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경관은 대체로 단조롭습니다. 단독주택은 거의 없고 온통 아파트만 눈에 보입니다.
10여년 전부터 서울시내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느끼던 의문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접한 대도시들은 서울처럼 아파트 일색도 아니었고, 낡은 건물을 무자비하게 때려부수고 재개발을 ‘폭력적’으로 진행하는 전통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20세기이후 한번도 외국군대와 본토에서 전쟁경험이 없는 일본의 도쿄, 교토, 후쿠오카 등 도시들은 수백년 넘은 건물들이 즐비하고 유럽의 고도 파리와 아비뇽 역시 몇백년 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은 재건되고 복원된 왕궁을 제외하고 특히 20세기에 지어졌던 건축물 중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정동에서 시간을 견디며 서 있는 건물들 중 상당수가 외국공관과 교회들이고 일반 근대건축물들이 별로 없어 들를 때마다 씁쓸합니다.
익선동이 뜨기 전 지난 40여년간 종로의 술꾼들이 모여들었던 ‘피맛골’ 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청진동 재개발 계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경악스러운 감정을 지금도 숨길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기와집들과 좁은 골목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모두 사라지고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쇼핑몰을 만들어놓고 ‘발전’되었다고 자위하는 정치인들의 문화수준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개발을 건축물 공사정도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최초의 사례가 바로 강남개발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아파트 일색인 도시 풍경과 과거의 흔적을 알 수 없는 도시의 모습이 바로 현재 서울의 모습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 ‘강남의 탄생( 미지북스, 2016)’ 은 한국 최초의 신도시, ‘강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현재 세종시 도시계획에 직접 관여한 공무원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강남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남침’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계획도시입니다.
뭔가 경제적인 목적이 있을 것 같은데 정치적 안보적 이유가 이 도시의 탄생이유라는 사실이 이외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20년 정도 밖에 안된 시점이고 전쟁을 체험한 국민들도 생존해 있어서 박정희 정권이 한강 남쪽에 신도시를 세운다는 계획은 당시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강남지역을 개발하기 이전 이미 여의도 개발을 통해 어떻게 효율적으로 신도시를 세울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홍수때마다 물에 잠기던 여의도에 윤중제 (輪中堤)를 쌓고 밤섬을 폭파해서 골재를 체취하고 택지를 만들어 아파트를 만들어 분양합니다.
여의도 개발에서 처음 도입되었던 신도시 개발 방식은 이후 강남개발과 잠실개발에 그대로 복제됩니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경부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해서 많은 돈을 벌었던 현대건설은 이 대형 토목공사의 대금으로 현재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한강 공유수면 매립에 대한 권리를 가지게 되고 한강 남쪽 저지대였던 이곳에 현대건설은 제방을 쌓고 한강을 매립해 땅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땅에 현대건설 사원용으로 허가받은 아파트 단지를 짓는데 그곳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입니다. 지금은 설명이 필요없는 곳이 된 이곳을 분양해 현대건설은 몸집을 불려 현대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1970년대 건설업체들은 너무 쉽게 돈을 벌었습니다. 강남개발 ( 당시는 영동개발, 즉 영등포 동쪽 지역개발)을 위해 정부는 광활한 영동땅 ( 당시 경기도 광주군)을 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하면서 그 재원을 체비지 (替費地) 매각을 통해 충당하는 상황이었는데 가격이 낮고 황무지가 많아 매각 초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그린벨트를 지정하자 체비지가 팔리기 시작해 사업을 어느정도 진행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개발이전 한강은 유량이 일정하지 않고 일제시대에 쌓은 제방이 서울의 일부만 보호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강남개발의 하면서 ‘공유수면 매립’을 통한 수방사업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압구정동이 한 예이고 한강의 저지대였던 반포지역도 공유수면 매립을 통해 택지가 조성된 곳입니다. 공유수면이란 말 그대로 공공기관이나 국가가 소유한 수면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매립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치열한 이권다툼의 현장이었습니다.
건설회사들은 겨울에서 봄 사이에 유휴 장비를 이용해 제방을 쌓고 그 다음해에 모래를 투입해 새로운 택지를 만듭니다. 없던 땅을 새로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이 땅을 주택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에 매각하거나 직접 아파트를 지어 분양합니 다.
땅을 만들어서 정부에 팔거나 별다른 노력없이 땅을 만들어 아파트 분양해서 장사를 하니 이처럼 쉬운 사업이 없었습니다.
강남개발의 한창이던 1970-80년대에 건설회사들이 성장한 이유는 이런 쉬운 사업환경이 한몫 했습니다.
건설회사들은 이렇게 조성된 강남 땅에서 아파트도 쉽게 지어 팔았습니다. 당국으로부터 건축허가만 받으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건축허가를 받고 입주자를 모집하고 입주자들이 낸 계약금으로 기초공사를 하고 분양계약서를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공사비에 충당하고 입주자로부터 납입금을 받아 대출금를 갚아간 후, 완공 이후 입주자로부터 잔금을 받아 잔액 정산을 하면 됩니다. 건설업자들은 특별히 자신의 돈을 쓰지 않고도 아파트를 지어 고수익을 얻을 수 있은 명백한 ‘특혜’ 였습니다.
이런 ‘선분양’제도를 통해 건설업체는 별 생각없이도 큰 돈을 벌 수 있었고 입주자들은 거액을 들여 집을 사는데도 본인들이 살 집을 실제로 보지도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서울의 주택문제가 심각해 ‘속도전’을 해서라도 아파트를 많이 짓는 것이 어느정도 정당화가 되었지만 2020년 현재도 건설회사들이 특혜가 분명한 ‘선분양제’를 관행적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국제표준인 ‘ 후분양제’로 바뀌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이제는 더이상 주택공급이 문제가 아니라 ‘주택가격’이 문제인 시대니 말입니다.
건설업체들이 이렇게 쉬운 장사를 하다보니 초기 강남개발 사업으로 돈을 벌었던 건설업체 중 상당수가 사업실패로 이들이 지은 아파트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삼호, 라이프주택, 한양건설, 삼익, 우성, 한보주택 등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강남개발’을 이야기하면 ‘강남을 어디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강남을 ‘강남구’로만 한정할 수도 있고( 강남 초기 이주자들이 선호하는 분류), 좀 범위를 넓혀 강남3구 ( 강남, 서초, 송파구)로 볼 수도 있으며 범위를 더 넓혀 광의 강남으로 강남 3구에 동작, 분당, 수서 등 외곽지역을 포함하고 좀 더 역사적 합의를 포함한다면 강동구와 영등포구 그리고 여의도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강남사람들의 유별난 ‘구별짓기 ‘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1980년대 잠실 개발과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게올림픽 개최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입니다만, 그 이전 같은 ‘신도시’주민이면서 강남구쪽 주민들이 잠실 쪽 주민들을 동급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좀 의외였습니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와 올림픽 공원 그리고 잠실종합운동장이 조성되기 전에도 잠실도 잠실 주공아파트라는 대규모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생활여건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텐데 아마 명문학교의 유무로 이런 차별두기를 초기부터 했다는 점이 유별나다 생각했습니다.
1962년 경까지 압구정동은 침수가 잦은 저지대로 온통 배밭이었고, 잠실은 조선시대 이래로 뽕나무와 누에를 치던 섬으로 한강의 물길을 바꾼 공사를 통해 육지가 된 곳입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편의성 말고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끼리 서로 차별을 했다니 말입니다.
40년 전에도 이런 유별난 구별짓기 성향을 가졌던 이곳 사람들이 따라서 강남 이외 타지 사람들에게 더 배타적으로 행동하고 스스로를 구별짓는 행위를 하는 건 그래서 이해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들이 공공의 이익따위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끝으로 강남개발과 관련된 몇가지 책을 더 소개합니다.
강남과 아파트 관련 책으로는 3번째 쯤 본 책이 이 책으로 전에 읽었던 두 책은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과 ‘ 아파트공화국’ 입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2015년 반비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방송대담을 책으로 옮겨 일단 읽기가 편합니다. 정치지리학적 관점에서 정치권력이 어떻게 현재 서울의 경관을 만들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설명한 책이므로 상당한 분량이 서울의 확장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강남 건설과 아파트, 그리고 아파트와 중산층 형성의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두번째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으로 아파트 관련서로는 초기에 나온 책입니다. 2007년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가 지은 책입니다. 유럽에서 온 지은이가 서울을 뒤덮은 아파트 숲을 보면서 느꼈을 당혹감과 함께 지리학자로서 한국은 왜 아파트 단지가 그렇게 많은지 외부인의 시선에 바라본 책입니다. 초기 아파트에 관한 여러 주장이 나올 때부터 자주 인용되는 이 분야에서는 ‘클래식’ 반열에 오른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필독서 하나를 더 이야기 안할 수 없습니다. 2016년 돌아가신 전 서울시립대 교수 손정목씨의 책입니다.
서울의 도시계획과 개발에 대한 역사는 전적으로 이분의 저작’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5권 ( 한울)’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학술서, 대중서 여부를 떠나 거의 모든 서울의 도시계획 관련 저술은 이 책을 인용하지 않는 책이 드믑니다.
사족이 될수도 있겠으나 일제가 경성 도시계획을 하면서 프러시아 건축을 어떻게 원용했는지, 도쿄와 경성을 어떻게 근대도시로 만들었는지, 프러시아는 이상적 도시로 고대아테네를 어떻게 모방하고 원용했는지를 추적한 역작이 있습니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 ( 천년의 상상, 2015)’입니다. 도시계획을 문화사적으로 바라본 이 역작은 780페이지가 넘은 벽돌이지만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 스며있는 과거 제국주의자들의 건축 취향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그로 인한 서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