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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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자전적 이야기이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아버지, 그의 부재와 그가 없는 생활에 대한 기록이다. 출소한 후에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어머니가 짊어져야 했던 삶의 고단함, 외로움 그리고 가난에 대한 이야기다.

 

다장르, 다매체, 혼합 언어 텍스트라는 김혜순 시인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민주화 운동의 여러 기록을 그녀의 문장과 함께 나란히 품고 있다. 실제 책이 되어가던 중, 원고를 받아본 소설가 한강은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이 책은 에세이보다 소설로 이름 붙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에세이를 초과하는 것들이 들어 있어서요. 그래서 전화했어요. (293)

 

 

읽는 내내 힘들었다. 대통령을 마음껏 욕해도 되는 이 시대, ‘민주화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피와 땀과 눈물과 희생을 다 잊어버린 이 세대에, 그의 아버지가 겪었을 고초와 고통을 엿보는 일이 힘들었다. 나 하나 고생하는 것은 괜찮지만, 나의 신념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하는 것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슬펐고, 무능한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고, 남보다 더 서먹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촘촘히 쌓여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읽는 일이 쉽지 않을 때는 노트를 꺼내 한 장을 넘기고 빈 종이 맨 위에 이렇게 쓰곤 했다. 말하기를 통해 그녀의 고통은 극복될 수 있는가. 그녀의 고통을 지우는 방법은 토해내는 것인가.

 

간혹 글쓰기 책에서 글쓰기의 효용혹은 글쓰기의 효과에 대해 언급할 때가 있다. 해방으로써의 글쓰기, 자유롭게 하는 글쓰기, 자신의 힘과 목소리를 찾아오는 과정으로서의 글쓰기. 나는 글쓰기가 가진 힘에 대해서는 긍정하지만, 고백의 괴로움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억을 재구성하고, 편집하고, 가공하고, 과거를 현실로 복원하는 과정의 고통이, 가슴에 품은 외로움 혹은 서러움보다 더 큰 것이라 혼자 가늠하고는 했다.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예단하는 것 자체가 몰지각한 일일 수 있겠지만, 나는 프리모 레비가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쓰지 않았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더 나은 사람들이 죽고, 더 못 한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생존자로서의 죄책감과 과거를 복기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기억한다는 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슬픔을 어루만진다는 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고백인가.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극복인가. 나는 노트에 그 문장들을 적었다.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고백인가.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극복인가. 답은 <작가의 말>에 있었다.

 


나의 이야기는 나의 삶이기도 했으므로, 나는 나의 삶을 외면하면서, 가슴속 응어리 같은 것이 까닭 없이 왈칵 쏟아지려 하는 때에도 슬픔을 냉소하면서, 멀어져가는 나의 존재를 묵묵히 일별하며 허깨비처럼 지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삶은 그런 거라고 자신을 타이르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안의 누군가가 그러한 삶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가자. 그곳으로. 그 사람은 내게 진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왜 그곳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진주행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결제하고 낯선 도시로 향했다. (279, 작가의 말)

 

 


나의 한글 공부와 관련이 있는 이 세상 유일한 사람인 엄마는 내게 한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처럼 나도, 내가 누구에게서 어떻게 한글을 배웠는지 모른다. 어떤 힘,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도와서, 나는 한글을 읽게 되었고 알게 되었고 쓰게 되었다. 장혜령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를 도왔던 그 미지의 힘을 생각했다. 그녀의 아픔과 고통과 외로움이, 그녀의 말과 목소리와 외침이 들려왔다. 내가 아는 말, 내가 이해하는 언어로 들려왔다.

 


나에 대해 쓴다고 해서 나의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나의 이야기는 당신을 향해 쓰이고, 당신에게 가닿음으로써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제 그것을 알 것 같다. (294)

 


그녀의 이야기가 나를 위해 쓰였고 나에게로 와서 비로소 그녀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말해줘서, 멈추지 않아 줘서 그리고 이 소설을 써줘서 고맙다. 그녀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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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2-03 1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멈추지 않고 계속 읽으시는 당신, 고맙고 (좀 얄밉습니다)

단발머리 2021-02-03 19:44   좋아요 1 | URL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주아주 많이요😘

2021-02-03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3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3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3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2-03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꼭 읽어줘야 하는데,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함정이에요..ㅠㅠ kbs라디오 문학관에서 정지아님의 <검은방>을 듣는 데도 몇 번을 끄고 싶었다는..ㅠㅠ

단발머리 2021-02-03 20:17   좋아요 2 | URL
전 진짜 읽기 힘든 작가가 한강이거든요. 근데 이 책 작가가 한강에게서 수업들었더라구요. 정지아님의 <검은방>은 처음 들어요.
붕붕툐툐님 못 들으시면 저도 못 들을 듯 해요 ㅠㅠ

붕붕툐툐 2021-02-03 20:24   좋아요 1 | URL
오~ 분위기가 한강 작가님이랑 비슷한가요? 그냥 내가 이리 편히 사는게 누군가 피흘린 희생 덕분인데, 난 평소에 암 생각없이 살았다는 부채감과 미안함 같은 거죠.. 근데 그 마저도 외면하고 싶어하니, 사람이 참..ㅠㅠ

단발머리 2021-02-04 16:58   좋아요 1 | URL
진지한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전 한강님 작품은 <채식주의자> 밖에 안 읽어봐서요. 저의 짐작일 뿐이지만요^^

2021-02-03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4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1-02-04 0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고향이 전라도인데, 중학교 때 그 당시 광주에서 학교다니셨던 선생님들이 본인이 겪었던 이야기를 계속계속 이야기 하셨어요....끊임없이.....이 작가와 비슷한 이유때문에 그렇게 하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발머리 2021-02-04 17:06   좋아요 1 | URL
han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가 가졌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광주분들이 감당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저희는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만 엿볼수 있었는데 말이지요ㅠㅠ 그 선생님께서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이었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ㅠㅠ

얄라알라 2021-02-04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an님 이야기하시니, 저도 중학교 때, 윤리(도덕이었나?) 선생님께서 수업은 조금 하시고, 베트남 참전 이야기, 차마 묘사하기 어려운 죽음의 과정 이야기를 자꾸자꾸 하셔서, 그 분 얼굴 체구, 음성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어요. 너무 큰 고통은 발화해도 뽑아내려해도, 안 지워지시는 거겠죠? 어른이 되고 나니, 조금 이해되지만 그 땐 괴기스러웠어요

단발머리 2021-02-04 17:15   좋아요 1 | URL
아.. 그 선생님도 트라우마가 있으셨던 걸까요? 사실 학생들은 그냥 듣는 입장일 수 밖에 없는데 ㅠㅠ 듣기만 하는 입장에서는 힘들수도 있었겠어요.

얄라알라 2021-02-04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로 그랬어요. 슬래시 영화(?)라 하나요.....그런 묘사를 어린아이들에게 왜 하셨을까요?......

단발머리 2021-02-04 17:24   좋아요 1 | URL
어머나, 그건 좀 무섭네요 ㅠㅠ 어린아이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