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근래 읽었던 조선 역사에 관한 저서 중 첫 손 꼽히는 노작 (勞作)입니다.

인용 문헌의 방대함에 한번 놀라고, 저자가 한국인이 아니라 영국에서 은퇴한 스위스인 노교수라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랍니다.

독자로서 전통 한국사회와 유교의례에 대한 내용을 외국 한국학자의 저서를 통해 읽는 경험은 당혹감과 자괴감 그리고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문화의 고갱이가 발가벗겨진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는 이런 저작을 출판한 하버드대 출판부도 그렇고 이 연구를 지원한 런던대학도 그렇고 새삼 미국과 영국이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책에 대해 잠시 소개하면 1995년 미국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 A Study of Society and Ideology’의 한글판 입니다.

동아대학교 이훈상 교수가 10여년에 걸쳐 모든 각주와 문헌을 검토하시고 번역을 하셨다고 합니다. 역자 후기에 지난한 번역과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저자인 도이힐러 교수는 저자 후기에서 이책의 집필과정을 간략히 소개하였는데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고 조선의 전통사회를 연구하기로 한 것이 60년대 말이었다고 합니다. 옥스퍼드 사회인류학 연구소에서 인류학 방법론을 배운 직후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15세기가 조선 사회 변동기임을 감지하고 고려말에서부터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전기까지의 조선 사회의 변동을 유교화 (The Confucian Transformation)의 관점에서 연구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조선 건국의 이념이자 사회개혁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 (신유학) 경전을 연구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됩니다.

저자의 연구기간도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긴 기간이 걸렸고 이책의 초판본 번역이 10년 걸려 2003년 출판됩니다. 개정 번역판임 본서는 또 10년이 지나 2013년 나오게 됩니다.


이 책이 집필되던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의 지식사회는 거대 담론에 매몰되어 있었고 역사학계는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이 책의 주요 테마인 종족(宗族)에 대한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벽안의 여성교수가 각종 한문 고문헌과 족보 등 한국의 종족집단의 사료를 찿아 현장을 돌아다니다니.... 믿을 수 없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죠.

이미 많은 분들이 이책의 평을 남겨 저는 간단히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려 합니다.

1. 고려말 원에서 들어온 신유학(성리학)을 배워온 고려의 엘리트들은 고려 사회가 희망이 없다고 보고 조선의 개국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지배적인 이념으로 신유학을 선택하고 사회제도를 이에 맞게 변혁시킵니다.

2.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과 친족에 대한 입법을 시도하여 사회를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게 변화시킵니다.

3. 고려말 일반적이던 신랑의 처가살이와 아들 딸 구별없는 군등분할 상속은 조선 개국이후 약 250여년간의 입법 과정을 거쳐 신부의 시집살이로 상징되는 신부의 부계종족집단 귀속과 함께 아들 중 적처 (嫡妻)의 장자 (長子)만이 조상에 의례를 올릴 수 있게하는 장자상속으로 바뀌게 됩니다.

4. 이러한 입법과정을 통해 조선은 양계, 즉 부계와 모계 혈연 집단이 동등한 영향력을 가졌던 사회에서 강력한 부계중심 사회로 변하였으며 고려말까지 사회에 발언권을 가질 수 있고 재산상속도 가능했던 여성의 지위를 격하시켜 재산상속과 발언권을 약화시켜 여성의 활동반경을 집안으로 축소시켜 버렸습니다.

5. 이렇게 남성중심의 부계 사회로 변모한 조선에서 상속이 가능한지 여부는 어머니의 출계집단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조선 사대부들은 적처는 자신과 같은 사대부 집안에서 받아들였으니 첩 (妾)은 양반가문이 아닌 평민 혹은 천민계급에서 취하여 첩의 소생인 서얼들의 경우 가문의 대를 잊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는 조선의 골치아픈 사회문제가 됩니다.

6. 이렇게 사대부 가문의 대를 이를 수 있는 것은 적처의 소생 중 장자만 가능하였고 딸들이랑 차남 첩의 자식들은 친족집단에서 주변부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7. 이런 사회변동은 대략 17세기까지 완료되었고 결국 사대부의 대를 이를 수 있는가 없는지는 자식들의 어머니의 계급이 어떤가에 달린 것으로 엄격한 처첩 (妻妾)의 구분은 중국과 다른 조선만의 특징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국의 남아선호사상과 남성우월주의의 역사적 뿌리는 고려 말 조선초의 신진 신유학자들의 유교적 사회 개혁에 따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길어봐야 500년 된 것으로 한반도의 한국인들이 처음부터 부계 중심 사회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책에 언급된 고려시대의 단면은 오히려 지금의 한국과 더 닮았습니다.

결혼을 하면 기본적으로 남성이 여성의 친정에 들어가 살았고 후손들은 성별에 관련없이 부모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런 사회 분위기는 고려가 몽골, 즉 원나라라는 거대 제국에 사실상 통합된 형태로 100여년 이상 지내온 영향이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려시대 왕비들은 몽골 출신이 많았고 고려의 왕들은 원의 수도 북경에 오랫동안 살기도 했으니 북방 기마민족인 몽골의 영향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선이 명에 대해 제후국으로서 소심하게 처분을 기다리고 중국 고대 사회를 조선에 세우려는 목적으로 사회를 개혁하려고 할만큼 모든 사회제도가 엘리트이자 특권층인 양반들 위주의 사회였다면 고려는 최초 문인들의 정권이 무신들에 의해 뒤집어지고 몽골이라는거대 제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면서 외부세계에 대한 거부감도 덜 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더구나 고려 당시에는 출계집단에 대한 족보와 같은 기록도 많지 않아 지배층이 평민등 하위 계층에 대한 ‘구별짓기’를 하기 어려웠던 것도 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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