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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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집 중 세상에, 이런 소설도 있었구나 하고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이 있길 바랐다.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제목이나 도입부를 보고 기대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들도 있었고, 좋았던 작품들도 너무 좋아서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어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각각의 장점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각각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짧게나마 적어보려고 한다.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출판사 자소서의 '좋아하는 작가' 란에 좋아하는 한국 작가를 한 명 쓰긴 했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한국 작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단편을 보고 알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는 박상영이다. 작년에 박상영 작가의 단편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읽었을 때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이 단편을 읽고 확신하게 되었다. 


박상영 작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게 만든다. 아무리 비참하고 답답한 현실도 신랄한 유머감각으로 그려내 유쾌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내 답답한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읽으면서 그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게 돼서 오히려 후련하다. 이 단편도 그랬다. 구질구질한 현실의 연애, 현실의 가족 이야기이고, 어느 쪽도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아도 그게 인생이란 걸 알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끝내 이해할 수 없지만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애증'에 공감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그에게서 환멸감을 느끼고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로 인해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 사실이 소름 끼치게 자존심이 상하는"데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로 말미암아 내 어떤 부분은 통째로 바뀌어버린다." 그것을 부인할 수 없고 내 삶을 이뤄온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구질구질해져 버리는 사랑을, 이 작품의 주인공도 작품 밖 현실의 나도 어찌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김희선, 「공의 기원」


독특한 상상과 그것을 역사적 사실과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버리는 능청스러움이 돋보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간략해서 장편소설의 시놉시스 같았다. 인천과 런던, 인도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스케일에 비해 내용물이 부족한 느낌이다. 내용물을 좀 더 채워넣어서 더 긴 이야기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린, 「시간의 궤적」


읽는 내내 비 오는 날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이미 끝난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주 맑은 날에 읽었는데도. 한때는 그토록 소중했던 사람이 멀어져가도 우리는 관계의 끝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함께 빗속을 달렸던 기억은 여전히 우리 마음에 온기를 줄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아무래도 일본 원작보다는 우리의 일상에 더 가까운 한국 리메이크 버전)와 닮았다고 느꼈다. (이 소설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어떤 이유 때문에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대도시의 경쟁 사회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평화로운 일상을 누린다는 점에서. 그저 조용한 일상을 나열한 것인데도 그 일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작품이 받는 비판도 <리틀 포레스트>가 받는 비판과 결이 같다. 주인공이 생계를 해결할 수단을 확실히 마련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는 한, 주인공이 누리는 평화는 잠시 동안의 도피에 불과하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쉬어가는 순간을 그린 작품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잠깐 쉬어가고 나서 생각해 보자. 


정영수, 「우리들」


이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 중 유일하게 어떤 장점과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던 작품이다. 작가 자신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다 손을 놓은 것 같은데, 이 작품이 어떻게 수상을 한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 중에서 권희철 평론가의 평만이 공감된다.  글쓰기의 복잡성을 진술하는 대신, 정은-현수 커플이 겪은 일들과 '나'와 연경이 겪은 일들, 두 갈래의 사건이 어떻게 서로를 자극하면서 새롭게 이해되는지 그 과정을 그렸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정은-현수 커플이 불륜 관계임을 알게 된 뒤에도 '나'가 왜 그렇게까지 그들에게 집착하는지, 어떤 점에서 그들의 관계와 자신과 옛 연인 연경의 관계를 겹쳐보는지 작가와 작품 속 '나'는 알겠지만 독자들은 알 수 없다. 이 소설은 대충 써 놓은 남의 일기장 같다. 자기는 직접 겪었던 일이니 이것저것 빠뜨리고 써도 무슨 소리인지 알지만, 그 사람이 기록하지 않은 것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곳곳에 뚫린 공백으로 남는다. 설명을 안 해주는데 그 일을 겪어보지도 않은 남이 어떻게 아는가. 


김봉곤, 「데이 포 나이트」


박상영 작가의 소설과 김봉곤 작가의 소설을 보면 퀴어 서사도 이성애 서사와 별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구질구질한 현실 연애담이 있는가 하면, 연애의 탈을 쓴 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기도 있다.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이 전자라면 이 소설은 후자다. 낮 장면을 밤 장면으로 탈바꿈하는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던 모습 같은 아름다운 기억도 있었지만, 폭력으로 얼룩진 잔혹한 기억도 같이 따라온다. 그 시절의 아름다움과 잔혹함 모두를 똑바로 바라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 때의 상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시절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상, 「하긴」


풍자되는 대상의 시선으로 작품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채만식의 「치숙」이 떠오른다. 자기 딴에는 자기 입장을 열심히 이야기하는데, 자기 스스로 자신의 추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풍자되는 대상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작품의 묘미는 거기에 있다. 풍자는 유쾌하지만 한때 세상을 바꿔보려고 했던 사람의 훗날이 이렇다는 것은 씁쓸하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변하게 될까. 그래도 주인공이자 화자가 모자르다고 생각했던 딸 보미나래가 사람들의 천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보았다. 나이를 먹어도 주인공처럼 변하지 않고, 늘 보미나래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바보가 아닌, 남들에게 바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누구보다 현명한 바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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