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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 명왕성 킬러 마이크 브라운의 태양계 초유의 행성 퇴출기
마이크 브라운 지음, 지웅배 옮김 / 롤러코스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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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가 스포일러지만 스포일러 포함


아무리 문과라 해도 작년에 과학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건 너무하다 싶었다. 안 그래도 과학 책 한 권은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얼마 전에 재개봉한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과학 책, 특히 천문학 책이 더 읽고 싶어졌다(크리스토퍼 놀란은 문과도 과학 공부 하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영화관에서 1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도서관으로 가서, 천문학 책들이 모여 있는 서가 앞에 섰다. 너무 어렵지 않고 흥미로운 책 없나. 서가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쭉 훑어보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명왕성보다 더 큰 천체를 발견하면서, 명왕성이 행성 자리에서 쫓겨나는 데 공헌해 '명왕성 킬러'로 불리게 된 천문학자의 이야기다. 지구의 인간들이 자기를 행성으로 규정하든 말든 명왕성은 저 수십억 킬로미터 밖에서 수십억 년 동안 그래왔듯이 멀쩡하게 공전하고 있으니, '킬러'라는 말이 적절하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명왕성을 태양계의 행성으로 배운 세대고, 어느 날 갑자기 명왕성보다 큰 천체가 발견됐으니 그것도 행성으로 삼겠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가 뒤집혔다. 그 천체도 명왕성도 행성의 정의에 맞지 않으니 그 천체를 행성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명왕성도 이제 더 이상 행성이 아니라는 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각 반의 이름이 행성 이름이었는데, 맨 끝 반인 우리 반은 '명왕성' 반이었다. 그걸 생각하니 좀 아쉽긴 했지만 오래 아쉬워했던 것 같지는 않다. 왜 그렇게 됐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됐구나, 했고. 제목이 특이한 이 책을 보고 나서야 거의 20년 만에 명왕성 퇴출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옮긴이의 말로는 21세기에는 새로운 천체를 찾는 천문학자들이 드물다고 한다. 이전 세기의 선배 천문학자들이 중요한 천체들을 다 찾아놓았고, 자동화된 첨단 컴퓨터와 거대 망원경이 하늘 전체의 방대한 지도를 이미 완성해 놓았다. 그러니 21세기의 천문학자들은 다른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에 집중할 수밖에. 그런 점에서 여전히 새로운 별을 찾는 저자 마이크 브라운은 특이한 천문학자라고 한다. 1930년 명왕성이 발견된 이후로 70년 넘게 새로운 태양계 행성을 찾으려고 시도한 사람이 없었는데, 브라운은 2002년부터 태양계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천체들을 발견해 냈다.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기까지 그는 단순 반복에 가까운 관측과 분석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3일 밤 동안 하늘의 같은 구역을 사진으로 찍고 사진 세 장을 비교해 변한 게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맨눈으로 사진을 확인해야 했던 선배 천문학자들과 달리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려면 본인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컴퓨터는 작은 얼룩도 새로운 천체로 인식해 버리니 새로운 천체 수만 개가 있다는 결과를 도출해 버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프로그램을 개선하거나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의 초반부는 그러한 기나긴 탐색을 그리고 있어 좀 지루하다. 하지만 그런 성실한 반복이 삶을 만들고 큰 일을 이룬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칼텍에서 교수로 일하는 석학도 지루한 노동은 피할 수 없구나 싶었는데, 천체의 진짜 발견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브라운 팀이 '산타'라는 별명을 붙인 카이퍼 벨트의 천체 하나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에스파냐의 한 천문학 연구 팀이 그 천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해 버린 것이다. 브라운은 속이 쓰렸지만 천문학계에서는 먼저 발표한 사람을 발견자로 인정하니, 쓰린 마음을 감추고 에스파냐 연구 팀에게 축하 인사를 보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에스파냐 연구 팀이 천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하기 며칠 전에 브라운의 연구 팀이 천체를 발견할 때 사용한 망원경의 데이터에 접속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때부터 브라운 팀과 에스파냐 팀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되는데, 그 과정이 꽤 흥미진진해 책 전체 중 이 부분을 가장 빠른 속도로 읽었다. 학자로서의 명예를 놓고 피 말리는 신경전을 벌인 당사자들에게는 '흥미진진하다'는 말이 실례지만.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는 '그는 어쩌다 명왕성을 행성에서 퇴출했나'이다. 브라운은 자신이 현재 생존해 있는 천문학자 중 유일한 행성 발견자라는 명예를 얻을 수 있는데도, 그가 발견한 에리스가 행성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명왕성이 행성으로 남게 하기 위해 국제천문연맹이 온갖 궤변으로 행성의 정의를 수정하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대중들이 더 정확하게 천문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제천문연맹의 회원이 아닐지라도 목소리를 낸다. 아마도 국제천문연맹은 명왕성을 아끼는 사람들(특히 미국인들, 명왕성만 유일하게 미국인이 발견한 행성이기 때문이다)의 눈치를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양심이 있었기에 일은 순리대로 흘러가 에리스는 행성이 되지 않고 명왕성은 행성에서 카이퍼벨트의 천체 중 하나로 강등된다. 이 모든 과정은 물로 덮인 행성이나 블랙홀을 만나 구사일생하는 SF 영화 속 상황처럼 박진감 넘치지는 않지만, 천문학자들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탐색하고 연구하고 논쟁하는지 엿보게 한다.

대중에게 과학을 널리 전하고 싶어 하는 과학자답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천문학의 원리들은 어렵지 않다. 난해한 수식 하나 없고, 그나마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카이퍼 벨트 천체들의 궤도를 그림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비유를 들어 자신의 연구와 연관된 천문학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는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연구에서 알아낸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도 열정을 쏟는 학자다.

태양계의 맨 끝에 있는 천체들을 연구하던 시간을 정리하면서 저자는 결혼, 출산, 육아까지 그동안 자신이 겪어온 개인사도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나도 남의 가족사, 특히 남의 집 애 얘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이 브라운의 자서전이라고 하니 이해는 된다. 아무리 관찰하고 값을 기록하고 분포도를 계산해 봐도 갓 태어난 딸의 수면 패턴은 파악할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는, 과학자로서의 그와 아버지로서의 그가 분리되지 않는 것이 재미있었다. 에필로그마저 딸에 대한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그를 보면서 (실제 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꽤 좋은 아버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로서의 삶과 일상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이 내게는 나쁘지 않았다. 이게 영미권의 특징인지 서구 전체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비문학과 문학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것이 영미권(또는 서양) 저자들이 쓴 책의 매력이라고 느낀다.

이 책을 읽고 내 천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아진 것은 아니지만, 우주에 대한 관심은 아주 조금은 커졌다. 그것이 저자가 바란 바가 아니었을까. 명왕성이 행성이든 아니든 명왕성은 오늘도 열심히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 영미권 사람들이 이제 행성 이름의 암기 방법(각 행성의 머리 글자와 같은 머리 글자의 단어들로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을 어떻게 수정할까 고민하지만, 나는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의 캐릭터들 이름으로 태양계 행성의 영어 이름들을 외웠으니 내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명왕성(pluto)'이 빠졌으니 문장 끝의 'p'를 빼고도 어떻게 말이 되는 문장이 되게 할지 영미권 사람들은 고민하겠지만, <세일러문> 속의 세일러 플루토는 어제와 변함없이 태양계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테니. 나는 여기서 지구를 지키면서 천문학과 다른 과학 분야에 조금씩 더 관심을 가져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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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켑틱 - 회의주의자의 사고법
마이클 셔머 지음, 이효석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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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 Skeptism'라고 하면 모든 것을 의심하기만 하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판단하는 것을 계속 미루기만 하다 결국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하는 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꾸 의심하면서 머뭇거리지 말고 한번은 그냥 시도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적 회의주의자이자 과학 저술가인 마이클 셔머는 자신의 저서 『스켑틱』을 통해 회의주의가 이런 선입견과는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그가 생각하는 회의주의는 어떤 태도일까?

회의주의는 모든 것을 의심부터 하고 보는 꽉 막힌 태도일까? 셔머는 회의주의가 오히려 모든 것에 열려 있는 태도임을 보여준다. 과학에는 100퍼센트 확실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 그것이 진실이라고 잠정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확인된 것, 진실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것들이 있다. 회의주의자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근거와 논리가 부족해 진실일 확률이 낮은 것들을 의심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원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믿을 만한 증거가 나온다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으니, 꽉 막힌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너무 쉽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그것의 신뢰도를 검증하지도 않고 무조건 믿기만 하는 것은 위험하기에, 열린 마음과 신중한 태도 사이에서 균형을 잡자는 것이다.

회의주의자는 비관적인 염세주의자일까? 회의주의가 비관주의, 염세주의와 같거나 비슷한 태도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셔머는 이 책에서 인간과 과학을 향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보인다. 그는 인류가 호색적이고 폭력적인 존재이며 그런 품성 때문에 생겨난 인구 과잉과 전쟁이 우리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과학자조차도 자신이 믿고 있는 이론과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들만 취사선택해 그 주장을 더 공고히 하는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인류는 여성과 소수자 등 더 많은 이들을 인권을 인정하는 집단 안으로 받아들여 오는 등 더 진보해 왔고, 인류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과학이라고 믿는다. 회의주의는 과학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로 인류와 과학이 잘못된 방향으로 접어들지 않게 나침반 역할을 한다.

회의주의자로서 셔머는 진실과 거리가 먼 수많은 것들과 싸워왔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과 9.11 테러,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조작된 것이라는 음모론부터 점성술, 초능력, 강령술, 외계인 같은 초현실 현상이 정말로 일어난다는 주장, 대체의학 같은 유사과학,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진화론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창조론까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훌륭한 과학자로 국가와 학계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조차 확증편향과 감정에 휘둘려 이런 것들을 믿어버릴 때가 많다. 셔머는 이 책에 실린 과학 칼럼들에서 이러한 것들이 왜 진실로 인정받기 어려운지,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꼼꼼하게 팩트 체크를 한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진실을 검증하는 것도 거부하고, 세상과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셔머가 비판하고 풍자하는 대상이 된다. 회의주의자는 자신조차 비판과 검증의 대상으로 올려놓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니, 반박은 가차없고 풍자는 신랄하다. 독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지거나,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 알게 되어 속이 시원할 것이다. 셔머의 풍자를 살리는 유머 감각은 과학적 사실들로 가득한 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셔머 본인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과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종교가 약속하는 죽음 뒤의 영생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신과 영혼을 믿는 사람들, 종교의 영역은 존중한다. 그는 기독교인을 비롯한 종교의 신자들은 경전보다도 더 깊이 있고 상세하게 신성의 위대함을 밝힌 현대 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금지하고 부부간의 정절을 중시하는 기독교의 교리가, 짝을 짓는 영장류로 진화하고 구성원 간의 신뢰를 통해 사회를 유지해 온 인류 진화의 역사와도 통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았고,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회의주의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만을 신뢰한다고 해서 정신적, 영적, 감성적 측면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켑틱』을 통해 우리는 과학적 회의주의가 과학 이론에만 집착해 뭐든지 의심만 하고는 태도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되 우리를 진실로 이끄는 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과 과학적 회의주의는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기에, 스켑틱은 일상 속의 잘못된 상식부터 사람들 사이에 잘못 알려진 통념, 건강, 종교, 불로장생 등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주제를 다루며 세상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렇기에 어려운 과학 이론을 줄줄이 설명하지는 않고, 중학생 정도의 지식만 있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주장이 왜 옳고 저 주장은 왜 옳지 않은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셔머를 존경하고 그의 글을 즐겨 읽어왔다는 번역자는 셔머의 유머 감각을 살리는 자연스러운 번역을 하면서 영어와 미국 문화, 과학자들 사이에서 통하는 조크를 잘 모르는 독자들도 그의 유머와 풍자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역주에서 친절하게 설명한다. 때로는 셔머가 간과한 부분을 짚어내기도 하고 셔머의 설명을 보충 설명하기도 한다. 셔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토대로 한 번역 덕분에 한국 독자들은 이 책을 더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스켑틱』은 유쾌한 회의주의자의 팩트 체크이면서 과학적 회의주의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을 벗겨내고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하는 좋은 회의주의 입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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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만만해지는 책 - 한 번 배우고 평생 써먹는 숫자 감각 기르기
브라이언 W. 커니핸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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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볼 때까지는 수학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지만, 수능 수리영역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점수를 받고 나서는 수학에서 손을 뗐다. 그 이후로는 간단한 계산도 PC나 핸드폰의 계산기로 해왔고, 근의 공식, 인수분해 공식은 물론이고 소금물의 농도 구하는 법까지 잊어버렸다. 살면서 정산 정도는 해야 되는데 이렇게까지 숫자와 담을 쌓고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숫자가 만만해지는’이라는 제목과 ‘한 번 배우고 평생 써먹는 숫자 감각 기르기’라는 부제에 끌렸다.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초등학교 수학 실력 정도면 충분하다”는 서문 속 저자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수학만 알아도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 책의 주목적은 어려운 수학 공식들의 원리를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팩트 체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팩트인지 체크하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는 수많은 숫자들과 그 숫자들을 근거로 한 주장들이다. 인터넷 기사, 블로그 포스트, 광고 등 우리 주변의 다양한 매체들에 등장하는 숫자들은 얼핏 보면 정확해 보인다. 하지만 이 숫자들에는 우리 생각보다 오류가 많다. 이 책은 사칙연산, 올림과 반올림, 단위 환산만 할 수 있어도 이 숫자들이 정확한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네 가지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만 되어도 할 수 있는 계산이다.

  숫자로 된 정보의 오류를 잡아내려면 먼저 어떤 이유로 오류가 생기는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각종 매체가 숫자로 된 정보를 제시할 때 오류를 내는 경우를 유형별로 정리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잘못 계산해서 오류가 생긴 건지 차근차근 살펴본다. 우선 영어에서는 발음도 철자도 비슷한 ‘100만(밀리언million)’과 ‘10억(빌리언billion)’, ‘1조(트릴리언trillion)’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알파벳 한두 개를 혼동했을 뿐인데 1000배 이상의 오차가 날 수 있다. 단위 환산을 잘못하거나 더 작은 단위와 더 큰 단위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고, 길이와 넓이, 부피를 혼동해 오류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뉴욕 타임스』,『뉴스위크』같은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도 의외로 이런 오류를 많이 저지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실수로 인한 이런 오류보다 의도적으로 숫자에 속임수를 쓰는 경우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숫자로 된 자료인 그래프와 통계는 객관적인 자료로 보이지만, 그래프는 눈속임을 하기 쉬운 수단이며 통계는 진실을 호도하는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다. 미국의 뉴스 채널 <폭스 뉴스>에서는 2007년 12월부터 2010년 6월까지의 실업률 그래프를 제시했는데 이 그래프만 보면 실업률이 계속 치솟고 있다. 하지만 이 그래프의 X축을 자세히 보면 각 항목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다. 각 항목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하면 실업률은 수정하기 전의 그래프에서만큼 가파르게 치솟고 있지 않다. 시각적으로 보기 좋게 만들려고 했든 당시 대통령 임기 동안의 실업률을 강조하려고 했든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개인 블로그도 아닌 『뉴욕 타임스』, 『뉴스위크』, <폭스 뉴스>, 같은 유력 언론 매체에서도 이렇게 실수로든 고의로든 숫자 관련 정보에서 많은 오류를 저지른다.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나 권익을 주장하는 각종 단체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숫자들만을 내세우거나 교묘하게 통계, 그래프를 조작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숫자의 오류가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할까?

  저자가 독자들에게 쥐여 주고 싶어 하는 무기는 상식과 더 예민한 숫자 감각이다. 『뉴스위크』지에서는 2004년 미국 정부가 6600억 배럴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고 보고했는데, 이 정도면 미국 전 국민이 264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를 갖고 있는데 왜 미국인들은 유가 파동에 신경을 곤두세울까? 알고 보니 ‘6억 6천만(660밀리언)’ 배럴을 ‘6600억 배럴(660빌리언)’ 배럴로 혼동한 것이었다. 이렇게 자신이 갖고 있는 상식과 자료 속 숫자가 말하는 주장이 어긋난다고 느껴진다면, 숫자의 자릿수를 바꿔보거나 단위를 바꿔보면서 그 숫자가 정확한지 체크해 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시사 상식과 교양은 풍부해도 숫자 감각은 부족하고, 큰 수만 나오면 숫자 감각이 마비되어 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사람들이 숫자 감각을 기를 수 있도록 그가 제안하는 수단은 어림 계산이다. 어림 계산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적은 양의 정보만으로 정확한 값과 근접한 수치를 도출해내는 계산인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이 책에 나오는 어림 계산의 첫 번째 예는 미국에 있는 자동차의 수를 추정하는 것이다. 알고 있는 정보는 현재 미국 인구가 약 3억 3천만 명이라는 것뿐이다. 한 명당 자동차를 한 대씩 갖고 있다고 추정하면 3억 3천만 대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나 운전을 할 수 없는 노인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들을 고려해 미국인의 3분의 2나 4분의 3이 차 한 대씩을 보유하고 있다고 계산하면 2억에서 2억 5천만 대의 자동차가 있다는 추정치가 나온다. 이 추정치는 놀랍도록 정확한 값에 가깝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5년 미국에는 약 2억 6360만 대의 승용차가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상식을 바탕으로 어림 계산을 해도 얼토당토않은 수치에 속을 가능성은 훨씬 더 줄어든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어림 계산 실력을 늘리기 위한 몇 가지 팁도 소개하고 있다. 2의 10제곱은 1024, 10의 3제곱은 1000인데, 전자가 후자보다 약 2.5퍼센트 크다. 2의 20제곱은 10의 6제곱보다 5퍼센트 크다. 오차가 점점 커지긴 하지만, 2의 10×n 제곱이 10의 3×n 제곱의 근삿값이라는 것을 알면 큰 숫자를 계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복리(어떤 양이 동일한 시간 간격을 두고 일정한 백분율만큼 계속 증식하는 것)를 계산하는 데는 ‘72의 법칙’을 활용할 수 있다. 72의 법칙은 ‘어떤 금액이 단위 기간당 x퍼센트의 복리로 불어난다면, 원금의 두 배가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72를 x로 나눈 값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의 장학금이 1년에 8퍼센트씩 증가한다면, 9년 후에는 장학금이 두 배로 증가한다. 이 법칙은 우리가 투자한 원금이 몇 년 뒤에 어느 정도로 증가하는지 어림 계산 하는 데 유용하다.

  계산 실력을 늘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연습 문제를 풀어보는 것. 저자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학생들에게 출제했거나 외부에서 입수한 문제 몇 개를 소개하는데 하나같이 흥미롭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고 했을 때 축구장 하나에는 사람들이 몇 명 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 집 마당에 나무가 여섯 그루 있다면 마당에 떨어지는 나뭇잎은 몇 장이나 될까? 노트북의 디스크 형태로 데이터를 저장한다면, 내 방만한 공간에는 데이터가 얼마나 저장될까? 길거리 뷰에 나오는 사진들을 촬영하기 위해 구글의 자동차는 몇 마일을 운행했을까? 엉뚱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자신의 상식과 숫자 감각, 창의적인 사고력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의 학생들은 입사 면접에서 이런 문제를 접했을 때 저자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풀어보았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계산에 약한 편이라 사실 더 많은 계산 팁이 나왔으면 했다. 수학을 잘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수학을 잘한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서 수학을 잘하게 되는 꿀팁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숫자들 속 수많은 오류들과 그것이 왜 잘못된 건지 체크해 보는 내용이 대부분인 것이 아쉬웠다. 비슷비슷한 ‘팩트 체크’가 책을 읽는 내내 이어져 지루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쉽게, 잘하게 되는 왕도는 없는 법. 이 책을 읽고 갑자기 수학 천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숫자가 생각보다 무섭고 어려운 것이 아니고 숫자의 바다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는 무기는 이미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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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이름이 알려주는 것 - 학명, 보통명, 별명으로 내 방 식물들이 하는 말 edit(에디트)
정수진 지음 / 다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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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씩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는다그 분야를 깊이 파고들 생각까진 아니지만 한 번 훑어보면서 시야를 넓히고 싶기 때문이다이번에 읽은 책 식물의 이름이 알려주는 것은 식물학 분야와 원예 분야 모두를 담고 있다식물의 이름을 통해 알게 되는 지식을 바탕으로 식물을 더 잘 이해해서(식물학더 잘 기르자는 게(원예이 책의 목표니까식물을 기르는 취미는 없지만 지금 우리 집 앞에 핀 꽃이 무슨 꽃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좀 더 섬세하게 보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식물을 잘 기르겠다는 마음보다는 식물을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식물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저자는 식물의 이름으로는 어떤 것이 있고식물의 이름은 어떻게 붙이는지부터 설명한다우선 식물에게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일해서 부르는 공식 이름학명이 있다학명을 알려면 18세기 스웨덴의 생물학자 카를 폰 린네가 제시한 생물 분류 단계와 이명법을 알아야 한다린네의 생물 분류 단계는 계------종의 순서대로 하위분류로 뻗어나간다이명법은 그 중 해당 생물의 속 이름과 종 이름두 개의 이름을 붙여 학명으로 만드는 것이다보통명은 복잡한 학명을 간단하게 만든 약칭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름이고보통명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이름은 국명이라고 한다화훼 시장에서 흔히 쓰이는 이름은 유통명이고특정 지역이나 특정 상황에서 부르는 별명도 있다이런 이름들은 그 식물의 생김새와 색깔냄새독성의 유무개화 방식그 식물이 자생하는 곳그 식물을 발견한 사람그 식물의 쓰임새 등 정말 다양한 것에서 유래했다이제 식물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알게 되었으니그 이후로는 각각의 식물들이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 이름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낼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위) 팬지의 이름은 꽃잎 무늬가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같이 생겼다고 해서 '생각, 사색'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팡세'에서 유래했다.

(가운데) 데이지는 '낮에 뜬 눈'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 ‘daegeseage’에서 따온 이름으로 해가 떠 있는 동안에만 꽃이 피는 특성이 담겨 있다.

(아래) 떡갈나무 잎은 떡을 찔 때 깔거나 찐 떡을 감싸는 데 쓰면 방부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떡갈나무는 '떡 아래에 까는'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식물들의 이름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인 팬지pansy. 그저 귀여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꽃잎의 무늬가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같이 생겼다고 생각사색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팡세pensée’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팬지를 자주 봐 왔지만 한 번도 팬지 꽃잎의 무늬가 사람 얼굴 같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갑자기 팬지의 무늬가 눈을 찌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람의 모습으로 보인다여자 이름으로도 쓰이는 귀여운 이름 데이지daisy는 낮에 뜬 눈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 ‘daegeseage’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이 이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만 꽃이 활짝 피고 해가 진 밤에는 꽃이 오므라드는 데이지의 특성이 담겨 있다떡갈나무는 떡 아래에 까는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떡갈나무의 싱싱한 잎을 떡을 찔 때 깔거나 찐 떡을 감싸는 데 쓰면 은은한 향이 나면서 방부 효과를 내 떡이 금세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이렇게 사람들은 수백 년수천 년 동안 식물을 보면서 했던 상상관찰해서 알게 된 특성활용했던 용도 등을 식물의 이름에 녹여내 다른 식물들과 구별될 수 있게 했다그렇기 때문에 식물의 이름을 알면 식물이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각각의 식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은 식물의 이름으로 풀어낸 식물 이야기보다는그 식물에 관련된 정보를 요약 정리한 페이지나 본문 속 원예 팁에 들어 있다건조한 곳에서는 잘 못 자라니 잎에 자주 분무를 해 주는 게 좋다추위에 약하니 영상 13도 이상의 환경에서 키우는 게 좋다는 식으로식물을 잘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부분을 꼼꼼히 읽고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하지만 식물을 더 잘 키우는 것과는 상관없는 지식이라도 그 식물에 더 흥미와 관심을 갖게 만들어준다식물을 키울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도 식물의 이름을 통해 풀어낸 다양한 지식들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청소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은 쉽고 재미있다게다가 선명한 컬러 세부 도판들과 그 옆의 간결한 도판 설명으로 본문에서 설명한 내용을 한 번 더 풀어낸다그래서 어린 시절 보던 식물도감 같은 느낌을 준다책 표지와 챕터 페이지각 식물 항목의 첫 페이지에 그려진 식물 일러스트본문의 강조 표시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는 연두색은 식물 관련 책다운 싱그러움을 더한다식물을 더 잘 키우고 싶은 사람에게도그저 식물을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책은 책장을 펼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게 하면서 유용한 지식흥미로운 지식도 전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almanac.com/plant/pansies

https://www.amazon.com/Outsidepride-Gerbera-Daisy-Flower-Plant/dp/B004I0GYBM

https://www.pngwing.com/ko/free-png-hyt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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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바스티안 2021-06-04 23: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지금 놀러 갑니다, 다른 행성으로 - 호기심 많은 행성 여행자를 위한 우주과학 상식
올리비아 코스키.야나 그르세비치 지음, 김소정 옮김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청소년 도서를 볼 나이는 10년도 더 전에 지났다이 책은 청소년 도서로 분류되어 있고이 책의 원서도 아마존에서 고등 교육 교과서(higher education textbooks)’로 분류되어 있다그런데도 이 책을 계속 읽게 된 건 태양계 여행을 위한 안내서라는 독특한 형식 때문이었다이 책은 기존의 우주과학 책들처럼 태양계 안의 각 행성들에 대한 정보를 그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그 행성들을 여행한다고 가정하고 그 행성에 가는 방법과 그 행성에서 볼 만한 것할 만한 것 등을 설명한다아직까지 태양계 안에서 인간이 실제로 다녀온 천체는 달밖에 없지만태양계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하며 태양계의 천체들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그런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지구 안에서의 여행도 준비가 필요한데 그저 가겠다고 마음먹고 다음날 훌쩍 우주여행을 떠날 수는 없을 터. ‘지구를 떠날 준비’ 부분을 읽다 시력은 반드시 양쪽 눈 모두 2.0이어야 한다는 구절에서 좌절했다라식 수술은 무서운데 우주로 떠나려면 꼭 받아야 하는 걸까거기에 14킬로그램짜리 완전 무장을 하고 물에 들어가는 생존 훈련, 25미터 길이 수영장을 쉬지 않고 세 번 왕복할 수 있는 수영 실력하루에 40번씩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중력 훈련까지지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우주로 나가는데 이쯤은 당연히 준비해 둬야 한다고 치자하지만 본문에서 태양계 여행을 하다 죽거나 다시는 지구로 못 돌아올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구절들이 계속 나타나니저자들은 태양계 여행을 권하는 걸까말리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달 표면에서 바라본 지구. 저자는 "(달 표면에 도착했을 때) 휴가를 떠나기 전에 머물렀던 모든 장소(지구)를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진 출처: NASA/GSFC/Arizona State University


  하지만 본격적으로 책 속 여행이 시작되면서 태양계 여행은 때려치우고 그냥 지구에서 안전하게 살까 하는 마음은 사라졌다책을 읽으면서 펼쳐지는 태양계 행성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놀라웠기 때문이다태양이 수성의 하늘을 한 바퀴 도는 하루는 176일인데 수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1년은 88일이니수성에서는 하루가 1년보다 길다는 이야기화성에는 에베레스트보다 3배는 높은 화산이 있어꼭대기까지 등반하려면 한 달은 걸린다는 이야기목성의 허리케인 대적점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내가 옛날 사람이었다면 상상력이 풍부한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했을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화성의 위성 포보스는 중력이 매우 작은 곳이다. 저자들은 포보스에서는 한번 도약하는 것만으로 높이가 830미터나 되는 버즈 할리파 빌딩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며, 높이뛰기가 포보스의 주 종목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저자들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출처: Steve Thomas, Olivia Koski, Jana Grcevich, Penguin Books


  이런 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사실에 SF적인 상상을 더해 저자들은 천연덕스럽게 태양계 여행에서 볼 만한 것할 만한 것들을 안내한다달에 있는 호텔에서는 지구가 보이는 방을 달라고 하자든가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갈릴레이 위성(갈릴레이가 1610년에 발견한 4개의 목성 위성들이오에우로파가니메데칼리스토가 갈릴레이 위성에 속한다.) 대신 한적한 레다 위성에서 목성을 관찰하자든가토성의 고리에 캔 얼음으로 우주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자든가수백 년 뒤에나 가능하거나수백 년 뒤에도 가능하지 않은 일들을 마치 지금의 관광객들이 하고 있는 양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데실제로 내가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 유쾌했다그런 상상조차 완전한 허구는 아니고 태양계 행성에 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거나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상상 속 태양계 여행을 마치고 저자와 독자는 지구로 돌아온다모든 여행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거니까저자들이 이 태양계 여행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지구의 소중함이다태양계 다른 행성들에서 사람이 도무지 살 수 없는 극단적인 더위와 추위를 경험하고 아무런 생명도 없는 풍경을 본 사람이라면지구의 온화한 환경과 온갖 다양한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더욱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이다이 책 덕분에 우리는 상상의 태양계 여행을 하면서 우리의 시야를 넓힘과 동시에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된다.


P. S.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알지만, 본문 앞의 화보 부분만 컬러로 하고 본문 안의 우주 이미지와 일러스트들은 흑백으로 처리한 것이 아쉽다. 특히 목성의 오로라나 천왕성의 푸르른 표면처럼 그 색채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이미지들이 흑백인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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