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연예인 이보나
한정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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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끊임없이 옭아매는 식민 체제와 독재 체제,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 자신답게, 자유롭게 살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때때로 소설이라기보다는 증언집, 사회과학 연구서처럼 느껴질 정도로 건조하고 담백하게 이들의 삶을 그리지만 애틋함이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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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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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은 의도로 쓰인 작품을 좋게 평가하지 못할 때는 죄책감이 든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을 평가할 때 이런 죄책감을 느꼈다. 이 소설은 공상표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배우 강은성이 진짜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 하나로 세상의 온갖 편견과 몰이해, 폭력에 맞서 분투하는 인간의 이야기. 정말 좋은 주제이고 내가 마음 깊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소설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이 소설은 메인플롯인 공상표의 커밍아웃과 사랑 이야기가 아닌 서브플롯인 공상표의 어머니 김미승과 그녀의 전 연인 양병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배우인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연예계에서 일해 오던 김미승은 동료인 양병진과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양병진의 말처럼 김미승은 아들에게 줄 사랑이 너무 많아 아들을 도무지 떠나지 못했고, 양병진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헤어졌다. 아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김미승은 양병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양병진은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면서도 김미승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종종 그녀와 만나며 옛 감정을 떠올린다. 그는 아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느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들에게만큼 애정을 쏟지 못하는 김미승의 모습을 보여주는 관찰자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배우자 몰래 옛 연인을 만나면서 애틋한 감정을 떠올리는 것 자체에 공감할 수 없었고, 메인플롯인 공상표의 이야기와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공상표와 김영우의 사랑 이야기가 기대했던 것만큼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우선, 김영우의 구애 방식은 다소 폭력적이다. 김영우는 공상표가 게이임을 직감하고 그에게 너는 정말 게이가 아니냐, 섹스 경험은 있느냐,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냐고 집요하게 캐묻는다. 공상표 본인은 그것이 추파고 작업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 과정에서 둘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이 싫지 않았다고 말한다. 공상표 본인에게는 나쁘지 않았다지만 게이이든 이성애자든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무례하고 폭력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겪는 갈등들이 너무 전형적이며, 두 사람의 사랑을 와 닿게 하는 디테일이 더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김미승이 양병진과 헤어진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가 등 푸르고 비린 생선을 싫어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정어리와 고등어 초밥을 대신 먹어주는 것 같은 사소한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더 생생하고 개성 있게 만드는데, 작가는 그런 디테일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열등감과 세상의 편견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는지 일일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몰입을 방해했던 것 중 하나는 게이는 여성적이다라는 편견이 이 소설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공상표는 어린 시절 소꿉장난이나 인형놀이에 관심이 많았고, 김미승은 아들의 이런 여성스러운행동을 경계해 아들의 인형을 모두 버렸다. 김영우의 단편영화에서 생애 처음으로 게이인 캐릭터를 연기한 공상표는,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이 게이 같은 것, 말투, 몸짓, 목소리가 남자답지 못한 것이 싫었다고 말한다.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이 따로 있을까? 그리고 세상에는 수많은 게이들이 있고, 그들은 그저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를 비판하는 작품인데도 한편으로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온전히 이 소설에 몰입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몇 시간 뒤에 자신이 방화 사건으로 죽는다는 것을 모른 채 김영우가 마지막으로 공상표에게 문자를 보내는 장면이다. 몇 년 동안 공상표에게 다시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하다 공상표가 커밍아웃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몇 번이나 문자를 썼다 지웠다 커밍아웃을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낸다. 그러고 나서 어쩌면 공상표를 다시 만나고 그와 함께 만들지도 모를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는다. 독자들은 그의 기대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죽은 김영우뿐 아니라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앞으로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영화에게 애도를 보낸다. 그리고 자신에게 씌워질 온갖 편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짜 자신으로 살기로 선택한 공상표에게 응원을 보내고, 그가 앞으로 만들어갈 작품들을 기대한다.

 

P.S. 부록으로 실려 있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꽤 알차고 디테일하다. 시놉시스를 읽어 보니 흥미로운 것들도 여러 개 보여 실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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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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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편견에 맞서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가겠다는 메시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공상표와 김영우, 그들의 사랑을 그려가는 데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리고 게이는 여자 같은 남자라는 편견이 이 소설에서도 반복되어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어긋나는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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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선언 - 서브컬처 본격 비평집
텍스트릿 엮음 / 요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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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란 나름대로의 서사 규칙과 관습으로 굳어진 특징들이 있어누구나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 작품을 보는 순간 그것이 어떤 종류인지 알게 되는 콘텐츠들, 그 콘텐츠들을 묶은 집단이다엘프와 마법사가 나오면 판타지하늘에 우주선이 떠다니면 SF, 중국을 배경으로 무예 실력을 겨루는 고수들이 나오면 무협이런 식으로. 2000년대 이후로는 장르가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대중의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콘텐츠들을 포괄하는 의미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르 콘텐츠의 역사가 수십 년 동안 쌓여 왔고웹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 작품대중영화대중음악게임 등의 장르 콘텐츠들이 대중들에게서 큰 인기와 수익을 얻고 있다그러나 장르 문학은 문학의 주류로 여겨지는 순문학과 비교해 비주류로 여겨지곤 하고대중성이 강한 장르 콘텐츠들은 순수 예술 작품들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받는다장르 콘텐츠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비평가들의 모임 텍스트릿은 장르가 주류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미학과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뜻에서, ‘비주류 선언을 한다자신들이 또 다른 주류임을 외치는 ‘B급의 주류 선언이자 ‘Be 주류 선언이다.비주류 선언은 장르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고장르와 관련된 콘텐츠들을 비평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르 콘텐츠를 그저 즐길 거리로만 여기고진지하게 비평하거나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텍스트릿의 연구자들은 장르 콘텐츠를 연구와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우리가 장르 콘텐츠들을 즐기면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짚어낸다왜 판타지 소설들은 대부분 중세시대 서양을 배경으로 할까중세시대 서양이 한국 사회에서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장 거리가 멀고 낯선 세계이기 때문이다한국의 판타지 문학 속 중세 서양은 실제 중세 서양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서양이 근대에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낯선 동양에 대한 환상을 키워 왔지만 그들이 재현한 동양은 실제 동양의 모습과 달랐던 것과 통하는 부분이다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꿔 왔고픽션을 통해 현실을 탈출하려 했다판타지 소설 속 중세 서양은 독자들이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고 욕망을 채우는 공간이라는 기능을 한다이렇게 텍스트릿은 장르 콘텐츠들에 지금의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텍스트릿은 장르 콘텐츠가 한국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되짚어 본다이들은 장르 콘텐츠의 내용 면에서의 변화뿐만 아니라 장르 콘텐츠가 유통되는 방법과 매체에서의 변화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 1990년대에는 장르 문학 작가들이 PC 통신을 이용해 자신의 작품을 연재했다.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장르 문학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이 시기에는 장르 문학 작품들이 주로 개인 사이트에서 연재되었다.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문피아조아라 등 기업형 웹소설 사이트들이 등장했고스마트폰이 발명되고 보급된 이후로는 카카오페이지네이버 시리즈 등의 웹소설 플랫폼들에서 장르 문학이 더욱 흥행하고 있다작가는 웹소설 플랫폼에 소설을 직접 업로드하면서 창작자일 뿐만 아니라 출판사와 같은 출판 주체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게 되었다매체에서의 변화는 내용 면에서의 변화까지 불러왔다온라인 공간에서 더 다양한 독자들과 만나게 되면서무협 소설은 어려운 무공의 개념을 좀 더 쉽게 전달하면서 여성 인권 신장 등 당대의 변화를 반영하게 되었다이 책은 이렇게 내적인 측면만 분석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까지 살펴보면서 장르를 바라보는 시야를 더 넓혀주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더 펼쳐나갈 수 있는 지점에서 논의를 마무리하는 글들이 많다한국형 판타지가 어색한 이유라는 글에서는 왜 창작자들이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한국보다는 서양을 배경으로 판타지 작품을 창작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파헤쳐 보고 있다하지만 한국의 환상성이 어떤 점에서 현실의 질서와 도덕윤리와 맞닿아 있어 현실을 넘어서고 싶어 하는 독자들과 어긋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았다면 좋았을 것이다또한 결론 부분에서 잘 만든’ 한국형 판타지의 예시와 그들이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빈약하다.로맨스와 페미니즘은 공생할 수 있을까에서 저자는 로맨스가 낭만적 사랑이라는 허울을 통해 가부장제를 뒷받침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주장한다그리고 로맨스 소설에서 여성은 로맨스를 통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얻어내며사랑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연대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여성들의 다양한 욕망이 로맨스 소설에 반영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다그러나 로맨스 소설에서 여성이 성취하는 것은 연애 상대인 남자주인공에게 좌우되는 것인 경우가 많다남자주인공의 사랑을 통해 얻은 것이니 그의 사랑을 잃으면 사라지는 것이다그리고 로맨스와 페미니즘이 공생하려면 로맨스 소설에 강간 판타지나 폭력적인 행동이 로맨틱한 행동으로 미화되는 것 등 여성혐오적인 면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이러한 면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좀 더 논의를 진행할 만한데 결론을 내리는 글들을 읽으면서, 지면이나 연구 기간의 한계 때문에 논의를 더 이어가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장르에 대한 연구와 비평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지금다각적으로 장르 콘텐츠를 비평하고 장르와 지금의 우리 사회를 연결해서 탐구해 보는 시도 자체는 나름대로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이 책의 부제는 서브컬처 본격 비평집이지만, ‘본격보다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도이다이 책이 텍스트릿의 첫 번째 결과물이고대표 저자인 이융희 팀장이 다음 책에서는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 다음에는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참고김지혜장르문학·서브컬처에 담긴 독자적 미학경향신문, 2019.08.3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302042005&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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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선언 - 서브컬처 본격 비평집
텍스트릿 엮음 / 요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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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짚어주고 논의를 제기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더 펼쳐나갈 수 있는 지점에서 글을 끝맺어 버리는 글들이 많다. ‘서브컬처 본격 비평집‘이라는 제목과 달리 ‘본격‘보다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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