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김기혁씨의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중국사 중에서도 ‘마테오 리치’를 공부하신 분이고 물리학을 공부하다 역사학으로 돌아선 이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여러 면에서 정통 역사학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이책도 전통적인 중국사 해석법을 떠나 새로운 시각에서 중국사를 보려는 시도입니다.

책은 오랑캐라는 중국 변방의 민족들이 역사에 따라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글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 내지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글입니다. 즉 오랑캐라는 소위 미개한 자들로 알려진 중국 변방의 민족이 중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멀리 유럽까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대부터 근대시기까지 살핍니다. 당연히 처음 나오는 질문은

오랑캐들은 정말 미개한가? 입니다. 즉 유목문화가 과연 농경문화보다 뒤처진 것이 맞나? 하는 질문입니다.

이 책은 아니라고 답하고 저도 동감합니다. 단지 주류로 인식되지 않았고 그래서 저를 포함해 유목민족에 대해 무지한 것일 뿐입니다.

동일한 민족의 사람들을 중국과 중앙아시아 러시아와 유럽이 각기 달리 부릅니다. 이런 상황이 중국 주변의 유목민족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이죺 ㅠ


따라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저자가 바라보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립니다.

그런 면에서 독특한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책의 독특한 점 하나는 중국사와 유목제국사 등과 관련해 영미권의 연구서를 많이 인용한다는 점입니다. 중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주로 중국과 일본 연구서를 많이 인용하는 경향에 비추어 이 책이 다른 점입니다.

책은 중국의 전통적인 화이론(華夷論)적 관점을 설명해서 시작하지만 이론적인 틀은 주로 토마스 바필드의 ‘위태로운 변경( The Perilous Frontier,1989)’에서 가져옵니다.

즉 중화제국이 북방의 오랑캐들을 상대할 때 어떤 전략을 썼는가에 관한 토마스 바필드의 틀(Framework)이 전체를 관통합니다. 그 두가지 전략이란 농경사회 외부에 존재하며 농경사회로부터 부차적 이득을 취하는 외경전략( outer frontier strategy) 그리고 농경사회인 제국 내부에 들어와 군사력으로 활동하는 내경전략( inner frontier strategy) 입니다(pp11-12).

중화제국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처음 오랑캐라고 불려던 장강 이남의 나라들은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차츰 중화제국에 동화되어 갔지만 북방의 오란캐들은 나름의 생산성이 있는 목축과 교역을 통해 농경사회와 다른 그들만의 문명으루만들어간 것입니다.

이 책이 농경사회에 비해 유목사회가 뒤떨어졌다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고 이런 시각은 중국사에서도 문한연구가 아닌 고고학적 발굴과 인류학적 연구성과로 유목사회에 대한 편견이 중국사 서술에서 개선되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근대 역사학 서술에 만연한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을 극복 대상으로 봅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으로 대항해시대 이후 지속된 교역( 노예무역 포함)의 이득 그리고 이후 산업혁명이후인 18세기부터이기 때문이고 중국의 경우 15세기까지 이미 경제력과 문화수준이 유럽을 능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직되게 유럽의 발전을 동아시아가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럽이 동양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된 건 13세기 몽골의유럽침략 때문으로 특히 일칸국과 킵치크 한국이 유럽의 중세에 미친 영향은 상당합니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동양을 비하하는 말로 타타르 혹은 훈(The Hun) 과 같은 말을 쓰고 있고 돌궐 계통의 튀르키예가 세운 오트만 제국의 경우 동로마제국인 비잔틴의 유산을 물려 받았는데도 영미권에서 아직도 야만적인 국가라고 폄훼를 당하는 상황입니다.

영국이 오트만 제국과 연합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했던 크림전쟁 당시를 설명해 주는 자료를 보면 영국인들이 튀르키예인들을 얼마나 인종적으로 멸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에 대한 서술이 모호합니다. 중국에 비해 일본이 지킬 전통이나 유산이 없어 서양식 근대화에 빠르게 적응한 건 맞지만 제가 보기엔 일본에 대한 서술이 너무 모호합니다.

그리고 일제가 아시아 지배를 위한 목적으로 만든 본국사, 동양사, 서양사 분류를 아직까지 무분별하게 수용하는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께서 쓰신 최근작을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사회평론 아카데미,2022)

한국과 일본만 쓰고 있는 이러한 역사분류체계를 현재 한국의 상황과 과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분류체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근현대사 관련해서는 좀더 세부적으로 학문체계가 정리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분명히 일제의 ‘자학사관’과 ‘식민지근대화론’을 배제하고 새로운 분석틀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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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고전학자 중 한분인 정민교수님의 한국천주교회사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 한문학(漢文學)관련된 책을 여러권 내신 분인데도 여태 인연이 닿지 않아 이분의 책을 한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내신 이 책을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교회사는 물론이고 인문학 책을 통틀어서 근래 나온 국내 저자의 책 중에 본문만 778쪽에 달하는 책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본문이외 주석과 참고문헌 그리고 색인까지 포함하면 이책은 총 901쪽에 달합니다.

총 12부로 이루어진 본문은 각각 8개장으로 이루어져 총 96장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최근에 보기 힘든 ‘벽돌책’이라서 책의 체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꺼운 책이지만 이 책은 조선 정조때 조선에 전해진 서학( 西學), 즉 천주교의 조선포교에 대한 글이며 특히 초기1780년대부터 정조가 죽은 이후 순조원년인 1801년에 일어난 신유박해(辛酉迫害)까지만 다룹니다.

따라서 한국천주교회사에서도 아주 초기부분만 다룹니다. 범위가 이렇게 특정된 이유는 저자인 정민교수님이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을 연구하시는 분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18세기, 특히 정약용을 비롯해 주로 남인(南人) 중심의 조선의 후기 지성사를 연구하신 분이기 때문에 정조 재위 당시 남인과 얽혀 있던 초기 조선 천주교의 연구까지 이르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주로 19세기 후반과 일제강점기를 보면 저도 덕분에 그 전반기인 18세기 말 세도정치 전야에 벌어진 조선 지식층의 동요와 서학의 영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다 말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고 몇가지 사항만 간추립니다.

첫째, 한국 천주교에서 최초의 영세자라고 추앙(推仰) 받는 이승훈(李承薰)이라는 인물은 문제적입니다. 첫 영세자이면서도 천주교를 버린다는 배교(背敎) 선언을 세번이나 합니다. 석연치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둘째, 정약용은 초기 조선 천주교의 핵심이었지만 정조의 총애와 본인의 천재성 그리고 배교선언으로 신유박해에서 목숨을 건졌지만 천주교와 인연을 끊지 않았고 최초로 조선에 온 청나라 신부 주문모의 도피를 돕는 등 배후에서 보이지 않게 활약했습니다. 정약용의 강진 유배는 그가 정치적으로 패배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정조가 당시 중용한 남인 재상 채제공( 蔡濟恭)과 남인 세력에게 천주교는 관리를 해야하는 중요한 대상이었습니다. 반대파인 노론(老論)은 물론이고 남인 내에서도 천주교를 배격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하지만 당대의 천재라고 불리던 정약용을 비롯해 황사영(黃嗣永) 뿐만 아니라 노론의 정통가문 출신으로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척화(斥和)를 주장했던 노론의 거물 김상헌( 金尙憲)의 후손인 김건순(金健淳)까지더 천주교를 믿게된 것입니다.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과 김건순은 천주교를 떠나서도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초기 조선천주교의 이론적 기반을 만들어 놓습니다.

넷째, 천주교가 조선을 파고든 이유는 조선의 사회구조의 모순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정조 사후의 세도정치기로 가는 길목으로 사대부 양반들이 평민을 착취하는 구조가 점점 공고해지는 시기로 19세기 민란의 시기를 앞둔 시점입니다. 공고한 신분질서로 사람대접을 못받았던 평민 노비 계층이 천주교에 호응이 있었고 천주교의 ‘평등’사상과 죽어서 천당을 갈 수 있다는 교리가 하층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천주교는 더구나 국가전복을 기도하던 정감록(鄭鑑錄)과 접점을 가지면서 폭발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정조라는 임금은 흔히 개혁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자신 다른 유학자들을 압도하는 학자군주로서 대단히 보수적인 성리학자입니다. 그가 체제공으로 대표되는 남인을 중용해서 그의 재위 당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크지 않았을 뿐 그가 천주교를 용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체포하기 위해 비밀리에 일을 진행했는데 청나라와 외교문제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정조 사후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순조의 수렴첨정(垂簾聽政)을 하면서 척사의
기치를 내걸고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박해를 일으킵니다. 초기 조선천주교 지도부들은 대부분 참수(斬首)를 당해 죽었습니다.

이들이 참수당한 이유는 공고한 성리학적 지식체제와 조선후기의 신분제를 그 기반부터 흔들리게 할 수 있었던 폭발력때문이었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예를 최고로 아는 근본주의적 보수 성리학자들 입장에서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기를 거부하는 천주교도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400 여년을
이어온 조선 사대부들의 기득권을 흔들수도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황사영이 백서를 써서 서양의 군함을 불러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 일이 폭발력을 가진 것은 왕권에 외세를 불러들여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대역죄(大逆罪)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되어 참수가 아니라 능지처참( 陵遲處斬)에 처해지게됩니다.

조선의 보수적 성리학적 질서는 이미 청나라에 16세기부터 예수회 신부를 비롯한 서양인들이 교류를 하고 있었는데도 19세기가 다 되도록 소중화(小中華)인식에 깊이 침잠해 조산에서 활동하던 천주교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경제적인 기득권과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공고히 결합된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사료비판에 대해 언급합니다.

주목할 것은 천주교에서 금과옥조로 받들어지는 이승훈이 쓴 것으로 알려진 ‘만천유고’이 위서(僞書)라는 사실과 초기 천주교 지도자 이벽이 쓴것으로 알려진 ‘성교요지(聖敎要旨)‘가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마틴(William A F Martin, 1827-1916)이 쓴 상자쌍천(常字雙千)을 그대로 베꼈다는 것입니다.

자료의 대조를 통해 검증한 것이므로 논란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천주교계를 둘러싼 과거사료의 집착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천주교에서 쓰는 용어들이 기독교에서 쓰는 용어들로 근거없이 바뀌어 있는데도 선학이 자료를 오독내지 오해했거나 무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상황을 상식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19세기에 산 미국인의 책이 18세기에 죽은 조선 천주교 지도자의 책으로 바뀐 것이니 더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이 책에 나온 인물 중 김건순과 관련하여 이 인물에 얽힌 또 다른 선비 강이천에 대한 책을 소개합니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푸른역사,2011)

이책은 ‘정감록’과 천주교의 영향 뿐만 아니라 문체(文體, Style)을 둘러싼 보수적 철학군주 정조와 천재 김건순 그리고 강이천의 문화투쟁을 다룬 글입니다.

재미도 있고 정민교수도 이책을 실제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정조의 경우 한동안 개혁군주로서 조선의 후기 문화를 꽃피운 임금으로 서술되다가 보수적 철학군주로 그리고 서도세자의 아들로서의 면모가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가 지니치게 뛰어난 성리학적 철학군주였기 때문에 그리고 갑작스러운 죽음때문에 후대 임금들이 외척의 세도정치에 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조는 본인만이 감당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만들어 놓았지 본인보다 못한 임금은 감당이 안되는 제도적 결함을 만들어 놓은 체 죽은 겁니다.

최근에 읽은 정조의 통치에 대해서는

정조평전 (민음사,2018)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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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의 책 중에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진화론인데 특히 인간의 진화의 역사나 19세기 사회사상에 영향을 미친 다윈의 진화론,즉 적자생존 ( Survival of the Fittest) 원리는 그 광범위한 영향력 때문에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분야죠.

오늘 소개할 책은 200쪽 가량의 작은 책으로 이미 한국어판이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디플롯,2021)

책 제목대로 개와 침팬지, 그리고 보노보를 연구해온 진화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적자생존’의 진화적 생존을 넘어서 다정한 생물들이 지속적으로 살아나는다는 주장을 합니다.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앞세워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것이 생존에 더 필요할 것 같지만 과학적인 증거들은 상대방과 공존을 위해 협력(cooperation)하고 공생하는 경우가 생물들의 생존에 더 유리하다고 설명합니다.

공식직함이 진화인류학자(evolutionary anthropologist )이지만 저자는 연구초기 개가 어떻게 늑대에서 진화해서 사람과 같이 공생하게 되었는지를 연구했었고, 러시아에서 야생에서 자라던 여우를 몇세대에 걸쳐 개처럼 사람과 같이 공생하게 하는 소위 가축화(domestication)관찰 실험을 참관하고 공동연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가장 놀라운 부분으로 위에서 본 가축화된 야생늑대는 생리학적으로 사람과의 공생을 위해 호르몬 변화가 나타나고 겉모습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같이 살면서 야생에서 필요한 위장을 위한 보호색이나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 등이 눈에 잘 띄는 얼룩무늬색으로 바뀌고 송곳니가 작아지는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실험이 약 90여년에 걸쳐 일어난 것이기에 시간의 푹이 더 넓은 진화의 경우 신체변화가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책은 또한 다정함의 반대성향 즉 폭력성(violence)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다정함은 폭력성이 줄어들어야 나타날 수 있고 적대적 감정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다정함의
이면(裏面)과 같은 폭력성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차별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가고 미국의 흑백갈등과 흑백분리과정, 백인들이 흑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인종적 편견(prejudice)을 이야기합니다.

미국에서 많은 백인들이 흑인들을 유인원과 비슷하고(Ape-like) 또 백인보다 진화가 덜 된 인종으로 생각하고 차별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죠.

심지어 경찰들은 흑인 청소년들의 나이를 실제보다 높게 보아 미성년인데도 체포되는 비율이 같은 또래 백인 청소년들보다 높다는 조사결과도 보여줍니다.

이미 미국에서 사회문제가 된 흑인들에 대한 미국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력적 진압과 그로인한 연속적 사망 사건을 보면 검은 피부를 가지고 미국사회에 사는 건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미국에서 죄없는
흑인 청소년들이 경찰의 과인진압과 과도한 폭력 그리고 총기사용으로 죽는다니 그들의 민주주의가 백인 주류층만을 위한 민주주의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책을 쓴 저자가 책 말미에 2016년 첫 초고를 썼지만 절반 이상 폐기하고,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과 그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과없이 보여준 백인우월주의와 혐오발언을 보면서 잘 모르는 정치학 사회학 분야를 공부해가며 2년을 더 집필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폭력성과 가축화된 동물과의 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연구자이지만 현재 사회에 나타는 인간 사이의 적대감이나 혐오발언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발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저는 영국판으로 이 책을 보았는데 대중독자를 위한 연구해설서 성격도 있어 글 내용은 상당한 깊이가 있으나 매우 쉽게 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책 저자의 멘토인 분의 책 한권을 소개합니다. 남성의 폭력성에 대한 책인데 저도 따로 읽어볼 예정입니다.

Harvard에서 유인원과 남성의 폭력성의 기원을 연구한 Richard Wrangham의 책입니다.


Demonic Males: Apes and the Origins of Human Violence (Mariner books,1997)

오래된 책이지만 특히 남성의 폭력성에 대해 그 진화적인 기원을 밝힌 책이라서 읽어볼 가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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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서지학(書誌學)을 전문으로 하는 학자가 아니라 소설을 쓰시는 작가께서 책소개를 해주셔서 책만으로 느낄수 없는 여백을 메꿔주시는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도 책에 관한 책이고, 근세와 근대시기에 멀게는 13세기 가깝게는 20세기 초까지 서구에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을 그들 입장에서 서술한 책을 소개한 겁니다.

따라서 소개시켜 준 책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든지 기본적으로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이 측량이든 탐험이든 선교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인들은 태생적으로 13세기에 있었던 몽골의 침략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속도와 무자비함으로 그들이 몽골인들을 야만인(Barbarian)으로 보고 있었고 중세이후 터키를 포함한 서아시아 지역을 유럽에 비해 낙후된 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결합해 자신들의 기독교 문화이외의 문화를 폄하하고 야만으로 취급하는 문화우월주의 내지는 백인 우월주의( white supremacy)를 발전시켜 온 겁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시각은 영미권의 저작에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는 그들만의 시각입니다.

21세기인 현재도 그러할진데 대항해의 시대인 17-18세기와 식민지 확장에 전념하던 19세기는 그 강도가 더 쎘고 편견도 대단했습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공통점은 오랜 옛날 즉 14-18세기에는 예수회(Jesuit)를 비롯한 카톨릭 신부들과 상인들이 아시아와의 접촉을 선도했다면 19세기는 개신교 선교사들과 외교관 상인 군인들이 아시아의 이권을 노리는데 선봉을 선 것인데 거의 일관되게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시아와 유럽 의 교류에 참여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책에 관한 책인만큼 책 자체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라틴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등으로 쓰여진 초기 판본들이 유실되거나 축약 혹은 편역되어 영어번역본으로 수세기가 지난 뒤에 출판되거나, 원본이 유실되어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역시 수세기가 지나 출판되거나 아예 출판 자체가 되지 않고 원고상태로 수세기동안 도서관에 처박혀 있거나 흩어져 있던 원고들을 모아 번역하고 출판이 되는 등 고서들만이 가지는 사연들이 눈길을 끕니다.

수백년이 지난 이야기가 분실되거나 폐지로 없어지지 않고 유럽이나 미국땅이 아닌 한국의 도서관에 소장될 수 있는 건 한편으로는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신간서적의 출판도 중요하지만 중고서점에서 팔거나 도서관에서 소장하는 고서적을 볼 수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책을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당대의 현실을 분석하고 기록한 책이 지금은 역사의 일부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책에도 언급하고 있듯 개인의 문집이나 편지 그리고 당시 나온 잡지를 보면 글쓴이의 생활은 물론 감정까지도 날 것으로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역사서나 사회과학서의 분석을 뛰어넘는 원래의 삶을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역사에 있어 어떤 특정 사건이나 전쟁 등을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한 것을 기록한 일기나 회고록 등은 사료가 포함하지 못하는 현실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줘 매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책 중 특히 몽골관련해서 유럽에서 14세기 경 출판된 책들 중에는 과거 여기에서 소개한 책들이 있습니다.

몽골제국기행 (까치,2015)

두권의 중세 유럽의 몽골여행기가 한국어판에서 합쳐져 나온 번역본이지만 이런 책을 한국어로 접힐 수 있는 건 그래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구한말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여류화가의 화집 역시 번역본과 연구서가 출간되어 있습니다.

조선을 찿은 서양의 세여인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3)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복원판 ( 책과함께,2020)

구한말 조선을 애정어린 시각으로 바라보고 기록했던 여류화가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사진집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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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에서 부동산 정책을 담당했던 세종대 김수현 교수의 책입니다.

2022년 10월 출판된 책이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여당 일각에서 주장하고 나오는 터라 어떤 마음으로 판자촌에 대한 책을 썼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읽은 도시와 주거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 아파트에 촛점이 맞춰졌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서울의 ‘판자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근처에 미아동, 삼양동 ‘달동네’ 근처에 살아서 외관으로나마 판자촌이 어떤 곳인지 경험했었고, 특히 장위동의 산동네는 어렸을 때 자주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생활한 것이 성인이 된 이후였으니 어렸을 때는 마당이 있는 일반주택이나 판자집이나 개량주택 등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판자촌의 모습은 고(故) 김기찬 작가의 사진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두 사진집을 보시면 마포, 서대문, 서울역 주위의 판자촌이 어떠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목안 풍경 30년 ,1968-2001 (눈빛, 2009)

골목 안, 넓은 세상 ( 서울역사박물관,2010)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을 위해 농업을 포기하고 공업발전에 중점을 둔 불균형 발전전략을 채택한 당시 박정희 군부세력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위해 싼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 싼 노동력은 결국 농촌을 떠나 서울에 온 이들이 담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급속한 공업회에 따른 도시의 팽창과 농촌의 축소는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을 낳았고 당시 만성 재정부족에 시달리던 정부는 농촌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이들이 살 수 밖에 없었던 열악한 판자촌을 그냥 묵인했습니다.

싼노동력이 필요하지만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후 판자촌을 양성화해 주거문제를 해결하던 정부는 이후 도시미관을 이유로 판자촌들을 서울의 외곽으로 내보내는 정책을 실시합니다.

박정희 정권 말기 벌어진 ‘광주대단지 사건(1971)이 그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판자집 철거민들을 서울시 외곽으로 보냈지만 상하수도와 전기 등과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도 갖춰놓지 않은 체 사람들을 천막집으로 내모는 일을 당시 공무원들이 했던 겁니다. 야만적이고 몰상식하죠.

이후 정부는 해야할 재정투입을 하지 않고 판자촌을 철거하고 용적율을 높인 중산층 아파트로 개발을 하는 ’합동재개발‘정책을 펴서 판자촌을 없애버립니다.

사실상 건설회사에 특혜를 주는 이 정책은 용적율을 높여 기존 거주자들을 수용하고 남은 아파트를 외부에 분양해 이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귝공유지를 무단 점유해 아주 작은 공간에 살았던 판자집을 철거하고 넓은 공간을 만들어 비싸게 분양하는 건설사는 아주 쉽게 돈을 벌 수 있었고 정부는 국공유지 매각하고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2000년 초를 강타햤던 ’뉴타운‘열풍은 토목으로 잔뼈가 굵은 이명박 서울시장이 시행했던 개발사업으로 예전 판자촌 재개발 방식을 다세대 주택, 빌라촌에 적용한 것입니다.

국공유지에 무단 점유해 살던 판자집과는 달리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재산권과 소유권이 얽혀있는 주택가 빌라촌을 개발해서 아파트를 올리겠다는 뉴타운 개발 방식은 성공하기 어려운 방식이었지만 당시 한나라당에서 정치적으로 밀어부친 정책이었습니다.
이 정책은 무리한 추진과 2008년 닥친 금융위기와 부동산 시장 폭락으로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끊임없이 용적율을 넓혀야 하고 끊임없이 부듕산 가격이 올라야하며 원 거주자가 끊임없이 내쫓겨야 하는 부동산 정책이 사회적으로 긍정적일 수가 없습니다.

최근 1970-8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을 철거하고 새 아파트를 짓는데 대부분 20층이상 35층까지 고층으로 지어집니다. 과거의 아파트가 낮은 건 5층애서부터 높아야 19층 정도인 걸 감안하면 여전히 건설사들이 용적율 높이기를 고수하며 수익을 가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지어진 아파트가 다시 재건축되면 또 35층보다 더 높은 건물로 지어져야 한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아파트 가격도 올라야 하고요.

하지만 인구가 자연감소로 돌어선 한국에서 과연 건설사들의 이러한 수익모델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건설시장애서 세금만 걷어갈 게 아니라 건설사가 독식하는 수익을 줄이고 공공주택을 더 많이 공급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애 청년층의 출산파업은 지극히 현실적 합리적 판단입니다.

1960년대에는 국고도 비었고, 세금을 걷을 수 없어 민간 건설사에 도심재개발을 맡겼다면 경상수지 흑자로 국고가 충분한 현재에도 60여년 전 정책을 지속하는 정부와 국토교통부는 나태하거나 현 정책에 이권이 걸려 바꾸기 어렵다는 것 이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부동산 시장에 공공성이 이렇게 심각하게 저해되는 경우가 미국이외에 어떤 부동산 시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편안히 쉴 집도 없고 고용도 불안정한데 아기를 어떻게 낳고 기를 수 있나요?

인구가 계속 줄어들면 건설사들도 수요부족으로 도산할 가성이 커집니다.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한테 사라고 할 게 아니라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을 내리는 것이 정석이지요. 이런 면에서 건설사들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주장할 자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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