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반격은 전 분야를 총망라해 이루어졌다. TV 방송에서는 ‘가정의 천사’와 ‘미혼의 사악한 마녀’를 악랄하게 비교했고, 미디어에서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통계가 잘못된 방식으로 재생산되었다. 많은 영화가 여성을 자신의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는 주인공보다는 남자주인공의 상대역, 살인 및 강간의 피해자로서만 그려냈고,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아예 찾기 어려웠다. 패션계 최고의 남자 디자이너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하지만 자신들이 입히고 싶은 여성의 옷을 유행시키려 노력했고, 미용산업의 발전으로 미에 대한 강박은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고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에 진출하려는 여성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욕당했고,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아이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음에도 ‘일하려 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가장 큰 전쟁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났다.
출산의 자유는 언제나 모든 일련의 페미니즘 의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주제였고, 반격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거센 공격의 대상이었다. 20세기 초에 페미니즘이 부활했을 때 마거릿 생어가 이끈 산아제한 운동은 계급과 인종 구분을 넘어서 여성운동의 주제 중에서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606쪽)
미국 대법원이 여성의 생명과 건강이 태아의 생명과 건강보다 항상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판결했음에도 (어차피) 죽게 될 임산부의 생명과 태아의 생존권 중 태아의 안전만을 고려해 결국 임산부와 태아 모두를 죽게 만들었던 앤절라 카더Angela Carder의 예는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며칠 전, 『82년생 김지영』이 100만부를 돌파했다는 기사를 봤다. 2007년 김훈의 『칼의 노래』와 2009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만의 일이라고 하니 초대형 베스트셀러의 등장이라기 보다는 특별한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페미니즘에 관한 모든 댓글은 페미니즘을 정당화한다”는 헬렌 루이스(영국 저널리스트)의 말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도 바로 적용가능한데, 『82년생 김지영』의 100만부 돌파 기사 밑의 댓글이 바로 그 증거다.
어떻게 해야할까. 여성에 대한 공격,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 여성 신체에 대한 범죄, 그런 범죄의 일상화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투표’와 ‘소비’를 통해 이러한 반격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내 성차별과 성희롱에 대해 어느 정당이 더 관대한지, 어느 정당이 더 진지한 자세를 취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신체에 대한 명백한 범죄 행위를 방조하는 정치세력이 누구인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입장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 정치 세력에게는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 내 성희롱 신고 시 여성이 받는 불이익을 어떤 방식으로 방지하겠습니까?”, “유급 출산 휴가와 육아 휴가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기업에는 어떤 조치를 취하겠습니까?”, “몰래 카메라 범죄의 유통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1980년대의 여성들은 전체 인구에서, 대학 교정에서, 투표장에서, 서점에서, 뉴스 구독자 중에서, 텔레비전 시정차 중에서 다수였다. 이들은 사무직 노동자의 거의 절반에 달했고 가게에서 소비재 구매액의 80퍼센트 가까이를 지출했다. 이들은 전국 선거와 주 선거에서 전례 없는 젠더 우위를 만끽했고 이는 점점 확대되었다. 1980년대 말이 되자 민주당 여성 후보자는 낙태권에 찬성한다고 선언하기만 해도 여성 유권자 덕분에 12~20퍼센트포인트 더 앞서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 여성들은 자신들의 가공할 만한 존재감이 얼마나 묵직한지, 얼마나 역동적인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662쪽)
가능한 모든 정치 수단을 동원하되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인 ‘투표’를 통해 여성의 권리가 확장되는 일에 참여하고, 자본주의의 냉정한 자기장 속에서 이루어질 밖에 없다 할지라도 현명하고 단합된 ‘소비’ 행위를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갈 길은 멀고, 또 험한 길이라 할지라도.
여성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굴복하지 않았고,
그리고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