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강남’이라는 지역의 개발사를 1960년대부터 현재(2016년)까지 추적해 연구한 논문 10편과 단행본의 한편을 모아놓은 논문집입니다.

보통의 경우 논문집을 통독하지는 않지만 접근방식의 새로움도 있고 해서 일단 모두 읽었습니다.

각각의 독립된 논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총론 격인 제1장 ‘강남만들기’, ‘강남따라하기’와 한국도시이데올로기를 시작으로 2장-6장은 강남이라는 지역이 개발되는 물리적 방식과 강남이라는 지역의 도시성을 설명하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들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7장은 시각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일대기로서 단행본으로 출판된 ‘콘크리트 유토피아 ( 자음과모음, 2011) 중 일부입니다.

8-9장은 서울의 행정적 경계를 넘어 수도권의 신도시로 자리잡은 ‘분당’과 관련된 논문이며, 마지막 10-11장은 강남적 도시화의 성격이 지방도시에 어떻게 구현된 것인지 사례조사를 한것으로 부산의 해운대와 대구 수성구의 사례에 대한 것입니다.

상당수의 논문들이 사회학자들이 썼으며 지리학자와 도시계획학자들이 쓴 글들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론적 논의의 틀로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 대한 이론이 소개되고 그 한국적 실제의 경우를 심층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점이 눈에 띕니다.

개요는 이쯤이면 된 것 같고, 이책의 주제이며, 부제인 ‘투기지향 도시인과 투기성 도시개발’에 대해 몇가지 특징을 언급하려 합니다.

첫째, 우리가 강남이라고 부르는 한강 이남의 지역은 일반인들의 예상과 다르게 1960년대부터 북한과 체제경쟁을 해온 박정희 정권이 북한과의 무력충돌에 대비하기 위한 ‘안보’의 이유로 서울시민의 대거 한강 이남 이주를 계획하는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습니다.

둘째, 우리가 강남하면 생각하는 ‘부동산 투기’도 군사정권의 ‘인구재배치 계획’의 일환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1960년대말부터 강남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 초까지 강남지역은 허허벌판이었고 강북 도심에 내다 팔 채소를 재배하던 경기도 광주군 지역으로 여름이 되면 홍수로 침수피해가 심했던 지역이었으니 이곳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그때까지 잘 정비된 강북 구도심에서 살던 서울시민들을 이주시키려면 어느정도 유인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군부정권은 재정투입 없이 택지를 개발해 민간건설사들에게 되팔았고 건설사들은 선분양제와 사채발행 특혜를 발판삼아 봉이 김선달처럼 쉬운 장사를 했습니다. 정부는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 당시 중산층이상 되는 국민들에게 아파트 분양을 하기 위해 시가보다 분양가가 낮게 책정하는 가격통제를 실시해 아파트에 당첨된 국민들에게 부동산 시세차익을 향유할 기회를 줍니다. 이렇게 부동산 시세차익의 맛을 본 강남사람들은 이후에도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면서 재산을 증식하게 됩니다.

셋째, 이렇게 철저한 계획경제와 속도전 그리고 군부의 특혜를 통해 가용한 자원이 모두 강남지역에 투자되면서 강남지역은 ‘압축도시화’로 불리울만큼 급속도로 도시화되어 갔습니다. 여기에 인구를 분산배치하기 위한 또 다른 유인책으로 오랫동안 강북 구도심에 자리잡고 있던 명문고등학교들을1973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강남으로 이전하고 정부기관 중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넷째, 강남을 빠르게 도시로 만들고 서울의 인구를 강남으로 재배치시키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파트를 짓는 방법이었고 개발 당시 주변 인프라가 전무했던 강남의 아파트는 ‘근린주구론 (Neighborhood unit)’에 따라 설계되어 아파트 단지 바깥으로 접촉할 필요가 없어 고립된 섬처럼 생활할 수 밖에 없었고 이전까지 동네마다 있던 골목길 문화가 사실상 소멸하게 되는 경로를 밟게 됩니다.

다섯째, 강남의 아파트로 이주한 중산층과 그 이상 계층의 국민들은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해 용인해준 부동산 시세차익을 기반으로 자산계층으로 발돋음 해 군부 정권의 체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은 1971년 8월 발생한 광주대단지 사건을 계기로 서민들과 도시빈민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정책을 시행합니다.
이후 진행된 아파트 건설사업들이 모두 임대보다 소유를 전제로 한 중대형형으로 지어지고 주택정책도 산업정책, 즉 건설산업 정책의 하나로 취급해 ‘수요가 있는 주택’만을 건설한다는 입장을 지켜 나갔습니다. 초기 사회정책으로 추진되던 주택정책은 산업정책으로 바뀌고 이후 1980년대 말에 일어나게 될 주택난 전세난이 이미 초기 주택정책 시행 당시 이미 그 싹을 보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섯째, 가용자원의 집중과 특혜로 건설된 강남 아파트 지역에 입주한 중산층 사람들은 8학군으로 상징되는 교육자본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산다는 동류의식 등으로 뭉쳐 자신들의 세계와 그 외의 세계를 구별짓고 차별화하기 시작합니다. 아파트단지 건설과 한강개발사업 등이 강남의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면 아파트 단지내에서 독특하게 뿌리내린 삶의 방식이 강남과 비강남을 구별하는 경계로 기능하게 되고 강남 거주 서울사람들은 스스로가 그 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차별과 배제의 문화가 노골화되고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부제의 ‘투기지향 도시민’ 이라는 특징은 강남개발 초기부터 시작된 분양가상한제라는 특혜제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시작부터 투기성을 국가가 보장한 것입니다. 정통성을 결여한 군사정부로서는 지지자를 만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번째로 ‘투기지향 도시개발’은 강남이라는 지역을 넘어서 한국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도시를 개발하고 주택을 짓는 행위들이 모두 투기와 관련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도시개발을 하면서 본질적 가치인 주거지의 이용가치보다 투자대상으로의 자산가치를 더 우선시 해서 환금성이 좋은 아파트나 주상복합을 위주로 건설을 하고 이 아파트를 구매하는 대상도 중상층 이상으로만 한정해 하층민들에게는 아예 기회를 박탈하는 배제를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죽은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삶, 특히 주거는 아직도 그가 남긴 유산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건설사들은 아직도 선분양제의 이익을 보고 있고 강남에서는 이주 첫세대가 부동산으로 번 돈들이 대를 물려 세습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아파트 이외의 다른 주거형태를 찾아보려 해도 아파트를 제외하고 구매할 수 있는 주택은 별로 없습니다. 경제적 이익과 맞물려 아직도 군사주의적 획일주의와 효율성이 가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과장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도시계획과 도시발달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글 사이 사이에서 보이는 배제와 차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잘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추가로 두권의 책을 더 소개합니다.


임동근 박사가 김종배씨와 대담한 내용을 엮는 ‘매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반비, 2015)’는 영토통치란 무엇인지 위정자가 어떻게 도시를 바라보고 인구문제를 바라보는지 쉽게 알려줍니다. 제가 가장 먼저 읽었던 책이기도 하고 쉽게 읽힙니다.

두번째는 ‘강남의 탄생(미지북스,2016)’로 세종시 도시계획에 관여하신 공무원이 쓰신 책으로 도시계획적인 측면에서 강남이라는 대한민국의 ‘심장도시 ‘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주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다룹니다. 마찬가지로 부담없이 읽기 좋은 개론서와 같은 책입니다. 강남개발을 통시적으로 조망하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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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20-09-17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문 분석이 매우 인상적이네요

Dennis Kim 2020-09-21 12: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