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들.
다시 쓴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들.
을 인솔하는 어떤 선생님이 여행 중에 읽을 책을 고르려 책장 앞에 서 있다. 찾는 책은 한국 작가의 장편소설. 이승우의 『신중한 사람』은 단편집이라서 아웃.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는 줌파가 외국인이라서 아웃. 김중혁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읽어서 아웃.
강력 추천 『대성당』은 ‘카버는 재미가 없던데’라서 아웃.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아직 그 가치를 몰라서 아웃. 『EVERYMAN』은 여행가는데 웬 원서냐?라서 아웃.
그래서, 이것 빼고 저것 빼고 심혈을 기울여 고른 책들은 원래의 기준에서 벗어낫으되, 일단 선택 자체가 안전빵인 작품들이다.
김영하의 『검은 꽃』,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두 권이면 된다고 잠깐 말려보았으나, 어떤 것을 뺴야할지 모르겠다며, 세 권을 모두 챙긴다.
책을 고르는 옆에서 나는 이 책을 빼든다.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리뷰도 작성했는데, 책을 꺼내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읽자마자 그녀의 정신없는 정원으로 끌려들어간다. 전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읽었던 터라, 이 책은 새책이고 아주 깨끗하다. 줄을 긋는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그녀가 처했던 환경에 흥미가 생겼던 것 같다. 즉, 그녀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고, 천연자원수호위원회 담당 변호사였음에도 네 명의 아들을 키우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책을 읽고, 북리뷰를 쓰고 있다는 것 말이다. 나는 그녀의 책을, ‘훌륭한 사회적 역량을 가정에 쏟아부으며 책을 읽어나가는 한 주부 독자의 독자 후기’로서 읽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구절을 좋아했다.
매일 아침 그 전날 읽은 책의 서평을 올린다. 그런 다음 책장으로 걸어가서 새로 산 책이나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들을 훑어보고, 그날 읽을 책을 골라 들고는 내 보랏빛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한다. 전화가 걸려오면 받는다.
“바빠요?” 전화 건 사람이 묻는다.
“네, 일하는 중이에요.” 고양이는 가까이 있고, 나는 의자에 앉아 굉장한 책을 읽고 있다. 그것이 금년의 내 일이고, 좋은 일이다. 봉급은 없지만 매일매일 깊은 만족감을 얻는다. (129쪽)
하지만 이번에 읽을 때는 좀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첫째는 독서의 가장 주요한 의미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영영 떠나 버린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독서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독서는 도피’라는 것이다. 피하고 싶은 암울한 상황, 도망치고 싶은 암담한 현실 속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독서는 도피’라는 이야기가 내게는 가장 매력적이다.
책. 동작을 멈추고 다시 온전하고 전체적인 인간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생각할수록 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난 도피에 대해 생각했다. 도피하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 ... 삶으로 돌아가는 도피. (35쪽)
어떻게 살 것인가? 현재에 붙잡혀 있지만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기꺼이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나의 미래는 거기에 의존한다. 우리는 가끔씩 일상이 주는 크고 작은 압박에서, 가슴 아픈 일에서, 실망에서 도피할 필요가 있다. (237쪽)
또 한 가지는 영원한 안녕,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겪은 사람이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도 그들에게 존엄성을 부여하고 그들이 영위한 삶에 존경을 보내는 방법이다. (98쪽)
슬픔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향유는 기억이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는 고통을 덜어주는 유일한 진통제는 죽기 전에 존재했던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100쪽)
떠나간 그들을 기억하는 것, 그들의 말, 그들의 행동,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 다시 생각하고, 말하고, 간직하는 것이, 먼저 떠나 버린 그들의 삶에 존경을 보태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슬픔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살아가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서 살아가고 우리가 잃은 사람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기대와 흥분감을 품고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희망과 가능성의 감정을 친절함과 관대함과 자비로운 행동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280쪽)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못 했던 고등학생들이 여러 번 생각났다. 실질적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돕지 않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자기 위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왜 하필, 유독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만 이런 마음이 드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용산, 쌍용차, 밀양. 비극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지만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고, 그러한 거대한 비극 앞에서 난, 무능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왜 ‘세월호 사건’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사건이, 지금의 내 일상과 너무 가깝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을 인솔하는 어떤 선생님이랑 같이 살기 때문이고,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딸롱이가 돌아오는 금요일이 어서 왔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저번달에는 아롱이 김밥을 싸주며 혼자 눈물바람을 하고 말았다. 수학여행을 간다고 옷을 챙기고, 모자를 챙기고, 선크림을 챙기며, 더 용돈이 필요없다며, 착한 웃음을 짓고 떠났던 그 예쁜 아이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그 평범한 일상, 행복이라 말하기 전에 행복인지도 몰랐던 그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렸다. 둥글게, 크고, 두껍게 맛있는 김밥을 싸서 가족끼리 먹여주며 웃는 그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몇일 전에, 알라딘 서재에서 이 동영상을 보았다. 아침이라 울고 싶지 않았는데, 플레이를 누르고는 어김없이 울었다.
결국 울 수 밖에 없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하나 뿐이라 해도, 기억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유가족들의 원한에 사무친 마음이 달래질 것이고, 진실 규명을 위한 지난한 싸움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기억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침부터 눈물바람이 되더라도, 다시 보고, 또 한 번 기억하는 일이 필요하다.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