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강남’이라는 지역의 개발사를 1960년대부터 현재(2016년)까지 추적해 연구한 논문 10편과 단행본의 한편을 모아놓은 논문집입니다.

보통의 경우 논문집을 통독하지는 않지만 접근방식의 새로움도 있고 해서 일단 모두 읽었습니다.

각각의 독립된 논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총론 격인 제1장 ‘강남만들기’, ‘강남따라하기’와 한국도시이데올로기를 시작으로 2장-6장은 강남이라는 지역이 개발되는 물리적 방식과 강남이라는 지역의 도시성을 설명하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들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7장은 시각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일대기로서 단행본으로 출판된 ‘콘크리트 유토피아 ( 자음과모음, 2011) 중 일부입니다.

8-9장은 서울의 행정적 경계를 넘어 수도권의 신도시로 자리잡은 ‘분당’과 관련된 논문이며, 마지막 10-11장은 강남적 도시화의 성격이 지방도시에 어떻게 구현된 것인지 사례조사를 한것으로 부산의 해운대와 대구 수성구의 사례에 대한 것입니다.

상당수의 논문들이 사회학자들이 썼으며 지리학자와 도시계획학자들이 쓴 글들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론적 논의의 틀로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 대한 이론이 소개되고 그 한국적 실제의 경우를 심층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점이 눈에 띕니다.

개요는 이쯤이면 된 것 같고, 이책의 주제이며, 부제인 ‘투기지향 도시인과 투기성 도시개발’에 대해 몇가지 특징을 언급하려 합니다.

첫째, 우리가 강남이라고 부르는 한강 이남의 지역은 일반인들의 예상과 다르게 1960년대부터 북한과 체제경쟁을 해온 박정희 정권이 북한과의 무력충돌에 대비하기 위한 ‘안보’의 이유로 서울시민의 대거 한강 이남 이주를 계획하는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습니다.

둘째, 우리가 강남하면 생각하는 ‘부동산 투기’도 군사정권의 ‘인구재배치 계획’의 일환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1960년대말부터 강남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 초까지 강남지역은 허허벌판이었고 강북 도심에 내다 팔 채소를 재배하던 경기도 광주군 지역으로 여름이 되면 홍수로 침수피해가 심했던 지역이었으니 이곳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그때까지 잘 정비된 강북 구도심에서 살던 서울시민들을 이주시키려면 어느정도 유인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군부정권은 재정투입 없이 택지를 개발해 민간건설사들에게 되팔았고 건설사들은 선분양제와 사채발행 특혜를 발판삼아 봉이 김선달처럼 쉬운 장사를 했습니다. 정부는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 당시 중산층이상 되는 국민들에게 아파트 분양을 하기 위해 시가보다 분양가가 낮게 책정하는 가격통제를 실시해 아파트에 당첨된 국민들에게 부동산 시세차익을 향유할 기회를 줍니다. 이렇게 부동산 시세차익의 맛을 본 강남사람들은 이후에도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면서 재산을 증식하게 됩니다.

셋째, 이렇게 철저한 계획경제와 속도전 그리고 군부의 특혜를 통해 가용한 자원이 모두 강남지역에 투자되면서 강남지역은 ‘압축도시화’로 불리울만큼 급속도로 도시화되어 갔습니다. 여기에 인구를 분산배치하기 위한 또 다른 유인책으로 오랫동안 강북 구도심에 자리잡고 있던 명문고등학교들을1973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강남으로 이전하고 정부기관 중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넷째, 강남을 빠르게 도시로 만들고 서울의 인구를 강남으로 재배치시키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파트를 짓는 방법이었고 개발 당시 주변 인프라가 전무했던 강남의 아파트는 ‘근린주구론 (Neighborhood unit)’에 따라 설계되어 아파트 단지 바깥으로 접촉할 필요가 없어 고립된 섬처럼 생활할 수 밖에 없었고 이전까지 동네마다 있던 골목길 문화가 사실상 소멸하게 되는 경로를 밟게 됩니다.

다섯째, 강남의 아파트로 이주한 중산층과 그 이상 계층의 국민들은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해 용인해준 부동산 시세차익을 기반으로 자산계층으로 발돋음 해 군부 정권의 체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은 1971년 8월 발생한 광주대단지 사건을 계기로 서민들과 도시빈민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정책을 시행합니다.
이후 진행된 아파트 건설사업들이 모두 임대보다 소유를 전제로 한 중대형형으로 지어지고 주택정책도 산업정책, 즉 건설산업 정책의 하나로 취급해 ‘수요가 있는 주택’만을 건설한다는 입장을 지켜 나갔습니다. 초기 사회정책으로 추진되던 주택정책은 산업정책으로 바뀌고 이후 1980년대 말에 일어나게 될 주택난 전세난이 이미 초기 주택정책 시행 당시 이미 그 싹을 보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섯째, 가용자원의 집중과 특혜로 건설된 강남 아파트 지역에 입주한 중산층 사람들은 8학군으로 상징되는 교육자본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산다는 동류의식 등으로 뭉쳐 자신들의 세계와 그 외의 세계를 구별짓고 차별화하기 시작합니다. 아파트단지 건설과 한강개발사업 등이 강남의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면 아파트 단지내에서 독특하게 뿌리내린 삶의 방식이 강남과 비강남을 구별하는 경계로 기능하게 되고 강남 거주 서울사람들은 스스로가 그 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차별과 배제의 문화가 노골화되고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부제의 ‘투기지향 도시민’ 이라는 특징은 강남개발 초기부터 시작된 분양가상한제라는 특혜제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시작부터 투기성을 국가가 보장한 것입니다. 정통성을 결여한 군사정부로서는 지지자를 만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번째로 ‘투기지향 도시개발’은 강남이라는 지역을 넘어서 한국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도시를 개발하고 주택을 짓는 행위들이 모두 투기와 관련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도시개발을 하면서 본질적 가치인 주거지의 이용가치보다 투자대상으로의 자산가치를 더 우선시 해서 환금성이 좋은 아파트나 주상복합을 위주로 건설을 하고 이 아파트를 구매하는 대상도 중상층 이상으로만 한정해 하층민들에게는 아예 기회를 박탈하는 배제를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죽은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삶, 특히 주거는 아직도 그가 남긴 유산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건설사들은 아직도 선분양제의 이익을 보고 있고 강남에서는 이주 첫세대가 부동산으로 번 돈들이 대를 물려 세습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아파트 이외의 다른 주거형태를 찾아보려 해도 아파트를 제외하고 구매할 수 있는 주택은 별로 없습니다. 경제적 이익과 맞물려 아직도 군사주의적 획일주의와 효율성이 가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과장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도시계획과 도시발달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글 사이 사이에서 보이는 배제와 차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잘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추가로 두권의 책을 더 소개합니다.


임동근 박사가 김종배씨와 대담한 내용을 엮는 ‘매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반비, 2015)’는 영토통치란 무엇인지 위정자가 어떻게 도시를 바라보고 인구문제를 바라보는지 쉽게 알려줍니다. 제가 가장 먼저 읽었던 책이기도 하고 쉽게 읽힙니다.

두번째는 ‘강남의 탄생(미지북스,2016)’로 세종시 도시계획에 관여하신 공무원이 쓰신 책으로 도시계획적인 측면에서 강남이라는 대한민국의 ‘심장도시 ‘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주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다룹니다. 마찬가지로 부담없이 읽기 좋은 개론서와 같은 책입니다. 강남개발을 통시적으로 조망하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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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20-09-17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문 분석이 매우 인상적이네요

Dennis Kim 2020-09-21 12: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진리의 말씀 - 법구경
법정 엮음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법구경은 처음 읽었습니다.

이전에 도올의 ‘금강경 강해’를 읽은 적 있지만 불교경전은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간결한 우리말로 정갈하게 번역된 책이고 경전이라기 보다는 시라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다른 번역본의 법구경을 재독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상의 언어로 쓰여있고 인간관계나 사람살이가 결국 다 수행에 관련된 것처럼 보입니다.

오래전 출판되어 절판된 책이라는 사실이 좀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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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경관은 대체로 단조롭습니다. 단독주택은 거의 없고 온통 아파트만 눈에 보입니다.

10여년 전부터 서울시내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느끼던 의문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접한 대도시들은 서울처럼 아파트 일색도 아니었고, 낡은 건물을 무자비하게 때려부수고 재개발을 ‘폭력적’으로 진행하는 전통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20세기이후 한번도 외국군대와 본토에서 전쟁경험이 없는 일본의 도쿄, 교토, 후쿠오카 등 도시들은 수백년 넘은 건물들이 즐비하고 유럽의 고도 파리와 아비뇽 역시 몇백년 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은 재건되고 복원된 왕궁을 제외하고 특히 20세기에 지어졌던 건축물 중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정동에서 시간을 견디며 서 있는 건물들 중 상당수가 외국공관과 교회들이고 일반 근대건축물들이 별로 없어 들를 때마다 씁쓸합니다.

익선동이 뜨기 전 지난 40여년간 종로의 술꾼들이 모여들었던 ‘피맛골’ 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청진동 재개발 계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경악스러운 감정을 지금도 숨길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기와집들과 좁은 골목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모두 사라지고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쇼핑몰을 만들어놓고 ‘발전’되었다고 자위하는 정치인들의 문화수준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개발을 건축물 공사정도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최초의 사례가 바로 강남개발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아파트 일색인 도시 풍경과 과거의 흔적을 알 수 없는 도시의 모습이 바로 현재 서울의 모습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 ‘강남의 탄생( 미지북스, 2016)’ 은 한국 최초의 신도시, ‘강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현재 세종시 도시계획에 직접 관여한 공무원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강남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남침’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계획도시입니다.

뭔가 경제적인 목적이 있을 것 같은데 정치적 안보적 이유가 이 도시의 탄생이유라는 사실이 이외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20년 정도 밖에 안된 시점이고 전쟁을 체험한 국민들도 생존해 있어서 박정희 정권이 한강 남쪽에 신도시를 세운다는 계획은 당시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강남지역을 개발하기 이전 이미 여의도 개발을 통해 어떻게 효율적으로 신도시를 세울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홍수때마다 물에 잠기던 여의도에 윤중제 (輪中堤)를 쌓고 밤섬을 폭파해서 골재를 체취하고 택지를 만들어 아파트를 만들어 분양합니다.

여의도 개발에서 처음 도입되었던 신도시 개발 방식은 이후 강남개발과 잠실개발에 그대로 복제됩니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경부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해서 많은 돈을 벌었던 현대건설은 이 대형 토목공사의 대금으로 현재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한강 공유수면 매립에 대한 권리를 가지게 되고 한강 남쪽 저지대였던 이곳에 현대건설은 제방을 쌓고 한강을 매립해 땅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땅에 현대건설 사원용으로 허가받은 아파트 단지를 짓는데 그곳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입니다. 지금은 설명이 필요없는 곳이 된 이곳을 분양해 현대건설은 몸집을 불려 현대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1970년대 건설업체들은 너무 쉽게 돈을 벌었습니다. 강남개발 ( 당시는 영동개발, 즉 영등포 동쪽 지역개발)을 위해 정부는 광활한 영동땅 ( 당시 경기도 광주군)을 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하면서 그 재원을 체비지 (替費地) 매각을 통해 충당하는 상황이었는데 가격이 낮고 황무지가 많아 매각 초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그린벨트를 지정하자 체비지가 팔리기 시작해 사업을 어느정도 진행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개발이전 한강은 유량이 일정하지 않고 일제시대에 쌓은 제방이 서울의 일부만 보호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강남개발의 하면서 ‘공유수면 매립’을 통한 수방사업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압구정동이 한 예이고 한강의 저지대였던 반포지역도 공유수면 매립을 통해 택지가 조성된 곳입니다. 공유수면이란 말 그대로 공공기관이나 국가가 소유한 수면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매립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치열한 이권다툼의 현장이었습니다.

건설회사들은 겨울에서 봄 사이에 유휴 장비를 이용해 제방을 쌓고 그 다음해에 모래를 투입해 새로운 택지를 만듭니다. 없던 땅을 새로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이 땅을 주택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에 매각하거나 직접 아파트를 지어 분양합니 다.
땅을 만들어서 정부에 팔거나 별다른 노력없이 땅을 만들어 아파트 분양해서 장사를 하니 이처럼 쉬운 사업이 없었습니다.

강남개발의 한창이던 1970-80년대에 건설회사들이 성장한 이유는 이런 쉬운 사업환경이 한몫 했습니다.
건설회사들은 이렇게 조성된 강남 땅에서 아파트도 쉽게 지어 팔았습니다. 당국으로부터 건축허가만 받으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건축허가를 받고 입주자를 모집하고 입주자들이 낸 계약금으로 기초공사를 하고 분양계약서를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공사비에 충당하고 입주자로부터 납입금을 받아 대출금를 갚아간 후, 완공 이후 입주자로부터 잔금을 받아 잔액 정산을 하면 됩니다. 건설업자들은 특별히 자신의 돈을 쓰지 않고도 아파트를 지어 고수익을 얻을 수 있은 명백한 ‘특혜’ 였습니다.

이런 ‘선분양’제도를 통해 건설업체는 별 생각없이도 큰 돈을 벌 수 있었고 입주자들은 거액을 들여 집을 사는데도 본인들이 살 집을 실제로 보지도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서울의 주택문제가 심각해 ‘속도전’을 해서라도 아파트를 많이 짓는 것이 어느정도 정당화가 되었지만 2020년 현재도 건설회사들이 특혜가 분명한 ‘선분양제’를 관행적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국제표준인 ‘ 후분양제’로 바뀌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이제는 더이상 주택공급이 문제가 아니라 ‘주택가격’이 문제인 시대니 말입니다.

건설업체들이 이렇게 쉬운 장사를 하다보니 초기 강남개발 사업으로 돈을 벌었던 건설업체 중 상당수가 사업실패로 이들이 지은 아파트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삼호, 라이프주택, 한양건설, 삼익, 우성, 한보주택 등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강남개발’을 이야기하면 ‘강남을 어디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강남을 ‘강남구’로만 한정할 수도 있고( 강남 초기 이주자들이 선호하는 분류), 좀 범위를 넓혀 강남3구 ( 강남, 서초, 송파구)로 볼 수도 있으며 범위를 더 넓혀 광의 강남으로 강남 3구에 동작, 분당, 수서 등 외곽지역을 포함하고 좀 더 역사적 합의를 포함한다면 강동구와 영등포구 그리고 여의도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강남사람들의 유별난 ‘구별짓기 ‘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1980년대 잠실 개발과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게올림픽 개최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입니다만, 그 이전 같은 ‘신도시’주민이면서 강남구쪽 주민들이 잠실 쪽 주민들을 동급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좀 의외였습니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와 올림픽 공원 그리고 잠실종합운동장이 조성되기 전에도 잠실도 잠실 주공아파트라는 대규모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생활여건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텐데 아마 명문학교의 유무로 이런 차별두기를 초기부터 했다는 점이 유별나다 생각했습니다.

1962년 경까지 압구정동은 침수가 잦은 저지대로 온통 배밭이었고, 잠실은 조선시대 이래로 뽕나무와 누에를 치던 섬으로 한강의 물길을 바꾼 공사를 통해 육지가 된 곳입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편의성 말고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끼리 서로 차별을 했다니 말입니다.

40년 전에도 이런 유별난 구별짓기 성향을 가졌던 이곳 사람들이 따라서 강남 이외 타지 사람들에게 더 배타적으로 행동하고 스스로를 구별짓는 행위를 하는 건 그래서 이해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들이 공공의 이익따위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끝으로 강남개발과 관련된 몇가지 책을 더 소개합니다.

강남과 아파트 관련 책으로는 3번째 쯤 본 책이 이 책으로 전에 읽었던 두 책은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과 ‘ 아파트공화국’ 입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2015년 반비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방송대담을 책으로 옮겨 일단 읽기가 편합니다. 정치지리학적 관점에서 정치권력이 어떻게 현재 서울의 경관을 만들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설명한 책이므로 상당한 분량이 서울의 확장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강남 건설과 아파트, 그리고 아파트와 중산층 형성의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두번째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으로 아파트 관련서로는 초기에 나온 책입니다. 2007년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가 지은 책입니다. 유럽에서 온 지은이가 서울을 뒤덮은 아파트 숲을 보면서 느꼈을 당혹감과 함께 지리학자로서 한국은 왜 아파트 단지가 그렇게 많은지 외부인의 시선에 바라본 책입니다. 초기 아파트에 관한 여러 주장이 나올 때부터 자주 인용되는 이 분야에서는 ‘클래식’ 반열에 오른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필독서 하나를 더 이야기 안할 수 없습니다. 2016년 돌아가신 전 서울시립대 교수 손정목씨의 책입니다.

서울의 도시계획과 개발에 대한 역사는 전적으로 이분의 저작’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5권 ( 한울)’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학술서, 대중서 여부를 떠나 거의 모든 서울의 도시계획 관련 저술은 이 책을 인용하지 않는 책이 드믑니다.

사족이 될수도 있겠으나 일제가 경성 도시계획을 하면서 프러시아 건축을 어떻게 원용했는지, 도쿄와 경성을 어떻게 근대도시로 만들었는지, 프러시아는 이상적 도시로 고대아테네를 어떻게 모방하고 원용했는지를 추적한 역작이 있습니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 ( 천년의 상상, 2015)’입니다. 도시계획을 문화사적으로 바라본 이 역작은 780페이지가 넘은 벽돌이지만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 스며있는 과거 제국주의자들의 건축 취향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그로 인한 서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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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숲 2021-02-0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 북성로도 그렇게 사라져 가는 중입니다. 반쪽은 힐스테이트가 들어선다고 모두 부서졌고 반쪽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미리 사진 찍어두시면 좋겠습니다..
 

20년도 전에 출간된 이 유명한 책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서울대에서 도서관 대출 1위라고 언론에서 소개되었던 기억도 납니다.

이 유명한 책에 대해 내용보다 읽은 소감 위주로 간략히 글을 쓰고자 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쓴 삼부작(Trilogy) 중 첫번째 권입니다.

다른 두권 (Collapse, Upheaval)도 읽은 이후 마찬가지로 소감을 쓸 예정입니다.

일면 방대해 보이고 무려 기원전 13,000년부터 시작해 근현대 역사를 가로지르며 뉴기니아부터 잉카, 마야 문명 , 중국과 중동과 유럽을 아우르는 스케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산만할 수 있는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왜 각기 다른 대륙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 왔는가? 좁은 의미에서 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대륙을 식민지를 만들었으나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의 원주민들은 유럽을 식민지를 만들지 못했는가?

이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유라시아의 지리적 차이로 ‘우연하게(by accident)’ 유라시아의 사회가 더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유라시아는 우연히 밀과 쌀, 수수와 같은 생산성이 좋은 작물의 원산지였으며 우연하게 가축으로 사육하기 쉬운 소와 돼지 그리고 말의 원산지가 되어 이 물질적 자원을 기반으로 정주농업 (Sedentary Farming)이 발전되고 농경은 사회의 분화를 촉진시켜 전문 군인과 관료집단을 비롯한 지배층이 생겨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문자의 발전도 계속되 전통의 계승이 가능해집니다.

유라시아는 동서 중심축을 통해 농경과 정주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지리적 장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반면 아메리카는 옥수수를 제외하고 가축으로 기를 수 있는 포유동물이 상대적으로 유라시아에 비해 적었고 오세아니아의 경우 농경에 적합한 작물군 후보도 가축군 후보도 없어 유라시아에 비해 뒤쳐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아프리카의 경우도 커피를 제외하고 농경에 적합한 작물군 후보가 적었고 사자, 기린, 하마와 같은 거대 포유동물이 존재했지만 가축으로 기를 수 없는 후보동물군이 없어 농업발달이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중심축이 남북으로 되어 있어 농경문화의 확산 속도도 유라시아에 비해 무척 늦었습니다.

현재의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과 관련해 의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유럽이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 때 세균이 미친 영향입니다.

농경과 그에 따른 가축사육으로 가축으로부터 감염될 수 있는 전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가진 유럽인과 달리 마야/잉카제국의 원주민들은 면력력이 없어 천연두(small pox)와 같은 전염병에 쉽게 감염되어 죽었습니다. 거의 멸종(extermination)하다시피 원주민들이 죽어 스페인은 마야/잉카제국을 소수의 병력으로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농업생산성을 기반으로 한 물질문명과 전염병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라시아,특히 유럽의 이러한 불균등한 발전은 우연이 이룬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이런관점(Perspective)은 지극히 환경/생태적 관점이고 인간은 자연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줍니다.

달리 말하면, 백인 우월주의자 (White Supremacist) 나 인종주의자 (Racist)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럽이 발전한 것은 그들이 선천적으로 잘나서 (innately superior) 더 발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생산성이 좋은 작물의 원산지에서 살아 농업 발전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고 우연히 가축으로 기르기 쉬운 거대 포유동물의 원산지가 자신들이 살던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럽이 중국에 앞설 수 있었던 것도 우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대까지만 해도 중국은 정화의 원정함대가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까지 진출하는 해상세력이었지만 환관정치세력들과의 권력다툼으로 그 때까지 유럽보다 앞선 모든 분야에서 쇠퇴하게 됩니다.

중국에 대한 설명이 전체 19 장 중 하나에 불과하고 중국이 명대에 갑자기 후퇴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너무 간략해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사실 중국과 한자문화권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설명이 따로 필요합니다. 단순히 유교의 영향으로만 볼수는 없고 뭔가 대내외적으로 복합적 요인이 있어 해상무역에서 중국의 쇠퇴와 유럽의 약진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더구나 15세기 이후 중국과 일본으로 대량의 은이 유입된 사실도 있어서 중국의 쇠퇴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화약과 종이, 나침반이 중국에서 발명되었고, 쌀과 돼지의 원산지인 중국문명권이 유럽에 뒤쳐질 이유가 없었지만 15세기 이후 유럽은 중국을 앞서나가고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식민화한 이후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에서 이권을 차지하고 홍콩과 마카오를 식민지로 만듭니다.

독특한 이 책의 시각을 몇가지 정리합니다.

첫째, 농업생산성이라는 지극히 물질적 기반을 발전의 동력으로 보는 점입니다. 농업의 발전이 문명 발전에 기여했다는 시각을 보이죠.

둘째, 따라서 농경과 채집 수렵을 비교해 농경이 더 선진화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점은 상당히 전형적(typical)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여러 언어를 언급하면서 중국의 한자문화가 인도 유럽어족의 알파벳보다 비효율적이라고 했는데 일견 맞는 말이지만 한편 중국문화권에 대해서는 이해가 깊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중국 한자문화권은 아시아 전역을 망라해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단순히 효율성으로 치부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고인류학자(Paleoanthropologist)들이 확언하듯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의 기원이 아프리카임애도 왜 아프리카가 문명의 발전에 더디게 되었는지 설득적으로 주장합니다.

아프리카가 검은 대륙이 아니라 백인과 사하라 이남의 피그미, 반투족 흑인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온 마다가스카르인들까지 다양한 인종들이 뒤섞인 지역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언어적으로 인도 유럽어족의 기원이 된 중동의 언어가 사실 아프리카의 다양한 종족들이 쓰던 북부 아프리카의 언어라는 놀라운 사실도 언급합니다.


진화생물학, 생물인류학, 생리학, 고대사, 언어학, 동물학, 식물학, 유전학 등 다양한 분과의 사례들과 연구성과가 적재적소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염병의 신대륙 전파에 대한 설명이 읽는 속도를 지체시켰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본인의 전문분야( 생리학 박사!) 여서 상당히 유연하게 글을 전개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유발 하라리 교수의 책과 비슷한 ‘거대역사 ‘로 분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자도 에필로그에서 언급했지만 영어권 독자들은 저자가 ‘유러시아의 선진문명’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독자들은 유라시아를 ‘유럽’으로 이해하고 유럽과 비유럽지역의 발전격차를 논의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구유럽과 ‘중국’을 대비하면서 중국이 대항해시대 이후 서구에 뒤처진 이유에 대한 논쟁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2003년 저자 후기에서 알렸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개된 책 ( 더 읽을 책에서) 이 ‘The Great Divergence’ 입니다.
이책도 완독이후 소감을 정리해 올릴 예정입니다. 경제사학계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저작이므로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아무튼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이책의 논의와 주장이 ‘서구의 우월성’을 강조하는데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례를 볼 때 학문이 ‘중립적’이라는 주장은 허구입니다. 오히려 대단히 정치적이고 남용될 여지가 존재합니다.

끝으로 역사에 미친 생물학적 영향에 대해서는 알프레드 크로스비 교수의 ‘Ecological Imperialism’도 참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책은 저자도 ‘더읽을 책’ 서지목록에서 추천하고 있는 책입니다.

학문의 융합과 ‘지식’이 무엇인지, 지식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스테디셀러의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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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군주로 알려진 철학자 군주 정조(正祖)의 치세를 1797년 발생한 ‘강이천 사건’을 중심으로 재해석한 책입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시고 가르치셨던 백승종 교수의 2011년 저작으로 18세기 후반 정조 통치기의 조선에서 일어난 역모사건을 당시 정권을 공유했던 노론 벽파와의 정치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조는 무시못할 정치세력이었던 노론 벽파의 견제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병자호란 당시의 척사파 거두인 청음 김상헌의 후예이자 노론 벽파의 중심 족벌이던 안동김씨 가문의 종손인 천주교도 김건순이 연루된 ‘강이천 사건’을 단순 사기사건으로 축소시켜 종결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모에 가담했지만 정조의 왕권으로 안동김씨에 정면 도전하는 것은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었습니다. 대신 정조는 강력한 신권 세력이었던 노론 벽파를 견제하기 위해 성리학(性理學)과 고문체만을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인정하고 당시 유행하던 패관소품체의 자유분방함을 모두 금지하는 문화투쟁을 전개합니다.

최상층 양반 가문 자제들의 역모였던 ‘강이천 사건’을 원칙대로 처벌하지 못한 정조는 당시 정치 상황을 고려해 김건순을 사건에서 빼는 대신 당시 노론 양반들도 즐겨했던 소품문학을 근절하는 역공을 편 것입니다.

정치적 위험을 문화적 방식으로 대응한 것으로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정조의 문체반정은 기존의 성리학 유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조치로서 ‘개혁’과는 전혀 상반된 ‘수구반동적’ 조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개혁군주’로서의 정조 이미지와 상반된 해석으로 정조는 사실 기존 조선의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던 기존 체제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정조는 조선의 여러군주 중 주자 성리학에 정통한 철학자 군주로 유학경전에 관한 한 자신의 그 어떤 신하보다 박식한 군주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총명함은 기존 성리학적 정치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조의 이런 수구반동적 태도는 결국 정조 사후 조선이 19세기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두번째, 정통 성리학적 관점에서 패륜아였던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왕권이 강하지 못한 상태로 영조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이 상황으로 성리학적 윤리에서도 절대 우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보수 반동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철인 군주였던 정조 사후 19세기 조선이 안동김씨를 비롯한 세도정치기를 맞게되는 필연이 결국 개인적 역량이 뛰어나던 정조의 사후에 일어난 것은 정조가 만들어 놓은 정치 체제 자체를 국왕 개인이 감당할 만하지 못하면 신하들에게 왕이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게 됩니다. 정조는 신하들의 성학론에 맞서 ‘성왕론’을 주장했지만 정조의 아들 순조는 아버지만큼의 능력도 없었거니와 너무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라 외척세력들로 정권이 넘어가게 되는 수모를 당합니다.

정감록을 비롯한 조선의 예언문화를 연구해온 저자는 18세기 서양학문의 관점에서 조선에 들어오게 된 천주교가 당시의 성리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양반 지식층사이에서 정감록의 예언문화와 서로 교류되고 있지 않았나 하는 흥미로운 주장을 합니다.

성리학 이외에도 노장 사상과 양명학과 불교까지 섭렵한 젊은 선비들은 중국에서 전래된 새로운 서학의 교리 역시 별 부담없이 받아들여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경직된 근본주의적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조선 사회를 좀더 사람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를 꿈꾸었고 이런 이상적 사회를 꿈꾼 대가는 바로 목숨이었습니다.

정조 사후 아무도 이들의 목숨을 보전해 줄 수 없었고 1797년 조사에서부터 의심을 하던 집권 세력들은 정조 사후 대대적 종교박해를 시작해 1801년 강이천 사건의 주모자인 강이천과 김건순 등을 죽이게 됩니다.

이 책은 저자가 논문을 쓰기 위해 작성한 연구노트를 기반으로 나온 책으로 아무래도 일목요연하다고 보기 어려운 단점은 있습니다.

같은 주장이 반복적으로 나온 점은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봅니다.

하지만 논문을 쓰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상상력을 발휘해 추론을 정립해가며 사료를 검토하는 실제의 케이스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 합니다.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어떻게 추적해가는지 흥미진진하게 보여줍니다.

역사서술에 있어 사료가 중요하지만 사료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공감이 갑니다.

단지 기록을 너무 절대시하기 보다 행간의 의미를 읽어 가며 가장 진실에 가까운 목소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수사관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연구를 위해 모든 자료를 읽어야 한다는 연구 방식은 그 자체로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주장은 너무나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은 그 자체 학자의 주장으로서 주장의 오리지널리티가 더 중요하지 모든 증거를 다 인용으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는 무의미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증거가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한 것이지만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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