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말에 발행된 한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사 책입니다. 40여년전 ‘해방전후사의 인식 (한길사)’이라는 현대사 책이 발행되기 이전 한국 근현대사에서 ‘공산주의’ 독립운동사는 지워져야 할 금기의 대상이었습니다.

학자들과 국민들은 이 주제를 토론할 수 없었고 연구하고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기막힌 상황으로 ‘조선 공산주의 운동사’ 는 후대의 기억에서 지워져야 했고 그 상태로 60여년이 지났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의 ‘비극’이지요

특히 자신을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로 여기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은 불편하고 불온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설령 불편할지라도 마주서야 할 역사적 사실은 마주서야 합니다. 과거의 기록은 과거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며 부인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을 어리석다고 여기는 오만한 극우 정치인들은 역사적 사실을 주장으로 호도시키며 역사를 왜곡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한심한 일이지요.

아무튼 뒤에서 이책의 내용을 차차 살펴보기로 합니다.

우선 책의 내용과 장점을 말하기에 앞서 단점을 먼저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 책의 내용이 여러 차례 중복되어서 서술됩니다. 공산주의 독립운동의 여러 인물들을 인물 개개인 별로 추적하는데 중점을 두다보니 거의 동일한 내용의 문장이 여러번 단어도 바뀌지 않은 상태로 나열됩니다. ‘평전’이라는 장르가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야 함에도 주요 인물들이 너무 많아 이런 산만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책의 마지막 장은 거의 급조의 인상을 줍니다. 한국 공산주의 독립운동사의 초반부를 설명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지만 책의 완결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둘째, 책을 쉽게 쓰려 한 의도인것 같지만 주석도 참고도서 목록도 전혀 없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엄연히 국제 공산주의 운동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의 독립운동사이기 때문에 이전의 선행연구나 일본, 러시아, 미국 , 중국 등 각국의 외교문서 혹은 책에서 설명하는 팜플렛에 대한 출처가 나와야 함에도 모든 것이 빠져 있습니다. 이는 책의 가치를 반감시키는 출판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공산주의 운동의 인적 구성을 먼저 살펴봅니다.

구한말이후 생계를 위해 간도와 연해주와 이주한 한인 사회가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자들의 터전이 됩니다. 지리상 함경도와 평안도 서북 지방 출신들이 이 지역에 많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즉 처음부터 독립운동은 조선을 떠나 망명한 정객은 물론 중국 만주와 연해주 지역의 한인 1-2세대가 관여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가 혁명에 의해 공산화되기 이전부터 연해주에 자리잡아 향후 러시아 한인 2세와 한반도 출신 러시아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제하의 조선에 공산당을 뿌리내리기 위해 20세기의 전반기 내내 전력합니다.

또한 세계의 공산당 조직을 지도하는 러시아 코민테른의 지지와 승인을 얻기위해 한인들을 기반으로 한 여러 공산주의 운동 분파들이 경쟁하고 반목하고 결전을 벌입니다.

운동의 분파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운동가 출신 저자의 태도는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 공산당이라는 정치집단을 만들기 위해 같은 편끼리 전쟁을 불사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용인되는 것이 맞는가? 라는 의문이죠. 거대 담론이 목숨보다 중요할 수 있는가? 라는 기본적 질문입니다.

코민테른 집행부는 기본적으로 자국 영토내에서 러시아 한인 2세들 위주로 결성된 조선 공산당 분파인 이르쿠츠크 중심으로 조선 공산당을 결성하고 승인하려 했지만 중국과 간도의 조선 망명정객 이동휘를 중심으로 결성된 고려공산당 상해파와 순수 국내 자생적 사회주의 운동조직인 김사국의 서울파의 반발과 경쟁에 밀려 조선 공산당의 성립 자체가 표류하게 됩니다.

코민테른을 주도하는 러시아 공산당은 자신들의 직접 영향력이 있는 이르쿠츠크파를 중심으로 내세워 사실상 코민테른의 한국지부를 조선에 세우려 주도면밀하게 움직였으며, 망명 정객으로 한인 최초로 사회주의 단체 (한인 사회당)를 만든 상해파의 이동휘는 자신이 선점한 위치를 놓지 않으려 했고 코민테른 집행부도 초기 한인사회당에 자금 지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작자금의 유용으로 코민테른의 신뢰를 잃은 이후 소수파로 전락합니다

김사국을 중심으로 한 순수 국내 공산주의 세력인 서울파는 해외의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가 엘리트 중심의 ‘먹물’조직으로 보았고 민초들 사이에서 뿌리내리지 않는 조직으로 보아 심한 불신을 드러냅니다.

이르쿠츠크파의 지원을 받은 김재봉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의 창당이 이어지지만 일본 유학파 출신의 흑룡회의 반대로 강령의 미비로 조선 공산당 승인이 미뤄집니다.

서울파는 이 첫번재 조선 공산당 창당 논의에서 제외됩니다.

김재영의 체포로 붕괴된 제1차 조선공산당은 이르쿠르츠 국내파인 화요회의 강달영에게 책임을 넘기지만 이후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합작을 논의하게 됩니다.

상해파인 김철수를 중심으로 한 제3차 조선공산당은 서울파와의 통합을 추구하지만 역시 이르쿠츠크파의 방해 공작에도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경성제대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 공산주의자 그룹 중에도 엘리트 중심의 공산당 전위조직들이 민초들을 기반으로 밑에서 부터 조직되지 않고 이론적으로 공허한 논쟁만을 알삼는 것을 비판하며 사회 각 부문 , 즉 학교, 공장, 지방 농민조직 등으로 운동가를 침투시켜 공산당 조직의 하부를 완성하는데 주력하게 됩니다.
이 부분의 서술은 19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구로공단 등 노동현장에 직접 침투했던 사실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총력동원체제를 만들던 1920년대말-1930년대 중반의 일본 제국주의는 이러한 공산주의자들의 조직 침투를 심각하게 보았고 많은 운동가들이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좀더 자세하게 알고 싶었던 몇명이 있습니다.

이상설, 여운형, 이동휘, 김재봉, 김약수, 김사국, 박헌영 등입니다.

냉전이 있기 전에 이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넓게 보면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를 독립의 수단으로 택했습니다.
20세기 초의 격변기는 러시아 혁명과 중국의 공산혁명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지금현재의 세계를 만든 시기이기도 합니다.

다른 책을 더 보아야 하겠지만 친일의 경계를 넘나들던 민족주의 독립운동 세력도 있었고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미국 등 서구의 영향력을 발판으로 조선의 독립을 외교적으로 이루자는 흐름도 있었습니다. 이동휘와 김원봉 등 철저히 무력으로 일제를 제압해야 한다는 세력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책에 나온 인물들은 ‘공산주의’를 독립의 수단으로 삼아 공산주의종주국 러시아의 영향력으로 일제에 저항했다는 사실로 인해 역사에서 지워졌습니다.

과거 친일을 했으나 자신을 친미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칭하는 자들에 의해서 말이죠.

그 자체가 ‘폭력적’인 한국의 현대사를 반증합니다.
이것이 이미 몰락해버렸다고 하는 ‘공산주의’의 지나간 거의 한세기 전의 역사를 되짚어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

더구나 지난 20여년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neo -liberalism)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 여러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시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이책의 장점 하나 소개합니다.

책의 앞머리에 나오는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의 계보가 아마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와 러시아 연해주, 간도, 상해와 일본 도쿄를 아우르는 초기 공산주의 운동의 계보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큰 줄기를 잡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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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06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 말았는데 다시 읽어야지 싶습니다.
 
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Paperback)
Abu-Lughod, Janet L. / Oxford Univ Pr / 199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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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유럽과 서구가 세계를 장악하기 이전의 세계를 다룬 이 책은 1250- 1350년간의 100여년 간의 세계를 다룹니다.

왈러슈타인 (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The World System)을 이론적 틀로서 분석했으며 프랑스/벨지움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제노아((Genoa)/베니스(Venice)를 거쳐 이라크/시리아/이집트를 거쳐 인디아 북부, 인도네시아 그리고 말라카 해협을 지나 중국에 이르는 13세기의 전세계를 다룹니다.

13세기의 세계체제는 전형적인 다극체제로 세 군데의 중심지역이 존재했습니다.

이태리 제노아/베니스를 거점으로 하는 유럽 중심, 수에즈/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는 중동의 이집트 등 이슬람 중심 그리고 실크로드의 끝으로 송/원/명을 아우르는 중국 중심입니다.

세계체제는 13세기에 다극체제로 재편 (restructuring)되었으며 이 체제는 몽골의 원의 확장으로 유목민족의 영향력이 러시아/서유럽에 까지 미쳤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원의 유라시아 통합으로 육상 실크로드의 통합도 완성되었으나 12세기에 있었던 유럽의 십자군 전쟁(The Crusade)의 여파로 13세기 이후 육상을 통한 유럽과 아시아간의 거래는 완전히 이슬람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슬람의 영향은 14세기 원의 유라시아 지배력이 약화되고 이후 명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며 더 확실해졌습니다.

마르코 폴로로 대표되는 이태리 상인 세력은 아나톨리아에 거점을 마련하고 육상 실크로드를 통해 원과 직접거래를 해 부를 축적했으나 원의 세력 약화와 이슬람의 영향력 확대로 더이상 육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해상을 통해 아라비아 반도와 북인도를 통한 경로로 중국대륙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쪽의 중국은 명나라 때가지 동중국해와 말레이 반도 그리고 멀리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넓혀 재해권을 장악했으나 저자가 보기에는 미스터리한 이유로 그 영향력을 포기하고 내부로 침잠하고 이후 해게모니를 잃게 됩니다.

16세기 포르투갈이 바스크 다 가마의 세계일주 항로를 일주한 이후 인도양 및 말라카 해협의 재해권은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갑니다.

명이 주자학을 국교로 정하고 원나라와 다르게 국내정치와 제후국들간의 조공무역만 허용함으로서 인도양과 남중국해에 힘의 공백이 생겼고 포르투갈은 그 공백을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16세기 이후 근대세계 (the Modern World)는 소위 ‘서구의 부상(The Rise of the West)’으로 이루어졌으나 이는 서구 자체의 산물 (invention)이 아니라 이미 13세기 유럽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이전의 다극 체제의 유산이 그대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아래 결론의 문장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 Europe did not invent the system, since basic groundwork was already in place in the thirteenth century when Europe was still only a peripheral and recent participant. In this sense, the rise of the west was facilitated by the preexisting world economy that it restructured. “ (p 361)

14세기 말 다극화된 세계체제가 흔들리게 된 요인은 몽골과 중국에서 전파된 흑사병 (the Black Death)이 주요인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력이 약해졌으며 이는 이태리를 중심으로 하던 유럽의 해상세력이 포르투갈로 또 17세기 이후 영국으로 이동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여기에 14세기까지 최고의 선진기술을 자랑하던 국제적 위상을 가졌던 중국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주자학으로 바뀌면서 중화주의를 추구하게 되고 여진과 몽골을 비롯한 북방 기마민족의 침략을 방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게 됨으로서 그동안 누려왔던 남중국해와 인도양에서의 힘의 우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몰라 알 수 없는 이유로 명이 세계체제에서 물러났다고 언급합니다. 서구 학자의 인식의 한계이겠죠).

이 책이 출간된 시기는 1989년으로 소비에트 공산블럭이 붕괴된 직후로 이후 발생하게 될 발칸반도의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도 미국이 장악하게 될 일극체제도 이슬람의 미국본토 침공도 모두 발생되기 이전입니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지난 20년의 영향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도 예측할 수 없었던 조금의 희망은 있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세계체제론의 이론적 타당성을 둘째로 치더라도 아직 이 책에 대한 서평은 본 적이 없네요.
영어권에서는 꽤 알려진 클래식 텍스트인 것 같은데 한글 번역본이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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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책의 결어 (conclusion)을 읽으면서 하나의 문장이 문에 들어왔습니다.

‘5.16화된 4.19’

가부장적이며 봉건적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 체 미국을 배경삼아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영구독재 정치체제를 추구하려 했던 이승만 정권이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젊은 세대들의 시위로 물러난 후 고작 1년의 혼란기를 거쳐 다시 박정희를 위시한 육군 장교들의 쿠데타로 다시 독재로 회귀하는 반동을 경험합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루어보려던 희망은 혼란 속에 겨우 1년여를 보낸 것 뿐이고 한국 정치는 다시 독재로 퇴보합니다.

이러한 반동이 가능했던 이유로 당시 청년들이 세계최빈국으로서의 경제적 어려움때문에 ‘민주주의는 유보해도 괜찮다’라는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글을 보며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 부대’가 자꾸 떠오릅니다.

이후 짧게는 박정희의 암살이 일어난 1979년까지, 길게는 1987년 6월 항쟁에 의한 1987년 체제의 수립시까지 한국은 철저한 군사독재국가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소장 국문학자인 두 저자는 결론에서 ‘현재의 한국’을 있게한 ‘현재의 뿌리’로서의 4.19혁명과 이를 이루어낸 4.19혁명 세대들의 정신과 이들의 지적 토양을 이들이 쓴 글과 평론 소설등의 언설을 통해 분석을 시도합니다.

저자 본인들이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던 386세대( 지금의 586세대)의 일원임을 밝혀 386세대가 새롭게 바라본 4.19혁명 세대에 관한 글로 읽힐 여지도 충분합니다.

이 책에서 언급된 4.19세대(1940년대 출생이후 한국전쟁을 10대에 경험했던 일제교육을 받지 않았던 첫세대)의 생각과 심리상태는 그 자식세대인 저의 입장에서는 분열적인 면이 많이 보여 안타까운 면이 많았습니다 : 즉 미국과 프랑스의 서구사조를 거의 맹목적으로 따르고 선진적인 것으로 보면서 한국을 ‘열등’하다고 느끼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이런 열등감(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정치적이든)을 극복하기 위해 절차적 절차와 행위의 정당성을 무시한 체 속도를 선택한 점에서 그렇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교육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어 한국의 현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열등감에 시달리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점은 오리엔탈리즘과 주체성의 결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의 후진성에 대한 1960년대의 시각은 지금입장에서 이해하기 더 어렵습니다. 후진적 경제를 ‘빠른 시간내에 ‘ 성장시키기 위해 ‘압축성장정책’을 채택하고 특정 기업에게 사회의 모든 자원을 몰아주는 ‘불균등 발전정책’을 채택합니다.

서구,즉 미국과 유럽이 17세기부터 자그마치 300여년에 걸쳐 이루어온 경제발전을 ‘단기간’에 끝내겠다는 ‘무모한 계획’입니다.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한 과실이 특정 파워엘리트와 재벌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세계10위의 경제사이즈를 자랑하는 나라가 되었으나 OECD국가 중 자살률이 제일 높고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높으며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미비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조직의 군사주의적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압축성장
전략외 다른 대안 전략이 부재한 상태가 2019년의 한국 상황입니다. 경제 관료를 비롯한 파워엘리트들은 그들이 헤게모니를 쥐어온 재벌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을 바꿀 의지가 없어보이지만 이미 이 정책이 시효가 다 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부당한 처사에 대한 항의로 가임기의 여성들이 출산파업을 진행해 인수감소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건설사들은 그 수요를 알수 없는 도로와 공항건설에 매진하고 있고 국가대신 민간이 떠맡은 보육체계는 지속적인 문제와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지만 이유를 알수없게도 ‘큰 정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소위 보수(?)층이 존재합니다.

이 책에서 언급한 4.19세대의 논리는 아직도 현재의 한국에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이 출간된 2012년 이후 7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은 대통령이 탄핵되고 바뀐 이후 다른 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몇가지 부연설명을 붙입니다.

첫째, 1960년을 연 작가 고 최인훈 선생에 대한 글은 개인적으로 처음 읽음 그의 소설에 대한 평론입니다. 30여년 전 대학입학 후 처음 읽었던 선생의 대표작 ‘광장’을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둘째, 두 저자 중 천정환 교수의 책을 제가 읽은 것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그의 책 ‘근대의 책읽기(푸른역사, 2003)은 식민지 시기 (1920-30년대) 조선에 독자가 어떻게 탄생되었고 글을 읽는다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지식인들 사이의 일본책 독서에 대한 글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이책의 이런 일본에 대한 영향력은 본서에서도 1960년대 한일협정 정국의 혼란 가운데서도 붐을 이루었던 일본문학붐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일본의 영향력은 알게 모르게 1960년을 지나 2019년 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소름이 돋습니다.

셋째, 1960년대 한국의 ‘압축성장계획’ 즉 ‘경제개발계획’을 이야기할때 언급해야 할 인사가 있습니다. 당시 MIT 경제학자였던 로스토우 (W.W Rostow)로 당시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을 자문하는 동시에 이론적 기초를 재공했던 인사입니다. 이분에 대한 인터뷰는 서울대 박태균 교수가 그의 책 ‘원형과 변용 (서울대 출판부, 2013)’ 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또한 한국에서 경제개발계획이 어떻게 수립되고 이행되었는지 미국의 전후 원조계획과 전후 대한 정책의 맥락에서 일별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박정희 체제’에 대한 짧지만 인상적인 개론서를 소개합니다.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읽은 첫책이기도 합니다.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책세상, 2000)’. 여기서 반동적 (reactionary)이라는 말은 반응한다는 말로 서구에서 말하는 근대가 포함하는 합리성, 민주성, 진보성, 혁명성이 결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아직도 태극기 부대 한켠에선 왕처럼 떠받들어지지만 다름 한편에서는 한국 경제발전의 공을 그에게만 돌릴 수 없다는 한국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입니다.

보론

저자들은 정치적 변혁의 책임을 맡았던 대표적인 두 세대로 이책의 주인공인 4.19세대와 87년 체제를 가져온 386세대를 꼽았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나 386세대 바로 뒷세대로서 1970년대 생들의 영향력은 좀 과소평가되거나 무시된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2019년 현재 분명 4.19세대는 한국의 현재에 기반을 만든 세대로, 87년 체제를 확립한 386세대도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존재해 왔음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관계적 사회의 마지막 세대로서 386세대는 자신들의 노선을 스스로 변경하여 극우로 거듭나기도 하고 가부장적 관계의 자장을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마지막 꼰대세대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권위주의적 행동양식과 인식을 거부하는 성인지 감수성이 또한 이 세대의 특징으로 생각됩니다.

1990년대 말 사회를 뒤흔들었던 x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이 책이 커버하는 시대보다 뒤에 있어 언급되지 않은 듯 합니다. 하지만 이 세대는 독재 정권의 언설을 유년시절 경험하면서도 거대 사회변혁논리의 숨막히는 권위주의에 반기를 들었으며 자신의 주체성을 최초로 확립하고 서구 백인문화에 주늑들지 않은 첫 세대로 기록될 듯 합니다. 하지만 정치쪽에서 386세대가 가진 거대한 지분에 비해 아직 영향력이 크지 않은 세대로 생각됩니다. 2016년 촛불을 들었던 부모세대들의 상당수가 이들 x세대로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정치적 폭발력을 기대하는 동년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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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Dennis Kim > 카톨릭 수녀출신 종교학자의 일신교(一神敎, monotheism)입문서

전광훈이라는 희대의 정치목사가 기독교 신앙 자체를 능멸하는 지경에 있는 한국 기독교를 보면서 기독교에서의 신 (God)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하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헌법에 명시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독교란 원래부터 약자에 대한 ‘사랑’이 그 최고의 가치로 알고 있지만 한국의 대형 기독교 교회들의 독단과 오만과 탐욕을 보면서 종교인으로 본인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모른다’라는 말은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리분별을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2년전 서평을 썼던 ‘신의 역사’라는 책은 서양의 일신교 (monotheism)의 역사입니다. 서양에서 바라본 신의 의미에 대한 역사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구약 (Old Testament)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기독교가 유대교와 같은 뿌리를 가진다는 것도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편협한 근본주의적 기독교인 ( Fundamental Christian)이 거의 적대시 하다시피하는 이슬람(Islam)도 역시 기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호전적 이미지는 지극히 서구중심적 시각(Eurocentric Perspective)을 통해 나타나는 것일 뿐이지만 한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 ( 전광훈 목사도 포함될듯 합니다)은 이런 정보를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도 악의적으로 부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혼돈이 생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지 생각합니다.

저는 세속에서 똥물을 묻히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지만 모름지기 성직자나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소위 훈계라는 걸 하려면 최소 ‘염치’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화나 종교 뉴스에서 거론되어야 할 목사의 이름이 정치/사회 뉴스에 떡하니 나온 걸 보면 너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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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근래 읽었던 조선 역사에 관한 저서 중 첫 손 꼽히는 노작 (勞作)입니다.

인용 문헌의 방대함에 한번 놀라고, 저자가 한국인이 아니라 영국에서 은퇴한 스위스인 노교수라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랍니다.

독자로서 전통 한국사회와 유교의례에 대한 내용을 외국 한국학자의 저서를 통해 읽는 경험은 당혹감과 자괴감 그리고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문화의 고갱이가 발가벗겨진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는 이런 저작을 출판한 하버드대 출판부도 그렇고 이 연구를 지원한 런던대학도 그렇고 새삼 미국과 영국이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책에 대해 잠시 소개하면 1995년 미국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 A Study of Society and Ideology’의 한글판 입니다.

동아대학교 이훈상 교수가 10여년에 걸쳐 모든 각주와 문헌을 검토하시고 번역을 하셨다고 합니다. 역자 후기에 지난한 번역과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저자인 도이힐러 교수는 저자 후기에서 이책의 집필과정을 간략히 소개하였는데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고 조선의 전통사회를 연구하기로 한 것이 60년대 말이었다고 합니다. 옥스퍼드 사회인류학 연구소에서 인류학 방법론을 배운 직후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15세기가 조선 사회 변동기임을 감지하고 고려말에서부터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전기까지의 조선 사회의 변동을 유교화 (The Confucian Transformation)의 관점에서 연구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조선 건국의 이념이자 사회개혁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 (신유학) 경전을 연구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됩니다.

저자의 연구기간도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긴 기간이 걸렸고 이책의 초판본 번역이 10년 걸려 2003년 출판됩니다. 개정 번역판임 본서는 또 10년이 지나 2013년 나오게 됩니다.


이 책이 집필되던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의 지식사회는 거대 담론에 매몰되어 있었고 역사학계는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이 책의 주요 테마인 종족(宗族)에 대한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벽안의 여성교수가 각종 한문 고문헌과 족보 등 한국의 종족집단의 사료를 찿아 현장을 돌아다니다니.... 믿을 수 없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죠.

이미 많은 분들이 이책의 평을 남겨 저는 간단히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려 합니다.

1. 고려말 원에서 들어온 신유학(성리학)을 배워온 고려의 엘리트들은 고려 사회가 희망이 없다고 보고 조선의 개국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지배적인 이념으로 신유학을 선택하고 사회제도를 이에 맞게 변혁시킵니다.

2.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과 친족에 대한 입법을 시도하여 사회를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게 변화시킵니다.

3. 고려말 일반적이던 신랑의 처가살이와 아들 딸 구별없는 군등분할 상속은 조선 개국이후 약 250여년간의 입법 과정을 거쳐 신부의 시집살이로 상징되는 신부의 부계종족집단 귀속과 함께 아들 중 적처 (嫡妻)의 장자 (長子)만이 조상에 의례를 올릴 수 있게하는 장자상속으로 바뀌게 됩니다.

4. 이러한 입법과정을 통해 조선은 양계, 즉 부계와 모계 혈연 집단이 동등한 영향력을 가졌던 사회에서 강력한 부계중심 사회로 변하였으며 고려말까지 사회에 발언권을 가질 수 있고 재산상속도 가능했던 여성의 지위를 격하시켜 재산상속과 발언권을 약화시켜 여성의 활동반경을 집안으로 축소시켜 버렸습니다.

5. 이렇게 남성중심의 부계 사회로 변모한 조선에서 상속이 가능한지 여부는 어머니의 출계집단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조선 사대부들은 적처는 자신과 같은 사대부 집안에서 받아들였으니 첩 (妾)은 양반가문이 아닌 평민 혹은 천민계급에서 취하여 첩의 소생인 서얼들의 경우 가문의 대를 잊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는 조선의 골치아픈 사회문제가 됩니다.

6. 이렇게 사대부 가문의 대를 이를 수 있는 것은 적처의 소생 중 장자만 가능하였고 딸들이랑 차남 첩의 자식들은 친족집단에서 주변부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7. 이런 사회변동은 대략 17세기까지 완료되었고 결국 사대부의 대를 이를 수 있는가 없는지는 자식들의 어머니의 계급이 어떤가에 달린 것으로 엄격한 처첩 (妻妾)의 구분은 중국과 다른 조선만의 특징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국의 남아선호사상과 남성우월주의의 역사적 뿌리는 고려 말 조선초의 신진 신유학자들의 유교적 사회 개혁에 따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길어봐야 500년 된 것으로 한반도의 한국인들이 처음부터 부계 중심 사회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책에 언급된 고려시대의 단면은 오히려 지금의 한국과 더 닮았습니다.

결혼을 하면 기본적으로 남성이 여성의 친정에 들어가 살았고 후손들은 성별에 관련없이 부모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런 사회 분위기는 고려가 몽골, 즉 원나라라는 거대 제국에 사실상 통합된 형태로 100여년 이상 지내온 영향이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려시대 왕비들은 몽골 출신이 많았고 고려의 왕들은 원의 수도 북경에 오랫동안 살기도 했으니 북방 기마민족인 몽골의 영향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선이 명에 대해 제후국으로서 소심하게 처분을 기다리고 중국 고대 사회를 조선에 세우려는 목적으로 사회를 개혁하려고 할만큼 모든 사회제도가 엘리트이자 특권층인 양반들 위주의 사회였다면 고려는 최초 문인들의 정권이 무신들에 의해 뒤집어지고 몽골이라는거대 제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면서 외부세계에 대한 거부감도 덜 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더구나 고려 당시에는 출계집단에 대한 족보와 같은 기록도 많지 않아 지배층이 평민등 하위 계층에 대한 ‘구별짓기’를 하기 어려웠던 것도 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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