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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정원 - 명화를 탄생시킨 비밀의 공간 정원 시리즈
재키 베넷 지음, 김다은 옮김 / 샘터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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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로는 봄이지만 테라스에 화분들을 내놓을 때는 아직 되지 않았다그 대신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이는 공터에는 매화꽃이 반쯤 피어났다다음 달 초에는 동네 곳곳에 벚꽃이 필 것이다이렇게 동네 전체가 내 정원인 양 꽃 피는 풍경을 즐기고 있지만지치고 힘들 때 언제든지 그 안에서 쉴 수 있는 나만의 정원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자기 정원을 갖고 있었고 그 풍경을 직접 그림으로 담아냈던 화가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그들의 행복을 간접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책이화가들의 정원이다이 책은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들이 직접 가꾸고 그 안에서 쉬고 작품을 만들었던 정원을 사진과 그림으로 담아냈다.


(위) 덴마크의 화가 P.S. 크뢰이어의 작품 <장미들>. 이 책의 표지 그림으로 쓰였다.

(아래) 영국의 화가이자 공예가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버드나무 잎 무늬 벽지. 이 책의 면지에서 활용되었다.


  『화가들의 정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원 같다표지부터 하얀 장미들과 초록색 잔디그 위에 비치는 햇살로 가득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덴마크 화가 P.S. 크뢰이어의 그림 <장미들>이다종이의 결이 그대로 보이는 약간 거친 질감의 표지 덧싸개는 캔버스를 연상시킨다표지를 지나면 19세기 영국의 화가이자 공예가였던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버드나무 가지 무늬가 프린트된 면지가 나타난다면지의 버드나무 숲을 지나면 화가들이 자신의 정원 풍경을 그린 그림들과 과거의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현재의 모습을 담은 컬러 사진들이 펼쳐진다책 전체가 그려지거나 사진으로 찍힌 꽃과 나무로 가득하다다른 책들보다 가로로 더 길쭉한 판형은 세로보다 가로가 더 긴 풍경화들과 풍경 사진들을 싣는 데 적합하다.


클로드 모네의 수경 정원 풍경. 모네는 수면에 반사된 빛을 포착하는 데 힘썼기 때문에, 수련을 비롯한 수경식물들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 수면을 가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했다.

클로드 모네, <수련이 핀 연못>, 1899. 모네는 정원의 수련이 핀 연못을 자주 그렸다. 이 그림에는 모네가 1895년 설치한 일본풍 다리도 그려져 있다. 


  미술사 전공자가 아니라 조경 전문가가 쓴 책이지만 미술사 쪽으로도 설명은 잘 되어 있는 편이다앙리 마티스를 추상화가’, ‘유명한 화가가 아닌 화가라고 하는 것이 의아하지만(마티스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형태의 종이 오리기 작품으로 추상미술에 영향을 미쳤지만본인은 구상화가였으며 피카소와 함께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칭송받는다.) 화가 한 명 한 명의 미술 경향과 작품 활동을 충실히 설명하고 있다. ‘정원이 작품 속에 담기고 예술이 정원 속으로 흘러들어가 하나가 되었다는 서문의 문장처럼화가의 예술과 정원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남기며 그 화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빚어냈다정원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만큼이나 그 화가의 개성과 취향을 또렷이 보여주면서붓과 캔버스뿐만 아니라 흙과 씨앗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데도 열중했던 화가들의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이렇게 풍부한 사진과 그림이야기를 담고 있는데도 화가들의 정원에 있다고 상상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 있다우선 도판의 명도와 채도가 낮은 것이다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를 담은 그림과 사진인데도 실제로 인쇄된 책을 보면 생각보다 색감이 어둡고 차분하다좀 더 선명하고 화사한 정원 풍경을 원했던 독자들에게는 아쉬운 일이다모니터와 인쇄된 지면의 색상 혼합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인쇄된 지면에서 색감이 좀 더 어둡고 차분해질 수밖에 없지만색을 보정하면 원래의 밝고 선명한 색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그리고 정원 관련 용어를 역주로 설명했으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포르티코퍼걸러코티지 정원정형 정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조경원예에 문외한인 독자로서 좀 더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으면 했다이건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지만 책에서 언급되는 식물 중에 낯선 이름이 많은 것도 내 상상을 가로막았다.

 

  이런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출간된 지 몇 달 만에 5쇄나 찍은 것을 보면 이 책이 독자들에게서 꽤 호응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코로나 때문에 집안에 갇혀 있게 된 독자들에게는 먼 곳의 아름다운 정원을 책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될 것이다나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이 책에 실린 정원들의 그림과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으니까책을 펼치고 마음에 드는 풍경을 골라서 그 안에 있다는 상상을 한다면화가들이 그랬듯이 잠시 동안의 평화와 휴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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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 나뭇조각에 담겨 있는 백제인의 생활상
백제학회 한성백제연구모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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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고대의 국가인데다 다른 나라에 멸망당해서인지 백제 관련 사료는 다른 시대에 비해 유난히 적다. “토기 파편 몇 조각을 가지고 논문 수십 페이지를 쓰려니 죽겠다는 백제사 연구자분의 한탄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날 정도다사료 부족으로 허덕이는 백제사 연구자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목간木簡이다목간은 종이가 보편화되기 이전에 사람들이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썼던 나뭇조각이다. 1999년 부여 궁남지에서 백제시대 목간이 대량으로 출토된 이후로 20여 년 동안 목간을 통한 백제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만연구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연구 결과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그래서 백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중 독자들에게 목간을 통해 새롭게 해석한 백제사를 들려주려 만든 책이 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나주 복암리에서 발굴된 목간들. 백제의 지방들에서도 문서 행정이 이루어졌고, 지방 관리들이 주민들의 연령대별 인구 수, 재산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시대의 목간들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정치행정과 관련된 것이다백제 조정에서는 목간과 종이를 활용해 문서 행정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종이로 된 행정 자료는 남아 있지 않으니 백제시대의 문서 행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려면 목간을 연구할 수밖에 없다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같은 우리나라 사서에는 없고 주서같은 중국 사료에만 나와 있던 외경부라는 중앙 행정 기구의 명칭이 적혀 있었다. ‘외경부의 철로 면 10냥을 대신한다고 쓰여 있는데철과 면은 특산물로 바치는 세금인 조調에 해당하는 물품이다이를 통해 외경부가 조세 등 백제의 국가 재정을 관장하는 행정 기구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또한 수도인 부여뿐만 아니라 나주 같은 지방에서도 목간이 발굴되어 지방에서도 목간을 활용해 문서 행정을 운영했다는 것이 밝혀졌다나주 복암리에서 발굴된 호적 목간에는 해당 지역의 연령대별 인구수와 전답별 면적가축의 수가 적혀 있다여기에서 백제의 지방 관리들이 주민들의 인구수와 재산소득 상황까지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이와 같이 백제시대 목간은 현존하는 역사서에 남아 있는 내용을 증명하고 보완할 뿐만 아니라백제사에 대한 새로운 내용까지 밝혀내고 있다.


부여 쌍북리에서 출토된 구구단 목간(왼쪽)과 해독본(오른쪽), 9단부터 2단까지 구구단이 적혀 있다. 이 목간 덕분에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이미 구구단이 활용되어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진 출처: 한국문화재단


  백제시대 목간은 백제의 정치행정뿐만 아니라 백제 사람들의 학문 수준도 알려준다2011년 부여 쌍북리에서는 2단부터 9단까지 구구단이 기록된 목간이 발굴되었다그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구구단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기 때문에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구구단이 들어왔다는 설까지 있었다그러나 백제시대의 구구단 목간이 발견되면서 삼국시대부터 이미 구구단이 활용되어 오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외우는 구구단이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백제가 멸망한 지 수백 년 뒤인 중세시대의 유럽에서도 숫자를 쓸 줄 아는 것은 소수의 상류층과 지식인들뿐이었고 이들조차 덧셈과 뺄셈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그렇기에 구구단 목간은 백제가 복잡한 산술 체계를 이해하고 활용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목간을 통해 백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백제 왕들이 묻혀 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 옆에는 왕들의 명복을 비는 절 능사陵寺가 있다이 능사 터에서 자기사子基寺라는 세 글자가 적힌 목간이 발굴되었다. ‘자기사라는 절에서 능사에 보낸 물품에 붙인 꼬리표로 추정된다조경철 교수는 자기사를 아들의 터가 되는 절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이 절을 부모가 아들을 위해 세운 절이라고 본다부여 왕흥사 터에서 출토된 사리함에 왕흥사는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세운 절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조경철 교수는 왕흥사가 자기사와 같은 절이라고 가정하고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위덕왕의 슬픔을 짐작해 본다능사에서는 오랜 세월 맺은 업으로 같은 곳에 태어났으니서로 옮고 그름을 물어 무엇하겠습니까부처님께 절 올리고 귀의합니다라고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조 교수는 이 목간에 신라군에게 죽임당한 아버지 성왕성왕과 함께 목숨을 잃었던 백제 병사들에 대한 위덕왕의 슬픔이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자기사와 왕흥사가 정말 같은 절인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능사에서 발견된 목간에 대한 해석도 연구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지만목간을 통해 역사 이면에 담긴 백제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려는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대중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보니 학술서보다는 쉽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것이 느껴진다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글씨 크기가 크고 행간도 넓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편집과 디자인이 세련되고 깔끔하며모든 사진 자료들이 컬러로 되어 있어 보기에도 좋다. 

 

  하지만 각 챕터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시대 목간들 중 중요한 몇몇 목간들을 공통적으로 다루다 보니 겹치고 반복되는 내용들이 꽤 있다물론 각 장을 맡은 저자에 따라 목간을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저자가 설명하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하지만비슷하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그리고 연구 결과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보니 대중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몇 줄의 목간에서 백제의 정치행정사회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유추해 내는 학자들 덕분에 우리는 백제의 숨겨진 면들을 보게 된다중국일본의 사료나 유사한 사례들까지 살펴보면서 목간에 적힌 사실의 파편들을 역사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놀랍다수십 만 점의 목간들이 출토된 중국과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500여 점의 목간만이 출토되었고그 중 70퍼센트는 신라 목간이라고 한다하지만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목간이 꾸준히 출토되고 있다고 하니백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이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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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세계사 - 인류 첫 거래부터 무역 전쟁까지, 찬란한 거래의 역사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박홍경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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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백수십여 년 전에 쇄국정책이 시행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나라들과 활발히 교역하고 있다. 무역을 활발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역 없이는 살 수 없는 정도다. 자동차들은 석유가 없으면 굴러가지 않고, 중국산 생활용품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빠듯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는 값싼 외국 먹거리들을 사는 게 유리하니까. 우리만 외국의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먼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한국산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사용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전 세계는 어떻게 이토록 가까워졌을까. 『무역의 세계사』의 저자 윌리엄 번스타인은 물건을 운반해 와서 다른 물건과 교환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타인과 물건을 교환하려는 인류 행동의 기원이 1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문자가 생기기도 전부터 인류는 자기 지역의 물건을 다른 지역으로 가져가서 그곳의 물건과 교환해, 자신에게 필요하지만 자신에게는 없는 물건을 얻어 왔다. 저자는 무역은 인간의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고, 무역을 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무역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은 없기에,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무역이라는 주제로 세계사를 살펴보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보통 한 가지 주제로 역사 전체를 보는 책은 미시사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이 책은 거시사와 미시사와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무역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무역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본다는 점에서는 미시사지만, 무역의 주도권을 잡는 자가 세계의 주도권을 잡아 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역의 역사는 세계사의 큰 흐름을 살펴보는 거시사가 될 수밖에 없다. 미시사는 역사의 큰 흐름으로 정리되지 않고 잡다한 이야기들의 모음으로 그칠 수 있고, 거시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를 움직여 온 작은 요인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세계 역사의 큰 흐름에 따라 무역이 사람들과 세계를 변화시켜 온 모습들을 엮어나가면서 거시사로서도 미시사로서도 제 역할을 다해낸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수천 년의 시간과 고대 중동 지역부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까지 전 세계, 역사학, 경제학, 생물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무역‘이라는 주제 하나로 아우르는 저자의 역량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스인들이 곡물이 풍부한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는 데 열심이었던 이유를 알려면 그리스의 척박한 풍토를 알아야 하고, 무역풍이 어떻게 무역선의 항해에 도움이 되기도 장애가 되기도 했는지 알려면 코리올리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워낙 많은 시대와 지역, 인물, 사건이 등장하는 데다 역사 외의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의 배경 지식까지 겹쳐 따라잡기 벅차다고 느껴질 정도다.(본문에 있는 지도들만으로는 모자라 고등학생 때 쓰던 사회과부도, 역사부도 교과서, 구글 지도까지 동원하면서 읽었다.)


이 모든 것은 저자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 무역의 역사는 자유무역을 향해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저자의 의도는 근대의 무역사를 다루는 부분부터 뚜렷이 보인다.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근대 이후, 많은 나라들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 등의 수단을 동원해 보호무역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자유무역주의자들과 보호무역주의자들 사이의 치열한 논쟁과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자유무역이 주는 이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1947년 23개국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에 서명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수만 건, 수천억 달러 규모의 관세 인하가 이루어지며 역사는 자유무역을 향해 흐름을 돌리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유무역을 해야 할까? 자유무역은 인류에게 전반적으로 이익을 안겨줘 왔기 때문이다. 관세와 운송비 부담이 사라지면서 전 세계에서 화물은 보다 자유롭게 운반되었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나라의 물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선진국들은 더욱 부유해졌고, 외국에 개방적인 개발도상국들은 폐쇄적인 개발도상국들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선진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게 되었다.


자유무역이 불러오는 이익은 경제적 이익뿐만이 아니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상업의 경제적 이득보다 중요한 것은 상업을 통해 유발되는 지성적, 도덕적 효과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조국 말고 다른 나라들이 잘 되지 않길 바랐지만, 상업이 발달한 현재에는 다른 나라의 부와 진보가 자기 나라에 부와 진보를 가져올 원천이 될 수 있기에 상대방의 부와 번영을 선의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밀의 말대로 무역이 인류의 폭력적 성향을 줄이고 인류의 평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보고 있다. 21세기 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950년대에 비해 3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웃을 죽이는 것보다는, 서로의 경제적 필요를 인식하고 그 필요를 서로 채워주며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유무역이 불러오는 폐해도 간과하지 않는다. 자유무역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으며 그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복지 정책이나 지원 정책이 자유무역의 피해자들을 모두 구제하거나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지나치게 낙관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한계와 문제가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우리에게 최선의 방안인 것처럼 자유무역 또한 우리에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그는 “수메르에서 시애틀까지 우리는 자유무역을 향해 나아왔고, 그 흐름을 되돌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 우리는 강대국들의 무역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내부로 눈을 돌리면 외국 농산물 때문에 우리 농업이 위태롭다고 호소하는 우리 농민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세계 무역의 큰 흐름에서 살아남고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책의 원서는 2008년에 출간되어 있기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2008년까지 세계 무역의 흐름이 정리되어 있다. 이 책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2008년 이후, 지금의 세계 무역의 흐름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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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
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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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00년 전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관련 기사를 분석했을까?

너무 다른 나라의 시선을 의식해서도 안 되겠지만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나라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치는지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서도 안 된다우리는 세계 속에서 수많은 나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그 나라들에게 비치는 이미지가 세계 속 우리의 위상과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니까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100년 전 영국 언론의 시각으로 본 조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100년 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구를 포함한 전 세계에 문을 열었던 시기이고외세의 부당한 개입으로 국권을 잃어갔던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당시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제국주의 국가가 당시의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보면서당시 조선이 저지른 실책과 과오를 돌아보고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경계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왜 100년 전에 있었던 세계의 수많은 언론 중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관련 기사에 주목했을까이코노미스트는 1843년 창간되어 지금까지도 간행되고 있는 영국의 경제 전문지이다이코노미스트는 100여 년 동안 세계 각지의 주요 정보를 전달해 왔으며자유경제가 기본 논조이기는 하지만 찬반양론을 모두 다루며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에서 사건을 보고 해석해 왔다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이코노미스트가 조선을 보는 당시 세계의 시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저자는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반의 이코노미스트를 보면서 한국 관련 기사가 거의 없다는 점에 놀랐다고 한다당시 조선에서는 강화도 조약임오군란갑신정변을미개혁대한제국 성립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났지만국제적으로는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100년 전의이코노미스트에서 조선 이야기가 많이 나올 때는 청일전쟁러일전쟁 등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역학 관계에 조선이 얽힐 때였다국가 경제 규모도 수출입 규모도 중국일본에 비교할 수도 없이 작은 나라제국주의 국가들이 탐내는 자원도 풍부하지 않은 나라였던 조선은 오직 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싼 역학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이코노미스트는 안중근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한 한국인으로 지칭하며 이토의 삶과 업적만 자세하게 다루었다일본의 근대화와 세계화에 기여하고 말이 통하는 외교 파트너였던 이토에 비해안중근은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심지어 조선은 차라리 외국으로부터 현대적 행정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조선 국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도 이것이 조선인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정치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라고 일본의 조선 통치를 옹호했다아예 인종이 다른 서구 국가들보다는 같은 동양인인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게 더 쉬울 것이라고 예상하기까지 했다.이코노미스트에 담긴 제국주의 국가의 시선은 이렇게 놀랍도록 차갑다그들은 타인에게 강제로 점령당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뼈저리게 느꼈다세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무관심하고선의만으로 타국을 돕는 나라는 없다복잡한 역학관계에서 살아남으려 할 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지금도 우리는 세계의 강대국들과 복잡한 역학관계로 묶여 있다그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남으려면 100년 전 조선은 세계의 이해관계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했고조선은 그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예상을 깬 나라

 

지난 몇 년간 이뤄진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는 원래부터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은자의 나라의 국민에게서 반항할 만한 기질과 여력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100년 전의이코노미스트에게 조선은 무기력하고 나약해다른 나라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마땅한 후진국이었다차라리 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 현대적 행정 제도와 정치 제도의 수혜를 입는 것이 도움이 되는 나라.

하지만 조선과 그 뒤를 이은 한국은이코노미스트의 예상을 깼다. 1919년 3.1 운동으로 한일합병은 조선 사람들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우리는 독립을 원한다는 것을 세계에 선포했고끊임없이 일본에 저항했다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던 한국인들은 광복 이후 한국 정부가 세워지고 나서 수십 년 동안 정치적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결국 정치적 자유를 얻어냈다너무 자만하고 나태해져서도 안 되겠지만, 100년 전이코노미스트의 선입견을 깨고 국가의 정치적 독립과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이룬 것은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

이 책은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의 이코노미스트속 한국 관련 기사 한 꼭지씩 원문과 함께 소개하고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을 해석하는 이코노미스트의 시각그 시각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다개항 이후부터 한일합병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고본문 뒤에는 연표와 연도별 주요 역사적 사건이 정리되어 있어 당시의 한국 근현대사를 정리하기에 좋다그때의 조선이 어떤 점에서 세계사의 흐름에 대처하는 데 미흡했는지도 명쾌하게 짚어낸다.

하지만 현재의 이코노미스트속 한국 관련 기사는 100년 전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더 언급했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서문에서 지금도 이코노미스트에는 한국 관련 기사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언급하지만, 100년 전의 한국 관련 기사와 지금의 한국 관련 기사를 비교 분석해 보면 이코노미스트를 역사의 거울로 삼아 보려는 의도가 더 잘 살아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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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
박정훈.김선아 지음 / 사계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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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이 내게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은 "마추픽추에는 언제 데려다 줄 거냐"이다. 내가 두 분께 나중에 마추픽추에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스마트폰 잠금화면은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이다. 강원도보다 더 넓은 면적이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다는 이 소금사막은 내가 가 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지금은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친구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만 하지만, 언젠가는 라틴아메리카에 꼭 가려고 한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알아두어야 할 지식들을 모아놓은 책『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를 읽게 되었다. 


  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자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안내서다. 그 동안 나름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도 몰랐던 것들이 꽤 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금, 은, 다이아몬드 등 각종 자원을 빼앗아 오고도 몰락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야기가 특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렇게 얻어 온 자원을 자국 산업이 아니라 외국의 사치품을 사들이는 데 다 써버렸다. 오히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게서 라틴아메리카의 자원들을 대가로 받고 자기 제품을 판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자국 산업 발전에 성공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에게서 빼앗아 온 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사필귀정으로 느껴졌다. 뭐, 영국, 프랑스가 라틴아메리카에서 빼앗아 온 부를 바탕으로 산업 발전을 이룬 건 사필귀정이 아니지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초콜릿, 설탕, 커피의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즐거움은 결국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인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처음 발을 내딛은 이후 유럽에서 만들어진 달콤한 디저트와, 유럽에 들어온 진귀한 과일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자원과 라틴아메리카에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생산된 것이었다. 지금 라틴아메리카의 자원을 자기 것인 양 공짜로 마구 퍼가는 행태도, 노예제도 사라졌지만 한 작물만 대량생산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의 폐해는 라틴아메리카 곳곳에 남아 있다. 한 작물만 대량생산하면 그 작물의 생산에 온 나라의 경제를 의존하게 되고, 꼭 필요한 다른 음식과 생필품을 자국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비싼 값에 들여와야 한다. 한 작물만 집중적으로 대량생산하는 덕분에, 우리는 그 작물이나 그 작물로 만들어지는 초콜릿, 커피를 싼 값에 즐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런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에 미국이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자들 못지않게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게다가 각 나라의 지도자 중 미국의 이익과 어긋나는 정책을 펼치는 사람은 미국의 압력으로 쫓겨나야 했다. 1953년 과테말라의 대통령 하코보 아르벤구스탄이 겪었던 비극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소수의 대지주가 갖고 있는 땅 중 당작 경작하지 않는 노는 땅을 국가가 사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토지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에 땅을 내어주고 싶어하지 않는 대지주 중에 미국의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프루트 사가 있었다. 노는 땅이 많았던 유나이티드푸르트 사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 출신 망명자들로 무장 집단을 만들어 아르벤구스탄을 쫓아내게 했다. 경제적 침략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간섭을 하니,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해됐다. 우리도 일제와 서구 강대국들에게 그렇게 침략당하지 않았었는가.


  남의 도움을 받으면 남의 간섭과 침략도 뒤따라 오니,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을 스스로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룰라가 그들이다. 그들은 빈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토지, 주택, 교육, 의료, 문화 등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빈민들에게 지원했다. 룰라는 반대에 부딪쳐도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부른다."고 말하며 과감하게 빈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펼쳤다. 다만 이들의 실책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지금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스의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부담을 떠안고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룰라는 경제 성장을 위해 브라질 안의 아마존 숲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을 방치했고, 퇴임 이후 그가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이 수 차례 적발됐다. 이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실려 있어야 독자들 스스로 이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 불평등을 몰아내고 모든 국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려던 이들의 뜻은 본받아야겠지만, 그들의 공적과 실책을 꼼꼼히 점검해 봐야 그들과 같은 지점에서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아쉬운 점이 있지만『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알아두면 좋은 것들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이야기하는 듯한 문체로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즐겁게 라틴아메리카를 알아갈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채들을 옮겨 온 듯한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들이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분위기를 더욱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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