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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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집 중 세상에, 이런 소설도 있었구나 하고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이 있길 바랐다.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제목이나 도입부를 보고 기대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들도 있었고, 좋았던 작품들도 너무 좋아서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어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각각의 장점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각각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짧게나마 적어보려고 한다.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출판사 자소서의 '좋아하는 작가' 란에 좋아하는 한국 작가를 한 명 쓰긴 했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한국 작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단편을 보고 알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는 박상영이다. 작년에 박상영 작가의 단편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읽었을 때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이 단편을 읽고 확신하게 되었다. 


박상영 작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게 만든다. 아무리 비참하고 답답한 현실도 신랄한 유머감각으로 그려내 유쾌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내 답답한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읽으면서 그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게 돼서 오히려 후련하다. 이 단편도 그랬다. 구질구질한 현실의 연애, 현실의 가족 이야기이고, 어느 쪽도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아도 그게 인생이란 걸 알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끝내 이해할 수 없지만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애증'에 공감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그에게서 환멸감을 느끼고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로 인해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 사실이 소름 끼치게 자존심이 상하는"데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로 말미암아 내 어떤 부분은 통째로 바뀌어버린다." 그것을 부인할 수 없고 내 삶을 이뤄온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구질구질해져 버리는 사랑을, 이 작품의 주인공도 작품 밖 현실의 나도 어찌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김희선, 「공의 기원」


독특한 상상과 그것을 역사적 사실과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버리는 능청스러움이 돋보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간략해서 장편소설의 시놉시스 같았다. 인천과 런던, 인도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스케일에 비해 내용물이 부족한 느낌이다. 내용물을 좀 더 채워넣어서 더 긴 이야기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린, 「시간의 궤적」


읽는 내내 비 오는 날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이미 끝난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주 맑은 날에 읽었는데도. 한때는 그토록 소중했던 사람이 멀어져가도 우리는 관계의 끝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함께 빗속을 달렸던 기억은 여전히 우리 마음에 온기를 줄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아무래도 일본 원작보다는 우리의 일상에 더 가까운 한국 리메이크 버전)와 닮았다고 느꼈다. (이 소설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어떤 이유 때문에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대도시의 경쟁 사회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평화로운 일상을 누린다는 점에서. 그저 조용한 일상을 나열한 것인데도 그 일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작품이 받는 비판도 <리틀 포레스트>가 받는 비판과 결이 같다. 주인공이 생계를 해결할 수단을 확실히 마련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는 한, 주인공이 누리는 평화는 잠시 동안의 도피에 불과하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쉬어가는 순간을 그린 작품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잠깐 쉬어가고 나서 생각해 보자. 


정영수, 「우리들」


이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 중 유일하게 어떤 장점과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던 작품이다. 작가 자신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다 손을 놓은 것 같은데, 이 작품이 어떻게 수상을 한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 중에서 권희철 평론가의 평만이 공감된다.  글쓰기의 복잡성을 진술하는 대신, 정은-현수 커플이 겪은 일들과 '나'와 연경이 겪은 일들, 두 갈래의 사건이 어떻게 서로를 자극하면서 새롭게 이해되는지 그 과정을 그렸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정은-현수 커플이 불륜 관계임을 알게 된 뒤에도 '나'가 왜 그렇게까지 그들에게 집착하는지, 어떤 점에서 그들의 관계와 자신과 옛 연인 연경의 관계를 겹쳐보는지 작가와 작품 속 '나'는 알겠지만 독자들은 알 수 없다. 이 소설은 대충 써 놓은 남의 일기장 같다. 자기는 직접 겪었던 일이니 이것저것 빠뜨리고 써도 무슨 소리인지 알지만, 그 사람이 기록하지 않은 것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곳곳에 뚫린 공백으로 남는다. 설명을 안 해주는데 그 일을 겪어보지도 않은 남이 어떻게 아는가. 


김봉곤, 「데이 포 나이트」


박상영 작가의 소설과 김봉곤 작가의 소설을 보면 퀴어 서사도 이성애 서사와 별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구질구질한 현실 연애담이 있는가 하면, 연애의 탈을 쓴 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기도 있다.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이 전자라면 이 소설은 후자다. 낮 장면을 밤 장면으로 탈바꿈하는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던 모습 같은 아름다운 기억도 있었지만, 폭력으로 얼룩진 잔혹한 기억도 같이 따라온다. 그 시절의 아름다움과 잔혹함 모두를 똑바로 바라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 때의 상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시절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상, 「하긴」


풍자되는 대상의 시선으로 작품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채만식의 「치숙」이 떠오른다. 자기 딴에는 자기 입장을 열심히 이야기하는데, 자기 스스로 자신의 추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풍자되는 대상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작품의 묘미는 거기에 있다. 풍자는 유쾌하지만 한때 세상을 바꿔보려고 했던 사람의 훗날이 이렇다는 것은 씁쓸하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변하게 될까. 그래도 주인공이자 화자가 모자르다고 생각했던 딸 보미나래가 사람들의 천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보았다. 나이를 먹어도 주인공처럼 변하지 않고, 늘 보미나래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바보가 아닌, 남들에게 바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누구보다 현명한 바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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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로맹 퓌에르톨라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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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를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원작이 있는 영화니 원작을 미리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도서관에서 원작을 빌려 읽었다. 절판된 책이라 도서관에서 빌릴 수밖에 없었고, 도서관에 간 날 이 책이 제 자리에 꽂혀 있지 않아 사서 분이 서가들을 뒤져 책을 겨우 찾아냈다. 모임을 갖기 전에 가까스로 원작 소설을 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내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케아 옷장'에 '인도 고행자', 거기에 '신기한' '여행'이라니. 제목만 들으면 엉뚱하면서도 독특한 여행기일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스웨덴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엉뚱한 주인공의 별난 모험담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하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창문 넘어...』에 비하면 이야기는 훨씬 빈약하고 구성은 엉성하다. 한국어 번역판 기준으로 『이케아...』(280페이지)가 『창문 넘어...』(512페이지)의 거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굳이 『창문 넘어 ...』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3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은 빈약한 편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단 4개국만 여행하고, 원한을 산 사람들에게 쫓겨다니느라 제대로 된 관광도 하지 못하니, 다채로운 세계 풍경을 기대한 독자라면 아쉬울 것이다. 생각지 못한 아주 사소한 계기들로 인해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도 이 소설은『창문 넘어...』와 닮아 있지만, 『창문 넘어...』가 길고 험난한 코스의 롤러코스터라면 『이케아...』는 짧고 평탄한 코스의 어린이용 롤러코스터 같다. 짧은 만큼 즐길 것도 적다. 


주인공을 인도인으로 설정했으면서도 인도에 대한 작가의 이해가 피상적인 것도 큰 단점이다. 한국어판 제목에서 '인도 고행자'로 번역된 '파키르(fakir)'는 원래 무슬림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인도에서는 의미가 더 넓어져서 힌두교도 고행자들도 '파키르'에 포함된다. 주인공 아자의 고향인 자이푸르는 주민의 대부분이 힌두교도인 지역이기 때문에 아자는 힌두교도 고행자일 가능성이 90퍼센트다. 그런데도 아자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힌두교 신이 아닌 부처를 찾는다. 힌두교에서도 부처를 힌두교의 주요 신인 비슈누 신의 화신 중 하나로 여기긴 하지만, 힌두교도 고행자라면 부처보다는 힌두교 신을 찾았을 것이다.(정작 이 작품 속에서 아자는 딱 한 번 힌두교 신인 시바를 부른다.) 


또 소설 속에서 아자는 인도 안의 어느 작은 왕국 궁정에서 광대로 일하면서 음식을 훔쳐먹다 들킨다. 오른손을 잘릴지, 아이들에게 비행 예방 교육을 할지 선택하라는 왕의 말에 아자는 선생이 되는 쪽을 선택한다. 인도에는 수많은 지방 왕국들이 있었지만 1947년 인도가 독립하고 인도 정부가 세워진 이후 모두 인도 공화국 정부에 흡수됐다. 인도 사법 체계가 아주 훌륭하게 운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방 왕국 군주가 인도 정부의 사법 체계를 무시하고 도둑질을 했다는 이유로 신체를 절단하는 형벌을 집행하는 일은 20세기 초까지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2010년대인데도 이 소설 속 인도는 여전히 신체 절단형을 집행하는 야만적이고 미개한 국가다. 


게다가 아자의 정식 이름인 '아자타샤트루'를 가지고 비슷한 발음의 우스꽝스러운 프랑스어 단어들로 몇 번이나 말장난을 하는데, 전혀 웃기지 않고 인종차별적으로 느껴진다. 작품 속에서 아자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이상한 프랑스어 단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유럽 백인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작가는 국경 담당 경찰로 일하고 있는 사람답게 이민자 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 작품에서도 이민자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단지 가난하고 전쟁이 많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고국을 떠나 떠돌아다녀야 하고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당하는 이민자들에 대한 연민이 이 작품에서 짙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민자들과 같은 이방인 아자와, 그가 자라온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다소 무신경하게 느껴진다. (원작을 읽었던 지인 분은 유럽 안의 또 다른 이방인인 집시들(주인공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택시 운전사 귀스타브로 대표되는)이 희화화된 것도 지적했다.) 이런 작가의 무신경함이 이민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서로 선을 베풀며 살자는 작품의 메시지를 희석시킨다.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알겠고, 작품 자체도 몇 시간 안에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긴 하다. 아마추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쓴 것이니 너그럽게 봐 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출간한 순간부터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이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프로 작가다운 작품을 쓴 작가들도 많다. 선한 마음을 갖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가면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메시지, 마음 편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성 덕분에 36개국에서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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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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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낯선 나라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바로 옆 나라들의 이야기나 가장 흔하게 보고 듣는 영미권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 먼 곳, 더 낯선 곳의 이야기들. 그래서 읽을 소설을 찾다 눈에 띈 것이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였다. 


이 책을 사기 전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를 읽을 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나이지리아의 낯선 자연과 문화, 풍속이었다. 주인공네 집 정원에 피어 있는 온갖 낯선 식물들, 재료부터 낯설어 무슨 맛일지 상상도 안 되는 나이지리아 전통 음식들,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이 치르는 나이지리아 전통 종교의식. 이보어(나이지리아의 주요 언어 중 하나) 단어들이 대화 중간 중간에 번역되지 않은 채로 끼어 있어 낯선 느낌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깊이 없는 이해 없이 낯선 것들의 매력만 즐기는 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이 책에서 깊은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낸 건 낯익은 이야기였다. 주인공들이 겪는 가부장제, 유일신교, 독재정권의 억압은 우리가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다. 왜 지금 여기에서 낯익은 이야기를 찾지 않고 먼 나이지리아에서 낯익은 이야기를 찾느냐고 한다면, 나는 더 넓은 세상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동질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주인공 캄빌리와 오빠 자자는 가부장제, 유일신교, 독재정권이라는 3중의 억압을 겪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그들을 속박하는 것은 가부장제와 유일신교였다. 가부장제와 유일신교의 권위로 아버지가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남들은 부유한데다 정의로운 민주화 투사인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런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두 남매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집안에서 아버지는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며 아내와 자식들에게 자신의 규칙과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는 폭군이다. 아내와 자식들이 자신의 뜻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아버지는 무자비하게 그들을 폭행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아버지의 규율과 통제에 얽매어 있었던 두 남매는 그것이 폭력이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 두 남매가 자신들의 억압적인 상황을 깨닫고 변화하기 시작하게 한 것은 이페오마 고모였다. 이페오마 고모는 국립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지식인이고, 가부장제와 유일신교, 독재정권의 폭력과 억압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자식들이 자신을 거역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와 대조적으로, 이페오마 고모는 항상 자기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행동하게 한다. 이페오마 고모 덕분에 방학 동안 고모 댁에 머물던 캄빌리 남매는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 것을 점차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아버지의 억압과 폭력으로 숨 막히게 만드는 이 소설에서 이페오마 고모는 두 남매뿐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고모 덕분에 변화한 두 남매가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스스로 자유를 찾길 바랐던 내 기대를 저버리고, 이 소설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아버지의 권위에 흠집이 가고 무너지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는 죽고 나서도 두 남매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다. 군사 정권의 원수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지리아의 모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부패와 불의, 억압이 가득한 나이지리아를 떠나 미국에 간 이페오마 고모네 가족도 인종차별과 가난에 시달릴 것이다. 실질적으로 문제들이 해결된 것도 아니고, 캄빌리가 눈에 띄는 성장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두 남매의 마음속에는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지는”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가 주어졌다. 적어도 자유의 씨앗은 둘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 진정한 자유는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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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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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소설을 쓰곤 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일기 대신 소설의 형식으로 쓴다. 일기도 매일 쓰긴 하지만, 일기를 쓸 때보다 좀 더 거리를 두고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와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가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큰 흐름도 잡아놓지 않고, 가끔씩 소설이 쓰고 싶어질 때마다 마음 가는 대로 몇 문단씩 써 놓는다. 나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읽힐 만한 소설은 못 되지만 소설을 쓰는 행위에서도, 써 놓은 소설에서도 위안을 얻는다.


김탁환 작가의 『대소설의 시대』를 읽으면서, 18세기 조선에도 나처럼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을 즐겼던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전체 180권이나 되는 『완월회맹연』등의 대소설이 여성들의 손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고, 김탁환 작가는 그 연구 결과를 토대로 『대소설의 시대』를 썼다고 한다. 조선 후기 여성들이 한글 소설을 즐겨 읽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설을 직접 창작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100권이 넘는 길고 긴 소설이라니. 조선 후기 여성 작가들이 이런 대작을 쓸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김탁환 작가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에 상상을 섞어 ‘임두’라는 필명의 조선 후기 여성 작가를 만들어냈다. 임두는 23년 동안 199권에 이르는 소설 『산해인연록』을 써 왔다. 그녀가 23년 동안 소설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을 좋아했던 혜경궁 홍씨와 의빈 성씨가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후원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녀의 소설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깔끔하게 필사해 주는 궁녀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렇게 대소설을 만드는 여자 뒤에는 소설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연대가 있었다.


그녀들 이전에는 임두가 처음 작가로서 발을 내딛게 해준 여자들의 연대가 있었다. 시부모는 스물네 살의 임두에게 오랜만에 친정에 온 시누이를 위해 소설들을 필사하라고 했다. 임두는 단순히 필사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이 보기에 필요 없는 내용을 빼고 내용을 더 지어서 넣었다, 시어머니는 임두가 더 넣거나 뺀 내용을 보고 임두의 글 쓰는 재능을 알아보았다. 그 이후로 임두는 시댁 여인들의 소설 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소설을 쓰는 즐거움에서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임두 같은 대작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소설을 놓았다 하더라도, 그녀들이 있었기에 임두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소설에 자신들이 겪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담았던 그녀들에 대한 기억이 임두가 대소설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쓸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들과 임두가 그토록 소설을 사랑했던 것은, 그 시절 그녀들이 꿈을 꾸고 욕망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소설뿐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조선의 한 집안 안에 갇혀 지내지만 그녀들은 소설 속에서 광활한 대륙과 천상의 세계, 지하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수백 명의 인물들이 그 안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단지 이야기일 뿐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때로는 살아갈 힘을 준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그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며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꿈을 꾸고 욕망하고 그것을 펼쳐낼 방법이 많아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는 수백 년의 그녀들에게 깊이 공감한다. 내게는 그녀들이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현실과 제약들이 있고, 그런 답답한 현실에서 내가 버틸 수 있게 하고, 꿈꿀 수 있게 하는 건 이야기들을 읽고 쓰는 것이다. 대소설의 시대는 이야기를 만드는 여자들의 시대였고, 그 시대는 끝나지 않고 내 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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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임보일기
이새벽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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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이새벽 작가님의  『고양이 임보일기』를 주문했다. 이새벽 작가님을 알게 된 건 작년 가을이었다.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더 빌릴까 해서 서가들을 둘러보다, 우연히 이새벽 작가님의 『고양이 그림일기』를 발견했다. 작가님이 고양이들과 식물과 함께 한 나날들을 일러스트와 일기로 그려낸 책이었다. 


그 이후로 이새벽 작가님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고양이와 식물을 담은 일러스트와 글을 즐겨 보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님이 새끼 길고양이 다섯 마리를 임시보호하다 입양을 보낸 이야기를  『고양이 임보 일기』라는 책으로 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책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읽고 싶은 책이었지만,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어 출간한 지 세 달이나 지난 지금에야 주문을 했다. 전편인  『고양이 그림일기』도 예전부터 갖고 싶었기 때문에 함께 주문했다. 



4월 9일


주문한 지 하루 만에 책이 도착했다. 『고양이 그림일기』와 비교해 보니 그림체가 확연히 더 아기자기하고 섬세하다. 임시보호했던 다섯 아가나 『고양이 그림일기』 이후로 작가님이 키우고 있는 검은 고양이 베리나 더 작고 올망졸망해서 그런 걸까.  


그런데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그려낸 현실은 만만치 않다. "새끼 고양이가 다섯 마리면 똥도 오줌도 설사도 모두 다섯 배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 뒤의 말을 들으니 더 짠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괜찮다. 괜찮지 않으면 큰일이 날 테니." 아이고, 작가님. 


4월 10일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길고양이들이 겪어야 하는 잔혹한 현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도 아프고 화도 났다. 어미가 잘 키우고 있는 새끼 길고양이들을 도와준다고 거두었다가 결국 어미와 생이별시키고 정작 자기는 책임도 지지 못하는 사람, 데려온 고양이를 책임지지 못하고 강제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게 하는 고양이 공장으로 가게 한 사람. 어설픈 선의 때문에 오히려 고양이들을 더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나도 그런 어설픈 선의와 부족한 지식 때문에 고양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적들이 있었다. 내가 누굴 나무라나 싶다. 



4월 11일


표지에 나온 작가의 말대로 혼자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돌보는 것은 만만치 않다. 나도 높은 곳에서 떨어져 어미와 떨어진 새끼 고양이를 돌보긴 했지만 단 2주 동안만이었고, 사실상 고양이를 주로 돌본 건 집에 계신 엄마였다. 그런데도 먹는 대로 설사를 하고 바닥에 흘리고 다니는 새끼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님은 나와 달리 혼자서, 그것도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 고양이를 돌봐야 한다. 분유와 사료와 설사가 뒤섞인 비린내가 온 집안과 몸에 배이고, 몸 곳곳에는 새끼 고양이들이 만든 상처가 늘어간다. 


아래 컷만 봐도 다섯 아이들을 돌보느라 엉망진창이 된 작가님의 집안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에게 분유 먹이고 배변 시키는 법까지 꼼꼼하게 기록하신 것이 놀랍다. 


4월 12일


작가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양이 그림일기』 의 시점 이후로 '베리'라는 까만 암컷 고양이를 길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베리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자기도 어린데 자기보다 더 어리고 약한 새끼 고양이들을 그루밍해주고, 배변 유도도 해 주고, 화장실 쓰는 법도 가르쳐준다. 작가님이 잠시 맡았었던 또 다른 길고양이 시로에게 얻어터져 가면서도 계속 다가가서 결국은 시로의 마음을 열고. 나야 책과 블로그, 인스타그램의 사진과 일러스트로만 보는 아이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이인 것 같다. 


작가님과 베리, 임보 아기들, 든든한 흰둥이, 상처 받으면서 닫혔던 마음을 열어가는 시로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사랑스럽다. 우울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나와,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도 녹아내린다. 


4월 13일


임보 아기들이 한 명씩 입양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안도감이 들면서도 아쉬워진다. 한 마리씩 입양 갈 때마다 안도하면서도 허전함을 느끼는 작가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베리도 돌보던 아기들이 한 마리씩 사라질 때마다 허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섯 아이들은 모두 좋은 곳에 입양을 갔고,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삼색이의 새 이름 홍시를 마지막으로 다섯 개의 이름을 모두 수집한 날엔 배부르고 행복한 용이 된 기분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 날에는 악몽을 꿀 리 없었다. 용이 고양이를 모두 구했으니까." 이 마지막 문단에서 나도 안도했다. 지금까지 한 마리의 고양이도 구하지 못했던 나는 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모두 구한 용에게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고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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