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시작과 나의 끝
나의 타오르는 질문 목록들
오후 3시 51분. 막 『An American Bride in Kabul』 읽기를 마치고 그냥 덮으면 잊어버릴까, A4 한 장 안 되는 분량으로 감상을 썼다. 이제 좀 놀아볼까. 한 시간 전에 너무 졸려서 잠 물리친다고 서가를 거닐다가 가져온 책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을 펼쳤다. 책을 뽑기 전, 책 등만 보았을 때는, 이 책이 지구 이외의 행성에 사는 외계 존재에 대한 책일거라 추측했다. 그게 이 책을 뽑아 든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목차를 살펴보니, 지구상의 신기한(?) 생명체들에 대한 이야기다. 넓적다리불가사리, 돌고래, 일본원숭이, 장수거북, 문어, 긴수염올빼미. 아, 이 쪽은 아닌 것 같은데, 하며 책을 덮으려고 하는데 챕터 8이 눈에 들어온다. 8 Human 인간. 아, 인간이라면 또 읽어봐야지요, 인간.
이렇게 인간, 159쪽을 펼쳐 두고 잠깐 알라딘 서재에 들어갔다. (알라딘서재 수시로 들어가는 사람) 쟝쟝님 방에서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다락방님 방에서 제목을 보았던 기억은 나는데,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제일 주요한 내용은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 정가 48,000원, 판매가 43,200원에 빛나는 어마어마한 가격. 636쪽. 책의 목차를 잠깐 살펴보고, 댓글을 달고, 다시 내 책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한다.
첫 문장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아, 문학적이야. 여성은 거미와 월계수로, 남성은 사슴과 아네모네로 변하는 <변신 이야기>보다 더 기이한 변신이 우리 몸 가운데 일어났는데, 그 신체 부위가 바로 발이라는 주장이다. 뛰어난 손재주를 가능케 하는 손의 발달은 포유동물 계통에서 아주 일찍 출현했지만, 발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의 뒷손, 즉 발은 나뭇가지를 우아하게 잡을 수도 없고 발을 구르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데, 이러한 발의 진화를 통해 우리 인간은 두 발로 오래 걸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여러 차이점 중에서 두 발로 걷는다는 지점에 주목한다.
또 달리기가 우리를 가장 인간답고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는 주장도 있다. 달리기를 할 때, 인간은 풍크치온스루스트(funktionslust), 즉 본래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하는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동물은 본래 자신의 생존에 중요한 것을 하는 데 능숙하며, 그것을 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경향이 있다. 인간에게는 달리기가 그렇다(혹은 그러했다). 달리고 동물을 뒤쫓는 행위가 이후 과학을 가능하게 한 정신적 과정들 중 상당 부분이 진화할 수 있도록 자극했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말이 맞든 간에, 인류 역사의 99퍼센트를 넘는 기간 동안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다. (168쪽)
운동, 우울증 치료, 글쓰기의 관점에서 걷기/산책의 효과에 대한 글을 많이도 보았다. 걷기를 즐겨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하루에 3,000보 채우는 일이 미션인 사람으로서, 나는 그 어떤 글에도 설득되지 않았으나. 이 글은 단연코 가장 훌륭한 ‘걷기 예찬‘ 글이며, 고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걷기’ 그리고 ‘달리기’는 그 어떤 활동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고 한다.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란다.
그다음,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음악이다. 음악과 춤이 언어와 기원을 공유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이 동물이 내는 소리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직립 보행과 달리기를 위해 척수가 머리뼈 뒤쪽이 아닌 바로 밑에 연결되는 진화가 아주 서서히 이루어졌고, 척추와 입 사이에 후두를 위한 공간이 좁아지고, 후두가 목에서 좀 더 아래쪽에 놓이며, 결과적으로는 성도의 길이가 늘어나고 성도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소리가 더 다양해진(172쪽) 결과라고 한다.
의식은 진화적 적응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여겨져 왔다. (대체로 의식이라는 경이로운 경험을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고 거기에 투자하고 싶어지도록 강하게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옳든 그르든 간에 (이에 대해 격렬한 반박이 있어왔다), 음악이 의식을 강화하고 삶에 몰두하도록 기여하는 혁신적인 발명품임에는 틀림없다. 리듬, 강약, 화음, 음색을 다양하게 실험해 보는 것은 의식 자체의 본질과 경계를 탐구하고 확장하는 한 방법이다. (174쪽)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당연히 이 부분에서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를 떠올린다. 40억 년 전 지구,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불덩어리 행성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자가 유지보수와 에너지 획득, 번식을 위한 기초적인 움직임만 가능한 박테리아가 출현(알라딘 책소개)했다. 그리고 진화의 긴 시간을 거쳐 이 행성의 지배자가 된 인간은 바흐로 상징되는 위대한 정신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어떻게? 마음의 진화를 통해. 저자 대니얼 C. 데닛은 “진화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철학자”라는 평이 있는데, 나의 방점은 ‘사상가, 철학자’에 있다.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해 인간 의식의 진화를 ‘초끈이론’과 ‘우주론’ 전문가로서 과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과 비교해서 읽어도 좋을 성싶다. 그래서, 결론은 43,200원의 이 책을. 사?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