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단편 <Light>를 읽는다.

 

“You’re scared to die, even at your age?”

Olive nodded. “Oh Godfrey, there were days I’d have liked to have been dead. But I’m still scared of dying.” The Olive said, “You know, Cindy, if you should be dying, if you do die, the truth is – we’re all just a few steps behind you. Twenty minutes behind you, and that’s the truth.” (128)

 


아픈 신디를 찾아온 올리브. 그녀 역시 죽음이 두렵지만 사람들이 외면하는 신디를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준다. 이렇게 나이 든 자신 역시 죽음이 두렵노라 말해준다.

 


 

죽음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를 자주 생각한다. 다음 달이 되면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된다. 맞은편 신호등에 시아버지 키에 시아버지 체격의 어르신을 발견하면 아직도 움찔하고 놀란다. 시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하루에 두 번씩 매일 면회를 갔다. 시아버지의 임종을 보았고 입관에 참석했고 화장터에 함께 갔다. 수목장에 모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시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시아버지를 모신 수목장에 도착하면 시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여보, 우리 왔어요. 애들이랑 같이 왔어요. 도련님이 말한다. 아버지, 저희 왔어요. 시아버지는 여기 안 계시는데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여기 안 계시는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시아버지는 어디 계신가.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인가. 시아버지의 실체인가. 실물로서의 시아버지인가. 시아버지의 생명활동이 완벽하게 멈춰지고 그 분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는 걸 두 눈으로 보았는데, 여기 바로 이 자리에 묻히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나는 시아버지의 무엇을 찾는가. 내가 찾는 것은 시아버지의 마음인가. 나를 예뻐해 주셨던 마음인가. 남편에게 남아있는 시아버지의 정갈함인가. 간곡히 부탁하셨던 그 때의 그 말씀인가. 나는 무엇을 찾는가.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다.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이 두렵다.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에 처하는 것, 그런 것이 두렵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두렵다. 내세를 믿는 사람이니까, 내게 죽음은 단절과 종말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일 뿐이다. 죽음 자체가 두렵지 않다.  


 

요즘에는 더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 때문인 것 같다. 노쇠한 부모님을 돌보는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는 어떤 책에서도 읽은 적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젠 돌아가셔야지라고 그녀가 말할 때, 그 순간만큼은 동의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렵다. 너는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야. 그 상황이 얼마나 고달픈지 몰라서 그래, 라고 말할 때 그 말이 맞다는 걸 알지만, 암담한 마음만은 어쩌지 못하겠다. 탄생만큼 신비한 죽음이, 이렇게 이해되는 게 서글프다. 나 역시 죽어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나의 죽음에 대한 예언이니까.

 














존경하고 애정하는 유시민 작가님이 알릴레오에서 이 책을 추천하셨다. 도서관에서 얼른 대출해왔고, 마지막 단원을 (내가 알고 싶은 건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을 아니까) 가열차게 읽었다.

 


춥고 황량한 우주를 향해 나아가려면 웅장한 설계도 같은 것은 잊어야 한다. 입자에게는 목적이 없으며, ‘우주 깊은 곳을 배회하면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궁극의 해답같은 것도 없다. 그 대신 특별한 입자 집단이 주관적인 세계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성찰하면서 자신만의 목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태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바깥이 아닌 내면이다. 이미 제시된 답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인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면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물론 과학은 바깥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과학을 제외한 모든 것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할 일을 결정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간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짙은 어둠을 뚫고 소리와 침묵에 각인되어 끊임없이 영혼을 자극할 것이다. (459)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그 끝을 말해주겠다던 브라이언 그린의 마지막 문장이다. 내면으로,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이 책을 지은 과학자의 결론이다. 그리하여, 이 우주에서 더는 발견될 수 없는 고유하고 특별한 원자의 조합으로서 내가 할 일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읽는 것. 소설을 읽는 것. 올리브를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필멸의 존재인 나 인간이, 예정된 죽음을 이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 방법을 써보려 한다. 다시, 올리브를 읽는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1-05-10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십분 앞서냐 이십분 뒤냐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은 올리브의 말대로 the truth 지요. 다시, 올리브가 참 좋습니다, 단발머리님. 노년의 올리브가 참 좋아요.

단발머리 2021-05-13 07:43   좋아요 0 | URL
전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지 않았잖아요 ㅎㅎㅎ 아시잖아요. 저는 더 젊은 올리브도 기대하고 있어요. 어떤 올리브가 더 좋을지, 그걸 또 판단하고 싶어집니다. 헤헤.

mini74 2021-05-10 2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끔 올리브를 꺼내서 읽을 때가 있어요 어떤 부분이 나와도 별 상관없이 다시 맘이 따뜻해져서 책을 덮곤 헙니다. 단발머리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어디든 펼쳐 들고 싶네요 *^^*저 커피우유도 탐나는군요 ㅎㅎ

단발머리 2021-05-13 07:44   좋아요 1 | URL
전 <버지스 형제> 읽고 이번에 두 번째 스트라우트를 읽는 건데요. 너무 좋으네요. 두 번째 읽어도 좋아서 저도 미니님처럼 가끔씩 꺼내 읽을 것 같아요. 커피우유는 아롱이 스탈입니다. 제가 뺏어먹는 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5-1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이 애정하는 작가. 정희진 그리고 유시민. 저랑 똑같네용!ㅎㅎ

단발머리 2021-05-13 07:46   좋아요 1 | URL
에 이어서 좋아하는 작가 이름대기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샬롯 브론테, 마거릿 애트우드, 대프니 듀 모리에랑 최은영이요. 툐툐님 이어가세요~~~~~~~

붕붕툐툐 2021-05-13 23:11   좋아요 0 | URL
우왕~ 최은영님만 빼고는 잘 접해보지 않은 작가들이네요~ 분발하겠습니다. 저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슈테판 츠바이크, 줌파 라히리, 박경리욤!ㅎㅎ

단발머리 2021-05-14 10:40   좋아요 1 | URL
그럼 저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츠바이크, 줌파 라히리, 박경리 받고 나쓰메 소세키, 필립 로스, 아룬다티 로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리고 정세랑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5-14 23:18   좋아요 0 | URL
ㅋㅋ아까 리뷰보고 정세랑도 여기 들겠다 했는데 역시네영! 책 좀 더 읽고 올게요!(엄마 젖 더 먹고 와라 이런 분위기~ㅋㅋ)

수이 2021-05-10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깨 스틱에 눈독 들이면서 앤드 오브 타임이라구요? 하고 적어놓아요. 이탈리아에 가게 된다면 말이죠, 저는 그 옮기신 문장 안에 있는 내면이란 것에 조금 더 다가가고 싶어요. 차마 제가 가진 모든 틀들을 가볍게 손짓 털듯 버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저는 그 안으로 더 성큼성큼 겁도 없이 내딛고 싶어요. 그래서 세상 끝간데 없이 다정해지고 싶어요. 20분 먼저 앞서가는 이들에게 나보다 20분 더 늦게 올 이들에게 끝간데 없이 다정해진다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2021-05-13 07:51   좋아요 1 | URL
참깨 스틱 1+1 이라서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못 먹었습니다. 슬픈 일이죠. ㅎㅎㅎㅎ 수연님은 내면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성큼성큼 걸어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그런 모습을, 옆에서 자주 보았거든요. 끝간데 없이 다정해지고 싶지 않아도 돼요. 이미 그런 사람입니다. 세상 끝간데 없이 다정하십니다, 수연님은^^

유부만두 2021-05-13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깨스틱 품절이래서 슬픈 아침입니다. 더해서 ‘다시 올리브‘ 아직 안 읽은 사람이라 슬프고요. 책은 있는데요.

단발머리 2021-05-13 11:44   좋아요 1 | URL
참깨스틱 품절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시 올리브‘ 아직 안 읽으신 건 축하할 일 같아요.
놀라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부만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