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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
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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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00년 전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관련 기사를 분석했을까?

너무 다른 나라의 시선을 의식해서도 안 되겠지만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나라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치는지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서도 안 된다우리는 세계 속에서 수많은 나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그 나라들에게 비치는 이미지가 세계 속 우리의 위상과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니까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100년 전 영국 언론의 시각으로 본 조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100년 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구를 포함한 전 세계에 문을 열었던 시기이고외세의 부당한 개입으로 국권을 잃어갔던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당시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제국주의 국가가 당시의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보면서당시 조선이 저지른 실책과 과오를 돌아보고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경계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왜 100년 전에 있었던 세계의 수많은 언론 중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관련 기사에 주목했을까이코노미스트는 1843년 창간되어 지금까지도 간행되고 있는 영국의 경제 전문지이다이코노미스트는 100여 년 동안 세계 각지의 주요 정보를 전달해 왔으며자유경제가 기본 논조이기는 하지만 찬반양론을 모두 다루며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에서 사건을 보고 해석해 왔다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이코노미스트가 조선을 보는 당시 세계의 시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저자는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반의 이코노미스트를 보면서 한국 관련 기사가 거의 없다는 점에 놀랐다고 한다당시 조선에서는 강화도 조약임오군란갑신정변을미개혁대한제국 성립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났지만국제적으로는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100년 전의이코노미스트에서 조선 이야기가 많이 나올 때는 청일전쟁러일전쟁 등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역학 관계에 조선이 얽힐 때였다국가 경제 규모도 수출입 규모도 중국일본에 비교할 수도 없이 작은 나라제국주의 국가들이 탐내는 자원도 풍부하지 않은 나라였던 조선은 오직 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싼 역학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이코노미스트는 안중근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한 한국인으로 지칭하며 이토의 삶과 업적만 자세하게 다루었다일본의 근대화와 세계화에 기여하고 말이 통하는 외교 파트너였던 이토에 비해안중근은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심지어 조선은 차라리 외국으로부터 현대적 행정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조선 국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도 이것이 조선인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정치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라고 일본의 조선 통치를 옹호했다아예 인종이 다른 서구 국가들보다는 같은 동양인인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게 더 쉬울 것이라고 예상하기까지 했다.이코노미스트에 담긴 제국주의 국가의 시선은 이렇게 놀랍도록 차갑다그들은 타인에게 강제로 점령당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뼈저리게 느꼈다세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무관심하고선의만으로 타국을 돕는 나라는 없다복잡한 역학관계에서 살아남으려 할 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지금도 우리는 세계의 강대국들과 복잡한 역학관계로 묶여 있다그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남으려면 100년 전 조선은 세계의 이해관계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했고조선은 그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예상을 깬 나라

 

지난 몇 년간 이뤄진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는 원래부터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은자의 나라의 국민에게서 반항할 만한 기질과 여력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100년 전의이코노미스트에게 조선은 무기력하고 나약해다른 나라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마땅한 후진국이었다차라리 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 현대적 행정 제도와 정치 제도의 수혜를 입는 것이 도움이 되는 나라.

하지만 조선과 그 뒤를 이은 한국은이코노미스트의 예상을 깼다. 1919년 3.1 운동으로 한일합병은 조선 사람들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우리는 독립을 원한다는 것을 세계에 선포했고끊임없이 일본에 저항했다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던 한국인들은 광복 이후 한국 정부가 세워지고 나서 수십 년 동안 정치적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결국 정치적 자유를 얻어냈다너무 자만하고 나태해져서도 안 되겠지만, 100년 전이코노미스트의 선입견을 깨고 국가의 정치적 독립과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이룬 것은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

이 책은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의 이코노미스트속 한국 관련 기사 한 꼭지씩 원문과 함께 소개하고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을 해석하는 이코노미스트의 시각그 시각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다개항 이후부터 한일합병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고본문 뒤에는 연표와 연도별 주요 역사적 사건이 정리되어 있어 당시의 한국 근현대사를 정리하기에 좋다그때의 조선이 어떤 점에서 세계사의 흐름에 대처하는 데 미흡했는지도 명쾌하게 짚어낸다.

하지만 현재의 이코노미스트속 한국 관련 기사는 100년 전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더 언급했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서문에서 지금도 이코노미스트에는 한국 관련 기사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언급하지만, 100년 전의 한국 관련 기사와 지금의 한국 관련 기사를 비교 분석해 보면 이코노미스트를 역사의 거울로 삼아 보려는 의도가 더 잘 살아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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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
박정훈.김선아 지음 / 사계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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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이 내게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은 "마추픽추에는 언제 데려다 줄 거냐"이다. 내가 두 분께 나중에 마추픽추에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스마트폰 잠금화면은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이다. 강원도보다 더 넓은 면적이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다는 이 소금사막은 내가 가 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지금은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친구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만 하지만, 언젠가는 라틴아메리카에 꼭 가려고 한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알아두어야 할 지식들을 모아놓은 책『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를 읽게 되었다. 


  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자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안내서다. 그 동안 나름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도 몰랐던 것들이 꽤 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금, 은, 다이아몬드 등 각종 자원을 빼앗아 오고도 몰락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야기가 특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렇게 얻어 온 자원을 자국 산업이 아니라 외국의 사치품을 사들이는 데 다 써버렸다. 오히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게서 라틴아메리카의 자원들을 대가로 받고 자기 제품을 판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자국 산업 발전에 성공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에게서 빼앗아 온 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사필귀정으로 느껴졌다. 뭐, 영국, 프랑스가 라틴아메리카에서 빼앗아 온 부를 바탕으로 산업 발전을 이룬 건 사필귀정이 아니지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초콜릿, 설탕, 커피의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즐거움은 결국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인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처음 발을 내딛은 이후 유럽에서 만들어진 달콤한 디저트와, 유럽에 들어온 진귀한 과일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자원과 라틴아메리카에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생산된 것이었다. 지금 라틴아메리카의 자원을 자기 것인 양 공짜로 마구 퍼가는 행태도, 노예제도 사라졌지만 한 작물만 대량생산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의 폐해는 라틴아메리카 곳곳에 남아 있다. 한 작물만 대량생산하면 그 작물의 생산에 온 나라의 경제를 의존하게 되고, 꼭 필요한 다른 음식과 생필품을 자국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비싼 값에 들여와야 한다. 한 작물만 집중적으로 대량생산하는 덕분에, 우리는 그 작물이나 그 작물로 만들어지는 초콜릿, 커피를 싼 값에 즐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런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에 미국이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자들 못지않게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게다가 각 나라의 지도자 중 미국의 이익과 어긋나는 정책을 펼치는 사람은 미국의 압력으로 쫓겨나야 했다. 1953년 과테말라의 대통령 하코보 아르벤구스탄이 겪었던 비극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소수의 대지주가 갖고 있는 땅 중 당작 경작하지 않는 노는 땅을 국가가 사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토지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에 땅을 내어주고 싶어하지 않는 대지주 중에 미국의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프루트 사가 있었다. 노는 땅이 많았던 유나이티드푸르트 사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 출신 망명자들로 무장 집단을 만들어 아르벤구스탄을 쫓아내게 했다. 경제적 침략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간섭을 하니,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해됐다. 우리도 일제와 서구 강대국들에게 그렇게 침략당하지 않았었는가.


  남의 도움을 받으면 남의 간섭과 침략도 뒤따라 오니,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을 스스로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룰라가 그들이다. 그들은 빈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토지, 주택, 교육, 의료, 문화 등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빈민들에게 지원했다. 룰라는 반대에 부딪쳐도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부른다."고 말하며 과감하게 빈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펼쳤다. 다만 이들의 실책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지금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스의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부담을 떠안고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룰라는 경제 성장을 위해 브라질 안의 아마존 숲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을 방치했고, 퇴임 이후 그가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이 수 차례 적발됐다. 이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실려 있어야 독자들 스스로 이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 불평등을 몰아내고 모든 국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려던 이들의 뜻은 본받아야겠지만, 그들의 공적과 실책을 꼼꼼히 점검해 봐야 그들과 같은 지점에서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아쉬운 점이 있지만『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알아두면 좋은 것들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이야기하는 듯한 문체로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즐겁게 라틴아메리카를 알아갈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채들을 옮겨 온 듯한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들이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분위기를 더욱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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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뒷골목을 읊다 - 당시唐詩에서 건져낸 고대 중국의 풍속과 물정
마오샤오원 지음, 김준연.하주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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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전쟁, 법으로는 볼 수 없는 역사들이 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역사, 조정과 왕실의 역사인 정사正史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일에 기뻐했고 슬퍼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중국사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이고 다채로웠던 시대였던 당나라는 정사만으로 그 다양한 면모를 다 알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의 작가 마오샤오원毛曉雯은 당나라의 시로 눈을 돌렸다. 시는 공식적인 역사서와 달리 국가나 군주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아도 된다. 역사서처럼 나라의 정책이나 큰 자연재해를 기록할 수도 있지만, 가족들의 일상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 한가로울 때 마시는 차 한 모금 같은 각자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기록할 수 있다. 이 사적인 이야기들이 모여 생동감 넘치는 한 시대의 실상이 된다. 저자는 당나라 사람들이 쓴 시 5만 여 편을 모은 시집 『전당시全唐詩』에 담긴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문인들의 자기 홍보, 결혼 풍습, 꽃에 대한 사랑, 경쟁심 등 아홉 가지 주제로 정리했다. 그 책이『당나라 뒷골목을 읊다』이다. 


  당나라 사람들에게 시는 무엇이었을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일상 속에서 시가 워낙 다양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당나라 과거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은 진사과進士科였는데, 진사과 시험은 시를 짓는 것이었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직무시험인데도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책을 제안하라고 하는 대신 시를 지으라고 한다. 과거에 응시하는 선비들은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진사과 시험만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시 중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골라 고관대작들에게 보여주었다. 진사과 시험에서 답안은 이름을 적어 제출했기 때문에, 시험을 보기 전에 이미 시로 명성을 얻은 응시자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자기 뜻을 펼치고자 하는 당나라의 선비들에게 시는 자소서이자 포트폴리오였던 셈이다. 이런 실용적인 용도 말고도 시는 일종의 일기장 역할을 했다. 당나라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곳에 가서 어떤 것을 즐겼는지 사소한 일상까지도 시로 기록했다. 혼인식 날 신부를 빨리 나오라고 재촉할 때도 시를 읊었고, 연애 상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거나 이별을 고할 때도 시를 읊었다. 당나라 사람들에게 시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있어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작자 미상, <유기도遊騎圖>, 당나라. 당나라 사람들은 마구(馬球, 말을 타고 공을 막대기로 치면서 하는 스포츠), 줄다리기, 씨름, 투계 등 격렬한 경기를 즐겼다. 이 그림에도 마구를 하는 당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북을 두드리니 어룡희(戱, 광대들이 탈을 쓰고 물고기가 용으로 변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광대놀음)가 어지럽고, 종을 치니 씨름이 펼쳐진다."는 구절은 경기장의 열기를 전해준다. 


  저자는 시에 담긴 당나라 사람들의 호쾌하고 개방적인 성품을 사랑한다. 지체 높은 권력자에게 뵙기를 청하는 간알干謁도 당나라 사람들에게는 아부가 아니라 당당한 자기 홍보였다. 아직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선비는 조정에서 정책을 논하지 못하는 대신, 권력자에게 국가 정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또한 당나라는 유난히 승부욕이 강한 시대였다. 당나라 사람들은 서민들부터 왕족들까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두 편으로 나누어 시합하는 것을 좋아했다. 차 끓이기, 향 피우기 같은 소소한 취미에서조차 적극적으로 경쟁을 벌였다. 상대방에게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이 당나라 사람들의 역량을 끌어올렸다.


장훤, <괵국부인유춘도>, 당나라. 맨 오른쪽에서 관복을 입고 말을 탄 사람은 남성이 아니라 남장을 한 여성이다. "새로운 화장 하며 정교하게 두 눈썹을 그리고, 상주의 비치는 이마 가리개로 되는 대로 싸맸네. 바로 마주한 채 반들반들한 홀(옛날 관리가 황제를 알현할 때 손에 들었던 막대)을 몰래 문지르고, 천천히 걸으며 가볍게 무늬 부서지는 물결을 밟는다." 남자들의 관복을 입고 남장한 여인을 묘사한 이 시에서 여성들의 남장이 당나라 때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여성들 또한 씩씩하고 자기 감정에 솔직했으며 자존심이 강했다. 유교에서 여성의 질투를 죄악으로 규정하는데도 남편이 첩이나 기생을 가까이 하면 질투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남편에게 버림 받는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이별을 맞았다. 남성이 이혼할 때보다는 제약이 많았지만 여성도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재혼할 수 있었고, 두 번, 세 번까지 결혼한 공주도 있었다. 유교 윤리에서 여성이 남장을 하는 것은 하늘이 정한 법도를 어기는 짓이었지만, 당나라 여성들은 남장을 즐겨했고 칼과 화살로 무장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남자들처럼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고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하는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달랬을 것이다. 여인들에게 남장하는 자유나마 안겨준 것은 당나라가 다른 시대에 비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당나라와 당나라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지만 그들을 마냥 찬양하지만은 않는다. 당나라 여성 중 기생들만이 유일하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남성의 유흥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방관으로 부임했다 관기와 사랑에 빠진 관리가 임기를 마쳤을 때 자신이 사랑하는 관기까지 후임 관리에게 인수인계한 일, 총애하는 기생이 자신을 정식 아내로 받아달라고 부탁하자 "진흙 속의 연꽃(기생을 비유한 말)이 더럽혀지지 않았더라도, 집의 동산으로 옮겨오면 (더러운 것이) 없지 않으리."라는 시로 응수하며 거절한 일 등을 예로 들면서, 기생의 미모와 재주를 찬양하는 당나라 시가 아무리 많았어도 기생은 남성들에게 물건이나 애완동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단점을 직시하고 비판하기 쉽지 않은 일인데도 저자는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시와 연관된 옛 중국 그림들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책에 정취를 더해준다. 모두 당나라 시대의 그림은 아니고, 후대의 그림이 더 많지만, 당나라 때 쓰인 시나 당나라 때의 고사, 전통을 담고 있는 그림이라 본문에 나온 시들과 무관하지 않다. 당나라 시대의 그림들은 양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천 년하고도 수백 년 전의 그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색채와 필치로 당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당나라 뒷골목을 읊다』의 원서 표지(위)와 한국어판 표지(아래). 노란색으로 뒤덮이고 딱딱한 글씨체를 박아넣은 원서 표지와 달리 한국어판 표지는 파스텔톤 색채들과 단아한 글씨체로 시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원서 자체도 훌륭하지만 한국어판은 출판사에서 공을 들여 만든 것이 보인다. 표지 전체를 샛노란 색으로 덮고 직각에 가까운 딱딱한 글씨체로 제목을 넣은 원서 표지와 달리, 파스텔톤 색채들과 단아한 글씨체를 넣은 한국어판 표지는 시적인 분위기를 더욱 살렸다. 소단원 표지에는 청나라 화가 추일계의 그림 <도화도桃花圖>에서 따온 복숭아꽃 문양을 넣어 화사함을 더해준다. 시각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본문 내용에도 공을 들였다. 요즘은 주석을 본문 뒤에 넣는 미주로 처리하는 것이 대세다. 본문 자체만 페이지 위에 깔끔하게 놓기 위해서다. 이 책에서 보충 설명은 본문 페이지 아래의 각주로 넣고, 해당 구절이 포함되어 있는 시의 제목과 저작, 출처, 한문 원문은 본문 뒤의 미주로 넣었다. 보충 설명만 읽으면 충분한 독자들은 번거롭게 본문과 미주 페이지를 왔다갔다 할 필요가 없고,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은 독자는 미주를 보면 된다. 독자들을 배려한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의 출처와 제목, 저자는 원서에는 없는데, 중문학 연구자인 두 번역자가『전당시全唐詩』를 샅샅이 뒤져 300여 개에 이르는 구절의 출처와 저자, 제목을 모두 찾아내 주석으로 달았다고 한다. 원서 자체도 훌륭한데 한국어판에 들어간 공도 많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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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 만들기 - 피그말리온 신화부터 계몽주의 교육에 이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 걸작 논픽션 13
웬디 무어 지음, 이진옥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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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해당 책, 희곡 <피그말리온>,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스포일러 포함


  고대 그리스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었다. 그는 현실의 여인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실물 크기의 여인상을 만들었다. 그 여인상이 얼마나 완벽했는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하게 되었고,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자신의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그의 기도에 응답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고, 피그말리온은 사람이 된 조각상을 아내로 맞았다. 18세기 말 영국에도 피그말리온처럼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아내를 만들려고 한 남자가 있었다. 문제는 그가 조각상이 아닌 사람을 자신의 이상에 맞는 완벽한 아내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은 조각상처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도 말이다.


(왼쪽) 완벽한 아내를 만들기 위한 실험을 했던 토머스 데이. (오른쪽) 토머스 데이의 실험 대상이 되었던 소녀 사브리나 시드니. 만년에 그려진 초상화다.


  토머스 데이 Thomas Day 는 18세기 영국의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그가 친구 존 빅널과 함께 쓴 시 <죽어가는 검둥이 The Dying Negro>는 흑인 노예의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의 부당함에 공감하게 했다. 그는 노예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선거권을 위해서도 싸웠고,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했으며 아이들을 위한 동화도 썼다. 그러나 그가 보호하고 권익을 찾아주려고 애쓰는 대상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믿고 의지하던 어머니의 재혼에 충격을 받고 연애에 몇 번이나 실패하면서 데이는 여성들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여성을 의심하고 혐오하게 되었다. 


  데이는 자신이 아직 제대로 된 여성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연애에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또 다른 사랑을 찾아나섰을 텐데, 그는 제대로 된 여성이 세상에 없다면 만들어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그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여성, 자신의 이상에 맞는 여성은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며 거친 시골 생활을 견딜 만큼 건강하고, 자신과 말이 통할 정도의 지성을 갖추면서 자신의 희망사항에 따라 완벽하게 순종하는 여성이었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면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당시의 남성으로서 진보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데이는 여성이 자신과 동등한 존재가 아닌, 자신의 완벽한 부속품이 되어주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미 교육 받고 가치관이 정립된 성인 여성이 아닌 어린 소녀를 데려와 자신에게 맞는 아내로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부모도 자기 딸이 미래의 남편의 손에 넘어가 그의 뜻대로 양육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데이 자신도 자신이 하는 일이 떳떳하지 않음을 알았던지, 아무 연고도 없는 고아 소녀를 고아원에서 데려왔다. '미래의 내 아내로 키우기 위해 데려갑니다.'라고 말하면 고아원에서도 당연히 아이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데이는 소녀를 하녀로 데려간다고 거짓말했고, 고아원은 아무 의심 하지 않고 흔쾌히 소녀를 내어주었다. 그는 예비용으로 소녀 한 명을 더 데려왔다. 둘 중 자신의 마음에 드는 소녀를 아내로 맞을 생각이었다. 나중에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 데이는 소녀들의 이름까지 바꾸었다. 앤 킹스턴에게는 사브리나 시드니라는 이름이, 도카스 카에게는 루크레티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데이는 소녀들에게조차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고, 아무런 설명 없이 두 소녀에게 교육 실험을 했다. 자신과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지성을 갖추게 하기 위해 소녀들에게 지리학과 물리학, 천문학을 가르쳤고, 사치스러운 풍조에 물들지 않도록 외출할 때도 화장을 하지 않고 검소한 옷을 입게 했다. 사교계가 겉치레만 하고 헛되다고 경멸했기 때문에 사교를 위해 악기 연주나 춤을 배우지도 못하게 했다. 집안일은 하인들이 아닌 아내가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집안일을 두 소녀에게 모두 맡겼다. 좀 더 발랄하고 활발한 루크레티아를 내친 뒤 사브리나에게 실험을 집중하게 되면서, 실험은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게 되었다. 데이는 고통을 초연하게 견뎌내야 한다면서 사브리나를 연못 깊은 곳에 던졌고, 사브리나의 피부 위에 끓는 밀랍 덩어리를 부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고아원에서 꺼내주고 먹여주고 입혀주는 데이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했던 사브리나도,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하고 고통당하게 되자 데이에게 반항했다. 


 놀랍게도 데이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데이에게 완벽한 아내를 만들겠다는 계획 이야기를 들었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관하거나 심지어는 협조했다. 어떤 친구는 고아 소녀를 데려오는 데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었고, 어떤 친구는 데이와 함께 직접 고아 소녀를 골랐다. 데이의 계획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지인까지 있었다. 데이의 실험이 점점 더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고 실험을 중지하라고 당부한 지인들도 있었지만, 그들조차 실험으로 고통 받는 소녀보다는 실험을 하면서 광기에 사로잡혀가고 실험이 발각되었을 때 비난을 받을 데이를 더 걱정했다. 


  지인들에게 그렇게 무모한 실험을 하느니 다시 연애를 하라는 충고를 받고, 소녀들이 자신의 뜻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 것에 절망한 데이는 소녀들을 내버려두고 연애를 몇 번 더 했다. 그러나 한 연인은 아내가 완벽히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데이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부의 행복은 두 사람의 평등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며 데이의 청혼을 거절했다. 그 뒤에 사귄 연인에게는 푹 빠져 있었는지, 웬일로 자신을 바꿔볼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는 온갖 조건을 요구하면서 지저분하고 매너도 없는 자신의 모습은 고칠 생각도 안 하던 위인이 말이다. 연인의 마음에 드는 멀끔한 신사가 되기 위해 1년 동안 수업까지 받았지만, 오히려 더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에 경악한 연인에게 차인 뒤, 데이는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사브리나에게 눈을 돌렸다. 자신의 아내 후보에서 밀어낸 뒤 시골의 기숙학교에 보내놓고 몇 년 동안 신경도 쓰지 않다, 연인에게 차이고 나서야 사브리나를 다시 아내 후보로 생각한 것이다. 사브리나는 자신의 후원자라고만 생각했던 데이가 자신을 아내 후보로 여기고 있다는 것에 경악했고, 당연히 데이의 청혼을 거절했다. 데이도 사브리나의 반항적인 모습을 보고 사브리나를 아내로 맞으려는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데이의 혹독한 실험을 겪었지만 사브리나는 사람이었고,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처럼 호락호락하게 조물주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인간이 평생 결혼하지 않기를 바랐건만, 안타깝게도 데이는 결국 결혼을 했다. 데이의 높은 이상에 반한 에스터 밀네스라는 여성이 데이가 연애에 실패하고, 사브리나에게 한 청혼도 실패하는 과정까지 모두 지켜보면서 끝까지 그를 기다렸다. 연애도 아내 만들기 실험도 실패한 데이는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에스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에스터는 데이 못지않은 지성에 데이보다 훨씬 훌륭한 인품을 지녔는데도, 데이의 뜻대로 제일 가까운 이웃과도 십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외딴 시골집에서 남편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했다. 인내심 강한 에스터조차 데이의 독재를 견뎌내지 못하고 종종 데이와 부부싸움을하고 가출했지만, 매번 자신이 다 잘못한 거라고 사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데이가 41세의 젊은 나이에 낙마 사고로 사망했을 때 (나는 속이 시원했지만) 에스터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듬해에 데이를 따르듯 세상을 떠났다.


 에스터는 데이의 죽음(또는 자신의 죽음)으로 데이가 씌워놓은 굴레에서 해방되었지만, 사브리나는 데이의 아내 후보에서 탈락된 이후로도, 심지어 데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고통 받았다. 데이는 사브리나의 삶에 계속 간섭해, 성실한 젊은 약사가 사브리나에게 청혼했을 때도 사브리나 대신 그에게 거절하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면서 정작 사브리나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브리나는 그 약사 대신 데이의 친구인 빅널과 결혼했지만, 빅널은 무절제하고 방탕하게 살다 빚과 두 아들만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사브리나는 주변 지인들의 호의 덕분에 어느 사립학교의 관리인이 되었고, 수십 년 동안 성실히 일하면서 학생들과 아들들 모두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러나 데이의 친구들이 회고록을 출간하고, 그 회고록들에 사브리나의 이야기가 실리면서 사브리나는 만년에 남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물론 이런 비인간적인 실험을 한 데이도 큰 비난을 받았지만, 사브리나는 아무 잘못도 없이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안줏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사브리나는 끝까지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고 가족들과 학교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살다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완벽한 아내를 만들겠다는 데이의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문학 작품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아일랜드의 희곡 작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은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로 영화화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피그말리온>의 주인공 일라이저는 자신을 우아한 숙녀로 교육시킨 히긴스 교수가 자신을 실험대상으로만 대하는 것에 반발해, 다른 사람과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일라이저가 히긴스 교수와 맺어지는 것으로 결말을 바꾸어, 피조물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당당한 결말에서 한참이나 퇴보했다. 그리고 피그말리온 신화가 낳은 환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 많은 인기를 얻었던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는 아버지로 설정된 이용자가 여자아이를 입양해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기본 설정인데, 경악스럽게도 딸이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와 결혼하는 결말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결말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는 이러한 결말이 이루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완벽한 아내를 창조하겠다는 것은 이루지 못할 목표다. 물론 갈라테이아(후대 사람들이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에 붙인 이름이다.)도 신비의 존재일 따름이다."


  우리는 완벽한 상대방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약자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 데이가 완벽한 아내를 만들겠다는 이유로 사브리나에게 비인간적인 실험을 했는데도, 데이는 부유한 귀족에다 지식인 남성이라는 이유로 친구와 지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비호를 받았다. 데이의 친구들은 사브리나에게 연민을 가졌지만 데이가 사브리나에게 비인간적인 실험을 하고 사브리나의 삶을 통제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다. 사브리나는 고아, 가난한 사람, 여성이라는 삼중의 굴레를 쓰고 있는 약자였기에 보호받지 못했고, 피해자였는데도 온갖 소문에 시달렸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 없이 실험 대상이 되고 고통 당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한 사브리나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게임이나 문학 작품 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사람에게 자신의 환상을 투영하고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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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모델, 미국 - 미국의 인종법은 어떻게 나치에 영향을 미쳤는가
제임스 Q. 위트먼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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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히틀러의 모델이라니, 선뜻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스스로를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의 수호자, 세계 모든 민족에게 개방된 땅으로 자부해 왔다. 히틀러에게 미국은 최대의 적이었고,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은 미국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민주주의와 평등을 혐오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이 책은 나치 독일이 반유대주의 법인 '뉘른베르크 법'(1935년 발표)을 제정할 때 미국의 인종 차별적인 법들을 참고했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법학자인 저자는 미국이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을 역사의 어두운 면을 파헤친다. 


  수많은 인종이 섞여 있는 미국이지만 건국 당시부터 인종주의(인종의 생리학적 특징에 따라 민족 사이의 불평등과 억압을 합리화하는 비과학적인 사고방식)는 미국 법에 스며들어 있었다. 미국 초대 의회에서 제정된 법 중 1790년의 귀화법은 "자유로운 백인 외국인"에게만 귀화를 허용했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도에서 해방된 흑인들에게 미국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868년에는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모의 시민권 여부와 관계 없이 미국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 받는다"는 수정헌법 14조가 헌법에 추가되었다. 그러나 문맹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법, 노예 해방 이전에 조상이 투표권을 가졌을 경우에만 투표권을 주는 "조부조항" 등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으려는 교묘한 인종 차별법들이 생겨났다. 1898년 미국이 스페인에게서 필리핀의 식민 지배권을 넘겨받았을 때 필리핀 사람들은 법적 권리를 가진 미국 시민이 아니라 단순한 "비(非)시민 국적자"가 되었다. 


 나치의 법조인들과 입법자들은 이러한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사례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연구했다. 독일에서는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이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만큼이나 쉽다고 비꼬았던 히틀러가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꼼수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나치 독일은 뉘른베르크법에서 유대인의 국적과 참정권을 박탈해 단순한 체류자로 전락하게 했다. 나치 법률가들은 미국인들의 출중한 법적, 정치적 재능과 교양을 보여준다며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법들을 찬양하기까지 했다. 


 '인종의 순수성'을 지키는 점에서도 나치 독일은 미국을 모범사례로 보았다. 나치 독일에게 미국은 게르만 족의 친족이자 아리아인의 한 갈래인 노르딕 인종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세운 국가였다. "백인과 흑인의 혼인, 백인과 위로 3대 이내에 흑인 조상이 있는 자의 혼인, 또는 백인과 말레이 인종의 혼인, 또는 흑인과 말레이 인종의 혼인은 영구히 금지되며 무효다. 이 조항의 규정을 위반하는 자는 18개월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메릴랜드 주의 혼혈금지법, 한 방울만 흑인의 피가 섞여 있어도 흑인으로 간주한다는 "한 방울 법칙(one drop rule)"은 나치 법조인들조차 지나치게 가혹하다고진저리치게 만들었다. 다만 미국이 유대인을 백인으로 취급하는 것만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혈통이나 배우자의 인종, 과거의 노예 신분 등 다양한 기준으로 인종을 규정했던 미국의 법들을 참조해, 뉘른베르크법에서는 조부모 중 두 명이 유대인이고 유대인과 혼인하거나 유대교 공동체의 일원인 사람을 유대인으로 규정했다. 


 나치가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할 때 미국의 영향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은 독일 외에 인종주의를 법에 적용했던 유일한 나라였고, 그러한 나라가 세계에서 강대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 나치를 자극했다. 미국이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독일에 맞서게 되면서 둘은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고,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데 크게 공헌한 것도 사실이다. "이게 다 미국의 잘못입니다. 미국을 탓하세요."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의 과거에는 우리(미국인)가 잊고 싶어하는 측면도 담겨 있고, 그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계 인종주의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치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인 학자인 저자나 미국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뼈 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게다가 현재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출마 당시 출생시민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올해 10월 30일에도 "외국인이 미국에 들어와서 아이를 낳으면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모든 혜택을 주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뿐"이라며, 출생시민권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미국에 들어오는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고 있고,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의 대표였던 극우 인종주의자 데이비드 듀크는 그런 트럼프를 지지한다. 인종주의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려는 이 시기가, 미국인들이 교묘한 인종차별법을 최근까지도 시행하고 있었던 자국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할 때다.


 그런데 이것이 미국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다양한 인종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인종주의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 우리는 동양인으로서 인종차별과 인종혐오 범죄의 희생양이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는 이민자와 난민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나치는 이 세상에서 유일무의한 극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극악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보다 선하다고 자신하면서 자신 안의 악을 직시하지 못할 때 나치의 유대인 학살 같은 비극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또한 읽고 되새겨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참고 기사: "트럼프 '출생시민권' 폐지 발언에 수정헌법 14조 논란 격화"(2018.12.31.뉴시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1031_0000459692&cID=10101&pID=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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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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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2 1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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