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와 그의 형제자매들은 공교육을 불신하는 부모의 신념 때문에 16살 혹은 17살까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채로 자랐다. 사람이 생활하며 겪을 수 있는 일들 중 많은 것들을 그의 가족은 ‘스스로’ 해결하며 살았다. 더 이상의 배경 설명은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의 흥미를 빼앗을 수 있어 하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 바로 이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를 이 책을 읽으며 확인하게 된다. 내가 옳다는 생각, 내 말이 맞다는 생각, 잘 모르는 너는 내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는 생각.
실제로는 저자의 부모보다는 저자의 나이와 가까운 세대이지만, 나는 부모라서, 엄마라서 ‘부모’의 자리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어떤 부모였지를 자주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이 어떠했는지를 자꾸 생각했고, 그래서 지금 내가 현재의 ‘이런’ 부모가 되었는가 하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데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태어나보니 내 딸아이는 내가 엄마인 거고, 태어나보니 내 아들은 남편을 아빠라 부르게 된 거다. 우리 엄마가 내 엄마라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내 엄마가 착한 엄마라서, 희생적인 엄마라서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았다. 하지만 내 아이들도 그럴까. 내 아이들도 내가 엄마라서 좋을까, 행복할까.
저자의 아버지가 특별한 종교적, 정신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 어느 시점이던지 부모는 자녀에게 ‘절대성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대로 바라본다. 세상에 대한 부모의 ‘정의’를 암기한다. 부모의 예언이 이루어진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이 가정이 특별했던 건, 이들이 폐쇄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고, 그 생활이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소설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책이다. 손에서 뗄 수 없어 아이들 봉사활동을 따라갈 때도, 마트에 나갈 때도 한 쪽이라도 읽겠다고 들고 나갔다. 꿈만 같던 시간들이 다 지나가 버려, 나는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