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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난생 처음 한 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클래식 음악에 관심 있어?

B: <베토벤 바이러스할 때 잠깐 클래식에 빠졌었는데 지금은 그때만큼 좋아하지 않아사실 클래식 음악이어서가 아니라 이 시리즈 자체를 좋아해서 읽게 됐어.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한다는 제목을 줄여서 난처한’ 시리즈라고 부르는 인문 교양서인데너무 얕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아서 좋아해.

H: 난 좀 더 어려운 책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책에도 호기심이 생기네.




H: 글씨가 두 가지 색으로 인쇄되어 있는 게 특이해.

B: 가상의 청자와 저자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거든그래서 독자는 청자에게 이입해서 저자에게 직접 클래식 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대사 색깔이 서로 다르니까 청자와 저자의 대사를 구분하기도 쉽고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도 더 강해지고.



H: 그러네그런데 페이지 중간 중간에 있는 스피커 표시랑 QR 코드는 뭐야?

B: 포털사이트 QR 코드 검색이나 QR 코드 인식기 어플로 이 QR 코드를 인식하면그 QR 코드에 해당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페이지로 연결돼스피커 표시 아래에 숫자 보이지?



B: 시리즈 공식 사이트가 있어서음악 듣기 게시판에 가면 숫자 차례대로 스피커 표시가 되어 있는 음악들을 들을 수 있어.

H: 음악에 대한 책이니까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직접 듣게 한다니괜찮은 아이디어네종이로 인쇄된 책을 QR 코드로 온라인 콘텐츠와 연결한다는 발상도 기발하고.



B: 사실 QR 코드로 음악 링크를 연결해서 직접 음악을 듣게 할 수 있게 한 건 이 책이 처음이 아냐몇 년 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클래식 노트』 라는 책에서 이미 시도했었어.

H: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리즈를 만든 사람들이 처음 생각해낸 건 아니었구나.

B: 이 책이 후발주자이긴 한데음원 링크 관리에서는 『클래식 노트』보다 낫다고 생각해『클래식 노트』는 유튜브에 있는 영상 링크를 활용하다 보니그 영상이 저작권 문제 때문에 삭제되면 음악을 들을 수 없거든그래서 지금은 연결되지 않는 링크가 꽤 많아그런데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는 음원 링크가 모두 나오는지 관리하고 있더라고일단 내가 읽었을 때는 모든 음원 링크가 제대로 나왔어.

H: 이런 새로운 시도들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내용이잖아내실이 있는 책이야?

B: 여기 악보 보이지곡의 특징이 어떤지 악보에 표시해서 보여주면서 그 부분만 음원으로 들을 수 있어코드 개념만 약간 아는 나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하나하나 떠 먹여줘.

H: 음악에 대한 책이니까 음악을 제대로 다루는 게 좋네음악가들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B: 음악가들의 개인사나 시대적 배경도 나오긴 하는데흥미를 끌기 위해서 넣은 내용이 아니어서 좋아그 음악가와 작품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내용들이야시대적 배경도 자세히 설명해 주니 역사 공부도 같이 하는 기분이 들어.

H: 음악 자체와 배경지식의 밸런스를 잘 잡고 있구나그런 점에서 괜찮은 음악책이네그런데 책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아 보여글씨는 크고 여백은 많은데 책은 얇아.

B: 나도 그 점이 아쉬워이 책의 전 시리즈인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시리즈에 비하면 한 권 한 권의 분량이 절반 정도밖에 안 돼더 깊이 들어가고 내용이 더 풍성했으면 좋았을 텐데재미있는 책인데 분량이 적으니까맛있는 음식을 조금밖에 먹을 수 없는 것처럼 감질나나처럼 분량이 적은 게 아쉬웠는지 전편의 깊이는 어디로?’라고 쓴 단평도 있더라.

H: 이 정도 분량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랑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니까하지만 나도 다음 권들 분량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이야다음 권들에선 좀 더 깊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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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을 옆에 끼고 공부했고, 지금은 책을 읽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 앱을 켠다. 하지만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수십만 개나 되는 단어의 뜻을 일일이 사람이 정리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몇 번 해 봤지만. 명성 높은 영어사전인 메리엄 웹스터 사전의 편찬자 코리 스탬퍼가 쓴 에세이『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짐작만 했었던 사전 편찬자들의 고충과 보람을 알게 되었다. 영어사전을 만드는 영어 원어민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국어사전을 만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웹사전 기획자 정철의 대담집『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이다. 미국과 한국의 사전 편찬자들은 서로 언어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이 다른 만큼 서로 다른 고충을 겪고 있지만, 사전 편찬자로서 공통된 고민을 품고 있었다. 


영어 VS 한국어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내내, 내가 아는 영어는 전체 영어의 아주 작은 일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hella(캘리포니아에서 '아주'라는 뜻으로 쓰이는 부사)', 'irregardless(앞에 부정접두사 'ir'이 붙어 있어서 정반대의 뜻일 것 같지만 regardless(무관한)와 동의어이다.)' 등등 이 책에서 난생 처음 본 영단어들 때문만은 아니다.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영어 문법이 영어 교재에 정리되어 있는 문법들처럼 질서정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they(그들)'가 3인칭 복수라고 배웠지만, they는 단수로도 쓰일 수 있다고 한다. "The crowd are loving it(사람들은 그걸 좋아한다)'이 미국 영어에서는 비문이지만 영국 영어에서는 비문이 아니다. 집합명사인 'crowd(군중)'는 미국 영어에서 단수로 취급되지만, 영국 영어에서는 단수로도, 복수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저자를 비롯한 웹스터 사전 편찬자들조차 예외와 불규칙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영어 문법의 늪에 빠져 혼란스러워한다. 그래서 저자는 영어를 사랑스럽지만 통제불능인 아이에 비유한다. 수십 년간 영어사전을 만들어온 원어민조차 영어를 완전히 정복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영어 원어민이 아닌 한국인 독자인 나는 어떻겠는가. 머릿속 한쪽에 묻혀 있던 영어 문법 지식을 끌어올려도 저자가 말하는 영어에서의 미묘한 어감 차이와 문법상의 혼란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한국인이 쓴 국어사전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은 국어사전뿐만 아니라 백과사전, 한국어-외국어사전 등 다양한 사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국어사전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수십여 개 국가 수십 억 명이 사용하는 영어는 어느 한 국가 한 지역을 기준으로 표준을 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한국어는 국가가 어문 정책과 사전 편찬에 깊이 개입해 표준어 규범을 제시한다. 저자는 언어의 사회성을 위해 일관성 있는 규정이 제시되어야 하지만, 그 규정이 언어의 유동성을 막아서는 안 되고, 국어사전은 규범보다는 모범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영어 사전에 대한 고민은 아무래도 남의 이야기이지만, 한국어와 국어사전에 대한 고민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지나칠 수 없는 고민이다. 또한『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에서는 번역자가 친절하게 번역해도 포착할 수 없었던 미묘한 어감 차이를 이 책에서 포착할 수 있다. '딱 부러지다'는 결단력을 뜻하는 쪽에 가깝고 '똑 부러지다'는 정확하다는 뜻에 가깝다. '만들다'와 '짓다'는 동의어지만 '친구를 만들다'는 자연스러워도 '친구를 짓다'는 어색하다. 한국어 원어민만이 포착할 수 있는 어감 차이다. 물론『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를 통해 영어에 담긴 영미권의 역사, 문화를 알게 되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우리말에 대한 고민과 우리말 속 미묘한 어감의 차이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이 내 몸에 맞는 옷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에세이 VS 대담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는 저자가 사전 편찬자로서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느낀 고충과 보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에세이다.  어린 시절부터 활자 중독이었으며 언어, 특히 모국어인 영어와 사랑에 빠진 저자에게도 사전 편찬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get', 'take' 같은 간단한 단어에 수십 가지 뜻과 용법이 담겨 있어 'take' 항목 하나를 수정하는 데만 한 달 가량이 걸렸다. 하이픈을 단어에 넣을지 말지, 넣는다면 어느 위치에 넣을지 같은 사소한 문제들 앞에서도 언어 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단어의 정의를 정확한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 매일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사람을 녹초로 만들어버리는 이런 고충들조차도 저자는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유쾌하게 그려낸다. 반쯤 자포자기한 사람의 자조적인 농담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자기 직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은『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보다 좀 더 무게감 있는 대담집이다. 저자는 다음Daum 어학사전을 담당하고 있는 웹사전 기획자로서, 어느새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사전과 사전 편찬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이 책을 기획했다. 저자는 수십 년 동안 사전을 만들어 온 편찬자 여섯 명과의 대담을 통해 우리나라 사전이 걸어온 역사를 돌아보고, 사전의 현재를 진단하고 사전의 미래를 꿈꾼다. 편찬자들의 사생활도 이야기하고 농담도 주고받긴 하지만 사전에 대한 좀 더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던 종이사전 편찬자 VS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웹사전 기획자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의 원서와『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은 같은 해(2017)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둘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시대는 다르다.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의 저자 코리 스탬퍼는 수십년 간 종이사전을 만들어 온 사람이고, 이 책에서도 종이사전을 만들고 개정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주로 이야기한다. 책 마지막에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이 무료로 웹사전을 찾아보게 되면서 사전 편찬자들이 겪는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날로그 시대에 종이사전을 만들던 이야기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은 아날로그 시대부터 수십 년간 사전을 만들어 오던 사람들과의 대화이지만,『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보다 디지털 시대 사전이 맞게 된 미래와 위기에 좀 더 많은 비중을 쏟는다. 인터넷과 데이터베이스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웹으로 예문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고, 단어가 어느 연령대, 어느 분야에서 얼마만큼 쓰이는지도 정확히 통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웹사전은 종이사전에 비해 분량의 제약을 덜 받고, 언제든지 수정 가능하다. 남북 공동 국어사전을 만든다면 웹사전에서는 '북한 모드'와 '남한 모드'를 각각 만들어 변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종이사전을 옮겨받은 포털 사이트들은 웹사전의 내용을 채우고 수정하는 데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는다. 웹사전 편찬자인 저자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수정을 할 뿐이다. 그러니 수십년 간 종이사전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경험은 전수되지 않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웹사전 기획자는 아날로그 시대의 종이사전 편찬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사전이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한다. 

 

사전 편찬자들 모두의 고민

 

  두 책은 영어와 한국어, 미국과 한국의 차이만큼 서로 다른 고민과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사전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웹스터 사전의 편찬자들이 문법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단어들, 비속어들을 사전에 넣었다고 항의를 받을 때 한국의 사전 편찬자들은 어떤 신조어를 넣고 넣지 않을지 고민한다. 사전에 실렸다는 것은 그 단어가 언어 속의 한 단어로 인정 받았다는 뜻이니까. 사전은 독자들에게 하나의 규범으로 여겨지기에, 영미권의 사전 편찬자들이나 한국의 사전 편찬자들이나 그에 따른 책임감을 질 수밖에 없다. 


  단어를 선정하고 난 다음에는 단어의 뜻풀이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얼마나 자세히 써야 할까. 백과사전만큼 자세히 써야 할까, 백과사전이 있으니 간단한 정의만 적으면 될까. 단어의 이 뜻은 단어의 저 뜻과 사실상 같은 말이 아닐까. 나는 이 단어의 뜻이 너무 자세하게 분류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편찬자는 그렇게 자세하게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단어를 정확한 단어로 표현했을까? 개는 개과에 속하는 동물이다, 개과는 개를 비롯한 동물들을 포함하는 생물 분류다, 이런 식으로 돌고 도는 뜻풀이를 한 것은 아닐까? 사전 편찬자들은 수십 만 개 단어 하나하나의 뜻풀이를 놓고 매일 고민한다. 


  단어의 뜻풀이로 한 항목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그 단어가 실제 언어 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여주려면 예문을 넣어야 한다. 사전 편찬자들은 직접 예문을 만들기도 하고, 단행본과 신문, 잡지에서 모은 예문들 중에서 예문을 고르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웹으로 예문을 수집할 수 있어 한결 일이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 예문이 적절한지는 웹이나 인공지능이 판단할 수 없으니, 사전 편찬자들은 오늘도 적절한 예문을 찾아 헤맨다. 


  두 책을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언어생활과 지식을 더 풍요롭게 만든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혼자 최초의 영어사전을 만든 새뮤얼 존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척박한 땅에서 따분한 일을 계속하는 무해한 노역자"들은 종이사전, 아니 사전의 위기 앞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이 아날로그 시대에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디지털 시대에도 이어지면서 우리의 언어와 지식에 든든한 토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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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포함

세상에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은 많다. 그 중에는 『운명』 못지않게 훌륭한 작품들도 많다. 그런데도 『운명』 을 선택한 것은 고통을 견디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였다. 꿈도 사랑도 손에 닿지 않고, 희망도 없는 지금의 상황이 버거웠다.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불운과 불행은 신경을 갉아먹으면서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소년 죄르지가 수용소 생활에서 어떻게 고통을 견뎌내고 행복을 찾은 건지 알고 싶었다. 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정말로 고통을 견뎌내는 법을 알고 싶었다.

1944년 여름, 유대계 헝가리인 소년 죄르지는 근로봉사를 가던 길에 갑자기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그 전까지 죄르지는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박해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외출할 때 노란 별을 외투에 달아야 하는 것도, 통금시간을 지켜야 하는 것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한 유대인 친구가 그에게 우리 유대인이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을 내면에 지니고 있기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는 무심코 반박했다. 만약 유대인 아이와 다른 평범한 아이가 병원에서 서로 바뀌었다면, 유대인 아이는 평범한 사람으로, 유대인 아이와 바뀐 아이는 유대인으로 취급받았을 거라고. 사람들은 단지 노란 별을 보고 우리를 유대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그러자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다.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특별하기 때문에 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우연 때문에 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명이 어떤 목적이나 이유에 따라 (예를 들면 신이 정한 대로) 움직이지 않고 순전히 우연에 따라 움직이며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운명의 부조리함은 아무 걱정 없이 살던 죄르지에게도 닥쳐왔다. 누가 유대인인지 결정하는 기준도 애매모호하고, 유대인이기 때문에 아무 죄 없이 죄수 취급 당하고 죽임당하는 것도 부조리하다. 그러나 죄르지는 이렇게 가혹하고 부조리한 일들을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터무니없이 적은 식량을 아껴 먹고 감시인들의 눈을 피해 요령을 부리며 체력을 비축한다. 식량이 좀 더 많이 배급되는 부헨발트로 옮겨진 것에 기뻐하고, 저녁 점호 전의 짧은 휴식시간을 즐긴다. 묵묵히 노동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상상한다. 상상은 누구도 막을 수 없으니까. 죄르지는 이렇게 수용소에서의 하루하루를 견뎌나간다.

1년쯤 지났을 때 해방의 순간이 왔다. 그 순간에도 죄르지는 자유의 몸이 된 것 못지않게 오랜만에 맛있는 고기 수프를 먹게 된 것을 기뻐한다. 죄르지에게는 자유의 몸이 되기 전 날과 자유의 몸이 된 날 모두 자신이 살아가는 삶 속의 하루이고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죄르지에게 수용소 생활이 지옥 같지 않았냐고 묻고, 시간이 수용소 생활을 견디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죄르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죄르지가 분노하며 자신이 겪은 고통을, 나치에게 당한 일들을 세상에 폭로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죄르지는 말한다.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면 견디지 못했겠지만, 한 단계 한 단계를 지나면서 그 단계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완수해 나갔기에 견딜 수 있었다고.

직접 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죄르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죄르지가 자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수용소 생활의 고통을 이야기했더라도 그들은 결코 죄르지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가 임레 케르테스는 죄르지처럼 15살에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1년 동안의 수용소 생활은 케르테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고, 홀로코스트라는 주제가 그의 문학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 문학 세계의 시작인 『운명』 은 케르테스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데뷔작인 『운명』을 쓰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쓰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해서 쓰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통을 응시하고 기억하며 13년 동안 이 소설을 썼다. 한국어 번역판 기준으로도 300페이지가 안 되는 짧은 소설을 쓰는 데 13년이 걸렸다. 그만큼 소설을 쓰는 과정은 그에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가 『운명』을 쓴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 말도 떠오른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말하기 힘들다. 세상에 문학이 있어 다행이다." 10대 시절부터 수년간 교사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을 소설로 쓴 대만 작가 린이한이 남긴 말이다. 그녀는 결혼식 전날 밤 늦게까지 이 소설을 쓰는 데 매달렸다.(이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서 "아우슈비츠에서도 따분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운명』의 한 구절이 언급되고, 작가를 반영한 주인공 팡쓰치는 이 구절이 섬뜩하다고 느낀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10년이 넘도록 들여다 보거나, 가장 행복한 날의 전날까지도 되새기면서 문학으로 남긴 걸까.

문학은 고통의 원인이나 고통 그 자체를 없애주지 못한다. 그러나 고통을 직시하고 견뎌낼 수 있게 돕는다. 사람들은 죄르지에게 과거의 고통을 잊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지만, 죄르지는 과거의 고통들까지 자신이 걸어온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했다. 작가에게 과거의 고통을 직시하고 기억하는 방법은 문학이었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는 우리가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이 많다. 그러나 죄르지도 작가도 고통을 하루하루 견뎌내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했다. 나는 죄르지에게서 하루하루의 고통을 견디면서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법을, 작가에게서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고 기억하는 법을 배웠다. 삶은 고통을 견디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내 운명이 된다. 죄르지는 "운명이 있다면 자유는 없다. 자유가 있다면 운명은 없다. 이 말은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으며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그 안에서 내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 책이 내게 이것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오늘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살아간다.

P. S. 헝가리어 원서를 직역한 민음사판(유진일 역)과 독일어판을 중역한 다른우리판(박종대 · 모명숙 역)을 한 문장 한 문장 비교하면서 읽었다. 원문 없이 한국어 번역판들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하지만, 헝가리어도 독일어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두 가지 번역판 사이에서 원문의 흔적을 더듬어 나갔다.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으로 느껴지는 건 박종대 · 모명숙 역이지만 문맥을 봤을 때 유진일 역에서 오역이 바로잡힌 것이 보인다. 그리고 유진일 역이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사유를 만연체로 풀어낸 케르테스 특유의 문체를 살리려고 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또한 수용소에서 들리는 다양한 유럽 언어들을 박종대 · 모명숙 역에서 한국어로만 표기한 것과 달리, 유진일 역에서는 원문으로 표기하고 괄호 안에 번역문을 넣었다. 그래서 다양한 언어가 오가는 수용소가 더 실감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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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어는 지금 실생활에서 사용되지 않고 있고, 서구권의 수많은 학생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문법이 어려운 언어다. 그런데도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에서 진행되었던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은 많은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들까지 청강하러 올 정도였다. 그의 수업이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라틴어에 담긴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사회 제도, 법, 종교, 그리고 로마를 계승한 유럽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까지 다루는 종합 인문 수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강의를 정리한 책 『라틴어 수업』은 인문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라틴어 수업』이 출간된 지 1년 뒤 출간된 김동섭 교수의 『라틴어 문장 수업』 은 여러 면에서 『라틴어 수업』을 벤치마킹한 흔적이 뚜렷하다. 책의 제목부터 라틴어 수업으로 사랑을 받아온 교수가 수업 내용을 정리한 책을 낸다는 기본 콘셉트, 한 챕터당 하나의 라틴어 문장을 통해 라틴어와 관련된 지식들을 전달하는 형식까지 『라틴어 문장 수업』은 『라틴어 수업』 과 닮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벤치마킹은 벤치마킹하는 대상의 장단점을 분석해 자신의 것을 더 낫게 만드는 것. 두 책이 각각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각각 어떤 독자들에게 더 와 닿을지 살펴보려고 한다. 여러분이라면 누구의 라틴어 수업을 듣고 싶을까?



'나는 왜 라틴어를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의 답


  라틴어를 공부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나는 왜 라틴어를 공부하는가'이다. 한동일 교수는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계획이나 원대한 포부가 있지 않고, 그저 '있어 보이기 위해' 라틴어를 공부하는 것처럼 유치한 이유도 많다. 그러나 처음부터 거창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면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며, 칭찬 받고 싶고 잘난 척 하고 싶어 하는 유치함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동일 교수는 말한다. 위대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치함이라는 점에서 그는 이러한 유치함을 '내 안의 위대한 유치함 Magna Puerilitas Quae est in me 마그나 푸에릴리타스 쿠에 에스트 인 메'라고 부른다. 라틴어를 공부하는 자신만의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학생들을 이끄는 것이다.

  반면 그 질문에 대한 김동섭 교수의 답은 보다 실용적이다. 그는 본문에 앞서 '라틴어를 배우면 좋은 열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영어 어휘의 50퍼센트 이상이 라틴어이다, 현대 학문의 용어들은 대부분 라틴어이다, 인지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언어이다, 전 세계에 라틴어의 후예들이 있다, 등의 열 가지 이유들은 대부분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유들이다. 라틴어를 배워서 어딘가에 써먹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명쾌하고 실용적인 이유들이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깊이 있는 사유 VS 얕고 넓은 지식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이 사랑을 받은 이유는 라틴어와 관련된 인문학적 지식과 사유의 깊이이다. '만일 신이 없더라도 Etsi Deus non daretur 에트시 데우스 논 다레투르'라는 한 문장을 통해 고대에서 현대까지 인간이 종교와 세속을 분리시켜 온 과정과 정교분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내공에 감탄하고, 로마인의 음식, 놀이, 나이, 욕설, 장례문화부터 법과 제도, 역사까지 로마에 대한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에 빠져든다. 라틴어 문장과 관련된 지식을 자연스럽게 엮어나가는 한동일 교수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나다. 존댓말로 이야기하는 부드러운 문체가 직접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더해준다.

  또한 『라틴어 수업』 이 다루는 라틴어 문장 중 삶의 태도와 죽음에 대한 격언이 많다 보니, 삶과 죽음에 대한 한동일 교수의 성찰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죽음은 예정되어 있고 삶은 유한하지만,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그의 가르침에 많은 학생들과 독자들이 위로를 받는다. 반면 뻔한 이야기를 라틴어로 포장했다, 주목적인 라틴어 공부보다 저자의 인생관 이야기가 더 많다는 비판의 목소리들도 제기된다. 

  김동섭 교수의 『라틴어 문장 수업』 이 전하는 지식은 그보다 얕고 넓다. 『라틴어 수업』 이 309페이지, 『라틴어 문장 수업』 이 303페이지로 전체 분량은 서로 비슷한데 『라틴어 수업』 에서 다루는 문장은 28개, 『라틴어 문장 수업』 이 다루는 문장은 78개로 『라틴어 수업』  이 다루는 문장 갯수의 3배에 가깝다.  『라틴어 문장 수업』 의 한 챕터가 『라틴어 수업』 의 한 챕터의 3분의 1 분량이 될 수밖에 없다. 소개하는 라틴어 문장이 더 많으니 문장과 관련된 이야기도 더 다양하지만, 『라틴어 수업』 만큼 한 문장을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김동섭 교수도 라틴어 문장에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만 내용의 중심은 라틴어와 그와 관련된 지식이다. 문체도 다른 대부분의 교양 서적들과 같은 평범한 평서문이어서 더 실용적인 느낌이 든다. 라틴어 문장과 그에 관련된 지식을 엮어나가는 솜씨는 한동일 교수보다 투박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인생관 대신 다양한 지식을 듣고 싶은 독자들은 이 쪽이 더 끌릴 수 있다.


라틴어에 대한 흥미 심기 VS 라틴어 실력의 기초 쌓기


 『라틴어 수업』 의 첫 챕터에서 한동일 교수는 자신의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라틴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고 라틴어를 통해 사고체계의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양 수준으로 공부하는 학생들까지 라틴어 문법을 철저히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틴어 단어의 어원이나 문법에 대한 설명도 중간중간에 나오지만, 라틴어를 통해 본 로마와 유럽의 학문과 문화, 역사, 법 등 다채로운 면모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호기심을 가지면 그 나라의 언어를 더 쉽게 익힐 수 있고, 새로운 지식들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김동섭 교수는 『라틴어 문장 수업』 의 서문에서 라틴어를 모르는 독자들이 문장을 순서대로 따라 읽으면서 라틴어를 독학하게 하는 것이 집필 의도라고 밝힌다. 그래서 문장마다 단어별로 분석하며, 그 문장이 문법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설명한다. 『라틴어 수업』 의 부록이 라틴어 수업을 들은 제자들의 소감인 반면, 『라틴어 문장 수업』 의 부록은 라틴어의 알파벳과 발음, 기본 문법과 라틴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웹사이트 목록, 명사와 형용사, 대명사의 곡용표다.(곡용은 명사의 격과 성, 수에 따라 명사의 형태가 변화하는 것이다.) 정말 라틴어 실력의 기초를 쌓고 싶다면 교재를 따로 사는 것이 좋겠지만, 이 라틴어 문장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해석되는지 알고 싶고 라틴어 문법을 좀 더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라틴어 문장 수업』 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로마의 희곡작가 테렌티우스Terentius의 말처럼, 사람 수만큼 생각도 다르다 Quot hominibus, tot sententiae 쿠오트 호미니부스, 토트 센텐티아이. 한동일 교수의 깊이 있는 지식과 사유를 더 사랑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김동섭 교수의 다양한 지식과 자세한 라틴어 문법 설명을 더 좋아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어느 책을 읽든, *읽고 행복하시길 Utere Felix 우테레 펠릭스.  

* 로마인들이 책을 선물할 때 적어넣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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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 『전쟁과 평화』 스포일러 포함 

  「데카브리스트들」은  『전쟁과 평화』 를 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시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전쟁과 평화』 가 이 작품을 쓰려다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톨스토이는 원래 당대 러시아의 혁명가들이었던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했었다. 데카브리스트들은 농노제 폐지와 입헌군주제 실시를 목표로 1825년 황제 니콜라이 1세(재위 1825~1855)에게 봉기를 일으켰다 진압당했고, 30여 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데카브리스트들 중 주요 인물인 세르게이 볼콘스키, 세르게이 드루베츠코이와 먼 친척이었던(톨스토이의 어머니가 볼콘스키 가문 출신이고 외할머니가 드루베츠코이 가문 출신이었다.) 톨스토이는 어릴 때부터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1855년 니콜라이 1세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에 새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특별 사면령을 내려, 데카브리스트들이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로 돌아오자, 톨스토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고 했다.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들이 어떻게 혁명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젊은 시절인 1812년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전쟁 이야기를 다루게 되었다. 젊은 귀족이었던 데카브리스트들은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지만 프랑스군을 쫓아 프랑스에 가게 되면서 프랑스의 자유주의, 민주주의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더 발전시켜  『전쟁과 평화』 를 썼고, 정작 쓰려고 했던 데카브리스트 이야기는 미완성으로 남겨놓았다. 그 미완성작이 바로  「데카브리스트」들이다.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은 줄 알았는데, 2010년에 출간된  『톨스토이 중단편선』 1권에 이 단편이 실려 있어 읽어보았다. 

  이름까지 따 왔지만(안드레이의 성 볼콘스키Bolkonsky는 첫 글자만 세르게이 볼콘스키Sergei Volkonsky와 다르다.) 안드레이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었고, 보리스 드루베츠코이는 데카브리스트인 세르게이 드루베츠코이와 달리 권력에 영합하는 인물이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열렬히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으니 톨스토이가 원래 의도대로 썼다면 데카브리스트가 될 인물은 피에르 베주호프밖에 없다. 에필로그에서 피에르는 비밀 정치 결사 활동을 해 니콜라이에게 의심을 받고, 피에르를 무척이나 따르는 니콜루슈카(안드레이의 아들)는 피에르와 혁명을 일으켰다 니콜라이에게 진압당하는 꿈을 꾼다.  피에르가 에필로그 시점(1820년)에서 5년 뒤 데카브리스트의 봉기에 가담할 복선이라고 볼 수 있다. 

 「데카브리스트들」 의 주인공은 1856년 새 황제의 특별 사면으로 모스크바에 돌아온 데카브리스트 표트르 이바노비치 라바조프와 그의 가족들이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탈리아고, 부부는 서로를 '피에르'와 '나타샤'라고 부른다. 피에르 라바조프는 『전쟁과 평화』 의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다. 모든 사람에게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자기 주장을 펼칠 때는 물러서지 않는 성품은 베주호프와 꼭 닮았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능력은 안드레이에게, 이미 다른 사람의 약혼녀인 나탈리아와 사랑에 빠지는 무모함은 아나톨리에게 간 것 같지만. 라바조프의 아내 나탈리아는 검은 눈의 미인에 사랑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열적인 면, 피에르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나타샤를 연상시킨다.  동생 라바조프와 30여 년만에 상봉하는 누나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베주호프의 친척 누나 카치슈가 세월이 지나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카치슈는 방탕한 데다 사생아인 베주호프를 친척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냉대했지만, 결말 부분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베주호프와 화해한다. 

  미완성작이다 보니 이야기는 라바조프와 가족들이 마리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기승전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  속 피에르가 데카브리스트가 되었다면, 피에르와 나타샤가 시베리아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나탈리아는 라바조프가 시베리아 유배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1분도 망설이지 않고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 시베리아의 라바조프에게 갔다고 한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기후, 무거운 수감 생활을 견뎌내고 나탈리아와 라바조프는 두 남매를 낳고 수십 년 동안 행복하게 살아왔다. 나타샤도 피에르가 유배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시베리아 생활이 혹독해도 피에르와 나타샤 부부는 강인하게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다만 피에르 라바조프와 나탈리아의 아이들이 시베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과 달리, 피에르 베주호프와 나타샤의 아이들은 데카브리스트의 봉기 이전에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것이다. 에필로그 시점에 이미 아이들이 태어나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갓집인 리셰 고리에서 지내고 있었으니까.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 중에서는 아이들을 친정이나 친척집에 맡기고 남편에게 달려간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상상한 뒷이야기에서 피에르와 나타샤의 아이들은 외삼촌 니콜라이와 외숙모 마리아에게 맡겨진다. 아버지의 자유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아이들은 황제에게 충성하는 외삼촌 니콜라이와 갈등을 겪고 헤어진 부모를 그리워하지만, 막상 30여 년만에 부모가 돌아오자 낯설어한다. 안타깝게도 내 필력은 30여 년에 이르는 거대한 이야기를 쓰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 피에르의 이야기를 끝내 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이 짧은 미완성작을 통해 피에르와 나타샤의 노년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고, 돌아온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당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의 귀족들에 비하면 초라한 라바조프 가족의 행색을 보고 은근히 무시하던 숙박업소 사장과 직원들은, 라바조프가 데카브리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을 깍듯하게 대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귀족들에게는 데카브리스트들이 돌아온다는 것이 큰 뉴스이고, 라바조프를 역사의 산 증인이자 뉴스거리로 대한다. 그들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뜻을 마음 깊이 되새기기보다는 그들을 무료하고 지루한 삶의 활력소로 여긴다. 하지만 작가는 "(18)56년도에 러시아에서 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감히 말하겠다."고 말할 만큼 그들의 귀환에 큰 의미를 둔다. 이 짧은 부분만 보더라도 데카브리스트들의 귀환을 대하는 다양한 반응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는데, 이야기가 완성됐으면 데카브리스트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살아남은 의미를 더 생생하게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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