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클의 소년들/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반납 인생은 반납일을 기준으로 돈다. 까치까치 설날 보내고 우리우리 설날 맞이하고 보니, 반납 기한이 이틀밖에 남지 않아 서둘러 읽었다. 이 책을 이렇게 떠나보내고 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주인공 엘우드가 용기를 내어 인종차별에 반대 시위에 나섰을 때, 증오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혹은 모른 척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가까이 지낼 때, 그들은 다정한 사람이고 친절한 사람이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고 상식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인데, 흑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단체 행동에 나설 때, 그들은 분노에 휩싸인다. 원래부터 자신의 소유였던 무엇인가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며 억울해한다. 백인들의 분노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분노는 익숙했다. 동등하지 않다고 여겨왔던 상대가 감히 ‘동등해지겠다’고 했을 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대상으로만 취급되던 상대가 감히 ‘주체’가 되겠다고 말할 때 그들 속에서 일어나는 동요. 나무처럼 고정되어 있다고 여겨졌던 상대가 ‘떠나겠다’고 말할 때 그들이 경험하는 당황스러움.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장면이 분명하다.
반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다.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 잘 모르지만, 이러한 방식의 추적과 달리기, 그리고 반전에 난 적잖이 놀라고 감탄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더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아닌 산문임에도, 기묘한 생략과 서술의 최소와 최대치를 넘나드는 멀리뛰기로 긴박함과 재미를 그대로 살려냈다는 점에서, 100점 만점에 96점 혹은 97점을 주고 싶다. 니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마쳤다. 흐뭇하다.
2. What I know for sure/ 타이탄의 도구들/ 페미니즘의 도전
알라딘 이웃이 읽었다 하시기에 따라 읽었다. 오프라 윈프리다. 기쁨, 교감, 가능성 등의 주제에 대해 오프라 윈프리가 ‘확신’하는 것들을 동생에게 하듯, 자녀에게 하듯, 손녀에게 하듯 차분히 말하는 에세이집이다. 나는 ‘감사’가 좋았다. 절망에 빠진 윈프리가 마야 안젤루(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마야 안젤루)에게 전화했을 때, 마야의 대답. 제 상황을 잘 모르셔서 그래요, 오프라의 울먹임에 대한 마야의 대답.
"You‘re saying thank-you," Maya said, "because your faith is so strong that you don‘t doubt that whatever the problem, you‘ll get through it. You‘re saying thank-you because you know that even in the eye of the storm, God has put a rainbow in the clouds. You‘re saying thank-you because you know there‘s no problem created that can compare to the Creator of all things. Say thank-you!"
So I did—and still do. (79)
기독교에서 ‘감사’는 무척 중요한 모토다. 명시적으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이 있고, 구체적으로는 기독교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서구 사회에서는 ‘감사’가 ‘성공’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테면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도 ‘감사 일기’ 혹은 ‘감사한 일 3가지 이상을 적어보는 아침 일기’를 타이탄의 ‘도구’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를 떠올릴 때면, 늘 정희진 선생님의 글이 생각난다. 여성주의자의 감사라니. 『페미니즘의 도전』, 2013년 개정증보판 머리말 중 일부다.
여성의 피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열악한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사회에 고마운 마음을 지니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모든 어려움을 돌파하는 데 여성주의 인식만큼 중요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 처지가 어떻든 간에, ‘지금, 여기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양보의 결과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다. 그래도 나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방해하지는 않는 사람들에게, 단 한사람일지도 나를 격려하는 사람에게, 그래도 변화한 ‘성 평등’의 현실 앞에, 이 체제에서도 세상과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 수많은 성실한 사람들에게, 육체적, 심리적 질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지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6쪽)
내 삶에 대한 책임을 나 혼자 오롯이 질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성의 없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를 외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절망의 순간에 관조적인 태도와 우아한 목소리로 ‘지금 너의 상황은 어쩔 수 없을 테니, 결국 네 인생은 어쩔 수 없어. 답이 없어’라는 대답 또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라면, 감사하는 쪽으로 간다. 감사하는 쪽으로. 힐러리 쪽으로. 정희진 쪽으로.
3. 하이 윈도 / 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두 번째 소설. 잘 따라가다가 잠시 길을 잃었고 그렇다고 종이 꺼내 등장인물 이름과 사건 정리할 수도 없어서, 미행하고 미행을 따돌리고 뛰고 달리는 필립 말로를 먼 발치에서 따라 다녔다. 신경증 환자를 세심하게 돌봐주는 말로에게 감동했다. 직업 윤리를 지키면서도 위험에서 벗어나고, 피해자를 도와주면서도 자신의 일을 계속해간다는 점에서 그는 유능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다음 책은 『안녕 내 사랑』. 말로의 말은, 사소한 말솜씨가 아니다. 그에게는 철학이 있다. 그만의 철학. 말로의 철학.
“ ……. 린다는 달리 쓸 데가 없더라도 단지 분풀이로 그런 일을 저지를 애예요. 당신도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지 알겠지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죠. 우리나 다를 바 없이.” (24쪽)
4. 한나 아렌트와 유대인 문제
저자 리처드 J. 번스타인은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 문제’가 주요한 축을 담당한다고 전제한다. 자신이 유대인임을 의식하지 못했던 아렌트가 반유대주의에 의해 유대인으로 ‘바뀌었다’(84쪽)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렌트는 유럽에 팽배한 반유대주의에 대해 유대인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아렌트의 일관된 주장은 “유대인이라는 ‘불명예’로부터 탈출하는 길은 하나뿐이고, 그것은 유대 민족 전체가 명예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아렌트에게 이 투쟁은 유대 민족이 유대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위한 정치적 투쟁을 의미했다. (87쪽)
아렌트는 유대인 ‘정치체’로는 시온주의자들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후에는 그들과 결별했지만 아주 오랜 기간 그들과 함께 일했다. 아렌트는 유대 민족이 ‘정치적인 결사체’로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대인 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95쪽). 유대인 정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민족인 유대인이 스스럼없이 다른 민족들에게 ‘동화’되려 했을 때, 반유대주의에 스스로 굴종했을 때, 유대인의 정치적 권리를 위해 싸우려 하지 않았을 때, 희생양이 되었을 때, 피해자가 되었을 때, 그들의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아렌트가 반유대주의의 ‘속죄양 이론’과 ‘영원한 반유대주의’에 반대한 이유는, 두 이론 모두 유대 민족이 그들이 속한 구체적인 상황 속에 대응했던 특정한 역사적 방식에 대해 유대인 ‘책임의 몫’에 정직하게 대면하지 못했기(99쪽) 때문이다. 유대인의 정치적 책임. 동족인 유대인들이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혹은 행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고찰은, 유대인들로서는 불편한 측면이다.
유대인에 대한 인종주의자들의 적대감은, 신이 선택한 자, 신의 섭리에 의해 성공이 허락된 자가 정말 자기들이 아니라 유대인일지 모른다는 미신적인 견해로부터 출현했다. 초라한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의 최종 승리자로 결국 등장하게 된다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장을 받았다는 한 민족에 대한 두려움 섞인 정신 박약적 원한이라는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전체주의의 기원』 3판, 242쪽) <118쪽>
유대인들이 인종적 이데올로기에 중심에 설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선택받음’에 대한 유대인의 확신과 그로 인한 질투와 원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기한 점이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질투했다는 건, 선택받았다고 빡빡 우기는 유대인들의 ‘말’을, 우리는 특별한 민족이라는 유대인들의 ‘말’을, 아닌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말을 믿으면서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다는 건데. 유럽 사람들 정말 그랬나. 조금만 더 읽어보자.
체육복, 교복 모두 찾아 놓았고, 와이셔츠 7개 다림질했고, 부침가루 없어서 감자전분 넣어서 김치 부침개 만들었다. 개학 준비 완료. 제대로 된 개학을 하루 앞둔 역사적인 이 날. 나의 리딩 리스트는 완벽하나니.
버지니아 울프 / 한나 아렌트 / 시몬 드 보부아르 / 박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