇다면, 이 표현이 정말,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책에 침을 뱉었다는 이야기인가.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상식으로는 그 의미가 아니라고 본다.
내 표현도 마찬가지다. 내가 의도한 바는 이렇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 도전했으나, 영어로 되어 있어 힘들어 책읽기를 ‘포기’했다. 그러니까, 이런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내가 이거네, 저거네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지나가려했다. 리뷰 별매기기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별 하나의 책이라면 끝까지 읽지도 않는다. 끝까지 읽었으면, 일단 별 세 개다. 리뷰를 쓸려면, 허접한 리뷰지만, 그래도 한 개의 리뷰로 남기려면, 최소 별 네 개는 되어야한다. 잊혀질 책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별 한 개 리뷰는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있을테다. (참고로, 별한 개 리뷰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으로는, 전문가 ‘로쟈’님 계시다.)
잠깐, 삼천포였고.
그래서, 나는 이 댓글에 대해 답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뭐, 이런 댓글을 받았느니, 어쩌느니, 길게 글을 쓸 여력도 없었다. 나도 나름 바쁜 사람이다. 별 네 개짜리 책을 읽어야하고, 뭐든 써야 하니까.
그런데...
(2) 이 나라 김치년들 노답
만약 이 댓글이 ‘김치년’으로 끝났다면 나는 그냥 이 글을 삭제하고, 내 머리 속에서도 삭제했을 것이다. 내 글 밑에는 서너분들의 댓글이 달려있었는데, ‘김치년들’이라면 나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내 글 밑에 댓글을 달았던 분들,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인 분들을 포함한다. 그냥 내 글을 읽고,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순식간에 ‘김치년들’이 되어 버린 거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 댓글을 삭제하지 않고 있다.
물론이다.
그 댓글을 단 사람의 방에 가면, 글이 한 개도 없고,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로그인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내 방에 들어와 ‘김치년들’이라니. 여성혐오 발언을 한 이 어떤 사람, 남자라고 강력히 추정되는 이 사람에 대해, 나는 뭐라 응수해야 하나.
이, 개새*야, 다시는 내 방에 오지 마,라고 해야되나.
이, 18놈아, 다시는 내 글에 댓글 달지마,라고 해야되나.
세 문장을 채우려 했지만, 참신한 욕이 안 떠올라서 두 문장으로 갈무리한다.
<알라딘 책 소개>
이 책은 여성 혐오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의 생각의 틀을 먼저 점검하게 한다. ‘본래의 페미니즘 정신’과 대비시킨 ‘무뇌아적 페미니즘’, ‘모든 여성’은 아니지만 ‘일부 여성’은 비난받을 만하다는 널리 공유된 생각은 신중하고 점잖은 의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련된 여성 혐오일 뿐이다. 페미니즘이 구조를 문제 삼는 대신 남성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있다는 그 칼럼니스트의 비판은 정작 소년이 박탈감을 느끼게 한 사회구조의 문제를 ‘페미니즘’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요는, 이 책을 하나도 읽지 않았는데도, 이 책을 대문에 딱 걸어 놓고는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내 방에서 ‘여성 혐오’의 예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그 놈이 이 글을 읽어야 될텐데. 고상한 척 떠들면서 방 하나 만들어 놓고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악성 댓글 달지 마라. 여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그 심한 욕을 너한테 돌려준다.
나대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