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명의 공저자들이 각각 본인에게 전문적인 도시에 대해 맡아서 쓴 책입니다.

대표저자인 경희대 민유기 교수의 서문에 따르면, 전작인 ‘도시는 기억이다 (서해문집,2017)의 후속편으로 기획된 책이 이 책으로 상기의 전작이 주로 서양의 도시들을 다루었기에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그리고 러시아 극동지방까지 포함)의 도시를 다루었다고 합니다.

총 21곳의 동아시아 도시를 모두 여기서 소개할 수는 없고 몇몇 도시를 선별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식민도시편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세력이 충돌했던 중국 동북의 관문 다롄과 하얼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싱크탱크였던 만철(滿鐵, 南満州鉄道株式会社)의 본사가 위치했던 교통의 요지로 19세기 청일전쟁 승리후 일제가 차지하였으나 영국, 독일, 러시아의 간섭( 삼국간섭, 三國干涉,1895)으로 요동반도의 영유를 하지 못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암살로 한국인들에게 잘알려진 곳이지만 도시 자체가 제정 러시아시기 러시아인이 건설한 곳으로 러시아가 중국 대륙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도시이기도 합니다. 연해주의 송화강 인근의 도시로 개인적으로 아직도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도시입니다.

식민도시편의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편은 너무 글이 짧고 단편적입니다. 특히 페낭의 경우는 얼마전 읽었던‘ 아편과 깡통의 궁전( 푸른역사,2019)‘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영국식민지 페낭의 화교사회와 아편사업, 주석채굴사업 등에 관한 민족지적 성격의 사회사이지만, 페낭의 도시발달 등 산업적인 측면을 이해하는데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문화유산도시로는 일본의 마쓰야마(松山)편이 흥미로웠습니다. 일본의 국민소설가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郞)가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쓴 1969년에 쓴 ‘언덕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의 공간적 배경이 마쓰야마입니다. 이 역사소설은 2009년 일본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이 한국인의 주목을 받는 건 이 소설이 보여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한 시각 (perspective) 때문입니다. 시바 료타로는 일제가 처음 저지른 두 전쟁을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를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두 전쟁을 일으켰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면을 부각한 그의 역사관은 후에 ’역사수정주의‘로 대표되는 일본의 우익 교과서 개정운동으로 이어지고,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친일극우적인 ’뉴라이트‘운동이 일어납니다.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사죄를 하지 않는 ’기이한‘ 일본극우들이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서구의 많은 일반인들이 아시아 국가에 관심이 없지만 소위 동아시아 전문가 중에서도 일본이 저지른 ’난징대학살( Nanjing Massacre,1937-1938)‘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미국의 도움으로 미국의 공산주의 봉쇄정책에 대한 필요 때문에 전범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았던 일본은 그들이 저질렀던 전쟁범죄를 은폐해서 이런 일이 생긴겁니다.

산업군사도시 편에서는 우선 인천의 부평과 울산이 흥미로웠습니다.
부평은 현재 경인공업단지의 주요한 지역인데, 개발의 역사가 일제시기까지 거슬러올러가며, 최근 위안부 할머니들의 청구권 문제로 뉴스에 나온 미쓰미시(三菱)중공업이 병기창을 만들어 중일전쟁 당시 군수품 보급창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당연히 이곳에 병기창과 더불어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일본의 패전 후에는 미군이 주둔했던 곳입니다. 부평의 미군부대 반환지인 캠프 마켓(Camp Market)은 토양오염 문제로 역시 뉴스에 나오다가 최근 인천식물원으로 개발된다고 합니다.

일제는 서울과 가까운 영등포에 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인천과 서울 사이에 위치한 부평에도 역시 공업단지를 만들어 수도권의 공장지대를 만든 겁니다. 1960-70년대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일제가 만들어놓은 도시계획과 산업화 정책을 이어받은 면이 큽니다.

이런 면에서 현재 석유화학단지로 유명한 울산도 부평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일제는 원산에서 정유설비를 대거 울산으로 이전해 일본과 가까운 울산을 전쟁 병참기지로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으로 정유설비는 70% 정도만 옮겨졌고, 박정희 정부는 이를 마무리한 겁니다. 예상과 다르게 박정희 군사정부는 경제개발을 혼자서 다 한게 아닙니다. 이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 군사정권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도시의 역사가 흥미로운 건 이 도시계획이 경제개발계획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공장 등의 입지조건 등을 따지고 부지를 결정하는 일련의 절차가 모두 지역의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결국 경제문제라고 정의한다면 한 지역이 개발되어 공장이 들어서고 그 배후에 주택이 들어서고 도로가 정비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바로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물리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개의 물리적 공간을 보는 건축도 결국 살아가는 거주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이를 집합적으로 모은 공간이 또한 도시이기 때문에 결국 건축과 도시와 산업과 생산소비경제는 모두 연결된 겁니다. 어느 하나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조금씩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 책에 나온 도시들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연구가 수록된 책이 발간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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