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월; 초선전
박서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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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삼국지』를 좋아했던 터라 『삼국지』의 2차 창작들에도 눈길이 갔다. 그러다 발견한 게 중국 작가가 제갈량 휘하의 촉나라 첩보 조직을 상상해서 쓴 『풍기농서』와 이 소설 『폐월 초선전』이었다. '폐월(閉月)'은 달조차 그 아름다움에 부끄러워져 얼굴을 가려버렸다는 뜻으로, 『삼국지』 최고의 미녀 초선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 작가 박서련은 초선을 한 인간으로서 그려내고 싶었다면서 이 소설을 썼다. 초선의 1인칭 주인공 시점, 그녀 자신의 목소리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설정만 들어도 흥미롭지만, 과연 이 소설은 초선을 한 인간으로서 그려내겠다는 원래의 목적을 이루었을까.

도입부부터 후원 연못을 둘러싼 사건까지는 『삼국지』에 없는 부분인데, 딱 그 부분까지는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다. 작가가 초선이라는 인물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리는 초선은 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거짓말로 자기 신분을 속여 상대에게 호감을 살 정도로 영악한 성품을 타고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이 굶어 죽지 않게 구해주고 돌봐줬던 거지 동료도,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가차없이 버린다. 작가는 밀도 있게 당시의 생활상과 생활감을 그려내기보다는 필요한 장면만 슥슥 스케치하듯 묘사하지만, 초선이 살아갔던 비정한 시대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비정해져야 했던 초선이라는 인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후반부에서는 『삼국지』의 서사 안에서 초선의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2차 창작 작가에게 원작은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 갈 탄탄한 뼈대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새롭게 풀어가고 싶은 내용을 다 풀지 못하게 하는 틀이 될 수도 있다. 『폐월 초선전』의 경우에는 원작이 뼈대가 아니라 틀이 되었다. 초선은 양부 왕윤의 뜻에 따라 동탁과 여포 사이를 오가며 이간질해, 동탁이 파멸하게 만들었다. 이 서사의 틀 안에서 인간 초선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소설의 작가는 어떻게 했을까? 초선을 왕윤에 대한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애정으로 움직이는 인물로 설정하고, 초선이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던 시기는 초선이 동탁, 여포와 어떻게 성관계를 가졌고 거기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를 중점으로 묘사한다.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초선이 자신보다 서른 살은 많을 왕윤을 아버지가 아니라 연정의 상대로 애정을 쏟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동탁이나 여포나 잘못 건드리면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와 나라까지 파멸시킬 인물들인데, 그들 사이를 오가던 위태로운 시기의 초선에 대해 할 이야기가 오직 성밖에 없는가? 본문 뒤의 해설에서 평론가는 초선이 동탁과 여포와의 성관계에서 쾌락을 느낀 것을 주체성의 회복으로 보던데, 왕윤의 목적을 위해 이용당하고 동탁과 여포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조차 가질 수 없는데 그 상황에서 주체성을 회복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작가의 이 두 가지 선택은 초선을 한 인간으로 되살려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본다.

작가의 마지막 수는 초선에게 주는 결말이다. 전해지는 초선의 결말은 여러 가지다.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자결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여포의 아내가 되었다가 여포가 훗날 조조의 손에 죽자 여포를 따라 자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작가가 초선에게 준 결말은, 왕윤의 동반 자결 제의를 거절하고 혼자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는 것이다. 초선은 자신에게 같이 죽자고 하는 왕윤을 보고 나서야 그에게 자신은 언제까지나 이용할 도구일 뿐이고,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했던 왕윤을 버리고서라도 살아남았다. 소설 전반부에서 묘사된 것처럼 영악하고 비정한 초선이라는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선택이기는 하고, 동탁과 여포와의 성관계에서 쾌락을 느낀 것은 그 상황에 대한 초선 자신의 방어 기제일 수도 있다. 그게 작가가 『삼국지』라는 틀 안에서 초선에게 줄 수 있던 최대한의 주체성이었을 것이다. 초선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을 때부터 가질 수밖에 없던 한계였지만, 그 한계를 돌파할 다른 방법은 없었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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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사원 풍요의 바다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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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 『봄눈』, 『달리는 말』의 스포일러 포함


한국어로 읽을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했던 『새벽의 사원』이 두 달 전 드디어 나왔다. 이 책이 속한 <풍요의 바다> 시리즈는 다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제 세 권을 읽었으니 4분의 3까지는 온 셈이다. 민음사가 언제 마지막 권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4분의 1만 남았으니 급할 것은 없다.

『새벽의 사원』의 도입부를 읽을 때는 글만으로도 이 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도입부의 방콕 묘사는 읽는 것만으로 눈부신 햇살과 그 속에서 오색으로 빛나는 사원의 탑들이 눈앞에 있는 듯했고, 온몸을 내리누르는 열기가 느껴졌다. 출장지인 태국에서 기요아키와 이사오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태국 공주 잉 찬을 만난 후, 혼다는 휴가 겸 인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인도 여행을 서사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자세하게 그려서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내게는 도입부의 방콕 묘사와 함께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었다. 콜카타 칼리 가트 사원의 피 냄새를 풍기는 성스러움,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의 혼돈, 그와 대비되는 아잔타 석굴의 더없이 맑은 고요를 나 또한 경험하는 것 같았다.

환생에 대한 고찰도 흥미로웠다. 친구가 두 번이나 환생했다고 믿는 혼다가 환생의 원리와 법칙을 알고 싶어 불교 교리를 더 자세하게 공부하게 되는데, 혼다가 찾아본 불교 교리 부분은 소설이라기보다 비문학에 가깝다. 불교 교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기는 했지만, 세상의 존재들은 자아나 주체가 아니라 '아뢰야식'이라는 의식을 통해서만 삶을 살아가고 세상을 체험하고 환생을 거듭한다는 대승불교의 유식론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신과 나라는 주체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기독교 교리에 익숙한 나로서는 주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낯설고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톨스토이의 소설들을 읽을 때처럼 새로운 사상을 소설로 접하는 것도 나름대로 유익한 경험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전편인 『달리는 말』과 같은 지점과 다른 지점에서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같은 지점은 미시마와 혼다가 매혹되는 순수한 이상, 순수한 일본에는 그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 약자들에 대한 연민도 반성도 한 점 없다는 것. 혼다는 진주만 공습이 자기처럼 젊음을 지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눈부신 행위'라고 생각하고, 전쟁이 끝난 직후 군인병원 뜰에서 어슬렁거리는 미군 부상병들을 보면서, 게이샤들은 그들이 입은 부상이 죗값을 치른 것이라고 수군거린다. 모든 일본 문학 작품이 일본의 과오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혼다나 그의 머릿속 생각을 쓰는 미시마나 순수한 일본성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을 인식하고 분명히 그것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에 매혹되고 미시마는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그토록 많은 사색과 상념 속에 일본의 전쟁으로 피와 땀을 흘린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고, 인물들의 대화에서 '공산당과 함께 일본을 뒤엎으려는 위험한 자들'로 조선인이 두세 번 언급된다. 순수한 이상, 순수한 일본성이라는 허상을 향해 달려가면서 자신이 무엇을 짓밟는지는 의식도 못 하는 것이다.

다른 지점은 혼다의 관음증이다. 앞의 두 책에서 건실하고 성실하고 이성적인 인간으로 묘사되던 혼다는 『새벽의 사원』에서 추악한 이면을 드러낸다. 사실 그는 공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을 한밤중에 몰래 엿보는 습관이 있었고, 경찰 단속이 심해진 뒤에야 공원에서의 관음 행위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자기 별장의 손님 방에 구멍을 뚫어놓고 손님들을 훔쳐보는 짓은 은밀히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열아홉 살로 성장한 잉 찬을 만나면서 그의 관음증적 욕망은 폭발한다. 혼다에게 잉 찬은 영원히 닿을 수 없어서 영원히 갈망하는 대상, 그래서 자신이 진정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매개체다. 그러면서 자신의 온갖 환상을 그녀에게 투영한다. 후반부의 대부분은 혼다의 관음증적 욕망을 묘사하는 데 할애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욕망이 어리석고 추악하다는 것을 작가는 직접 언급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보여주면서 찬물을 끼얹는다. 사실 작품 속에서 묘사된 상황만 보더라도 잉 찬은 혼다에게 관심이 없고, 혼다가 접근해 오는 것을 혐오하는 것이 분명히 보인다. 게이코는 혼다의 잉 찬을 향한 욕망을 채워주는 데 협조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이제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혼다에게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혼다는 욕망에 눈이 멀어 자기 발에 키스를 하면 잉 찬을 만나도록 도와주겠다는 게이코의 요구까지 들어준다. 그것이 게이코의 조롱이라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는 게이코가 연 파티에서 잉 찬의 젊음과 대비되는 노부인들의 노쇠한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지만, 그 뒤에서 작가는 아내 리에의 시선으로 젊은이처럼 입은 그가 얼마나 볼품없고 우스꽝스러운지 그려낸다. 파시즘에서는 그저 도취되기만 했던 작가가 그래도 관음증에 있어서는 제동 장치를 걸어놓은 셈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감정과 생각을 뚜렷이 드러내고 그에 따라 살아가고 죽었던 기요아키와 이사오와 달리, 잉 찬은 그저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일 뿐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잉 찬과 게이코의 동성애는 잉 찬을 향한 혼다의 환상과 욕망을 산산조각 내지만, 그들의 동성애 성관계 묘사를 비롯한 에로티시즘은 잉 찬이 그저 욕망되는 몸이라는 것을 더 분명히 보여준다. 잉 찬의 관능적인 육체는 집요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하지만 그녀의 내면, 그녀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그래서 잉 찬의 시점에서 『새벽의 사원』을 다시 쓰는 것도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온갖 심오한 이론을 갖다 붙여도, 온갖 미사여구와 아름다운 환상을 씌워놔도 혼다가 미성년자에게 관음증적 욕망을 품는 인간이란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 한 권 『천인오쇠』가 남았다. 그저 욕망의 대상이었던 잉 찬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까.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와 어떤 이론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미시마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 마지막 책을 읽어보면 시리즈 전체에서 미시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 S. 번역본의 문장은 『달리는 말』보다 훨씬 정돈된 것 같다. 관계사로 죽죽 이어지는 영어 문장 같은 문장들은 보이지만(『봄눈』의 번역자들이 원문이 영어 번역체가 심한 편이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문장 성분들이 뒤엉킨 비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번역자가 이 시리즈에 적응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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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말 풍요의 바다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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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책과 『봄눈』의 스포일러 포함

민음사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 시리즈 첫 권 『봄눈』이 2020년에 출간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리즈의 다음 권들을 기다렸다. 4년이나 소식이 없어 프로젝트가 중단됐나 했다. 그런데 작년 7월 두 번째 권인 『달리는 말』이 출간됐고, 지난 달에 세 번째 권 『새벽의 사원』이 출간됐다. 올해 안에는 마지막 권인 『천인오쇠』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풍요의 바다> 시리즈 전체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봄눈』을 읽으면서 순간순간의 미세한 감각과 감정까지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폭력적인 제국주의에 경도됐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2년 뒤 다음 권인 『달리는 말』을 읽으면서 풀렸다. 『달리는 말』은 예상보다 작가의 극우 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그가 빠져버린 파시즘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추구했던 순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봄눈』의 주인공 기요아키와 『달리는 말』의 주인공의 이사오는 겉보기엔 성향이 정반대다. 기요아키는 나라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감정에만 집중해서 살지만, 이사오는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혼다는 이사오가 기요아키의 환생이라고 생각하지만 둘이 같은 시대에 공존했다면 틀림없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가 생각하는 순수를 위해서 다른 것들은 다 내던져 버린다는 점에서 둘은 한 사람처럼 닮았다. 문제는 이사오가 추구하는 순수, 절대적인 가치가 천황제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추구하는 순수와 어긋나는 것들은 무조건 악으로 간주하고 배척하고 제거하려고까지 하면서, 그의 순수는 폭력과 파시즘으로 변질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사오는 정계와 재계가 유착해 부정부패를 일삼으면서 자기들의 배만 불리고,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현실에 분개한다. 여기까지는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오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상식적인 현대 민주 시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정재계의 부패한 인사들을 암살하고 계엄령(이사오 무리가 거사를 일으키기로 계획했던 날이 우연하게도 12월 3일이니 지금 이 시국을 헤쳐 나가고 있는 한국 독자로서는 더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을 선포해 사회를 청소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모두가 단결해 과거의 태평성대를 회복하자니. 그의 해결책은 시대 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일본에는 애초에 그런 과거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허상이다. 허상을 순수한 가치이자 궁극의 아름다움이라고 믿었던 이사오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붙잡아도 허상을 향해 달려가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자신이 바라던 최후를 맞는다.

작가의 삶만으로 작품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달리는 말』 속 이사오의 모습을 작가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지 않을 수 없다. 운동이라고는 숨 쉬기밖에 안 하며 나라에는 관심도 없던 기요아키가 (혼다의 환생 이론이 맞다는 전제하에) 검도로 몸을 꾸준히 단련하며 애국심이 투철한 이사오로 환생한 것은, 작고 병약한 문학 소년에서 근육질의 극우 청년단 지도자로 변신한 미시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사오에게는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주었던 혼다와 사와 같은 어른들이 있었고, 미시마에게는 혼다와 작품 속에서 그가 말하는 논리들을 만들어낸 이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사오도 미시마도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자신이 추구하는 절대적 가치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토록 꿈꾸었던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의 마지막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만큼 아름답지도 장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마음속에 떠올리는 상념과 감정의 단편들, 그 순간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을 세밀히 포착하는 솜씨는 여전하다. 도입부에서 혼다가 바라보는 무미건조한 법원과 교도소 풍경 묘사조차 혼다의 복잡한 마음 한 구석 한 구석을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 참신한 비유와 날카로운 통찰로 그 순간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을 더없이 적확하게 묘사한다. 뭘 해도 결론은 할복인 이사오의 심리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그가 어떤 사고와 감정을 통해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사오의 무모한 행보를 이성의 눈으로 지켜보지만 결국 그의 순수함에는 감동을 받는 혼다의 모습에, 결국 순수의 손을 들어준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미시마는 천황제와 극우 사상을 향한 이사오의 열정을 진지한 마음으로 썼겠지만, 맨 정신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한 치도 타협하지 않는 순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P.S. 『달리는 말』에서부터 번역자가 바뀌었고, 두 사람에서 한 사람으로 줄었다. 같은 시리즈의 전작인 『봄눈』과 번역의 톤을 맞추기 위해 출간이 늦어졌다고 한다. 『봄눈』에서 『달리는 말』로 이야기가 그대로 이어졌다고 느낄 수 있게 신경 쓴 것이 보인다. 그러나 『봄눈』과 달리, 문장 구조가 뒤엉킨 비문과 사람들이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난해한 한자어가 곳곳에서 보인다. 『봄눈』의 번역자들이 문장 구조를 정돈하고 생경하고 난해한 한자어는 풀어 썼는데, 새 번역자는 영어 번역체가 심하고 일본어의 일상적 화법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다 그렇게 된 걸까('대칭을 이루는'이라고 옮겼으면 좋았을 텐데 '시머트리컬한'이라고 영어 발음 그대로 음차한 부분에서는 좀 놀랐다). 내가 『봄눈』을 읽은 게 2년 전이니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고 원문과 비교하지 않았으니 더더욱 정확하지 않겠지만, 읽으면서 그렇게 느꼈다. 그럼에도 글의 아름다움은 남아 있지만, 유려하고 부드럽게 읽혔던 『봄눈』 번역본의 한국어 문장들을 생각하면 아쉽다. 『새벽의 사원』과 『천인오쇠』의 번역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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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풍요의 바다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윤상인 외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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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자체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이 작가의 작품이 좋다고 말하기 꺼려지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미시마 유키오다. 그가 극우 천황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 책 『봄눈』으로 미시마의 글을 처음 접한 나는 읽으면서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왜 그런 사상에 빠져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 작품이 속한 <풍요의 바다> 시리즈 이후 그가 더 이상 작품을 내놓을 수 없었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상황을 그렇게 만든 게 작가 자신이었다는 게 더 안타깝다.

이 소설의 서사 자체는 통속적이다. 지체 높은 귀족 가문의 아름다운 청춘 남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헤어지는 이야기.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봄눈』의 남주인공 기요아키가 사랑하는 것은 여주인공 사토코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금지되고 불가능한 사랑에 빠진 자신의 감정이다. 귀족 가문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인 그는 손에 물 한 방울, 흙먼지 한 톨 안 묻히고 오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려고 한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에는 현실의 더럽고 속된 것, 복잡한 이해관계가 없다. 아름다움과 순수, 그것에 대한 도취만 집착만이 있을 뿐. 박경리 작가는 이러한 탐미주의를 일본 특유의 나약한 로맨티시즘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기요아키와 아야쿠라 백작 같은 나약한 로맨티시스트들에게 침을 뱉고 싶고, 등장인물 중에서 그나마 상식적이고 건실한 혼다에게 더 공감한다. 현실을 회피하면서 결벽적일 정도로 순수한 감정만을 추구하는 기요아키를 보면 아이고, 이 답답한 도련님아,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글 자체의 아름다움에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어떤 문장도 평범하지 않고,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단순히 문장이 아름다워 감탄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어도 두루뭉술하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과 모습들을 너무나 적확하게 표현해 내 더 감탄스럽다. 글 자체만으로 늘 곁에 두고 읽고 싶을 정도다. 예를 들어 '네 사람의 머리 위에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펼쳐졌다.'라고 단순히 쓸 수 있지만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어느새 네 사람의 머리 위에는 별들이 가득했고 선명한 은하수가 천정에 걸려 있었다. ... 해가 지고 나니 훨씬 크게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 낮에는 그토록 멀어 보이던 바다와 모래사장이 하나의 어둠으로 녹아드는 모습, 끝도 없이 증식하는 압도적인 별들의 복작거림....... 그런 것들에 둘러싸인 네 젊은이는 거대한 거문고 같은, 보이지 않는 악기 속에 안긴 듯했다.

그 악기는 틀림없는 거문고였다! 그들은 거문고의 몸통 속에 섞여 들어간 네 개의 모래알이었다. 그곳은 한없는 어둠의 세계였지만 몸통 바깥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세계가 있었다. 한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팽팽히 당겨진 열세 개의 현에 더없이 새하얀 손가락이 닿으면, 유유히 운행하는 별들의 음악이 거문고를 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네 개의 모래알을 뒤흔들었다.


읽는 사람마저 밤하늘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렇게 섬세한 감성을 세밀하게 감지하고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폭력적인 사상에 사로잡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거기에다 작가 자신의 풍부한 지식도 소설 곳곳에 채워져 있다. 혼다가 서양의 자연법과 마누 법전의 종교와 뚜렷이 구분되지 않은 법을 비교하며 고찰하는 부분, 혼다와 태국 왕자들이 환생에 대해 토론하는 부분, 사토코를 만나게 해달라고 혼다가 아픈 기요아키 대신 부탁하러 갔을 때 월수사 주지가 혼다에게 법상종의 교리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부분은 굳이 넣지 않아도 됐을 것 같지만)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 소설에 쏟아부었다'는 작가의 말이 실감난다. 톨스토이의 소설들에서는 다양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하고 때로는 작가 자신이 길게 사상을 설명하지만, 그것이 뜬금없다거나 억지스럽다고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품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드는데, 이 소설도 그렇다. 법과 종교와 철학, 사상에 대한 고찰이 있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는 얇은 겉껍질 안의 세계는 더 넓고 깊어진다.

<풍요의 바다> 시리즈의 1권인 이 책에서는 아직 제국주의나 천황주의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인 만큼 기요아키와 사토코, 혼다가 누리는 부와 안락한 생활을 받쳐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시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이들마저 남을 부리는 것에도, 남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것에도 너무나 익숙한 지배 계급이라는 것이 언뜻언뜻 드러날 때는 섬뜩하지만. 나머지 세 권에서 이야기는 어디로 뻗어나가서 독자를 어디로 데려갈까. 이 연약하지만 매혹적인 세계는 어떤 종말을 맞을까.

P. S. 원문 자체가 영어 번역체가 심한 데다 일본어의 일상적 어법을 벗어날 때가 많아 번역 자체가 전쟁 같았다는데, 이렇게 유려한 문장으로 옮겨내다니 번역자들과 편집자의 노고가 컸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들로 접할 수 있게 해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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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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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교양 인문서 시리즈로는 『난생처음 한번』, 일명 '난처한' 시리즈,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 그리고 이 책이 포함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있다. 앞의 두 시리즈는 최근 나온 편까지 거의 다 읽었지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관심이 있는 인물 편만 골라 읽었다. 문득 이 시리즈도 전부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안 읽은 편들을 하나씩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1권이지만 내가 읽지 않은 책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햄릿』과  『맥베스』뿐이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해 좀 더 알면 유익하면 유익하지 무익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으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완전 정복'을 시작했다.


  읽기 전에 우려했던 것은 저자가 고령이고 영문학 전공자도 셰익스피어 연구자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목차만 봐도 굉장히 많은 곳을 여행하는데 체력이 부치지는 않았을까. 정치적 올바름에 있어 덜 민감하지 않을까. 저자 소개를 보면 영문학이나 셰익스피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력들만 보이는데 믿고 있을 수 있을까. 시리즈 안의 각 책들마다 편차는 있고 다소 아쉬운 편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은 하는 시리즈니 일단 믿고 보기로 했다.


  이 세 가지 걱정은 기우였다. 이 책을 위해 셰익스피어 기행을 시작한 2014년에도 저자는 이미 70대였지만 책에서는 여정 때문에 지친 기색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여성 혐오와 성차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여주인공 카테리나의 설교는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투철한 옹호이고, '길들이기'라는 관점 자체가 틀려먹었다고 단호히 말한다(이 작품의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줬으면 했지만). 그 밖의 작품들에서 셰익스피어가 소수자들, 소외된 사람들을 어떻게 그렸는지도 이야기한다. 본인이 셰익스피어 연구자는 아니지만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의 견해와 자신의 견해를 함께 말하면서, 독자들이 각 견해를 비교해 보고 자신 스스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저자 자신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서사 구조와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 대사의 탁월한 표현(그리고 원어로는 어떻게 이 표현이 중의적이거나 언어 유희를 하는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낸다. 논리의 비약이 없으면서 현학적이지도 않다. 수십 편의 작품을 다루고 있기에 한 작품을 아주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작품들의 해설을 모아 셰익스피어 입문서로 읽기 좋다. 해설의 특성상 각 작품의 스포일러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행문으로서도 읽기 좋은 책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각 편에 따라 기행과 인물 탐구의 비중이 달라지고, 기행문과 설명문의 질도 편차가 있다. 이 책은 둘 다 고르게 좋다. 1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아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과 그가 주로 활동한 런던, 『심벌린』 속 고대 로마 제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배스를 여행하고, 2부와 3부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이 되거나 셰익스피어를 언급한 외국 작가들과 관련된 곳을 여행한다. 1부에서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과 런던, 배스 이 세 곳만 여행하지만, 2부와 3부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이 된 유럽 각 나라의 십여 곳을 다소 숨 가쁘게 이동한다. 사실 2부와 3부에서 저자가 여행한 곳은 모두 셰익스피어 본인은 살아생전 발 한 번 들여놓지 못한 곳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눈앞에 보이듯 생생하게 살려냈다. 2부와 3부에서는 거의 한 꼭지당 한 곳씩 여행할 정도로 일정이 빽빽한데도 저자는 여행자의 서정을 잃지 않는다. 짧은 여행에서도 그 장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감정을 만끽하면서 자신이 본 풍경을 스케치하듯 묘사한다. 이런 기행문이 생각보다 밀도 있는 설명에 지친 독자에게 휴식이 되어준다.


  왜 영문학 전공자나 셰익스피어 연구자에게 이 책을 맡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씻어낼 정도로 저자는 여행과 인물 탐구의 균형을 잘 잡으면서 셰익스피어 입문서로 좋은 책을 써냈다.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고 딱 적당한 크기의 판형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여행 사진들, 가독성이 좋으면서도 감각적인 편집 디자인에서도 이 시리즈가 여러모로 공들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처음 시작하는 시리즈에 대한 의문과 우려를 씻어내 준 시리즈의 산뜻한 시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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