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베스트셀러에 대한 이런 양가적 감정이 사실 좀 부끄럽다. 나는, 책을 좀 폭넓게 다양하게 깊이있게 읽고 싶다. 기념비가 될 만한 책, 의미 있는 책,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책을 찾아 읽고 싶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마음으로 베스트셀러도 읽고 싶다. 이름만으로 선택하게 되는 작가, 세계 각지에서 번역, 출판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책의 내용이 또 그렇게나 궁금하다. 베스트셀러는 혹은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았으면 하는데, 궁금한 마음을 참을 수 없어 또 그렇게 책을 사고 그렇게 책을 펼친다.
재미로 하자면 『사피엔스』에는 못 미치고, 충격으로 하자면 『호모 데우스』보다 못 하다. AI의 등장으로 인해 로봇이 인간 노동의 대부분을 감당하게 될 미래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19세기의 마차 몰이꾼이 아닌 말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60쪽) 암울한 예언을 뒤로 하고, 미래에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다면 철학에 운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106쪽)이라는 획기적인 충고도 뒤로 한다.
제일 인상적인 단락은 역시나 책을 읽기 전부터 궁금했던 ‘전격 공개 : 유발 하라리, 나는 이렇게 명상한다’ 부분이었다.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인간은 만들어진 이야기, 허구의 세계에서 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던 유발 하라리는, <21 명상 : 오직 관찰하라>에서 2000년 4월, 친구의 추천으로 가게 되었던 10일 과정의 비파사나 수련회에서 일어난 일을 말한다. 명상 그리고 숨쉬기. 유발 하라리는 그 열흘 간 자신의 감각을 관찰하면서 자신과 인간 일반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그때까지 살면서 배운 것보다 더 많았다고 말한다.(472쪽)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고통의 가장 깊은 원천은 나 자신의 정신 패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뭔가를 바라는데 그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 내 정신은 고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반응한다. 고통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조건이 아니다. 나 자신의 정신이 일으키는 정신적 반응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더한 고통의 발생을 그치는 첫 걸음이다. (472쪽)
정신과 뇌는 다른 것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생각에 동의한다. 명상을 통한 자기 관찰도 마찬가지다. 다만 눈을 감고 코를 통해 숨이 드나드는 것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 얻는다는 그 ‘깨달음’은 문자화될 수 없는지 궁금하다. 일년에 한두 달 명상 수련 휴가를 떠날 수 없는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그 깨달음을 좀체 얻을 수 없는 건지, 아니면 탁월한 이야기꾼 유발 하라리의 다음 책 <명상, 이렇게 하면 된다>를 통해서 그 깨달음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을런지, 그게 궁금하다.
2. 아무튼 방콕
나는 우리가 오래오래 방콕을 좋아하면 좋겠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서로를 잃어버릴 까 봐 두 손을 꼭 붙잡아야 하는 그런 나이가 되더라도 함께 방콕을 여행하면 좋겠다.
그리고 애인도 나와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 (139쪽)
이 책은 여행기를 빙자한 연애담(from syo님)이라는 리뷰를 읽고 나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방콕에 가본적이 없다. 왠지 방콕은 많이 더울 것 같고, 많이 습할 것 같고, 음식은 매울 것 같아 여행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도시 이름이 방콕이어서 그런지도. 나는 평소에도 방콕인데, 여행까지 방콕이고 싶지는 않다. 읽고 나서는 저자의 ‘가성비 갑’이라는 ‘영업용’ 문단에 넘어가 이미 ‘방콕’인데 나 홀로 크게 외치고 말았다.
“그래, 방콕이야! 가자, 방콕!”
3.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이 책의 리뷰를 쓰려하니, 어머, 이 책도 syo님의 추천도서네,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알라딘 공식 빨갱이 syo님의 <마르크스 집중 과외 프로젝트 제1탄 : 원숭이 시리즈 격파> 그 첫번째 책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공산당선언』은 고전이고, 고전에는 항상 추억이 방울방울이어서, 난 이 책을 2002년에 읽었다. 결혼한 직후여서 한참 남편 책을 읽던 때였는데, 이 무시무시한 책이 예상과 달리 아주 얇은 책이었다는 걸 발견하고는 가차없이 ‘출근용 책’으로 지정했다. 그렇게 난 『공산당선언』을 지하철에서 읽었다. 『공산당선언』을 읽는 시간들은 참 행복했지만, 이번에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의 왼쪽이 원문 번역이라 다시 읽어보았더니, 정말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아 (이제는 읽었던 책이 완벽히 새롭게 느껴져도 많이 놀라지 않는 스스로에게 놀라며) '지금 처음 읽는거야'라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천천히 읽었다.
임금을 ‘노동의 가격’이라고 표현하면 자신이 행한 노동의 양만큼 임금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행한 노동의 양보다 적을 수 밖에 없음을, 그리고 바로 그 차액, 즉 착취당한 노동인 ‘잉여가치’에서 자본가의 이윤이 발생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임금은 ‘노동의 가격(가치)’이 될 수 없으며 ‘노동력의 가격(가치)’임을 논증했지요. 우리는 임금을 받아서 생계를 꾸려 다음날 출근해 노동할 수 있는 능력, 즉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 즉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입니다. (83쪽)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 착취를 기반으로 한 운용에 대해서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자본가 이윤의 근간이 되는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에 나의 노동이 포함되기 때문이고, 2019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8,350원(월급으로 환산했을 때 1,745,150원)으로 10.9% 인상되자 기업하기 어렵다고 거품을 무는 기업가와 언론과 정당을 오늘도 내 두 눈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4.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북클럽 <자본> 시리즈 두번째 책이 나왔다고 한다.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을 알아보는 고병권의 특별한 눈을 따라가다보면, 결국에는 마르크스를 읽게 될까.
그런 날이 오게 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