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2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어찌 르귄이 쓴 소설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으랴. 어떻게 르귄의 작품을 SF라는 틀에 가둬둘 수 있으랴? 시간과 공간이 현실 세계가 아니더라도, 상상 속의 그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도 더 생생하게 다가오니, 읽으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다.


결말을 빨리 알고 싶은 마음이 들고, 결말이 내 생각과 다를 것 같은 생각에 불안해 하며, 마치 르귄이 사라마구가 쓴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을 때와 같은, 이 작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이토록 강렬한 주제를 펼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과 평화, 유일신을 믿는 종교과 여러 신을 믿는 종교, 남성 우위의 사회와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회, 많은 것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소설을 이끌어가는데...


예전 판본이 세 권으로, 각자 다른 단행본으로 나와, 순서를 잘못 읽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한 권 한 권을 그냥 따로 읽어도 별 문제가 없을 거란 생각도 드는, 그럼에도 새로운 판본에서는 세 이야기를 하나로 합쳐 '서부해안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한 권으로 나왔음을 생각하면, 역시 순서대로 읽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번 권은 두 번째 이야기... 자신의 선물을 인식하고 저지대로 그라이와 함께 떠난 오렉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서술자가 바뀐다. 메메르라는 여성으로. 


식민지가 된 안술과 그들을 다스리는 아수다르의 알드인들... 안술 사람인 메메르는 알드와 안술의 피가 섞인 사람이다. 어머니가 알드 군인에게 강간당해 임신해 낳은 아이. 그러나 그에게는 안술의 정령이 깃들고, 그는 안술 사람으로 알드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자, 흔한 이야기다. 식민지 지식인이 지배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전쟁을 통해 지배국 군인들을 몰아내려는 움직임. 식민지 사람들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지배자들.


하지만 이 소설은 이것과 다르다. 전쟁이 아니라, 어떻게 자유를 쟁취하는 것인지, 그 자유가 상대의 파멸을 통한 것이 아니라 상대와 공존할 수 있는 자유여야 함을 메메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왜 시인들이 이야기 속에 가사와 요리를 넣지 않는지 의아했다. 모든 위대한 전쟁과 전투는 결국 그걸 위한 게 아닌가? 저녁이 되어 평화로운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싸우는 게 아닌가? 설화는 만바의 군주들이 술 산 기슭으로 쫓겨나서 야영을 할 때 어떻게 사냥을 하고 뿌리를 모으고 저녁거리를 요리했는지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이 적에게 파괴되고 버려진 도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75쪽)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쉽게 사람을 숫자로 여기는 게 아닐까. 생명이나 살아 있는 몸으로 생각하기보다 숫자로, 마음속의 전장에 밀어 넣을 수 있는 마음속의 장난감으로 여기는 게 아닐까. 이런 추상화는 즐거움을 주고 그들을 흥분시키고 행동 자체를 위해 행동하게 해준다. 놀이말처럼 숫자를 조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은 신들에게, 그리고 그 놀이 속에서 고통받고 죽이고 죽는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즐거움을 정당화하기 위해 애향심, 혹은 명예, 혹은 자유란 이름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사랑, 명예, 자유 같은 말은 본래 성질을 잃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경멸하게 되고, 시인들은 그 말들에 본래 모습을 되찾아주기 위해 싸워야 한다. (296쪽)


메메르는 이런 의문을 품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전쟁은 남성적이다.(이런 말을 하는 것이 편가르기 같고 편견같지만, 맨박스라는 말이 있고, 그런 행동을 남성적이라고 하니, 보통은 폭력을 남성적이라고 하는 성별 구분의 용어가 아니라 우리가 행동을 구분짓는 용어로 남성적-여성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전쟁과 달리 삶을 유지하는 행위들은 여성적이다.


그럼에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런 여성적인 활동이 이야기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단순한 행위들이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메메르를 서술자로 내세운 것은 이런 이분법적인 폭력에 대한 비판을 내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다시 오렉과 그라이가 등장한다. 그들은 메메르와 만난다. 메메르. 읽을 수 있는 여자. 읽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진실을 알고, 진실을 알리는 일이다. 책 속에 진실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읽을 수 없다. 읽을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은 본능에 따라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것.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식민 지배자들은 읽기를 하지 못하게 한다. 책들을 불태운다.


불태우는 책, 진리를 감추려는 노력. 이것에 반하는 사람이 바로 오렉이다. 오렉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창작자의 작품을 찾아내어 읊고, 인쇄하고, 무시나 망각으로부터 복구하고, 빛나는 언어를 다시 빛나게 하는 것이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지요. (86쪽)


이런 오렉과 오렉을 지키며 함께 하는 그라이, 그리고 이제는 그들과 함께 하는 메메르. 안술은 폭력으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움직임으로 해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소설에서 잘 전개되고 있다. 무기가 아닌 말의 힘으로... 그래서 제목이 '보이스'다.


지배자로 온 간드(통치자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간드라는 말은)인 이오라스가 시를 이해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오라스는 지배자로 왔기에 흉측한 인물로, 폭력적인 인물로 생각되지만 오렉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니 이런 인물과 안술의 수장이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그 역시 말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예전 동양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떠올렸는데, 분서갱유는 성공할 수 없다. 책을 불 태우더라도 모든 책을 불태울 수는 없으며,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책들을 모두 없앨 수는 없다. 바로 메메르처럼... 읽을 수 있는 사람 모두를 없앨 수도 없으니.. 이는 진리는 감금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진리는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임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얼마나 폭력일 수 있는지,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은 결국 다른 신을 섬기는 민족을 제거해도 된다는 말이 되니, 이 말이 '나 이외의 다른 신들도 나처럼 섬겨라'라는 말로, 다른 신들도 포용하는 말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안술 사람들이 알드 사람들과 공존하기로 결정한 것은 결국 나 이외의 다른 신도 받아들이는 포용성에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런 포용성은 메메르가 숨겨둔 책들을 꺼내 도서관을 만들기로 한 것에서, 즉 읽기는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진리는 특정인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것임을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소설은 메메르가 도서관을 만들기로 하고, 또 오렉, 그라이와 함께 길을 떠나려고 한다는 데서 끝나고 있다.


이제는 3권으로 건너간다. 자, 또 무슨 일로 르귄은 우리의 시간을 잡아둘 것인지,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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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이 지구상에는 없는 땅이 나온다. 그러나 지구상에 없다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상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바로 우리들이 겪는 일상임을 깨닫게 하는데 이 소설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제목은 '기프트'다. 우리말로 하면 선물인데... 어떤 선물? 바로 내게 주어진 능력이다. 그것은 선물이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을 행할 때 대가로 주어야 할 것도 바로 선물이다. 선물은 주고받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받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선물에는 이미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선물 하면 한쪽 면만 보는 경향이 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이 둘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선물이 지닌 의미가 산다. 단지 주고 받는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선물 자체도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에는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사는 고원지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소위 환타지로 불리는 소설에서는 특별한 종류의 인간들이 나오고, 이들과 대비되는 보통 사람들이 나온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는 보통 사람들이고, 특별한 사람들은 주술사나 그밖의 능력을 지닌 인간들로 나온다. 능력자들은 고지대에 살고, 보통 사람들은 저지대에 산다. 그리고 그들은 교류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절된 세상.


그런데 이것이 환타지 소설에서만 나올까? 우리들 일상생활에서도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서로가 서로를 경원하면서 다르게 살아가는 현실. 또 능력자들이라고 해도 그 능력으로 인해 성공하는 사람과 파멸해 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그 능력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행로.


이것이 바로 이 소설 '기프트'다. 지구상에 없는 도시와 사람들을 등장시켰지만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기프트', 선물은 대부분 파괴적이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선물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만 전승이 된다. 이들은 이 선물을 받았음을 보여주면 권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선물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진다. 너무도 뛰어난 '되돌림' 능력을 받았지만 파멸하고 만 주인공 오렉의 고조할아버지 카다드. 오렉은 이런 카다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의 파괴력에 대해 공포심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통에 따라 선물의 의미를 파악하고, 공동체에서 생각하는 선물의 의미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공동체가 생각하는 선물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자신은 모자란 사람으로 생각하고 마는 것처럼 오렉 역시 그렇게 생각하며 지낸다.


선물을 다른 방향으로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공동체 생활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하지도 못하니, 오렉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을 한 방향이 아니라 양 방향으로, 기존의 관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점을 오렉을 통해 알려준다.


어찌보면 한 남자 아이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성장에 도움을 주는, 또 남성 주인공이 우여곡절을 거쳐 겨우 깨닫게 되는 것을 이미 깨우친 여성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물이 지닌 양면성을 지적한 것도, 끝까지 주인공과 함께 하는 인물도 그라이라는 여성 인물이다. 소설에서는 오렉이라는 '되돌림'이라는 파괴의 능력을 계승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그 인물이 그러한 파괴 능력을 선물로서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데, 그라이의 선물은 '부름'인데, 이는 동물을 불러내 사냥꾼들에게 넘기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동물의 마음을 읽고 동물과 함께 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 점을 그라이는 깨닫고, 자신은 사냥을 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쓰지 않기로 한다.


그렇다면 '되돌림' 능력은 어떻게 될까? 오렉은 이 파괴의 능력을 거부하려 한다. 자신에게 엄청난 파괴의 능력이 있다고, 눈을 가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파괴의 선물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그는 언어의 아름다움에 빠진다. 창작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가 받은 선물은 있는 것을 파괴하는 되돌리기가 아니라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되돌리기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데 그가 겪는 수많은 일들이 이 소설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이 파괴적인 능력을 진정한 선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를 마음 졸이면서 읽게 된다.


여기에 이 소설의 묘미가 있다. 작가는 답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둔다. 그러다가 한 순간 한 단계 성장한 주인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 사람이 지닌 능력이 이렇듯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낸다면, 집단이나 사회, 국가는 어떨까? 한쪽면만을 보고, 그것만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오히려 다른 면이 있음을 말하고, 그 다른 면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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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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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귄의 글들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다. 그래, 그렇지 감탄하면서 읽는다. 자꾸 르귄의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소설도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 이렇게 수필이나 서평을 쓴 글을 통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페미니즘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르귄은 여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인간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아는 것'이라는 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여자들에게 무엇을 배우느냐는 질문에 답해 볼까요? 제가 첫 번째로 내놓을 거대한 일반화는 우리가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운다는 겁니다' (149쪽)


바로 이거다. 우리는 남성인 인간, 여성인 인간, 성소수자인 인간 등으로 자라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의 가르침은 이렇지 않다고 한다. 


'남자들의 가르침은 현 상황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자들의 가르침은 개인적이기에 더 전복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152쪽)


이런 말을 보면 여성들이 수동적이라고 하는 말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운다면 세상이 인간을 가르고 차별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전복적이 된다. 이것이 바로 여자의 가르침이다.


국가, 사회, 집단에 개인을 매몰시키지 않는다. 국가, 사회, 집단은 개인이 존재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남자들의 가르침은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고, 개인을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경향이 많다. 이런 경향 속에서 여성의 주장은 집 안으로 국한되기 일쑤다.


하지만 르귄은 아니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가르침이 결국은 국가, 사회, 집단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 그것의 바탕은 바로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있다고 한다. 명심할 말이다.


이 책에서 또 하나는 문학과 장르 문학을 비교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비교가 아니라 대조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 비해 장르 문학은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는 주장.


르귄이 쓴 소설은 SF소설이라는 장르 소설로 흔히 분류한다. 그리고 SF소설은 문학에서 청소년들이나 읽는 작품으로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주장에 르귄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세상에 문학과 장르 문학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그 많은 문학의 종류에 장르 문학이 속할 뿐인데... 이쪽 저쪽 편가르기를 하면 그것은 이미 문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사람을 남성, 여성, 기타 다른 성으로 나누어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잘못되었듯이, 문학도 이런 문학, 저런 문학 나누어 구별짓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SF소설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를 꾸며낸 소설이 아니다. SF소설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통로다. 나니아 연대기나 앨리스 이야기를 보면 다른 세계로 인물들이 갈 수 있는 통로가 나온다. 그 통로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


SF소설도 마찬가지다. SF소설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다양한 면을 인식하게 된다. 오히려 SF라는 특성때문에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차분하게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 미래의 세계나 과거의 세계를 현재로 데려오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SF소설이 한다. 그래서 SF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현실적이지 못한 SF소설에 대해서는 르귄 역시 가차없이 비판하고 있다.


그러니 문학과 장르 문학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겠는가? 르귄이 그러한 구분을 참지 못하고 이 책의 여러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이 책에는 다양한 서평이 들어있고, 다양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드는,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들도 있다. 그렇게 르귄은 또다른 작품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특히 주제 사라마구.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처음 '페스트'와 함께 떠올랐던 작품. 인간은 이제 어느 한 순간에 자신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게 되는데, 그때 우리는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는데...


이 책 곳곳에서 르귄은 사라마구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 중에 하나. '존엄의 예: 주제 사라마구의 작업에 대한 생각들'이라는 글을 보면 그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잘 드러나 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던 르귄은 그 작품에 압도되어 읽기를 멈춘다. 작가를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그리고 사라마구의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한다.


그가 쓴 소설들을 죽 읽으면서 사라마구에 대한 믿음이 생긴 르귄은 다시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는다. 그러면서 그 작품이 왜 좋은지를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눈 먼 자들의 도시' 이후에 나온 작품들도 찾아 읽고.


이런 태도다. 작가를 만나고 작품을 읽게 되면 그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 작품을 더 읽고 싶어진다. 찾아서 읽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르귄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 읽기 시작한다. 르귄이 '사라지는 할머니들'이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나는 여자들의 소설을 문학 정전에서 한 권씩 한 권씩, 한 명씩 한 명씩 배제하는 흔한 기법이나 수법을 네 가지 알고 있다. 이 수법들은 폄하, 누락, 예외화, 그리고 질송이다. 이 넷이 쌓여 지속적으로 여자들의 글을 주변으로 밀어낸다.' (160쪽)


이 말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다면 여성작가란 말도 사라지겠지. 문학을 무슨 무슨 문학으로 구분짓는 것도 사라지겠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르귄의 책이다. 그래, 이렇게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 다른 작가, 다른 작품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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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5-0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좋은 주말 되세요~

kinye91 2021-05-09 08: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5-08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kinye91 2021-05-09 08: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5-09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kinye91 2021-05-09 10: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트릭 미러 -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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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글이 실려 있다. 이렇게 많은 찬사를 받은 책이니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려는지. 좋은 책은 이런 추천글이 없어도 읽는다. 읽을 생각이 들고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추천사를 나열한 이유가 있을텐데...


어쩌면 이런 추천사를 통해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환상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냥 트릭 미러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읽을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읽기 시작하는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빅데이터에 기반해 사람들이 읽을 책도 그런 경향의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있으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가? 그런 빅데이터를 통한 추천과 이렇게 알려진 사람들의 추천사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잘 알려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들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만이 그들이 추천한 책을 집어들게 되지 않을까? 결국 [트릭 미러]는 이러한 추천사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 네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어. 그리고 이렇게 추천하고 있어. 그러니 너도 읽어.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이렇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 글이 우리나라 판에 이렇게 책 앞장에 소개되어 있는 것도 일종의 [트릭 미러]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이들과 너는 생각이 비슷하니,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너에게 만족을 줄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족했으니.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이 의도하는 것은 이런 추천사를 믿고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추천사는 추천사일 뿐이다. 그냥 그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다고. 너는 네 나름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관점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가.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공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자신의 관점을 지지하고 굳히는 내용의 책으로 관심이 가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지지했던 사람들이 쓴 책, 추천한 책을 읽는 경향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앞의 추천사를 곱씹어야 한다. 그 추천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추천사는 '트릭 미러'가 아니라 '미러(거울)'가 되게 해야 한다.


그러니 이 책 표지에 작은 글자로 또 다른 제목이 있다.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이걸 계속 의식하면서 책을 읽으라는 말로 읽힌다. 이 책이 우리의 관점을 강화시키는 역할만을 하게 하지 말고, 우리 관점 너머를 볼 수 있는 역할을 하라고.


총9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 글들은 다른 내용이면서도 연결이 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살아온 배경을 통해서 보게 되고, 때로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을 판단하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한번 손에 들면 책 내용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내 관점을 반성하게 된다. 세상이 선과 악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음을,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만 해석할 수 없음을. 그런데도 디지털 세상에서는 0과 1로 디지털을 운영하듯이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는데, 이 말을 계속 생각하니, 좌나 우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그것도 서로의 모습을 왜곡해서 비춰주는 [트릭 미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모습을 잘 알 수 있는 글이 '어려운 여자라는 신화'다. 


여성과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데, 성에 대한 관점에 숨어 있는 다른 관점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이 글과 관련하여 '우리는 올드 버지니아에서 왔다' 역시 사건의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한다. 대학의 성폭행 사건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보지 않고, 그 행위에 녹아 있는 '관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관습'이 어떻게 일탈을 정당화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주류 세력에 의해 공고화 되어 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제퍼슨이 세운 대학 '버지니아 주립대학'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그 기저에는 성차별만이 아니라 인종차별까지도 깊게 내면화되어 있음을.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우리의 관점을 통해 굴절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역시 우리 관점으로 인해 가려졌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을 인식할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인터넷, 리얼리티쇼, 사기(특히 무슨 무슨 펀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경제 사기), 성차별, 종교와 마약, 결혼제도 등등에 대해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밖에 있는 것들을 생각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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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호를 여는 글 제목은 '정확하게 이해하기'다. 이해하기도 힘든데,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더 힘들다.


  내 관점을 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 어떤 글도 내 관점을 거쳐 이해되기 때문에, 나는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런 경우에 대화가 필요하다. 내 이해와 네 이해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로 가는 것. 하지만 이런 대화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여유에서 나온다.


  영화 '미나리'로 요즘 많이 언급되는 배우 윤여정이 했다는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여유가 있어야 이해를 한다고, 그것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나라 인권을 문제 삼는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행위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그들은 과연 자신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자신들이 하는 그 행동들이 혐오행동이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이들에게는 삶의 여유가 있을까? 오히려 살기 힘들기 때문에, 그 이유를 강한 자들에게서 찾고, 그들을 향해 주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보다 더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여유가 없기 때문에 감사뿐만이 아니라 이해할 마음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빅이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음식에 관한 글이 있는데, 고급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이 잘 가지 못하는 디저트 음식을 파는 곳을 소개하는 글. 그 글을 보면서 과연 노숙인들 자활을 돕는 잡지인 [빅이슈]에서 그런 사치스럽다면 사치스러운 음식에 대한 글을 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아니다. [빅이슈]이기 때문에 그런 글을 실어야 한다. 노숙인이라고 해서 무료 급식소에서만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들 역시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는 빈부귀천이 없다.


[바베트의 만찬]이란 소설을 보라. 최선을 다해 고급스러운 음식을 대접하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바베트. 자신의 전재산을 음식을 장만하는데 쓰고도 만족해하지 않던다. 그것을 사치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자신에게 베푸는 만찬이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만찬. [빅이슈]에 실리는 음식에 관한 글을 보면서 그렇게 [바베트의 만찬]을 떠올리고, 그런 글들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 호에서 문구, 다이어리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만년필로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린 시절 펜촉에 잉크를 묻혀 글을 쓰던 모습, 펜촉을 꽂을 펜대를 사기도 했지만, 모나미 볼펜 뒤에 꽂아 쓰던 기억. 그리고 한 쪽을 쓰기 위해서 여러 번 잉크를 찍어야만 했던 기억. 그렇게 펜촉으로 글씨를 쓰면 빨리 쓸 수가 없다.


매끄럽고 빠르게 쓱쓱 써지던 볼펜과 달리 펜으로 쓰는 글씨는 천천히 쓸 수밖에 없었다. 글씨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는데, 펜촉에서 벗어난 건 만년필을 선물 받고부터... 한번 잉크를 넣으면 꽤 오랫동안 쓸 수 있었던 만년필은 새로운 세계였다.


펜촉보다는 빠르게 쓸 수 있지만 볼펜보다는 느리게 쓰던 만년필... 이번 호에서 그런 기억을 소환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펜촉으로나 만년필로 글씨를 쓴다는 것도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여유는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내 맘 속에 비워둔다. 나를 꽉 채워 더이상 다른 존재가 들어올 수 없게 하지 않고 나를 비워 다른 존재로 하여금 나를 채울 수 있게 한다.


이런 비움은 곧 여유고, 여유는 내 관점만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자연스레 이해를 동반하게 된다. 이해를 하게 되면 많은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될 테니... [빅이슈]를 만나면서 내 맘에 빈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고나 할까. 여러모로 고마운 [빅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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