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철없이 안소니(조나단 베일리, 2018년 커밍아웃)를 막 좋아하고 그랬을 때의 일이다. (2022년 5월) ‘만약 진짜 영국에 가서 조나단을 만났는데, 조나단이 정말 단발님 좋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답하지 못했고. 이 세상 가장 다정한 우주 알라딘에 이 질문을 나누었는데, 지혜로운 바람돌이님께서는 ‘남편이 둘이면 좀 많이 많이 귀찮을 것이다. 우리 힘 딸려서 안 된다’라는 귀한 말씀으로 제정신이 돌아오게 해주셨다.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은 너무 뼈를 때리니까 인용하지 않기로 하고. 신자유주의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 나는 그래,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족함을 그런대로 내버려 두고, 나의 장점이 뭔지 아는 사람과 살고 있으니까. 원망과 미움보다는 애정과 안쓰러움을 더 두껍게 쌓아 두었으니까.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또 결혼 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한 번 더 결혼한다고? 결혼을 한 번 더?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오, 윌리엄>의 윌리엄은 세 번 결혼했고, 루시는 두 번 결혼했다.
중학교 1학년, 처음 알았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존경하는 P목사님은 최근 설교 중에 사랑을 대하는 여남간의 차이를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자들의 사랑은 늘 이래서 실패하는데…. 남자는 자꾸 진심을 보이려고 그래요. 그래서 앞에서 가슴을 찢고 심장을 꺼내서, 식기 전에 드세요. 그니까 다 도망가죠. 얼마나 무서워요.” 비슷한 경우가 내게도 있었다. 15장 편지의 마지막 장, 15번째 편지에는 이문열의 문장만 쓰여 있었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이런 문장이었다. “이 세상에는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심장이 있다.” 나는 놀랐다기보다는 ‘엥?’ 이런 심정이었는데, 그 사람의 감정이 소중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저는 제 사랑을 들고 있기에도 너무 버거워요.
내게 주어진, 내게 허락된 사랑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심장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많은 경험만이 진실한 사랑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바 일루즈가 말했듯 ‘선택지가 지나치게 넓어질 때, 선택 후의 만족감은 오히려 떨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루어진 사랑만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고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질적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절박하고 중요한 순간뿐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보내는 순간. 흘려보내는 시간, 멍하니 앉아 내리는 눈을 함께 바라보는 그런 시간.
너의 사랑이 아니라도
네가 나를 찾으면
너의 곁에
키를 낮춰 눕겠다고
잊혀지지 않음으로 널
그저 사랑하겠다고
그래서 진짜 궁금한 건 조나단의 마음이 아니라 이런 마음인 것 같다. 잊혀지지 않음으로 그저 사랑하는 마음, 오래도록 기다리는 마음.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 애타는 마음, 그런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