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한 해의 결실을 맛보는 명절이기도 하다. 가족들이 모여서 그동안의 회포도 풀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추석은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겠지만, 지금은 음식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명절이 지나면 남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할까 많은 고민들을 하고, 그 고민을 해결해주는 요리 프로그램도 많이 방영이 되곤 하는데.

 

어쩌면 지금 시대는 모자라서 문제인 시대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너무 넘쳐서 문제인 시대인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에 추석이나 설 명절에는 더 많은 음식들이 넘쳐나니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렇다는 말이다) 이것은 동의보감에서 말한 '태과가 불급'보다 더 안 좋다는 말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너무 많은 음식이 결국 우리 몸에 좋을 리가 없을테니 말이다. 이때 이런 책은 어떨까? 한 번 발상을 바꿔보는 것은?

 

요즘은 인스턴트에 패스트푸드에 육식이 너무도 넘쳐나니, 정갈한 음식으로 우리 몸을 대접해 봄은?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고칠 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는데, 음식이 넘쳐서 생기는 병은 음식을 조절함으로써 고쳐야 할테니...

 

한때 스님이었다가 환속해서 절음식으로 유명해진 사람의 책이다. 일명 사찰음식, 절음식 소개다.

 

이 책은 눈으로 먹는 절음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사진만 보아도 참 맛깔스럽게 생겼다. 몸에도 좋고, 맛도 있는 절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해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요리방법까지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있는 책이다. 아니면 이 절들에 가면 한 번 절음식을 얻어먹어도 좋을 것 같고.

 

이 책에서는

 

수원 용주사, 여주 신륵사, 합천 해인사, 구례 화엄사, 여수 향일암(영구암), 여수 흥국사, 해남 대흥사(대둔사)

 

가 나온다.

 

너무도 유명한 절들이기도 하고, 향일암으로만 알았는데, 그 이름이 왠지 일본을 향한다는 뜻으로 일제시대에 바뀐 이름이라는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 이름을 영구암으로 바꿨다는 사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기도 했고.

 

우리 주변에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식물이 많음을, 그리고 육식을 하지 않아도 건강을 지킬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하기도 했고... (그렇다고 꼭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음식을 먹으면 될 터. 다만, 지나친 육식은 몸에도 환경에도 좋지 않으니, 그 점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명절에 먹은 음식과 이 책에 나온 음식을 한 번 비교해 보자. 그리고 명절에도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음을... (차례상이야 전통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가족들이 모여 먹는 음식은 조절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냥 눈으로라도 이 책을 한 번 보면 음식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눈으로 먹는 음식을 경험할 수도 있다.

 

갖가지 음식이 넘치는 시대, 내 몸에 조금 모자란 듯하지만 정갈한, 몸에도 좋은 음식을 대접해 보는 것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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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 개정판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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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았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한의학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또 몇 해 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그보다 전에는 소설로도 나와 많이 읽히기도 했으니, 동의보감보다는 오히려 허준이라는 인물이 더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동의보감은 허준의 작품이고, 허준의 사상이 고스란히 들어간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이 동의보감이 허준이라는 천재에 의해 어느 한 순간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발전해 왔던 한의학을 토대로 허준이 집대성했다고 보면 된다.

 

(이 책의 앞부분에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우리가 습득한 내용들이 잘못하면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에 머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런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있다. 소설과 드라마만 본 사람은 이 책의 앞부분을 통해, 양예수와 허준의 관계, 또 유의태라는 인물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얻어야 할 것이다.) 

 

참 방대한 내용이라는데... "내경, 외형, 잡병"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놀란 점은 동의보감의 차례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즉 차례를 통해서도 동의보감의 내용을 일별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여기에 허준이 백성들을 얼마나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차례를 보고 찾아서 처방을 할 수 있게 한 편제라고 할 수 있고, 이 책의 뒤에서도 나오지만 잡병편에는 특히 탕약의 경우에는 한글로도 약이름을 써놓았다고 하니, 우리나라 백성이 자기 마을에서 나는 약재로, 그것도 여러 약재가 아닌 한 가지 약재로도 (이를 단방이라고 한다) 병을 고칠 수 있도록 한 마음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실 우리는 동의보감을 읽어보지 않는다. 아니 읽을 수가 없다. 분량도 엄청날 뿐더러 책 가격도 만만치 않고 또 왠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한의대에 다니는 사람들만 읽는 책으로 치부하고 우리 곁에서 멀리 두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동의보감으로 하여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한 허준의 의사와는 거리가 먼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한 이유는 물론 왕인 선조의 명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고칠 수 있음에도 몰라서 못 고치고 시름시름 앓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약재를 찾아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도록 하는데도 있을텐데... 결국 허준이 원한 것은 몸의 주체는 바로 그 사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동의보감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구하기 힘든(? - 있는 사람들에게야 책값이 문제된 적은 없다. 다만 없는 사람들에겐 책값도 문제지만 이를 참고해 자신의 병을 고칠 시간도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책이 되고, 사람들 곁에 없다는 것은 문제다.

 

물론 옛날에도 책을 구해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구전(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으니, 마을에 책 한 권이 있어도 마을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보감의 내용으로 처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 곁에 있어야 동의보감의 좋은 점을 알고, 또 생활에 실천하기도 할텐데, 그 점이 아쉽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동의보감을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하고 있다. 결코 어렵지 않다고. 읽기에 편하다고. 생각할 것이 참 많다고.

 

동의보감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있는 책이기는 한데, 단지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현대에서 동의보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동의보감이 지닌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지까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의 글솜씨가 뛰어나 읽기에 너무도 편하다는 장점도 있고, 그리고 동양의학의 진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무어라 딱 하나로 결정짓지 않는 것, 세상에 고정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 병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여러 번 나오지만 암세포도 그 자체로는 그냥 세포일 뿐이다. 이 암세포가 있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암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관계, 몸의 다른 장기, 세포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암환자가 되기도 하고, 그냥 보통 사람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결국 모든 것은 '관계'다. 이 '관계'는 상대에 따라, 또 나에 따라 늘 변한다. 변하지 않음은 없다. 그러므로 병도 무조건 나쁜 것, 멀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변화를 요구하는 활동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 내 몸의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하고, 내 생활을 돌아보며 내가 변화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동의보감'의 핵심이라고 한다.

 

세상에 동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병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건강이란 이런 여러 관계들, 또 내 몸의 변화를 내가 알아차리고 그에 맞게 생활해 나가는 데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동의보감이 단순한 처방책이 아니라 철학책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단순한 처방책이 아닌 철학책이 될 수밖에 없음을, 그것도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더 유용한 철학임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동의보감을 읽기는 힘들어도 이 책을 읽기는 쉬울 것이다. 읽어보자. 읽으면서 내 몸을 생각해 보자. 내 생활을 생각해 보자.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덧글

 

이 책을 읽으면서 동의보감을 함께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책값이... 엄살이 아니다. 많이 비싸다. 양도 방대하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동의보감이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면 누구에게나 공유되면 좋은 책일테니... [조선왕조실록]처럼 번역해서, 원문과 함께 누구나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게 전산화시키면 어떨까 하는... 나라의 사업으로... 꿈이 너무 허황한가. 그렇지 않을텐데...

 

국민들 스스로 자기 건강을 지키게 하는 것이 보건의료정책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국가정책으로 이를 우선 사업으로 선정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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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떼거리 문화


소나무는 

절개와 지조, 선비의 나무,

곧 우리나라 나무라고

예전 시가에서는 노래했지

그러나 이들이 소나무를 가까이서 봤는지 몰라

멀리서 우뚝 솟아 보이는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 말고

자기들끼리 떼거리로 모여 있어

그 밑에선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소나무를 말야

싹나고 잎나고 꽃피고 꽃지고 잎떨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늘 푸르르면서 제 잎으로 사시사철 햇볕을 가리고

쓸모없어진 잎들로 제 주변을 덮어

어느 곳에나 자라는 풀들도 나지 못하게 하는

저만 고고한, 저들만 고고한

그들의 떼거리 문화를 본 적이 있냐 말야

그렇게 가까이서 소나무를 봤다면

소나무가 우리나라 상징이라는 말,

참 부끄러운 말이지 않겠어

참, 삐딱한 생각이지.

그런데 한 번 소나무들 주변을 봐, 밑을 봐.

도대체 무엇이 있나.

떼거리로

저들만 잘 살고

나머지는 모두 억눌러 버리는

그래서 저만 푸르름을 자랑하고

저만 곧고 크게 잘 자라 동량이 되는

주변엔 아무 것도 없게 하는 그런

떼거리 문화

그것이 소나무인데 말야.

조금 보기 싫어도 제 때 되면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그 사이로 햇볕이 들게 하는

그런 나무들이

우리나라 상징이면 얼마나 좋았겠어.

소나무 밑을 보며 걸으니 참, 이런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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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예술 산책 - 작품으로 읽는 7가지 도시 이야기
박삼철 지음 / 나름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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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시라고 하면 우선 삭막함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지나쳐 가는 공간. 커다란 건물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해 다른 건물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며,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제각각 자신의 일만 할뿐이라고 여겨지는 도시.

 

도시는 사람이 살아가야만 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살고 싶지는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도시를 떠나서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도시에는 온갖 편의시설이 다 있기 때문이다.

 

쉽게 편의시설을 포기하지 못하면서도 사람다운 삶에서는 좀 멀어진 생활을 도시에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서 도시의 삶을 선으로 표현하면 직선의 삶이다. 그냥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좌우, 앞뒤를 살피지 않고 오로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야 하는 직선의 삶.

 

하지만 자연은 직선보다는 곡선이 더 많고, 우리 몸 자체도 직선이라기보다는 곡선이 더 많지 않은가.

 

강을 개발한답시고 꼬불꼬불 흐르던 강이나 하천을 직선으로 쭉 뻗게 해서 결국 주변의 모래사장이라든지, 물고기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모두 없애버리고, 콘크리트로 막아버리고 만 것, 사람들이 좀더 편리하게 살게 하겠다고 도로도 직선, 건물도 직선 모두 직선, 직선, 최단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이 바로 도시 아니던가.

 

이렇게 도시의 삶은 삭막한데도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떠날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도시에 사는 인구가 지구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하듯이 도시는 이제 사람들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절을 고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도시의 삶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도시에서 떠나 살 수 없다면 도시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시를 바꾸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직선의 도시를 곡선으로 바꾸는 일이다. 어떻게?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그렇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미 도시의 직선을 곡선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노력을 발견한다면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거기에 함께 한다면 도시의 삶도 충분히 변화가 가능하다.

 

이 책에서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시를 빠르게 지나치지만 말라고, 천천히 걷기의 속도로, 자전거의 속도로, 아님 마차의 속도로 지나가라고.

 

그러면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그냥 내쳐 달리기만 했을 때 보이지 않던 도시의 장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도시에도 이렇게 많은 예술이 있음도 알 수 있게 되고.

 

그 예술들이 독자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해주고 있음도 알 수 있고.

 

따라서 직선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삶에 주름을 하나하나 접어 넣기 시작하는 것이 도시의 예술이다. 그런 주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시의 삶도 느려지고 풍요로워진다.

 

이 점을 깨닫기 시작하는 순간 벌써 도시의 변화에 참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시를 경원시하고, 그냥 회피하고 멀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그것도 바로 주변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났음을 안다면 자신도 도시를 마냥 부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너무도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긍정적인 면, 예술가들이 동떨어져 홀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숨쉬고 함께 관계 맺으며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는 점, 또 우리 도시에서 예술 작품들이 이렇게 많이 있음을, 그 예술들이 도시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도시를 걸으며 주변을 살피고 싶다는 생각, 도시에 살면서 할 수 있고 해야할 일은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도시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다. 그곳의 주인공은 도시를 꽉 채운 문명이 아니라 바로 사람임을 잊지 않도록 이 책이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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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6-09-1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생각 나네요

kinye91 2016-09-13 11:08   좋아요 1 | URL
서울이 삭막한 공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찾아보면 서울에서도 예술을 느낄 수 있음을 이 책이 보여주고 있어요. 좀더 사람과 함께 하는 도시로 서울도 변모해 가지 않을까 해요. 도시 생활에 사람들이 관심을 지니고 있다면요.

낭만인생 2016-09-1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쑥 책 사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도심을 잘 들여다보면 예술 작품이 적지 않는데 그냥 스쳐 지나 가는 것 같습니다.

kinye91 2016-09-13 17:19   좋아요 0 | URL
저도 도시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장소일 뿐이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도심 속을 걸으며 한 번 예술 작품들을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늘 기다려지는 책이다. 이번 호에서는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나도 궁금하고, 내가 생각하고 있지 못했던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니, 오면 반갑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싶지만, 한달음에 읽고 싶기도 한 책이다.

 

너무도 근본주의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근본주의는 우리가 기본으로 생각해야 할 것들 아니겠는가.

 

세상이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데, 그 종말이 뻔히 눈에 보이는데, 그래서 우리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지 않으면 종말이 기어코 오고 말텐데, 어찌 근본주의적 주장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근본주의와 극단주의는 다르다는 점 명심하자)

 

어떤 사람들에게 녹색평론이 마치 '카산드라의 예언'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는 않지만, 카산드라의 예언은 비록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아서 그렇지 그 예언은 모두 맞는 예언이었다는 사실.

 

녹색평론이 주장하고 있는 문제들은 예언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예측이라는 것, 그 예측이 빗나가게 하는 일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라는 점.

 

예측이 된다면 예측대로 가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자율성이고, 인간의 힘 아니던가. 그런 자율성과 힘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책이 바로 녹색평론이다. 결코 녹색평론은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이번 호는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목으로 달고 있다. 개헌 논의가 이루어지다가 소강상태가 되다가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쏙 들어가 버리곤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지금은 개헌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라는 인식을 한다.

 

87년 헌법이 이제는 시효가 만료되었다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면 제왕적 대통령제는 손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도대체 수많은 사표(死票)들을 발생시키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이유가 뭐냐고? 기득권 세력들의 힘에 밀려, 그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제도로 전락해버린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개헌은 필요하다. 단지 대통령제만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지금 시대적 상황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개헌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번 호 좌담에서 개헌을 할 수 있는 주체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밖에 없는데, 둘 다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 아니던가.

 

위임받은 권력이 개헌을 발의할 수 있는데, 정작 권한을 위임해준 국민들은 개헌을 발의할 수도 없다니, 이게 무슨 주권을 지닌 국민인지...

 

그래서 개헌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개헌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국민들이 참여하지 않고 87년처럼 몇몇 소수만이 참여한 개헌은 하나마나한 개헌이라고,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이번 호에서 말해주고 있다.

 

전국민이 참여하는 개헌, 그것이 바로 국민이 주권을 가진 주체로 정치에 참여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떻게 개헌 논의가 흘러갈지 지켜봐야겠지만, 녹색평론에서 최소한 개헌은 국민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즉 국민이 주체가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향성은 제시했으니...

 

개헌말고도 이번 호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내용은 '사드'와 '쿠바'다.

 

'사드'는 우리가 미국의 입김하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보는데, 과연 '사드'가 우리나라 안보에 도움이 되느냐, 또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논의 자체가 거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어서 사회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을, 단지 사회 갈등뿐만이 아니라 외교 갈등까지 일어나고 있음을 여러 글에서 보여주고 있다. ('사드'에 관한 글이 이번 호에 네 편이 실렸다)

 

이런 '사드'와 반대편에 있는 글이 바로 '쿠바'에 관한 글이다. 미국의 바로 아래에서 미국의 경제봉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나라를 유지해 온 쿠바. 의료천국, 유긴농, 도시농으로 식량문제 해결, 쿠비에 맞는 민주주의로 자주국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쿠바에 관한 글이 세 편 실렸다. 읽어볼 만한 글들이다.

 

한 편 한 편 읽으며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읽는 눈을 키울 수 있는데...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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