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미술 이야기 8 - 바로크 문명과 미술 : 시선의 대축제, 막이 오르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8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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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오랜 기다림을 넘어서는 보상을 하는 시리즈. 단순히 바로크라는 미술 양식의 특징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낳은 시대 전체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책의 요소들에 쓰일 색을 선정하는 디자이너들의 감각도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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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쉬
옌스 하르더 지음, 주원준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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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국제도서전의 외국 출판사 부스들을 돌아다니다 종종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한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였다. 2019년 도서전에서 독일어도 모르면서 독일 출판사의 부스들을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4000여 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 우루크의 왕이었던 길가메시의 신화를 그린 그래픽노블인데, 모든 컷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부조를 본뜬 형태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이 책의 한국어판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만들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한국어판을 만들어줬으면 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어판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도서관에 신청했고, 마침내 읽게 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부조같이 그렸다'는 말은 아래의 본문 이미지를 보면 바로 이해될 것이다. 한 컷 한 컷이 한 장의 토판처럼 온통 흙빛으로 되어 있고, 인물과 사물들은 토판 위에 도드라져 있는 부조처럼 그려졌다. 배경에는 갈라진 틈까지 조금씩 그려 오래된 토판 같은 느낌을 더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부조들처럼 인물들은 주로 옆모습으로 나타나는 정형화된 모습이지만, 자세히 보면 표정과 움직임이 살아 있다. 작가는 단순히 과거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과거의 것을 오늘날과 연결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고대 부조와 현대 만화의 스타일 사이에서 고민했고, 원근법이나 동적인 움직임 같은 현대적인 미술 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심한 덕분에 고대 부조 속에서 인물과 동물, 자연 속 사물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독특한 효과가 탄생했다.


  워낙 오래된 토판이라 중간중간 부서진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야기의 공백이 많다. 그런 데다 고대인의 감성과 문화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대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지금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웹툰 <홍끼의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 사이사이의 공백을 상상으로 메우고, 현대인의 감성에 맞게 이야기를 각색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반면 이 책의 작가는 원문의 내용을 그대로 컷에 올리고, 이야기의 연결 고리가 빠져서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도약하는 부분은 컷과 컷 사이의 경계선을 점선으로 표시한다. 책 속 문장 하나하나도 원전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작가는 현대인에게는 문장 자체가 어색하게 보일 수 있더라도 그 시대의 요소를 문장에 넣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어판 번역가도 그 어색한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번역했다고 한다. 대사도 현대인의 감성과 유머 감각에 맞춘 웹툰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간 셈이다. 그렇기에 웹툰과 이 책이 길가메시 신화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원전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면서 만화적인 효과도 살리려는 작가의 의도는 끝까지 계속된다. 열두 번째 토판에서 저승에서 올라온 엔키두의 영혼은 길가메시에게 저승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해 준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보면 분명히 이렇게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문장이 아니라 엔키두가 저승에서 본 인물 중 한 명의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 마지막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걸 그대로 살리면 마무리가 애매할 수 있는데, 작가는 토판에 새겨진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져 가다 마지막 컷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결말이 사라진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힌 것들에 대한 예우로 마무리함으로써, 작가는 책을 읽고 있는 우리까지 수천 년의 세월 속으로 사라져 간 신화 속 영웅들을 그리워하게 한다.

P. S. 작가의 작업 후기와 준비 스케치, 스토리보드에 참고 사진 자료들까지 실린 부록도 알차다. 번역자도 독일에서 고대 근동을 공부한 학자로 섭외했으니, 원래의 독일 출판사나 한국 출판사나 공을 꽤 많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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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쉬
옌스 하르더 지음, 주원준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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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에서 고대 부조의 정형화된 양식과 현대의 만화적 표현 사이에서 고민했다고 했는데, 그 둘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그 덕분에 토판을 손에 들고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이 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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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5 - 쇼팽·리스트, 피아노에 담은 우주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5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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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 중 이 책을 가장 좋아하게 될 것 같다. 피아노가 품은 가능성을 무한대로 펼쳐낸 두 음악가의 음악과 삶, 그들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을 균형 있게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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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나쁜 여자
권오숙 외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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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폭로한 여성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그 여성이 세상의 온갖 비난을 견뎌내면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그린 책인 줄 알았는데, 그 여성의 주장이 이러이러한 점에서 논리에 맞지 않으니 거짓임이 분명하다고 단정하는 책이었다. 이 책뿐 아니라 익명의 대중들은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먼저 유혹했으면서 남성을 성폭력 가해자로 몰아가는 나쁜 여자라며 2차 가해를 가한다. 이런 '나쁜 여자' 이미지의 역사는 최초의 여성 이브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세계 모든 지역에 뿌리내려 있다. 이 책은 고대의 신화부터 현대의 문화 콘텐츠까지 다양한 매체에 나타난 나쁜 여자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러한 나쁜 여자 이미지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어떻게 그 시대의 남성 중심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그런 다음 현대의 콘텐츠들 속 나쁜 여자들을 통해 현대의 나쁜 여자들이 어떻게 이런 낡은 여성관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고대의 신화부터 현대의 영화, 웹툰까지 종적으로, 한 시대 안의 다양한 상황과 작품을 살펴보며 횡적으로 수천 년에 걸친 나쁜 여자 이미지를 살펴보고 있다. 열한 명의 학자들이 주제 하나씩을 맡아 소논문을 하나씩 썼다. 소논문의 형식이지만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이나 일반 성인 독자들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썼다. 2022년에 출간된 책이라 최근의 작품들도 분석하거나 예시로 들고 있고 최근의 상황도 이야기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이것은 시간에 따라 약해질 수밖에 없는 장점이지만, 출간된 시점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고 기록한다고 달리 생각해 봐도 좋을 것이다).

책에 실린 열한 편의 논문을 관통하는 생각은 '나쁜 여자' 이미지에 남성들의 두려움이 투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낳았기에 자기 자식임이 확실한 여성과 달리, 남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통제해야 여성이 낳은 자식이 자기 자신임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강한 생식력을 지닌 고대 여신들은 남편을 배신하는 음탕한 악녀로 전락했다. 선한 신의 이름으로 싸워 이겨야 할 구체적인 대상이 있어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던 기독교 성직자들은 힘없고 약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고문하고 처형했다. 고전 소설에서 가부장제의 근본적인 모순은 해결되지 않은 채 <장화홍련전>의 계모 허씨, <사씨남정기>의 교채란, <심청전>의 뺑덕 어멈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여성들, 가부장제의 규범을 지키지 않은 여성들에게 모든 문제의 책임이 전가된다.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쁜 여자'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고 자신들이 누리던 것들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두려움은 계속되고 있고, 그 실체 없는 두려움이 문화 콘텐츠들에도 반영되어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다.

이런 두려움이 만들어낸 가부장제의 장벽은 여전히 허물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들의 두려움과 욕망을 반영한 납작한 평면이었던 나쁜 여자 캐릭터들이, 자기 서사를 갖게 되고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파해 가는 데서 희망을 본다. 여전히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 가치관은 공고하고, 최근에 만들어져 더 진전된 여성관을 반영하거나 여성들이 직접 만든 나쁜 여자 캐릭터들도 이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곤 한다. 가부장제를 일거에 허물 수는 없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저자들은 보여준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 스스로도 자신과 다른 여성을 검열하고 억압하게 하는 나쁜 여자 이미지를 고찰하고, 그것을 떨쳐냄으로써 남성과 여성 모두의 건전한 판단과 여성 스스로의 긍정적 자아의식을 이끌어 낸다는 취지는 긍정적이다. 그리고 그 취지를 풍부한 예시와 명쾌한 설명, 거침없는 비판이 뒷받침해 준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표지 디자인과 화질이 떨어지는 흑백 도판이 아쉽다. 인터넷 서점의 판매 지수나 책 제목으로 검색한 결과를 봐도 일반 독자들에게 그렇게 많이 알려진 책은 아닌 것 같다. 표지 디자인을 좀 더 눈에 띄는 것으로, 흑백 도판을 컬러 도판으로 교체하고 더 홍보하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읽히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고 대표 저자가 말했는데, 그 바람대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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