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적인 차원에서 이 세계관(성리학적 세계관)은 여성에게 안을, 남성에게 밖을 할당한다. 그러면서 여성이 집 밖을 마음대로 나다니는 것을 금기시한다. 하지만 여성의 자리가 집 안이라는 말이 곧 집이 여성에게 속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은 공적으로 성원권이 없기 때문에 사적인 공간을 가질 수도 없다. 다만 남성의 사적 공간인 집에 그의 소유물의 일부로서 속해 있을 뿐이다. ‘삼종지도’와 호주제(성균관 유생들의 격렬한 반발 속에서 2005년에야 폐지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은 안/밖의 구별이 결코 대칭적이지 않으며, ‘집 안에 있다’는 것은 곧 ‘남자의 지배 아래 있다’는 뜻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이 이데올로기적 구별의 핵심적 기능은 여자가 자기 집을 갖는 것 –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과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것 – 을 막는 데 있다. (『사람, 장소, 환대』, 75쪽)
여자는 집안일, 남자는 바깥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부인은 ‘안사람’ 남편은 ‘바깥 사람, 양반’이라는 호칭이 만연하다. 이렇게 무심히 쓰고 있는 일상용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용어가 담고 있는 가치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64쪽)
여성이 공공 영역에서 배제된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작업에 자신들을 포함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또한 여성들이 정치적인 직무를 맡을 수 있도록 장려하면서 해당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부서를 창립 당시 설치하였습니다. (『초보자를 위한 페미니즘』, 143쪽)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와 『초보자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었고, 『사람, 장소, 환대』를 읽는다.
페미니즘에서는 흔한 이야기들, 여자=안, 남자=밖의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상용어들이 여성에게는 억압으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장소’의 개념을 통해 사회학자에게서 듣게 되니 느낌이 각별하다. 밖을 나다니는 여성에 대한 혐오는, 그녀가 직업을 갖고 있느냐, 갖고 있지 않느냐에 상관하지 않지만, 계약관계에 의한 사회적 일을 하고 있지 않는 나같은 사람은 다른 차원의 위축감을 느낀다. 경력이라는 것도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경단녀라 부르기도 뭣하지만, ‘그래도 좋겠다’, ‘부럽다, 쩜쩜쩜’ 같은 말을 들을 때면 악의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도, 마음이 좀 그렇다.
『여성성의 신화』를 마무리하고 베티 프리단은 학교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따기로 마음먹는다.(642쪽) 자원봉사와 어머니회 활동 같은 부차적인 일들을 통해서는 여성 스스로가 원하는 사회 내 지위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며 여성들에게 대학으로 돌아가라고 했던 자신의 제안을 실천한 셈이다.
신학, 법학, 의학은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성의 진출에 소극적이었고, 정확히 말하자면 절대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신학, 법학, 의학을 포함해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가로서 인지되기 위해서는 ‘박사’ 학위가 필수 조건이다. 박사는 자신이 연구했던 지극히 협소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일단 ‘박사’, ‘닥터’가 되고 나면 그녀/그의 사회적 발언은 다른 무게를 획득한다. 물론 여성은 ‘박사’임에도 무시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지만 말이다.
2017년 한국에서 여성의 공무원시험 합격 비율은 46.5퍼센트이나, 3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 가운데 여성은 6.5퍼센트에 불과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2018년 2월 17일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6년째 꼴찌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96쪽)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해 남성과의 정치적 평등을 이룩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의 한계에 대해서 모두들 한 마디씩 보태기에 바쁘지만, 그 한계와 제한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페미니즘조차 아직 그 실현이 요원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 다른 김영란, 또 다른 강경화, 또 다른 추미애, 또 다른 심상정, 또 다른 김현미, 또 다른 진선미, 또 다른 김진애, 또 다른 이수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한 다스가 필요한 또 다른 이재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