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 개정판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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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았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한의학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또 몇 해 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그보다 전에는 소설로도 나와 많이 읽히기도 했으니, 동의보감보다는 오히려 허준이라는 인물이 더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동의보감은 허준의 작품이고, 허준의 사상이 고스란히 들어간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이 동의보감이 허준이라는 천재에 의해 어느 한 순간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발전해 왔던 한의학을 토대로 허준이 집대성했다고 보면 된다.

 

(이 책의 앞부분에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우리가 습득한 내용들이 잘못하면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에 머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런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있다. 소설과 드라마만 본 사람은 이 책의 앞부분을 통해, 양예수와 허준의 관계, 또 유의태라는 인물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얻어야 할 것이다.) 

 

참 방대한 내용이라는데... "내경, 외형, 잡병"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놀란 점은 동의보감의 차례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즉 차례를 통해서도 동의보감의 내용을 일별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여기에 허준이 백성들을 얼마나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차례를 보고 찾아서 처방을 할 수 있게 한 편제라고 할 수 있고, 이 책의 뒤에서도 나오지만 잡병편에는 특히 탕약의 경우에는 한글로도 약이름을 써놓았다고 하니, 우리나라 백성이 자기 마을에서 나는 약재로, 그것도 여러 약재가 아닌 한 가지 약재로도 (이를 단방이라고 한다) 병을 고칠 수 있도록 한 마음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실 우리는 동의보감을 읽어보지 않는다. 아니 읽을 수가 없다. 분량도 엄청날 뿐더러 책 가격도 만만치 않고 또 왠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한의대에 다니는 사람들만 읽는 책으로 치부하고 우리 곁에서 멀리 두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동의보감으로 하여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한 허준의 의사와는 거리가 먼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한 이유는 물론 왕인 선조의 명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고칠 수 있음에도 몰라서 못 고치고 시름시름 앓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약재를 찾아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도록 하는데도 있을텐데... 결국 허준이 원한 것은 몸의 주체는 바로 그 사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동의보감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구하기 힘든(? - 있는 사람들에게야 책값이 문제된 적은 없다. 다만 없는 사람들에겐 책값도 문제지만 이를 참고해 자신의 병을 고칠 시간도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책이 되고, 사람들 곁에 없다는 것은 문제다.

 

물론 옛날에도 책을 구해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구전(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으니, 마을에 책 한 권이 있어도 마을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보감의 내용으로 처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 곁에 있어야 동의보감의 좋은 점을 알고, 또 생활에 실천하기도 할텐데, 그 점이 아쉽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동의보감을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하고 있다. 결코 어렵지 않다고. 읽기에 편하다고. 생각할 것이 참 많다고.

 

동의보감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있는 책이기는 한데, 단지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현대에서 동의보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동의보감이 지닌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지까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의 글솜씨가 뛰어나 읽기에 너무도 편하다는 장점도 있고, 그리고 동양의학의 진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무어라 딱 하나로 결정짓지 않는 것, 세상에 고정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 병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여러 번 나오지만 암세포도 그 자체로는 그냥 세포일 뿐이다. 이 암세포가 있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암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관계, 몸의 다른 장기, 세포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암환자가 되기도 하고, 그냥 보통 사람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결국 모든 것은 '관계'다. 이 '관계'는 상대에 따라, 또 나에 따라 늘 변한다. 변하지 않음은 없다. 그러므로 병도 무조건 나쁜 것, 멀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변화를 요구하는 활동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 내 몸의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하고, 내 생활을 돌아보며 내가 변화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동의보감'의 핵심이라고 한다.

 

세상에 동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병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건강이란 이런 여러 관계들, 또 내 몸의 변화를 내가 알아차리고 그에 맞게 생활해 나가는 데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동의보감이 단순한 처방책이 아니라 철학책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단순한 처방책이 아닌 철학책이 될 수밖에 없음을, 그것도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더 유용한 철학임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동의보감을 읽기는 힘들어도 이 책을 읽기는 쉬울 것이다. 읽어보자. 읽으면서 내 몸을 생각해 보자. 내 생활을 생각해 보자.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덧글

 

이 책을 읽으면서 동의보감을 함께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책값이... 엄살이 아니다. 많이 비싸다. 양도 방대하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동의보감이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면 누구에게나 공유되면 좋은 책일테니... [조선왕조실록]처럼 번역해서, 원문과 함께 누구나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게 전산화시키면 어떨까 하는... 나라의 사업으로... 꿈이 너무 허황한가. 그렇지 않을텐데...

 

국민들 스스로 자기 건강을 지키게 하는 것이 보건의료정책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국가정책으로 이를 우선 사업으로 선정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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