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의 희로애락 - 아랍문학을 통해 아랍인의 삶을 보다 문명지평 11
김능우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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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있는 아랍 문학 작품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을 때, 『아라비안나이트』를 제외하고는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영어권 문학이나 일본 문학이 서가 몇 개씩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아랍 문학은 겨우 서가 하나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 문화권 사람들의 현실과 꿈, 삶과 가치관, 정서를 모두 담고 있는 것이 문학이기에, 이 두 가지가 아랍 문화권과 우리의 거리가 아직 멀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랍 문학 연구자 김능우 교수의 책 『아랍인의 희로애락』은 우리와는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먼 아랍 사람들의 삶과 정서, 현실이 아랍 문학 작품들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개관하고 있다.


  3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첫 장은 고대와 중세의 문학 작품을 통해 본 아랍인의 삶이다. 근대 이전의 문학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이슬람교가 성립되고 아랍 전역에 퍼져가기 이전인 고대, 이슬람교가 성립되고 아랍 전역에 퍼져나간 이후인 중세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함께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설명과 실제 문학 작품들의 일부가 함께 실려 있어, 때로는 문학 작품이 역사책보다 더 생생히 당대 사람들이 겪은 역사를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몽골이 1258년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함락시키고 왕과 왕족들, 백성들을 학살했던 사건은 세계사 책에 몇 줄 적혀 있지만, 그때 아랍 사람들이 겪었던 충격과 슬픔, 고통은 시인들의 시 구절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랍 시인들의 시에 담긴 참혹한 그때의 이미지들(학살당한 사람들의 피로 붉게 물든 티그리스 강물과 베일이 벗겨진 채 몽골군에게 끌려가는 여인들, 길거리에서 노예로 팔려가는 귀족 가문의 아이들)은, 바그다드 함락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 전체를 뒤흔들고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재앙이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두 번째 장은 아랍에 전해져 오는 민담을 통해 아랍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 희로애락을 살펴보고 있다. 이 장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랍 세계 안에서 서로 다른 민족, 종교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다. 저자는 아랍 세계와 아랍인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지만, 아랍 세계 안에서의 소수자인 이슬람교 외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유대인, 콥트인), 소수 민족(베르베르인)의 민담도 함께 전하면서 그들의 시각에서 본 아랍인들의 모습도 전하고 있다. 종교가 다른 백성들에게 관용적인 정책을 베푼 군주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정책을 펼친 군주들도 있었다. 소수자들의 민담에서는 아랍 사회의 다수인 무슬림 아랍인이 악역으로 나오는데, 여기서 아랍 문화권 안에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공존했고 오랜 세월 동안 갈등을 겪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장에서는 현대 문학 작품 속 아랍인들의 현실과 그에 대응하는 태도를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 다루는 다섯 편의 작품 중 네 편이 한국에 이미 번역 출간된 작품이고, 모두 저자가 번역한 작품이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던 한 작품 「전직(前職) 장관 나리의 죽음」은 저자가 직접 전문을 번역해 이 책에 실었다. 여기에서 저자가 아랍 문학 작품을 한국에 번역하고 소개하는 데 힘써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된 현대 아랍 문학 작품 중 세 편이 아랍 여성 작가들의 작품인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앞의 두 장에서 아랍 여성은 문학 작품의 주체로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남성 작가들이 찬탄하는 대상, 영감을 일으키는 소재로만 등장하는 반면 이 장에서는 아랍 여성은 비로소 문학 작품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낸다. 현대에 들어 아랍 세계에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증가한 결과다. 아랍의 여성 작가들은 신변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가부장제의 권위에 도전하고 아랍 여성들이 겪는 억압적인 현실을 폭로하며 그녀들의 삶과 희로애락, 꿈과 소망, 욕망을 이야기한다. 이런 점에서 3장은 문학을 통해 아랍 세계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장이다.


  각 챕터가 책의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 하나의 논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논문집 형태이지만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의 난이도는 평이한 편이다. 각 글의 주제 하나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지만, 아랍 문학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하기 위해 대략적인 내용만 간략히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쿠란』이나 『아라비안나이트』외에 더 풍성하고 다양한 아랍 문학의 세계가 있고, 그 안에 아랍인들의 삶과 현실,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한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문학 작품 중 한국에 번역 출간된 것들을 찾아서 직접 읽어본다면(이 책에서는 그 작품들을 분석하기에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를 당하고 나서 책을 읽게 되겠지만), 먼 아랍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울고 웃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그들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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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21-12-09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바스티안 2021-12-09 18: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잭와일드 2021-12-0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바스티안 2021-12-09 22: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