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뒷심이 부족해서 나는 책 한 권을 끈기 있게 읽지 못한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다가 도서관 책이면 반납일에 ‘어, 어?’하면서 반납하기 일쑤고 그러면 다시는 그 책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결과적으로 완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많다). 하지만, 책 한 권을 다 읽은 후에 리뷰/페이퍼를 쓰겠다고 하면, 다 읽은 후에 ‘황망함’, ‘암담함’에 압도되어 버린다. 아, 어떡하지. 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2분의 1에서 3분의 2지점에서 적어도 감상을 한 번은 쓰자, 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5번) 길고 짧은 글을 썼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도 완독의 기쁨 없이 사라질 운명이었는데, 아….. 알라딘 여러 이웃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는 모습이 얼마나 활기차고 명랑하고 에너지 넘치는지. 나도 모르게. 나도 이 책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아침에도 책을, 아니 아이패드를 열었다.
먼저 읽은 부분(아마도 챕터 10)에서는 아프칸에서 유대인들이 축출되고 재산이 몰수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특별히 체슬러의 시아버지가 어떻게 부를 축척하게 되었는지, 은행 인수라는 비교적 최첨단 서구식 인프라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설명한다. 한편으로 그런 역사를 가진 나라에 ‘유대계 미국인 신부’를 데려온 남편의 ‘무식함’에 놀라기도 한다.
챕터 11은 9/11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된다.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데, 나로서는 그날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는 그날, 그런 날이 2014년 4월 16일이다.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9/11 테러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종교적 이유, 서구에 대한 적대감, 물질문명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이란의 쿠웨이트 침공뿐만 아니라 냉전 체제에서 미국과 소련의 외교정책도 모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9/11 테러의 주범으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서술이 풍부하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아버지에게 57명의 자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 알았다. 맹목적인 아버지 숭배와 리더에 대한 추앙이 강력한 문화 현상인 이슬람 사회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했던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자식, 특히 아들들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에 대해 체슬러는 비교적 거리를 두고 서술한다. 오사마 빈 라덴 자신은 가장 비싼 외국산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무기를 사용했지만, 다섯 아내와 아이들은 “냉장고, 전기스토브, 냉난방 장치”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다섯 아내들은 “휴대용 가스버너”로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여성들에게 잔인했는가. 체슬러는 예스 그리고 노로 답한다. 더불어 카불의 시아버지를 떠올린다.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잔인할 필요가 없다.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이고 열등한 존재인 여성은 남성의 상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의 아들 오마르의 말을 빌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여성 군인이 포함된 미국군의 입성을 허가했을 때 오사마 빈 라덴이 크게 화냈던 일을 소개한다. 체슬러는 대부분의 서구인이, 이슬람 남성 심리의 관점에서 여성 종속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종주의 등 여러 범죄에 대해 체슬러는 이것이 서구만의 범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서구는 반성하고 있으며, 노예제를 폐지하고 인권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나아가고 있지만 동양은 아직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또한 카불의 감옥에 갇혀 극한의 경험을 했기에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근대화와 인권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챕터 12에서는 미국에서 아프칸 가족들을 만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읽어야 하는 책들 때문에 김치냉장고가 힘들어 보인다. 주말인데, 왜 바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