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원래 질곡이 많은 것이 자연스러우니, 이 책의 주인공들도 오해하고 화해하고 미워하고 용서하는 사건, 사고가 많다.
첫 번째는 남주(콜린)가 여주(올리비아)에게 무시하는 말을 해서 올리비아가 화가 났고, 콜린이 찾아와 진지하게 사과했다. 두 번째는 올리비아가 콜린을 오해한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올리비아가 콜린을 오해하고 콜린 역시 화가 난 상태였다. 얼마 후에 진실을 알게 된 올리비아가 사과하면서 화해를 청하고 콜린은 올리비아를 용서한다. 그리고 세 번째. 이 오해/실수/잘못은 전적으로 콜린의 것이면서 또한 작가의 것이기도 한데, 이런 설정 자체가 이 소설의 틀이 되기 때문이다. 콜린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올리비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올리비아는 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올리비아가 아니라, 내가 콜린이라면 어떨까. 말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오랜 시간 올리비아를 속인 건 잘못이고, 그것 때문에 올리비아가 (가볍기는 했지만 진지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끝내겠다고 하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콜린은 올리비아를 진심으로 대했고, 올리비아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 역시 자신에 대해 그런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화가 난 올리비아는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전화를 차단하고, 집(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찾아오지도 못하게 한다. 용기를 내서 보낸 커다란 꽃바구니를 아파트 로비 테이블 위에 놓고 갔다.
이제 콜린에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만약 여기에서 더 많은 문자를 보내고, 더 많은 전화를 하고, 그녀의 아파트와 직장을 찾아간다면, 그건 스토킹 범죄다. 올리비아는 명시적으로 자신은 더 이상 이 관계에 관심이 없다고, 너랑 끝내겠다고 말했다. 설명하고 싶은 건 콜린의 마음이다. 되돌리고 싶은 것도 콜린의 마음이다. 올리비아는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만약 나의 진지한 이 마음을 그녀가 ‘제대로’ 듣기만 한다면, 그녀의 마음이 돌아설 거라는 건, 그만의 착각이다. 듣지 않기로 한 것이, 올리비아의 선택이다. 그 선택 때문에 두 사람이 어긋나고, 이별하고, 다시는 못 본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해 때문이건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건, 후에 사실을 알게 된 올리비아가 혹은 그를 용서하게 된 올리비아가 땅을 치고 후회를 하든 말든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 콜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똑같은 상황이 아니기는 하다.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는 매사에 오만하기는 했지만, 위컴과의 사건에 관해서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위컴의 말만 믿고 다아시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쓴다. 아, 사랑과 정성의 러브레터. 역시 편지는 손편지가 최고지요.
이 편지를 받고 제가 지난밤 당신을 그토록 불쾌하게 했던 감정을 다시 토로하거나 또다시 청혼을 할까 봐 놀라지는 마십시오, 엘리자베스 양. 제가 편지를 쓰는 의도는 우리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빨리 잊으면 잊을수록 좋은 희망에 대해 길게 논함으로써 당신께 고통을 주거나, 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편지를 써서 당신이 읽어주시도록 부탁드리는 것이 제 성격상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제가 이 편지를 쓰고 당신이 그것을 읽으셔야 하는 수고는 덜어질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멋대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을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기꺼이 읽어줄 기분이 아니시라는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정함의 문제라고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277쪽)
다아시는 편지를 썼다. 콜린은, 콜린은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콜린은 이사를 간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다른 도시로 떠나기로 한다. 올리비아가 없는 곳, 올리비아를 볼 수 없는 곳으로 간다. 혹 그렇게 하면 그녀가 자신을 붙잡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렇게 계속 살 수 없으니, 살려고 간다. 나도 살아야겠다, 는 심정으로 이사를 간다.
이 문단이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았다.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말 뒤에, ‘나는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가 아니라, ‘죽을 거 같아서, 난 여기서 벗어나야겠어’라고 말하는 게 좋았다. 죽을 것 같은 심정이고, 정말 죽을 것 같지만, 그 사람이 끝내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나는 결국 그 사람을 얻지 못할 것이 확실해진 그 상황에서.
너 없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그래, 나 죽고 너 죽자, 가 아니라. 나도 이렇게는 못 살겠어. 나도, 나도 살아야겠어. 그런 마음이 좋았다. 돌려받지 못한 마음, 이미 내게서 떠나버린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야겠다고, 이렇게 바보처럼 망가진 채로 살 수는 없다고, 여기서, 이 상황에서 도망가겠다고 말하는 게, 좋았다. 애원보다는 이사를 권한다. 혹시 모를 일, 올리비아처럼 그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주말이니까 느긋하게는 아니고. 밥 먹기 전에 커피를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은 밥 먹기 전에 달달한 탄수화물 일체를 먹지 못한다. 빵, 도넛, 쿠키 등등. 나는 그런 순서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고, 저 도넛 다른 사람이 먹기 전에 내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이게 마지막 도넛이다. 맛있는 거는, 제발 내가 먹어야 한다.
올해는 유독 로맨스를 많이 읽었다. 영어책이니까, 라는 변명을 하기에는 너무 그쪽으로 치우쳐졌다. 이제 제발 그만.
사랑 그만. 로맨스 그만. 뜨거운 밤 그만. 이제 제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