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PD 인 이욱정씨가 본인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쓴 책입니다. 요리를 정식으로 배운 음식전문 PD 답게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인 닭에 대해 인류학적 접근으로 풀어쓴 책입니다.

유튜브에 보면 이 책의 기반이 된 다큐멘터리 영상이 있으니 책과 같이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역시 관심때문입니다. 프라이드 치킨과 오븐에 구운 닭은 저 자신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기도 하고 오래전 인도에서 먹은 탄두리 치킨의 맛을 다시 생각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류학을 공부한 방송인이 만든 책이라 음식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글로 풀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딱 음식문화의 입문용으로 적당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래전 읽었던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의 음식에 대한 금기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이 언급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p132).

한길사에서 오래전 번역된 마빈 해리스의 대표작 한권을 소개합니다.

마빈 해리스 지음, 서진영 옮김. 음식문화의 수수게끼 ( 한길사,1992)

한국의 근대 식문화와 관련해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님의 책도 재미있습니다. 민속학과 역사적 관점에서 아시아의 식생활을 추적하신 대표적인 학자이십니다.

중국서 공부하신 주교수께서 쓰신 책으로 오래전에 읽었던 중국인의 식생활에 대한 소책자인데, 얇지만 내용이 썩 괜찮았던 책입니다.

주영하 지음,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 책세상, 2000)

개인적으로 먹는 문제만큼 중요한 일이 세상에 없고 따라서 매일 접하는 일상의 음식에 대해 레시피뿐만 아니라 그
음식에 대한 의미와 기원을 따져보는 인문학적 탐구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 ( I am What I eat)라는 말처럼 음식은 한 개인의 정체성 ( identity)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사회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입니다.

닭의 경우 다른 식재료인 소나 돼지보다 종교적 금기에서 자유롭고, 소나 돼지보다 쉽게 기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많이 대중화된 식재료여서 많이 먹는 고기입니다.

다음에는 식재료로서의 닭에 대한 이야기보다 한국의 치킨산업에 대한 책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통닭이 치킨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일상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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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26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스타일이 본받을만 합니다.
 
서울 탄생기 - 1960~1970년대 문학으로 본 현대도시 서울의 사회사
송은영 지음 / 푸른역사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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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특한 책이 어디서도 소개가 되지 않은 것 같아 우선 놀랍습니다. 그 전에도 서울의 도시개발사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었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과 확연히 다른 사료를 파고듭니다. 일반적으로 건축사가들이나 도시학자들이 역사적인 사료나 도판을 근거로 도시의 경관변화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는 것이 도시사(Urban History)의 일반적 경향이라면, 이 책은 1961-1978년 발표된 한국의 문학작품을 통해 서울의 현대 도시의 역사를 되돌아 봅니다. 따라서 이 책의 강점은 논픽션의 도표나 수치 그리고 도판이 보여주지 못하는 당시 서울에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 의식구조 등 심리적인 측면을 문학텍스트를 통해 보여준다는 면에 있습니다.

즉 도시학자들이나 건축가들이 쓴 도시사들이 결여한 비공식적인 당시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이 책의 최대 미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만의 독특한 면은 이정도면 될 것 같고, 저자와 책의 외형적인 면을 볼까 합니다. 짐작하셨듯, 조지 송은영 교수는 국문학자이고 건축이나 역사를 전공하신 분은 아닙니다. 1970년대 강남과 강북울 오가며 사신 개인적 경험이 있으신 분이고 이 경험이 이 책을 쓴 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셨습니다. 책은 저자의 연세대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따라서 300여개가 넘는 각주가 빡빡합니다. 어마 가독성을 위해 각주를 후주로 넘긴 것으로 보이고 본문만 517쪽이니까 박사학위 논문 기반 책으로도 내용이 상당한 편입니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 이 책의 주 인용 근거가 문학작품이기는 하지만 서울의 발전에 대한 도시학, 건축학, 사회학, 지리학 등 각 분야의 책과 논문을 인용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현대도시 서울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서울이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도시이고, 이런 특징으로 서울사람들이 역사에 무감하며, 공간의 경제적 가치에 민감한 점을 들수 있으며, 서울의 도시개발 당시에도 의사결정을 할 위치에 있던 엘리트들과 고위 관료 그리고 위정자들이 서울에 살고 있는 보통의 시민들보다 외부의 시선, 즉 서구에서 바라본 서울 그리고 체제 경쟁의 라이벌로서 북한을 더 의식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역사적 몰이해와 살고 있는 주민들을 무시하고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고위층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으로 판자집에 사는 빈민들을 서울 밖으로 내모든 ‘야만’을 실행했습니다. 시민들의 ‘생활’을 무시한 체 단순히 ‘도시미관’을 위해 살 집을 무자비하게 무수는 일은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입니다.

군사독재시절아라고 해도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로서 국민을 보기를 우습게 본 위정자와 엘리트층의 오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1970년대 말에 일어난 이런 오만한 고위층의 태도는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2023년에도 그대로 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묘한 기시감(旣視感, Déjà Vu)를 느꼈습니다. 역사가 반복되는 듯 느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까지 일제시대 경성에서의 공간감각에 의지해 서울을 인식하던 성경민들과 월남한 피난민들은 하지만 1966년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되고 고도성장이 시작되면서 1970년대이후 강남개발이 시작되면서 서울을 공간을 더이상 과거의 역사와 연관짓지 않은체 철저하게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최초의 도시인이라고 부를만한 해방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은 발전된 서구의 문화를 동경하며 이를 실현하는 서구식 생활방식을 ‘편리한’ 아파트에 찿은 셈입니다.

지금 은퇴하신 해방 이후 출생하신 어르신들이나 일제시대 사셨던 분들은 서구를 선진국 모델로 살아오셔서 그런 인식이 1970년대 이후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대중화시킨 한 요인으로 보입니다.


이촌향도와 인구증가로 서울에 주택난이 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한세대만에 한국이 인구 절벽을 맞이하고 세계 최저 출생율을 달성하고 지방소멸의 위기를 맞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시대가 변해도 고위관료층과 위정자층이 1970년대식 사고에 머물러 전혀 사회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 우리세대가 솔직히 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울이 고향이고 저자가 살던 수유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더 이 책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공간(space) 이 아닌 장소 (place)가 개개인의 경험과 맞물린 정서적인 접점이기 때문에 다른 외국도시를 다룬 책보다 고향인 서울을 다룬 책이 더 감정적으로 가깝게 느껴지지 않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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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 한국사 연구자이신 마르티나 도이힐러 (Martina Deuchler) 런던대 명예교수의 연구서입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학자께서 경북 안동과 전북 남원의 출계집단의 변천을 추적해 어떻게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왔는지를 추적한 사회사입니다.

출계집단이란 부계와 모계를 통해 공통의 조상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초기에는 가계도에 부계와 모계를 모두 기록하다가 조선에 신유학이 도입된 이후 부계중심으로 바뀝니다.

조선의 부계중심 종족제도의 출현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16-17세기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었고, 조선에서는 유교식 부계종족과 토착적 기반의 문중을 동일한 제도로 담아내는 절충으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p715).

따라서 조선은 특히 지방의 경우 통치는 정부의 ‘공적’조직에 기반하지 않고 중앙정부는 지방을 종족제도를 통해 ‘사적 통치 (private governance)’를 하는 사족(士族)집단과 갈등관계에 있었고 지방의 사대부, 즉 사족들은 종족제도를 통해 자신들의 신분과 이익을 지켜냈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경우, 출생과 출계가 엘리트 신분을 상속 가능하게 했지만 , 중국은 이론상 엘리트 신분은 사회적 출신과 무관하게 오직 과거급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p721).

한국의 이런 출계 기준의 국가와 사회는 엘리트 신분과 비엘리트 신분의 구분을 확실하게 만들었고, 비엘리트 층의 상향이동이 극히 제한된 사회였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확대된 상태로 서울에 근거를 둔 소수의 경화사족(京華士族)만이 권력에 접근이 가능하고 지방의 사족들도 점점 과거급제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이들은 자신의 출계집단과 서원 그리고 유향소 등을 통해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들과 경쟁하고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족들 중에서도 서얼(庶孼)들은 적서차별의 벽에 막혀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고 향리(鄕吏)들고 출세길이 막혀 결국 지방정치 부패의 온상이 되고 맙니다.

이미 노비들이 실질적인 경제활동의 당사자인데도 사족들의 견고한 기득권에 막혀 착취당해온 내력은 다른 책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노비는 조선 조정이 필요에 따라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양인 여성과 노비의 결혼을 용인하기도 하고 농업과 가내 노동력의 필요에 따라 노비는 재산으로서 경제적 가치를 지니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조선은 노비들의 노동력 착취를 기반으로 한 경직적인 엘리트 양반위주의 견고한 신분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경직적 신분사회를 만든 엘리트 제도를 존속시킨 건 신유학이 아니라 ‘토착적 친족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합니다(p727).

그리고 조선의 신분제가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갑작스럽게 폐지되었으나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는 신분의식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현재의 한국사회에도 아직도 스멀스멀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아직도 학벌에 목매고 고시출신들 실력에 관계없이 실력이 있다고 믿는 세태가 신분제의 긴 그림자가 아직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끝으로 이 책의 외형적인 구성을 보려합니다.
본문만 총 729쪽의 벽돌책으로 총 14장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신라부터 조선말인 19세기까지 다루지만 주로 조선 중기가 중심으로 생각됩니다.

저자가 2015년 Harvard에서 출판한 영문본을 너머북스에서 2018년 번역한 책입니다.

책을 보면 저자가 안동과 남원 등지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저자가 오랜시간 한국을 탐구한 자료들이 집대성한 책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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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명의 공저자들이 각각 본인에게 전문적인 도시에 대해 맡아서 쓴 책입니다.

대표저자인 경희대 민유기 교수의 서문에 따르면, 전작인 ‘도시는 기억이다 (서해문집,2017)의 후속편으로 기획된 책이 이 책으로 상기의 전작이 주로 서양의 도시들을 다루었기에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그리고 러시아 극동지방까지 포함)의 도시를 다루었다고 합니다.

총 21곳의 동아시아 도시를 모두 여기서 소개할 수는 없고 몇몇 도시를 선별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식민도시편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세력이 충돌했던 중국 동북의 관문 다롄과 하얼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싱크탱크였던 만철(滿鐵, 南満州鉄道株式会社)의 본사가 위치했던 교통의 요지로 19세기 청일전쟁 승리후 일제가 차지하였으나 영국, 독일, 러시아의 간섭( 삼국간섭, 三國干涉,1895)으로 요동반도의 영유를 하지 못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암살로 한국인들에게 잘알려진 곳이지만 도시 자체가 제정 러시아시기 러시아인이 건설한 곳으로 러시아가 중국 대륙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도시이기도 합니다. 연해주의 송화강 인근의 도시로 개인적으로 아직도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도시입니다.

식민도시편의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편은 너무 글이 짧고 단편적입니다. 특히 페낭의 경우는 얼마전 읽었던‘ 아편과 깡통의 궁전( 푸른역사,2019)‘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영국식민지 페낭의 화교사회와 아편사업, 주석채굴사업 등에 관한 민족지적 성격의 사회사이지만, 페낭의 도시발달 등 산업적인 측면을 이해하는데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문화유산도시로는 일본의 마쓰야마(松山)편이 흥미로웠습니다. 일본의 국민소설가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郞)가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쓴 1969년에 쓴 ‘언덕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의 공간적 배경이 마쓰야마입니다. 이 역사소설은 2009년 일본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이 한국인의 주목을 받는 건 이 소설이 보여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한 시각 (perspective) 때문입니다. 시바 료타로는 일제가 처음 저지른 두 전쟁을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를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두 전쟁을 일으켰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면을 부각한 그의 역사관은 후에 ’역사수정주의‘로 대표되는 일본의 우익 교과서 개정운동으로 이어지고,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친일극우적인 ’뉴라이트‘운동이 일어납니다.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사죄를 하지 않는 ’기이한‘ 일본극우들이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서구의 많은 일반인들이 아시아 국가에 관심이 없지만 소위 동아시아 전문가 중에서도 일본이 저지른 ’난징대학살( Nanjing Massacre,1937-1938)‘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미국의 도움으로 미국의 공산주의 봉쇄정책에 대한 필요 때문에 전범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았던 일본은 그들이 저질렀던 전쟁범죄를 은폐해서 이런 일이 생긴겁니다.

산업군사도시 편에서는 우선 인천의 부평과 울산이 흥미로웠습니다.
부평은 현재 경인공업단지의 주요한 지역인데, 개발의 역사가 일제시기까지 거슬러올러가며, 최근 위안부 할머니들의 청구권 문제로 뉴스에 나온 미쓰미시(三菱)중공업이 병기창을 만들어 중일전쟁 당시 군수품 보급창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당연히 이곳에 병기창과 더불어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일본의 패전 후에는 미군이 주둔했던 곳입니다. 부평의 미군부대 반환지인 캠프 마켓(Camp Market)은 토양오염 문제로 역시 뉴스에 나오다가 최근 인천식물원으로 개발된다고 합니다.

일제는 서울과 가까운 영등포에 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인천과 서울 사이에 위치한 부평에도 역시 공업단지를 만들어 수도권의 공장지대를 만든 겁니다. 1960-70년대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일제가 만들어놓은 도시계획과 산업화 정책을 이어받은 면이 큽니다.

이런 면에서 현재 석유화학단지로 유명한 울산도 부평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일제는 원산에서 정유설비를 대거 울산으로 이전해 일본과 가까운 울산을 전쟁 병참기지로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으로 정유설비는 70% 정도만 옮겨졌고, 박정희 정부는 이를 마무리한 겁니다. 예상과 다르게 박정희 군사정부는 경제개발을 혼자서 다 한게 아닙니다. 이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 군사정권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도시의 역사가 흥미로운 건 이 도시계획이 경제개발계획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공장 등의 입지조건 등을 따지고 부지를 결정하는 일련의 절차가 모두 지역의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결국 경제문제라고 정의한다면 한 지역이 개발되어 공장이 들어서고 그 배후에 주택이 들어서고 도로가 정비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바로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물리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개의 물리적 공간을 보는 건축도 결국 살아가는 거주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이를 집합적으로 모은 공간이 또한 도시이기 때문에 결국 건축과 도시와 산업과 생산소비경제는 모두 연결된 겁니다. 어느 하나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조금씩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 책에 나온 도시들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연구가 수록된 책이 발간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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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청국(大淸國)은 한국인들의 뇌리에 조선 인조 재위시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을 일으킨 ‘오랑캐’의 나라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청국과 관련된 역사서는 대부분 전쟁사이거나 대외관계사 등 정치 군사적인 면에 집중하는 면이 강합니다. 또는 만주 압록강과 두만강 주변에 살던 여진족( 女眞族)이 어떻게 중원을 정복하고 중국의 영토를 확장했나 하는 점을 강조해서 서술합니다.

장한식,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산수야,2015)
유근표, 인조 1636 (북루덴스,2023)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중국 청대의 경제와 사회를 다루는 한글로 된 단행본은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번역본이 아니라 국내학자가 저술한 경우는 극히 드문경우라고 봅니다.

책은 서구의 경제성장이론 혹은 산업화 이론과 청국의 실제 사료를 검토해 청국의 경제가 유럽 특히 영국과 아시아의 일본의 경우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청국의 경제가 전 왕조인 명과 어떻게 다른지 화폐경제적 측면 (monetary economic perspective) 과 상품경제적 측면 (commercial economic perspective)로 구분해서 살핍니다. 중국 청대가 중요한 또하나의 이유는 이 시기가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와 겹친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시기 중국과 영국을 포함한 서구가 어떤 경제발전의 경로를 따라왔는지 살피는 건 의미있는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비교는 왜 서구에서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이 먼저 일어나게 된 경위에 대한 설명이 될수 있습니다.

또한 서구의 경제발전모델 이외 중국이 어떤 발전경로를 따라왔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쿠즈네츠 ( Simon Kuznets)의 경제성장론과 케네스 포메란츠(Kenneth Pomerantz)의 대분기론도 언급됩니다.

청대의 경제발전 수준을 시기별로 보자면 18세기까지 서구와 별반 차이없는 수준을 보이다가 19세기에 서구에 뒤쳐지게 되는데, 포메란츠가 말한 대분기란 서구와 중국의 경제적 생활수준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 경제사가는 18세기 중국과 서구의 격차가 별로 없다는 걸 대분기라는 그의 대표 저서에서 논증합니다. 이책은 별도에 글에서 다시 다룰 예정입니다.

Kuznets,S., Toward aTheory of Economic Growth (W W Norton,1968)

Pomeranz,K.,The Great Diverg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2000)

이론적인 배경에 대한 논의는 여기에서 마치고 청나라의 경제가 도대체 어떠했는지 간략하게 살핍니다.

청나라는 예상과는 달리 화폐경제를 기반으로 한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명나라때부터 유입하기 시작한 멕시코와 일본의 은이 중국대륙에 들어와 있었고, 거기에 청조정과 지방정부에서 동전을 만들어 유동성(liquidity)을 공급했습니다. 명대에 조정이 동전공급에 소극적이었던 사실과 달리 청 조정은 동전을 시장에 공급해 부의 이전이 하층 계급에게도 용이하게 했습니다.

다만 명청시대는 현재와 같이 그리고 서구에서 생각하는 화폐의 본위제(standard system)을 채용해 일정 양의 은과 법화의 가치를 연계시키지 않았습니다. 표준적인 화폐론 교과서에 나오는 금본위제 혹은 은본위제는 그 역사적 연원도 개념도 모두 서구에서 나온 것입니다.

청대 중국은 서구와는 다르게 본위제를 선택하지 않고 다양한 동전을 중앙과 지방정부 그리고 민간업자들이 만들어썼고, 따라서 가치나 규격도 동일하지 않았습니다.

은도 은화를 만든게 아니라 은괴를 무게를 달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상업거래에 있어 고액결제는 은으로 소규모 결제는 동전으로 하는 복합적 화폐경제체제였습니다.

저자는 청 조정이 18세기 건륭제 제위기에 특히 동전을 대규모로 유통시킨 사실을 현대적 의미에서 중앙은행의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과 비슷한 정책으로 보고 이런 유동성 공급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고 부의 집중이 일어났지만 한편으로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어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향성되었다고 해석했습니다.

중앙집권적 근대 국민국가체제에 익숙한 현재 우리가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체제이지만 청대 중국은 예상과 달리 황제의 권력이 지방에 이르지 못했고, 각 지방의 실력자들이 그 지역을 나름의 방식으로 통치하는 분권적 체제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각 지방마다 말도 다르듯 도령형도 다르고 화폐도 다양하게 운영된 겁니다.

북경의 황제가 엄연히 통치하는 황제국이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국 청대의 경제체제는 자유방임( laissez-faire)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경제체제의 제도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자유경제체제’는 말만 들으면 정부는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경제가 잘돌아갈 것처럼 들립니다.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를 합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화폐의 경우를 보더라도 위의 청나라처럼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결제방식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 현재처럼 국가가 법정통화를 발행하고 그 법정화폐의 가치를 정한다는 건 국가가 경제행위에 제도적으로 개입한다는 말이고 실제 한국을 비롯해 자유주의 경제를 지향하는 모든 서구국가들이 이런 제도를 채택합니다. 이 화폐경제 시스템이 전제되어야 자유로운 물품의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현대경제에서 국가는 개입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기본적인 ‘국가의 책무’입니다.

끝으로 이책의 마지막에 나온 ‘선대제 수공업’에 대해 언급합니다.

서구의 산업화이론에 따르면 자금과 장비를 선대업자에게 제공받아 임노동을 제공해 완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초기 생산방식이 공장제 메뉴팩쳐링(manufacturing)으로 가는 전단계라고 해서 선대제 수공업의 존재여부가 산업혁명으로 가느냐 못가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합니다.

청대 중국의 경우 선대제 수공업이 일반적이지 않아 중국이 산업혁명에서 뒤쳐진 걸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중국의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 해석오류였습니다.

서구와 일본의 경우 중앙집권적 권력이 자리하고 자본이 집적되어 자본가층과 노동자 층이 형성되어 시장에서 고립되고 가진돈이 없는 농민들이 선대제 수공업에 참여하여 부수입을 올릴 수 밖에 없었지만, 중국의 농민들은 시장접근이 자유롭고 국가의 통제가 거의 없는데다 독립적으로 수공업을 영위해도 판로가 있기 때문에 굳이 선대제 수공업으로 갈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중국의 상황을 구태여 서구의 산업화이론에 꿔어 맞춰 설명할 필요가 있는지도 솔직히 의문입니다. 이 케이스는 선대학자들이 역사적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섣부른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근세와 현대 중국에 대한 책을 보면 우리가 현재 표준으로 알고 있는 자유주의 경제체제, 민주주의 경제체제가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18세기 이후에 확산된 새로운 생각이고 그 이전 수천년 동안 서구건 아시아건 모두 전제주의 정치체제에 속해있었습니다.

더구다 청대 중국은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으로 황제가 절대권력을 경제행위에 행사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화폐제도도 정비하지 않고 신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농사짓고 상품거래하는 걸 방임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경제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새로운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최소 1842년 아편전쟁 이전까지 중국은 경제자원이 분권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특별하 산업혁명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서구의 눈으로 볼 때 이 상황을 자신의 상황과 비교해 중국이 ‘후진적’이라고 해석할 소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책의 부제에 있는 ‘협치’가 과연 책에서 설명이 되어 있는지 좀 의구심이 있습니다.

청대 중국이 중앙집권적으로 통치된 것이 아닌 것도 맞고 지방의 토호세력들과 사대부들이 독자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건 사실인 듯하지만 이 사실이 바로 북경의 조정과 ‘협치’를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결론에서 갑자기 이 용어가 튀어나와 좀 놀랐습니다. 개인적으로 협치는 좀 과도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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