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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정영목 옮김 / 까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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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는 아직도 아담과 이브 두 사람만이 살고 있지 않을까이브가 고통스럽게 아이를 낳는 벌을 받았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그렇다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게 우리에게는 다행인 건데아주 단순한 이야기여서 군데군데 빈 곳이 많으니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의 나뿐만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놓고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아담과 이브 이야기 자체에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는 듯하다. “세계 역사에 이렇게 오래 지속되고이렇게 널리 퍼지고이렇게 집요하게 뇌리를 사로잡을 만큼 현실감이 있었던 이야기는 거의 없다.” 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은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야기 이상의 권력을 가질 정도로 흥했다가 다시 이야기의 위치로 내려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그 과정 자체가 고대의 메소포타미아부터 현대의 우간다까지 수천 년의 세월과 수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넘나드는 거대한 이야기이다.


아시리아의 점토판에 새겨진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모습.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몇 가지 면에서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저자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맞서는 일종의 저항 서사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담긴 창세기는 모세가 썼다고 전해지는 모세 5’ 중 첫 번째 책이고, ‘모세 5은 기원전 5세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때는 바빌로니아에게 점령당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던 유대인 포로들이바빌로니아를 점령한 새로운 정복자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 덕분에 유대 땅으로 돌아가던 시기였다바빌로니아에서 수십 년 동안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와 신화에 노출되어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줄 이야기가 필요했다그래서인지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메소포타미아 신화와는 몇 가지 차별점을 갖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서사시 <길가메시 이야기> 속 등장인물 엔키두처럼 아담과 이브는 신이 진흙으로 만든 존재이고, 길가메시와 엔키두처럼 서로 떼어낼 수 없는 한 쌍의 파트너가 된다. 엔키두도, 아담과 이브도 아무것도 모르는 야생의 존재에서 이성과 문명을 접하면서 변화되고, 죽음을 피해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엔키두에게 문명인으로 변화하는 것이 축복이었던 반면, 아담과 이브에게는 그것이 저주였고, 엔키두에게 죽음이 정해진 운명이었던 반면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와는 차별점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의 서사를 완성시켰다. 

(위)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아담과 이브>(1504)

(아래) 얀과 후베르트 반 에이크 형제의 <헨트 제단화>(1432) 중 아담과 이브 부분.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인체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뛰어난 기술을 토대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이 이야기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유대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였다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기독교가 유럽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수천 년 뒤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쐐기 문자 기록들을 다시 발견할 때까지 잊혀 있었다.) 기독교 신학의 기틀을 다진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교리를 확립한 이후기독교인들에게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자 삶의 지침이 되었다뒤러나 반에이크 같은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인체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완벽하고 생생한 육체를 갖춘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17세기 영국의 작가 밀턴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여겼던 부부관계와 현실에서 보아온 정쟁을 반영해사탄과 하나님의 갈등아담과 이브의 복잡 미묘한 애정 관계를 생생하게 그려낸 대서사시실낙원을 완성했다이렇게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문학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생생한 현실성을 갖추게 되었다.

 

문제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이야기 이상의 권력을 갖춘 교리이자 역사적 사실의 위치에 놓이게 되면서남들을 배척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5세기에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와 다른 견해를 주장했던 펠라기우스가 이단으로 공격받고 추방당한 것에서부터 배척의 역사는 시작되었다신의 명령을 어겨서 에덴으로 쫓겨난 데는 아담의 책임도 있는데도많은 남성들은 이브에게만 책임을 돌리며 여성들의 악덕이 이브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여성 혐오적인 편견을 드러냈다근대에 들어서도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허점을 지적하거나 허구라는 암시를 한 사람들은 자객의 습격을 받거나 화형당하기까지 했다한때 외세에게 점령당해 고통 받던 유대 민족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아담과 이브그들의 자식밖에 없었다면 맏아들 가인은 왜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벌할까 두려워했을까가인이 고향을 떠나 결혼했다는 여자는 누구고가인이 만든 도시의 주민들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어떤 억압도 이런 의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성경에서 언급한 세상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된 지층이 발견되고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인간이 단 한 번의 창조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절대성을 잃게 되었다


이제 아무도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허점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지 않는다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오히려 이야기의 위치로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다시 이야기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그 이야기는 여전히 인간의 연약함과 책임의 문제인간의 성과 노동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 이야기가 어떤 절대적인 것으로 굳어버리는 것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다그렇게 되면 그 이야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까지 막혀 버리면서 이야기 자체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단순히 이야기의 매력과 생명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억압하고 해치는 데 이용되기까지 한다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것 자체도 많은 사람들이 탄압당하는 것을 무릅쓰고 의문을 제기해서 얻어낸 축복이다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흥망성쇠는 우리에게 이야기의 힘과 위험성가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P. S. 이 책의 모든 도판은 책 한가운데 몰려 있다도판이 있는 페이지는 텍스트만 있는 나머지 페이지와 재질이 다른데도판이 있는 페이지들만 도판을 찍어내는 데 최적화된 재질의 종이로 해서 비용을 절감하려던 게 아닌가 싶다하지만 텍스트가 설명하는 도판이 그 텍스트 바로 옆에 있었다면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이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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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어 수업 - 다음 세대를 위한 요즘 북한 말, 북한 삶 안내서
한성우.설송아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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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대학교에서 공부했던 영어 교재나 제2외국어 교재는 주요 인물을 설정하고 그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 대화에서 사용된 단어와 표현들을 익히는 형식이었다문화어 수업은 수업이라는 제목에 맞게 이런 외국어 교재와 비슷한 형식을 하고 있다평양에 1년 동안 체류하게 된 남한의 방언학자 한겸재와 그의 가족(저자 자신과 가족들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들이 북한의 미대 교수 리청지’ 가족과 함께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더 자세히 보면 식사 시간’, ‘교통수단’, ‘학습 용어’, ‘두음법칙’ 등 20개의 주제에 대한 단어와 표현그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외국어 교재처럼 대화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고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문화어에 대한 설명이 녹아 있는 모습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방언학자 한성우 교수의 전작 우리 음식의 언어노래의 언어를 재미있게 읽었는데앞의 책은 우리 음식과 관련된 우리말을뒤의 책은 우리 대중가요 가사 속 우리말을 탐구해 보는 책이었다이 책들에서 한성우 교수는 우리말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갔는데문화어 수업에서도 특유의 이야기 솜씨를 발휘한다앞의 책들과 달리 각자의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대화하고 같이 뭔가를 하며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니 더 흥미롭다공저자인 북한 출신 설송아 기자는 상자 글에서 본문을 읽는 데 참고할 만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북한 사람들의 언어 습관뿐만 아니라 밥상 구성주택 상황교육 제도 등 북한의 현재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문화어가 남한의 언어와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제의 각을 뜨자’ 같은 과격한 북녘 언어는 구호나 뉴스에서나 쓰이지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이 대화를 하면 대부분은 서로 이해할 수 있으며가끔 귀에 걸리는 낯선 어휘들도 맥락을 살피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북한 사람들은 남한에서 들어온 옷가지들을 장마당에서 사 입고젊은이들은 몰래 남한 아이돌의 노래를 듣는다심지어 남한 젊은이들처럼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20강 내내 줄기차게 이야기한다남과 북은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많고다른 점마저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고한겸재 교수의 딸 슬기와 리청지 교수의 딸 예리는 서로가 사용하는 단어나 맞춤법이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가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맞춰보는 놀이를 할 정도로 편안하게 서로의 언어를 받아들인다한겸재 교수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언어의 미래를 본다통일이 된 이후 무조건 한쪽을 기준으로 삼아서 거기에 모든 것을 끼워맞출 수는 없으니우리도 북한의 어문 규정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할 것이다맞춤법을 잘 알아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어문 규정을 다시 배우는 게 번거롭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하지만 내가 불편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내 것에 맞추라고 강요할 권리는 내게 없다한겸재 교수(의 입을 빌린 한성우 교수)의 말처럼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이 언어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남는 말들사람들이 언어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규칙들을 잘 활용하면 될 일이다.

 

이 책은 왜 남한에서는 두음법칙을 쓰고 북한에서는 쓰지 않는지, 남한과 북한에서 한글 자음, 모음을 부르는 명칭이 왜 다른지, 남한의 이 단어가 북한에서는 어떤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지 같은 남북 언어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지식들을 전달한다. 하지만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임을 책 전체에 걸쳐 강조한다. “남북의 말 차이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사례가 뭔가요?” 북한말 중 재미있는 사례 몇 개만 들어주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런 질문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저자는 맺음말에서 이야기한다. 저자의 바람처럼 남북 사람들이 서로의 언어를 우스꽝스러운 흥밋거리로 여기기보다는, 같은 점을 바탕으로 서로의 다른 점들을 수용하고 조화시켜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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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미각 - 짜장면에서 훠궈까지, 역사와 문화로 맛보는 중국 미식 가이드
김민호.이민숙.송진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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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쉽게 배달시켜서 먹을 수 있는 짜장면, 겨울 거리에서 행상들이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호떡, 뷔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갈색 빛깔 동파육. 최근 들어 인기를 얻고 있는 화끈한 마라탕까지,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접하게 되는 중국 음식들이 참 많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어 무심히 지나치는 중국 음식 하나에도 중국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문학이 녹아 있다. 우리나라의 중국 소설 연구자 19명이 각자 중국 음식 하나씩을 맡아(문현선 교수만 두 가지 음식을 맡았다.) 20가지의 중국 음식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책이 『중화미각』이다. 음식을 이야기하는 책답게 이 책에는 맛을 상상하는 재미와 음식 사진을 보는 재미, 음식에 관련된 지식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상상하는 재미


"짭쪼름하면서도 새콤하고, 매콤하면서도 달큼한 맛에 군침이 돈다. 얇게 저민 차가운 고기 위에 양배추와 파와 고수를 얹고 하얀 마늘과 검은 짠슬(고기를 삶을 때 썼던 간장과 오향, 고기즙에 닭발, 돼지 껍질의 젤라틴을 녹여 굳힌 것)까지 아울러 갓 구운 김으로 밥을 싸듯 곱게 싸서 입 안에 밀어넣는다.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 <오향장육> 편


"얼핏 보기에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오이다. 젓가락으로 한 조각 집어 별다른 기대 없이 입에 넣고 한 입 베어 물면 순간, 아삭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하고 향긋한 오이 즙과 시금털털한 식초 맛이 섞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맛의 조화를 경험한다.... 어떻게 이런 맛이? 다시 한 번 오이 접시를 쳐다보면서 자석에 이끌리듯 오이 하나를 더 집어든다" - <량반황과> 편


음식 이야기이다 보니 음식 맛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빠질 수 없다. 이 책에는 짜장면, 호떡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음식들과 함께 량반황과, 광동당수 같은 다소 낯선 중국 음식들도 나온다.  그 맛을 잘 알고 있는 음식의 맛 묘사가 나오면 공감할 수 있고, 낯선 음식의 맛 묘사가 나오면 상상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의 맛을 이야기할 때 공감하는 것도 즐겁지만, 낯선 음식의 맛을 상상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즐겁다. 맛있는 음식은 상상하기만 해도 즐거워진다. 


보는 재미


『중화미각』속 화려하고 다채로운 중국 음식 사진들


상상하는 재미를 뒷받침해주는 건 보는 재미이다. 『중화미각』속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중국 음식 사진들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보는 재미를 더해주면서, 그 음식이 실제로 어떤 모습이고 어떤 맛이 날지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지만 때로는 그림의 떡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우울했던 기분이 한 층 더 화사해진다. 


『중화미각』의 앞표지


『중화미각』의 뒷표지


책의 앞표지는 중국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일러스트와 색채로, 뒤표지는 실제 중국집 메뉴판 같이 생긴 목차로 중국집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이런 책 디자인을 통해 독자들에게 중국 요리가 가득 차려진 중국집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알아가는 재미


황실의 후손이지만 돗자리를 팔며 근근히 먹고 살던 유비는, 낙양에서 상선을 타고 온 상인에게서 어렵게 귀한 차를 구한다. 차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황건적을 만나 차를 빼앗기고 목숨까지 위협받는다. 그때 장비가 나타나 유비를 구해주고 빼앗겼던 차도 돌려준다. 유비는 늘 지니고 있던 가보인 보검을 장비에게 답례로 준다. 유비는 집에 돌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머니께 차를 드리지만, 어머니는 남에게 보검을 주고 차를 가져온 아들을 꾸짖으며 차를 버리고 만다. 


『삼국지』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사 『삼국지』에도, 나관중의 『삼국지』에도 없는 내용으로, 1930년대의 일본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각색한 버전의 『삼국지』에 나온다. 그리고 유비가 살던 후한시대 탁현 누상촌(지금의 허베이성 바오딩 시)에는 한나라의 도읍 낙양에서 오는 상선이 닿을 정도의 물길이 없었다. 게다가 차는 일반 상인들이 취급할 정도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중화미각』중 '용정차'를 다룬 글을 통해 우리는 이런 신선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밖에도 각각의 음식에 관련된 중국의 역사와 문화, 문학 작품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어, 책을 읽으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짭쪼름한 맛과 새콤한 맛, 달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오향장육처럼, 『중화미각』은 상상하는 재미와 보는 재미, 알아가는 재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중국 음식을 직접 먹으며 그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는다면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그 음식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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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애비게일 터커 지음, 이다희 옮김 / 마티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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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는 호랑이가 산다. 4.8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이 작은 호랑이는 내가 자기 뒤를 쫓아다니면서 쓰다듬어 주거나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밥을 먹으러 부엌에 가거나 TV를 보러 거실에 가기만 해도 같이 방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쓴다. 그런데 막상 귀찮을 때는 내가 쓰다듬든 말든 거들떠 보지도 않고, 푹신한 이불 위에서 잠이나 잔다. 엄마는 주인이 집에 오자마자 반갑다고 핥아대고 심부름도 척척 해내는 개가 더 좋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린다. 내 작은 호랑이, 내 고양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억 마리의 고양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인간에게서 사랑을 받는다.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 애비게일 터커의 책 『거실의 사자』는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모든 고양이의 조상인 리비아살쾡이. 1만 년에서 1만 2천 년 전에 리비아살쾡이 중 일부가 인간의 마을에 침투했고, 오늘날의 애완고양이로 이어졌다.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고양이와 인간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오랜 인연을 시작했다. 야생의 대형 고양이들은 우리의 조상인 원시 인류를 잡아먹었고, 원시 인류는 고양잇과 동물을 순전히 음식으로서 사랑했다. 그러나 인간이 한 곳에 머물러 생활하게 되면서 고양잇과 동물들의 진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양잇과 동물들에게 인간 정착촌의 음식물 쓰레기는 새롭고 다양한 먹을거리였다. 고양이는 인간을 두려워하고 혼자 살고 싶어하는 경향을 극복하고 대담하게 인간이 사는 곳에 침투했고, 먹을 것과 잘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익을 누리게 되었다. 인간이 고양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인간을 선택한 것이다. 인간의 배에 고양이가 몰래 숨어들어 다른 나라에 가게 되었든, 쥐를 잡으려는 목적으로 인간이 고양이를 의도적으로 풀어놓았든, 인간에게 힘입어 고양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사실 고양이는 실용적인 동물이 아니다. 개들이 양치기 개, 군견, 애완견, 장애인 안내견 등으로 활약하는 반면 고양이는 실용적인 방면에서 거의 활동하지 않고 있다. 흔히들 고양이를 쥐 잡는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고양이는 힘들게 쥐를 사냥하는 것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 쥐를 잡아먹는다 해도 실제로 전염병을 옮기는 성체 쥐보다는 연약하고 어린 쥐를 잡아먹는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희귀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포식동물이어서 희귀동물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에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한 생물학자는 특정한 동물(즉 고양이)에게는 애정을 쏟으면서 다른 동물의 안녕을 무시하는 현실에 한탄한다. 게다가 가축화가 덜 되어 예민하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며 독립성이 강한 것 등, 애완동물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고양이 사진에 "이번 달은 돈을 아껴써야 해요"라는 문구를 넣은 인터넷 밈. 이와 같은 고양이 밈들은 수많은 밈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몇 개월씩, 몇 년씩 누린다.


이런 고양이의 단점들에 대해 읽고 있다 보면 "이래도 고양이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것 같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고양이 집사들의 답은 하나다. "그래도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는 동그란 얼굴, 통통한 볼, 넓은 이마, 큰 눈, 작은 코까지 갓난 아기처럼 느껴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평균 3.6킬로그램인 고양이의 몸집마저 갓난아기의 체구와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은 고양이의 갓난 아기 같은 모습에서 양육 본능에 가까운 끌림을 느낀다. 완전한 고립 상태를 즐기는 고양이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개의 얼굴과 달리 무표정한 고양이의 얼굴은 백지와 같기 때문에, 오히려 온갖 인간의 감정을 갖다 붙이고 의인화하기 더 쉽다.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현실 집사들은 키우는 고양이를 예뻐하고 랜선 집사들은 SNS 속 남의 고양이에게 열광하며, 수억 명의 사람들이 고양이 밈(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 동영상 등의 짧고 재미있는 콘텐츠. 유행어와 비슷하지만 단어가 아니라 사진이나 동영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을 즐긴다. 고양이는 물리적인 지구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라는 가장 침범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지배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리의 놀잇감이 아닌 자기만의 전략과 사연을 가진 강인한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고.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조차 죽이고 마는 우리의 잔혹함과 무관심을 경계하고, 고양이뿐만 아니라 고양이만큼 귀엽지 않거나, 함께 생활하기 편하지 않거나, 생존력이 뛰어나지 않은 동물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고양이가 우리에게 길들이든 우리를 길들이든, 인간에게 유용하든 무용하든 고양이는 그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거실의 사자』의 한국어판 표지. 고양이가 문틈 사이로 발을 내미는 귀여운 모습을 담은 이 표지는 알라딘에서 "2018 올해의 표지" 3위에 선정되었다.


P. S. 1. 안타깝게도 표지는 고양이 사진이지만 본문에는 고양이 사진이 한 점도 실리지 않았다. 단지 보고 즐거워할 수 없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각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하드커버를 감싸는 겉표지는 보관하기 어려워 아예 제거하는 도서관 정책 때문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읽은 나는 귀여운 고양이 표지를 즐길 수조차 없었다.

P. S. 2. 역자 후기에 따르면 출판사는 이 책의 번역자를 찾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는 번역가를 찾는다는 소식을 SNS로 전했다고 한다. 책에 애정을 갖고 번역할 사람을 찾으려 했던 출판사의 사려 깊음이 엿보인다. 고양이 집사가 번역한 책답게 이 책의 번역에서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역자 후기에서도 번역자는 자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역자 후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 책의 번역을 맡게 된) 이 행운의 공을 우리 술이(고양이 이름)에게 돌리며 오늘도 어김없이 집사 된 도리로 캔을 따주기 위해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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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 읽기 세창명저산책 57
김성동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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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을 몇 년 동안 공부했는데도 내가 읽어 온 인문학 책의 대부분은 해설서이다이 정도로 오래 공부했으면 원서를 읽어야 할 텐데 아직도 해설서에 의존하고 있다니 부끄럽지만해설서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원서를 읽기 전 기본 개념을 머릿속에 정립한다면 원서를 이해하기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해설서 읽기가 원서 읽기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 게 문제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피터 싱어 Peter Singer, 1946-에 대해서도 그의 원 저서가 아니라 해설서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피터 싱어는 실천 윤리즉 규범으로서의 윤리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안에 적용시키는 윤리학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사람이다.실천윤리학 Practical Ethics은 싱어의 윤리 사상 전반을 담은 핵심적인 저술이고이 책은실천윤리학의 한국어판 번역자인 김성동 교수가실천윤리학을 요약하고 해설한 책이다.


  피터 싱어는 윤리를 정당화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이 아닌 모든 사람의 이익사회적 이익이라고 이야기한다그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윤리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 행위의 목적이나 선악 판단의 기준을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하는 데 두는 사상)그는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을 주장했다그런데 싱어는 이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을 적용하는 대상에 사람들뿐 아니라 동물들까지 포함시킨다동물들 또한 인간들처럼 자신을 한 존재로 인식하는 인격을 가지고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피터 싱어가 동물을 인간이 이용하는 도구가 아닌인간처럼 동등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주장한 것은 혁신적인 일이다그러나 인격을 갖춘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동물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데영아나 지적 장애인치매 노인처럼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또한 동물과 다를 바 없으니인간의 생체 실험에는 분노하면서 동물 실험에는 분노하지 않는 것은 종 차별주의라는 그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불러왔다게다가 유전병이 두려워 유전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50퍼센트인 태아를 임신중절 하는 것보다는유전병에 걸린 것이 확실한 영아를 살해하는 것이 더 확실하며 영아와 태아 모두 의식과 인격을 가진 존재라고 하기 어려우니 영아 살해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그의 논의 또한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다철저히 결과를 중시하고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싱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나 또한 읽으면서 싱어에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피터 싱어는 자신의 실천 윤리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또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충분히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윤리적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그는 우리가 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그 질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답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또한 단순히 우리는 착하게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어떤 사안에 대해서 어떤 것을 고려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싱어에게 윤리는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피터 싱어가 말하는 논의는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생각할 실마리를 남긴다.

 

  철학자이자실천윤리학의 한국어판 번역자답게 김성동 교수는 윤리 교과서처럼 명쾌하게 싱어의 논리들을 해설한다각 장 뒤에 있는 주요 내용 정리가 싱어의 논지와 기본 개념을 머릿속에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싱어의 주장을 해설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김성동 교수 나름대로 싱어의 주장을 비판하기도 하고우리의 현실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200여 페이지의 책이지만 책 판형이 작아 몇 시간 만에도 읽을 수 있다많지 않은 내용이지만 주제 하나 하나가 오래도록 고민해야 할 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김성동 교수가 명쾌하게 해설해 주었지만 김성동 교수의 해설이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원서를 읽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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